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81화 (381/1,021)

#381.

호출을 받고 나타난 조성돈 팀장은 당연히 K투스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오디오 사업부 쪽에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만들었고, 무선 이어잭 개발은 바로 진행될 겁니다. 현재 개발된 품질도 나쁘지 않아서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보고는 하는 조성돈 팀장은 새삼 다른 시선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이번 기획이 이렇게 쉽게 진행될 것이라 믿지 않았다.

차라리 다른 방식으로 개발하는 대안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에릭슨조차 이제 막 새로운 근거리 통신망 작업에 들어갔으니까.

그런데 최민혁은 오히려 기술로 이들 글로벌 업체를 밟아버렸다.

최민혁은 복잡한 표정의 조성돈 팀장 얼굴을 보면서 씩 웃었다.

“K투스 말인가요?”

“네. K투스를 응용할 만한 아이템 역시 강구 중입니다. PC와도 통신이 가능한 점을 최대한 활용할 생각입니다.”

이번 K투스는 최민혁 실장이 주도하면서 기획 팀은 그저 따라만 갔기 때문에 발 빠르게 조처를 한 셈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생각이 좀 달랐다. 그는 아주 현실적이었다.

“글쎄요. 아직 K투스가 탑재된 PC가 나오지 않아서 그건 쉽지 않을 겁니다.”

“칩이 탑재된 모듈식으로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PC 인터페이스에 K투스 칩을 탑재하는 방식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그런 식으로 돈 낭비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아뇨. 그런 쪽에 돈 낭비하지 마세요. K투스가 근거리 통신망이 된다고 해도 시장이 커지려면 몇 년은 족히 걸립니다.”

“하지만 K투스는 그냥 이대로 내버려 두기에는 너무 아까운 기술입니다. 임기석 부장 이야기로는 얼마든지 추가로 보완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최민혁은 당연히 조성돈 팀장이 왜 저런 말을 하는지 잘 알았다.

“알아요. 그게 가능하므로 에릭슨 쪽에서 연락해 온 것이니까.”

실제로 에릭슨 블루투스 개발 팀은 발칵 뒤집혔다. 그들도 이전과는 달리 MP3 원천 기술을 보유한 KM 전자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이동호 교수, 송한성 교수가 각각 MP3 관련 원천 기술, 위성 시스템 쪽으로 새로운 원천 기술을 학계에 발표하면서 단순히 국내만이 아니라 해외 학자의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이번 연구와 관련된 ETRI 연구 팀 역시 힘을 보탰다.

이들은 해외 컨퍼런스에 적극 나서면서 최민혁 실장과 같이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를 아낌없이 풀어 기술을 과시했다.

특히 위성 시스템인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뒤늦게 주목을 받으면서 한동안 시선을 끌었다.

이러한 연구를 지켜본 이들 중에는 에릭슨 역시 빼놓기 어렵다. 그들은 K투스 발표를 보자 즉시 전문 인력을 보내서 사실 확인부터 했다.

조성돈 팀장은 이 문제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이미 이 K투스는 다른 업체의 도움을 받아서 표준으로 가는 것이 훨씬 이익입니다. 그러니 이번 기회에 에릭슨 측과 손을 잡아서 우리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죠. 하지만 생각보다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장기적으로 생각해야 해요. 에릭슨 측과 적극적일 필요도 없습니다. 차라리 갑질하는 것이 훨 났습니다. 지금 상황은 겉보기와는 좀 다릅니다.”

“네?”

“K투스가 근거리 통신 수단으로 괜찮은 방식이지만 수익성까지 고려될 수가 없어요. 표준이 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 알력 싸움도 문제입니다. 인텔, IBM이 설마 우리 쪽에 손을 들어줄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들도 요구하는 조건이 있을 겁니다. 그걸 일일이 다 고려하면 갈 길이 멉니다.”

“하지만 무선 이어잭 상용화가 이미…….”

“그런 부분에서 우리에게 우위가 있겠죠. 근거리 통신 표준에서 우리 지분이 클 겁니다. 하지만 이 일은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

조성돈 팀장은 그제야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혔다. 그는 최민혁에게서 냉정한 현실을 듣자 그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면…….”

최민혁은 그제야 방긋 웃었다.

“이제부터 돈이 되는 쪽을 본격적으로 파봐야죠.”

당장 KM 전자에서 단기로 돈이 되는 사업 아이템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월마트와의 콜린스 50만 대 계약이 서서히 과시화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콜린스 중소형 모델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지금 진행하는 중소형 모델을 빠르게 마무리하는 것도 좋지만 이보다는 미래를 준비하는 것이 우선이죠. 제가 알기로 오성 전자에서 TV 브라운관 차세대 모델로 플라즈마 TV, LCD TV에 관해서 연구 중인 것으로 압니다.”

최민혁은 습관적으로 의견을 내는 중에 조성돈 팀장의 복잡한 눈빛을 보자 피식 웃었다. 그 역시 K투스를 너무 성급하게 꺼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계속 갈 수는 없었다.

최소한 기획 팀이 새로운 도전을 해보는 것이 좋았다.

‘뭐, 아직은 시간이 있으니까. 그리고 서둘러서도 곤란해.’

그는 머리를 굴리다가 결국 기획 팀에도 기회를 주기로 마음먹었다.

“…기획 팀에서는 그쪽에 대해서 한번 검토를 해보세요. 이왕이면 LCD 쪽이 좋겠어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이미 LCD 관련 기술 쪽에 최민혁이 관심이 많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지금까지 기획 팀에서 따로 조사한 바로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최민혁의 지시를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K투스 사태처럼 계속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었다.

‘LCD 기술은 문제점이 많은데, 거기에 따른 대안이 있다는 말일까?’

최민혁은 고민에 빠진 조성돈 팀장 얼굴을 보자 힌트 정도는 줬다.

“임기석 부장을 한번 찾아가 보세요. 연구소 조직 재편이 이루어지면, 원천 기술 쪽을 담당할 분이니, 아무래도 아는 것이 좀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최민혁은 고민에 빠진 조성돈 팀장 뒷모습을 묘하게 쳐다보았다. 그는 과연 조성돈 팀장이 자신의 지시를 잘 이해했을지 그게 궁금했다.

하지만 아무리 일정이 급해도 다 떠먹여 줄 수는 없었다.

기획 팀을 비롯한 KM 전자의 조직도 성장을 거듭해야 했다.

‘뭐 K투스 문제도 있지. 지금도 아마 이상하다고 생각할 거야.’

그랬다.

K투스는 지금처럼 주먹구구식으로 찍어서 나올 기술이 아니었다. 간섭이라는 한 가지 문제만 해도 몇 년에 걸친 실험과 천문학적인 자본이 필요했다.

이런 기술이 복합적으로 엮여 있는 K투스 기술을 공장 양산품처럼 찍어내는 것은 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외부에서도 최민혁 실장이 주도한 거지, 그 혼자 이런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최민혁은 최근 국뽕 몰이에 정신이 없는 K투스 관련 뉴스를 떠올리면서 입맛을 다셨다.

‘그래, 너무 오버하는 것도 아니지.’

* * *

임기석 부장은 평소와는 달리 초췌한 얼굴로 K투스 관련 기술을 살폈다. 그는 기술을 검토하면서도 의문을 떨칠 수가 없었다.

에릭슨 측에서 만나자는 제안이 와도 김홍준 과장을 보내서 슬쩍 거리를 둔 것은 K투스와 관련된 의문점 때문이었다.

조성돈 팀장이 방문했을 때도 제대로 쳐다보지 않았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이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말하자 눈만 끔뻑거렸다.

“…차세대 LCD라니, 정말 그 사업을 하는 겁니까? 그게 무슨 황당한 소리입니까?”

“차세대 LCD 생산은 아마 외주를 줄 것 같습니다. 그러니 너무 나가지는 말아주세요.”

조성돈 팀장은 빈 의자를 하나를 가져와서 그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는 힐끗 임기석 부장 팀을 한 번 쳐다보았다.

원천 기술을 담당한 임기석 부장 팀원은 다들 일하는 척하면서 조성돈 팀장 시선을 받자 바로 얼굴을 모니터에 처박았다.

공채덕 과장은 지금도 에릭슨 측 엔지니어의 집요한 요구를 들어준다고 고생하는 김홍준 과장을 떠올리면서 눈빛을 반짝였다.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움직임에 휩쓸려서 정신없이 뒤를 쫓다가 이제야 이상한 점을 느꼈다.

“임 부장님도 몰랐습니까?”

“…K투스 관련된 부분은 전혀 몰랐습니다. 그냥 자고 일어나니, 최 실장님이 최병연 이사님 통해서 관련 기획안을 던진 것에 불과합니다.”

“혹시 최병연 이사님이 중간에 손을 쓴 겁니까?”

“아뇨, 최 이사님도 아는 것이 없었습니다. K투스는 있던 기술이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맨땅에서 튀어나온 기술이니까요.”

“…대단하군요.”

“이건 그렇게 말로 간단히 넘어갈 문제가 아니에요. 에릭슨이 바보라서 그렇게 삽질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텔, IBM이 돈과 기술이 없어서 에릭슨과 슬쩍 손을 잡으려고 합니까? 다 기술적인 개발이 너무 어렵기 때문입니다.”

“으음, 그 정도면 충분히 알겠습니다.”

“아니, 이건 그렇게 넘어갈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도 회의가…….”

“실장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K투스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였으니까요. 오히려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언론에 한 방 먹여줄 목적인 것 같았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고요.”

K투스 관련된 부분은 오영근 사장이 직접 기자 인터뷰를 통해서 자세히 밝혔다. 심지어 특허를 내놓은 기술을 다 공개했다.

그러니 언론도 가짜 뉴스로 최민혁 실장을 이전처럼 바보로 몰아갈 수가 없었다.

TV 뉴스 패널에서는 이미 K투스와 관련된 기술이 공개되면서 가짜 뉴스를 만발한 언론을 조롱거리로 만들었다.

한국 언론 중에도 서로 적대 관계에 있는 언론이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상대 언론의 신뢰도를 찍어 누른 것이었다.

덕분에 최민혁의 ARN 인수를 비웃었던 언론은 여러 곳에서 가루가 되도록 까이고 있다. 심지어 신뢰도가 바닥을 쳤다.

한영 일보 같은 경우에는 작정하고 깐 덕분에 타격을 크게 입었다. 이달에 바로 광고 매출이 지난달과 비교해서 30% 가까이 격감했다.

이번 일만 잘 처리되면, 광고를 더 주겠다던 대기업도 슬쩍 발을 뺐다.

이 난리를 만들어놓은 최민혁 실장이 정작 K투스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말했다.

최민혁 실장을 잘 안다고 생각한 임기석 부장도 눈만 껌뻑거린 채 당황해서 대답하지 못했다.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실장님은 K투스는 일단 잊으라고 했습니다. 대신에 차세대 LCD 쪽 관련한 모든 기술적인 검토를 하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인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LCD 쪽의 문제는 이미 다 드러난 상황입니다. 그걸 극복하는 게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최 실장님은 바로 그 점을 파고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건 제 생각인데, K투스 사태를 만든 것도 이 LCD 문제에 집중할 목적인 것 같습니다.”

크게 당황한 임기석 부장은 말을 더듬고 말았다.

“설마요? K투스가 고작 시선 돌리기로 만든 기술이라고요? 아니, 그게 마, 말이 됩니까?”

조성돈 팀장 역시 할 말은 많았지만,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우리 기획 팀에서도 차세대 LCD 관련 사전 조사를 진행하겠지만, 전혀 모르면 답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임 부장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끄응, 알았습니다.”

임기석 부장은 잠깐 망설이는 조성돈 팀장의 모습을 봤지만 더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MP3 기술과 관련해서 과거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K투스에 대한 의혹을 깔끔하게 접었다.

그는 공채덕 과장을 비롯한 팀원을 호출해서 회의실로 데려갔다.

‘차세대 LCD 원천 기술이라…….’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과거 최민혁 실장은 KM 그룹 임원진을 불러놓고 회의할 때 약속한 기술이기 때문이다.

다만 그 기술 개발과 관련해서 이전처럼 최민혁이 힌트를 주지 않은 점 때문에 머리가 아팠다. 임기석 부장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았다.

‘골치네. 오성 전자, 히타치, 소니를 비롯한 글로벌 기업도 답을 찾지 못한 문제야. 그걸 본격적으로 검토하라고 하다니.’

* * *

임기석 부장은 나름 지금까지 자신의 실적이 있으니, 그래도 뭔가 힌트라도 찾지 않을까 싶었다.

하지만 회의가 끝난 후에 따로 차세대 LCD 관련 기술 검토를 해도 답을 쉽게 찾지 못했다.

LCD는 근본적으로 문제가 많았는데, 이 부분 중에는 느린 액정의 반응 속도와 관련된 것도 있었다.

그런데 이 액정의 한계는 KM 전자에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더욱이 이 액정의 반응 속도 문제가 해결되어도 끝나는 것이 아니다.

이 액정을 활용할 LCD 구조는 좀 다른 것이다.

그것에 대해서도 아예 전혀 아는 것이 없으니,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원래 펌웨어 OS 담당이었던 공채덕 과장은 당연히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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