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80화 (380/1,021)

#380.

하지만 답변이 없었다. 테스트 샘플을 직접 듣고 있는 사람이 있으니까.

모든 이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다름 아닌 오영근 사장, 문형섭 부사장이었다.

“…….”

오영근 사장, 문형섭 부사장은 둘 다 개발용으로 만든 무선 이어잭을 귀에 꽂은 채 음악을 들으면서 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개발안이 나오기가 무섭게 무선 이어잭이 나온 것에 경악했다.

특히 오디오 전문가인 문형섭 부사장은 놀라운 음질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해할 수가 없네.”

물론 최민혁 실장을 보고 한 말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간단하게 설명했다.

“어차피 아날로그 음질이 아니라 디지털 음질이 기준이 된 것에 불과해요. 무선 이어잭에 사용된 근거리 통신망 자체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그래 참 간단하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면 에릭슨이 세계적인 IT 회사랑 같이 손을 잡고 근거리 통신망 개발한다고 삽질할 이유는 없다.

심지어 시작도 하기 전에 밥그릇 싸움이 진행 중이라서 내부 갈등만 생기고 있었다.

오영근 사장이 이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한 것은 KMP-01의 시장 반응과 관련이 있다.

사람 욕심이 끝이 없는 것처럼 카세트 플레이어보다 한 단계 승격한 KMP-01을 보자 무선 이어잭을 요구하는 사람이 많았다.

KMP-01 고객은 이 제품 자체에 만족했지만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무선 이어잭을 요구했다. 워낙에 KMP-01이 발전된 모델이기에 무선 이어잭도 가능하지 않을까 질문한 것이었다.

기술을 모르는 사람으로서는 당연한 요구다.

하지만 무선 이어잭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특히 근거리 통신망을 사용한 방법은 여러 가지 많은 문제가 있었다.

최민혁은 손뼉을 쳐서 주위를 환기한 후에 방긋 미소 지었다.

“일단 개발 시제품이 나왔지만, 아직 상용 제품으로 미흡한 구성이 많을 겁니다. 그런 점을 보완하도록 하면 좋겠습니다. 아, 그리고 문형섭 부사장님!”

“아, 어? 마, 말해보게.”

문형섭 부사장은 아직도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최민혁의 기획안이 나왔을 때만 해도 이 일이 진짜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시간이 더 필요할 것이라 봤다.

아무리 빠르게 잡아도 그 기간은 적어도 3년이다.

2년도 아니고, 1년도 아니다.

불과 한 달 만에 새로운 기술이 나왔다.

“문 부사장님이 나서서 무선 이어잭과 근거리 통신망 성과를 발표하세요. 이왕이면 블루투스와 노골적으로 비교하세요.”

“꼭 그럴 필요가 있을까? 에릭슨이라는 회사와 갈등도 일어날 것 같은데…….”

“갈등이 생기라고 하는 거죠. 단순한 개발이 아니라 한 달에 안에 상용제품이 가능한 수준 아닙니까. 깜짝 놀라서 자기들이 진행하는 개발을 포기하게 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지금은 먼저 선수를 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회사를 씹던 언론을 한 방 먹이는 것도 괜찮죠. 아마 그 배후에 있던 애들이 경악할 겁니다. 그리고 노이즈 마케팅으로 시선을 끄는 목적도 있으니, 최선을 다해주세요.”

“…알겠네.”

문형섭 부사장, 오영근 사장은 뒤늦게야 최근 한국 언론의 부정적인 기사에 최민혁이 크게 삐쳤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마음 상했다고 무선 이어잭을 개발한 거야? 정말 그게 가능한 일인가.’

* * *

한영 일보 이동수 부사장은 과거 말이 나왔던 X 리포트를 다시 살폈다. 그가 보고 싶어서 보는 것은 당연히 아니었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행보가 조금씩 드러나면서 그의 능력이 가볍지 않다는 것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니 최민혁 실장이 과거에 한 실적 대다수가 원점에서 재검토되었다.

X 리포트는 물론 KM 그룹 차입금 이자 부담에 따른 문제점을 다루었다. 거기다 이 리포트는 KM 그룹뿐만이 아니라 한국 경제의 취약점 또한 잘 다루었다.

세세한 부분 중에 그 징조로 꼽은 것이 지역 경제 붕괴다.

전국 곳곳에서 일어나는 금융 사고는 작년과는 모양새가 달랐다.

그리고 이런 부분은 X 리포트가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었다.

‘정말 이 X 리포트처럼 굴러갈까?’

이동수 부사장은 도저히 이전처럼 얼토당토않은 내용이라고 쉽게 간과할 수가 없었다. 그는 지금 최민혁의 ARN 인수를 기사를 통해서 맹비난하고 있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경진 편집장은 오늘자 최민혁 실장 비난 기사 시리지를 보고하면서도 뒤꿈치를 치켜들고는 이동수 부사장이 보는 파일의 내용을 살폈다.

“…X 리포트 파일 아닙니까?”

“어, 아무래도 찜찜해서 다시 보고 있어.”

최민혁 실장을 마녀사냥 하는 기사를 내보내면서 정작 최민혁 실장이 썼다고 공공연히 알려진 X 리포트를 살피는 이동수 부사장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괜찮겠습니까?”

“최민혁 실장을 공격한 거?”

“네. 범 기자 이야기로는 최민혁 실장 간이 좁쌀만 해서 당하고는 절대 넘어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데, 나중에 보복당할까 걱정됩니다.”

“어쩔 수 없잖아. 우리만 최 실장을 까는 것도 아니야.”

“안 그래도 궁금했는데, 정말 다른 대기업이 이번 언론 사태의 배후가 맞습니까?”

“알면서 그런 말을 왜 해. 우르르 몰려갈 때는 한 손 거드는 것이 좋아. 얻는 것도 많고, 아마 최 실장도 별수가 없을 거야.”

“아니, 그런 의미가 아니라 설사 그렇다고 해도 우리 언론사는 한걸음 물러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걔들이 광고를 다 뺄 텐데, 그걸 감수하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습니까?”

“아니, 이번에 다들 단단히 열받았어. 솔직히 그렇잖아. 그 MP3 원천 기술은 전부 다 최 실장이 쥐고 있잖아. 그걸로 암묵적으로 협박하는데, 누가 좋다고 하겠어?”

“오성 전자만 해도 최 실장과 사이가 좋고, LC 전자도 이미 실무진 미팅을 진행한다고 하던…….”

“쯧, 오성 전자 직원이 몇 명인데, 그딴 소리를 하는 거야. 최민혁 실장 싫어하는 오성 그룹 임직원만 해도 세 자리 수를 넘어갈 거야. LC 전자는 간만 보는 거야. 아니, 그래서 다른 기업이 열받았지. 두 기업 같은 꼴을 당할 수는 없으니까.”

“흠.”

최경진 편집장도 난감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가끔은 좀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그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범용구 기자가 부사장실 안에 들어왔다.

“펴, 편집장, 크, 큰일 났습니다!”

“범 기자, 여기가 어디라고 큰 소리…….”

하지만 최경진 편집장도 범용구 기자가 내민 기사를 보자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민혁 실장이 불과 ARN 인수 한 달 만에 개인 공간의 모든 정보 통신을 기기를 무선으로 이어주는 근거리 통신망 기술을 개발하다!]

[도대체 한국 언론은 이제까지 무엇 믿고 최민혁 실장의 ARN 인수를 공격했나. 최민혁 실장은 최근 언론의 압박에도 무선을 이용한 K투스를 이용한 상용 제품 개발에 성공했다. 이 방식은 차세대 MP3에 적용될 예정이다!]

K투스와 관련된 기사는 아예 노골적으로 한영 일보를 공격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기사를 쓴 언론사가 한영 일보의 반대편에 선 한선일보였다는 것이다.

다른 언론사와는 달리 최민혁 실장 공격 노선에 슬쩍 손가락만 올려놓은 언론사였다. 그들은 분위기 봐서 연합 노선에 끼려다가 기회가 왔다고 판단하자 한영 일보의 뒤통수를 후려쳤다.

이동수 부사장은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나서 범용구 기자가 가져온 기사를 읽었다. 그는 크게 당황했다. 말도 안 되는 기사였다.

근거리 통신망 기술을 개발한 것도 말이 안 되는 이야기다.

그런데 차세대 MP3에 적용될 근거리 통신망 기술이라니.

“범 기자, 이거 정말 진짜 기사 맞아?”

“한선 일보가 직접 인터뷰까지 한 후에 사진까지 찍었습니다.”

후면에 실제로 개발용 무선 이어잭으로 시범까지 진행되었다. 오디오 음질은 실로 놀라운 수준이었다.

그는 즉시 부사장실을 나섰다.

* * *

K투스 기사는 불과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서 한국 언론을 혼란의 도가니로 만들었다.

특히 K투스에 들어간 핵심 기술이 ARN 코어라는 것이 뒤늦게 알려진 이후다.

이 기술은 단순히 무선 이어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프린터, 마우스를 비롯한 근거리 통신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전자 기기에 적용된다.

만약 K투스가 성공한다면 상황이 더 복잡해질 것이다.

그러니 기사가 쏟아지면 쏟아질수록 최민혁 실장의 ARN 인수는 다시 주목을 받았다.

결국 19만 원대를 유지하던 KM 전자 주가가 다시 한번 껑충 뛰어올라서 23만 원대에 올라섰다가 24만 원대를 넘어섰다.

만약 K투스가 정말 근거리 통신 표준이 된다면 로열티 수익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이 예측이 마냥 허황한 것은 아니었다.

근거리 통신 개발을 시작한 에릭슨은 아직 걸음마도 떼지 못했다.

K투스는 이미 상용화 단계였고, 그 성능도 걸음마 단계인 에릭슨의 표준보다 더 좋았다.

그러니 한영 일보조차 인터뷰를 하기 위해서 KM 전자를 찾았다.

그 자리에는 문형섭 부사장이 나와서 K투스와 관련된 다양한 정보를 흘렸다.

이 인터뷰 자리는 메이저 방송사에서 나와서 촬영했다.

[거기 한영 일보 기자는 낯짝이 두껍군요. ARN 인수가 최악의 수라고 기사를 지난주에 내보냈는데, 무슨 인터뷰입니까?]

[저희는 그런 기사를 내보낸 적이 없습니다.]

문형섭 부사장이 어이가 없어서 가져온 자료 중에 한영 일보 기사를 직접 보여주었다.

[이걸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옵니까?]

아예 작정하고 한영 일보를 공격하자 다른 언론사 기자는 긴장했다.

실제로 최민혁 실장 공격에 소심하게 대응한 방송사 카메라는 그 모습을 그대로 담았다.

위의 지시만 따르는 소극적인 남자 최광수 기자는 식은땀을 흘렸다.

[그건 제가 쓴 기사가 아닙니다!]

[하.]

문형섭 부사장은 어이가 없어서 자신이 보여준 기사를 살폈다. 그런데 기사에는 이 기사를 쓴 기자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다.

[저는 그 기사 자체를 반대했습니다. 최 실장님의 능력을 잘 아는 저로서는 말도 안 되는 기사였습니다. 하지만 저같이 힘이 없는 기자는 의견을 낼 수 없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죠.]

할 말이 없는 문형섭 부사장은 매의 눈으로 오늘 기자 회견에 나온 다른 기사를 살폈다. 다들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기자들의 반응은 당연한 일이었다.

새로운 근거리 통신망 표준을 만든 회사가 어쩌면 세계 최초로 한국 회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자리에 나온 기자는 물론 불과 며칠 전에 ARN 인수에 관한 이야기 따위는 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재방송으로 나온 이 인터뷰 뉴스를 바로 꺼버렸다. 그가 엿 먹으라고 진행한 일이지만 어디까지나 맛보기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사태에 은근히 오성 전자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물론 권태성 실장이 이 일을 진행한 것은 아니었다. 다른 오성 그룹 쪽에서 진행한 일이다.

‘보복은 해야지. 차라리 잘되었어. 이번 기회에 뜨거운 맛을 본다면, 이런 행동은 자제할 테니까.’

K투스는 아직 오성 전자에게 큰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 일에 시선을 끄는 목적으로 한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좀 다르다.

‘LCD지.’

최민혁은 과거 KM 그룹 임직원에 약속한 것처럼 드디어 LCD에 관한 기술 검토를 시작했다. 인생 1회차 기억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는 물론 인생 2회차 기획 팀 보고안에서 흥미로운 안건도 발견했다.

‘히타치가 CRT에 대한 투자를 늘렸다고?’

인생 1회차와는 다른 결과다.

콜린스 50만 대 물량 계약이 서서히 가시화되면서 소니를 비롯한 일본 가전업계가 발칵 뒤집혔는데, 그중에는 히타치도 있었다.

히타치 역시 CRT TV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결국 평면 TV에 대한 투자를 대폭 늘렸다.

그 과정에서 차세대 LCD 개발 투자가 늦어진 것이었다.

아니, 투자 일정이 늘어진 것은 그렇다고 해도 차세대 LCD 개발 연구진을 CRT 평면 TV 쪽으로 돌려 버린 것이었다.

‘황당하네.’

최민혁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는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빡빡한 일정에서 여유를 얻었기 때문이다.

그는 즉시 조성돈 팀장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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