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76화 (376/1,021)

#376.

권태성 비서실장은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그는 대회의실에 가득한 연구원을 쳐다보았다. 다들 시선을 피하기 급급했다.

집착이 심하지 않은 김정호 팀장이 권태성 비서실장 시선을 받자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시스템 사업 2팀에서는 ARN IP를 이용한 HDD, LBP 컨트롤러 개발이 진행 중입니다. 자체 개발에 관한 이야기도 나왔지만, 비용 문제 때문에 검토 단계에서 중지된 것으로 압니다.”

정확히는 기획팀이 중간에 끊었다. 돈도 안 되는 컴파일러와 같이 복잡한 일에 인력을 투자하기는 문제가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CPU 설계를 살짝 바꾸는 것만으로 많은 수정이 가해져야 한다. 안 그래도 소프트웨어 쪽이 취약한 오성 전자로서는 이 문제까지 끌어안을 수는 없었다.

‘가만 그 말은 최 실장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는 이야기잖아? 만약 이 일이 성공하기라도 한다면, 또 박살이 나겠어.’

권태성 실장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이번 일은 반드시 확인하고 싶었다.

“김정호 팀장님은 왜 이런 문제를 알았다면 끝까지 주장하지 않은 겁니까? 기획 팀에서 기술을 제대로 몰라서 실수했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저희 쪽에서는 계속 주장했습니다. 기획 팀에서 막무가내로 반대해서 대안을 찾지 못했을 뿐입니다.”

“아니, 정 답답하면, ARN 지분을 인수하라고 의견을 내놓을 수도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 의견도 내놓았습니다. 제가 알기로 기획 팀에서도 실제로 검토한 것으로 압니다. 그런데 당시 ARN 지분을 가진 에플 컴퓨터와 같은 회사에서 일방적으로 거절한 것으로 압니다.”

“…….”

권태성 실장은 순간 말문이 막혀서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도 뒤늦게야 ARN와 관련된 과거 기획안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ARN 기술에 관한 관심은 오성 전자도 있었다. ARN IP를 여러 실무 팀에서 사용하기 때문에 차라리 ARN 지분을 인수해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자는 의견이 제법 나왔다.

다만 그 협상이 ARN 지분 대주주의 일방적인 반대로 진행되지 않은 것뿐이다.

하지만 이것과는 별개로 권태성 실장의 감정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도 일시적인 감정 때문에 회의실이 울릴 정도로 소리쳤다.

“아니, 그러면 최민혁 실장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는 미국에 가서 불과 2주일도 채 안 되는 시간에 어떻게 지분 50%를 인수한 겁니까?!!!”

“…….”

김정호 팀장은 분개한 권태성 실장 모습에 슬쩍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그로서는 정말 억울한 일이었다. 사실 아무리 에플 컴퓨터가 부도 직전인 상황이라도 신기했던 것이다.

회의 분위기는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 * *

중간에 회의실에 들어온 시스템 사업부 최호성 상무는 회의실 분위기가 살벌하자 입을 다물고 있으려다가 결국 나섰다.

“권 실장님, 이미 다 지난 일을 가지고 회의하자고 이 자리에 사람을 모은 겁니까. 당장 앞으로의 대책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 ARN 기술이라도 과장된 면이 많아요. 어쩔 수 없어서 HDD 컨트롤러에 사용하기는 하지만 딱히 큰 장점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하면 최민혁 실장이 왜 번거롭게 ARN 지분을 인수했다고 생각합니까?”

“거긴 우리와는 입장이 달라요. KMP-01에 ARN 타입 CPU를 사용하면 여러 가지 다양한 IP와 결합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면 우리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그러면 ARN 지분을 인수했어야죠.”

“…허참.”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권태성 실장의 주장에 최호성 상무도 혀를 찼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매우 놀란 사람 중의 하나로 권태성 실장의 주장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지분 인수하기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이미 몇 차례 시도해 본 상황입니다.”

“하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설마 이대로 손가락만 빨고 있자는 말입니까?!!”

“제 말은 최민혁 실장이 이번 일로 크게 성공한다고 장담하기는 어렵습니다.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는 것은 어떨까요?”

“만약 잘못되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KMP-01과 같은 사태가 생기면 최호성 상무님이 전적으로 책임을 지실 겁니까? 아니면 오성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이 안건을 제시하실 겁니까?”

“그거야…….”

책임 이야기가 나오자 최호성 상무도 꼬리를 말았다. 자신이 굳이 그럴 이유도 없다. 만에 하나라도 또 최민혁 실장이 대박을 친다면 지금 상무 자리에서 쫓겨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임권수 부장이 눈치를 보다가 슬쩍 한 가지 의견을 제안했다.

“남아 있는 ARN 지분을 최대한 매입하는 것은 어떨까요?”

“가능하겠어?”

“일단 시도는 해봐야 할 듯합니다. 최대한 인수 대금을 높이 부른다면 에플 컴퓨터 경우에는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권태성 실장은 힐끗 자리한 다른 연구원 표정을 살폈다. 그들 중에 임권수 부장 의견을 반대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일단 지분 인수를 한번 검토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 이 회의에 참석한 분은 대안을 마련해 주세요. 이번 안건은 사장단 회의에도 정식으로 보고할 생각입니다.”

“…네.”

다들 굳은 얼굴로 대답한 후에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리 봐도 딱히 대안이 별로 없었다. 더 웃기는 것은 시스템 사업부에서 지금 사용한 ARN을 사용한 특허료가 결국에는 벨린 투자 쪽으로 흘러간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하, 골치다.’

* * *

오성 전자 기획 팀은 ARN 지분 소유자인 세 회사를 우선 분석했다. 당연히 지분 매각 확률이 높은 곳은 역시 망해가는 에플 컴퓨터다.

VLSI, 아콘은 둘 다 탄탄한 현금 창출원이 있어서 추가로 ARN 지분을 매각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특히 VLSI는 이미 KM 전자의 차세대 CPU에 ARN CPU가 들어가기 때문에 오히려 지분을 더 사들여야 할 상황이었다.

불행히도 VLSI 이사회가 이 지분 인수에 제동을 걸었다.

아콘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RISC 원천 기술에 대한 확신이 명확했다. 따라서 어지간해서는 지분을 매각할 이유가 없다.

아콘, VLSI는 오성 전자의 지분 인수 요청을 한마디로 거절했다.

[앞으로 ARN 지분 매각은 없습니다!]

결국 권태성 실장은 실무 팀과 같이 에플 컴퓨터 본사를 찾아갔다.

토비 스핀들러 CEO는 뜬금없는 오성 전자 실무 팀의 방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우리 회사가 소유한 ARN 지분 10%를 인수하겠다고요?”

마음이 급한 권태성 실장은 바로 액수부터 불렀다.

“500만 달러를 내놓겠습니다.”

“……?”

그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마크 듀켄 통해서 ARN 지분을 매각하기는 했지만 오성 전자 경우는 좀 달랐다.

마케팅 분야 전문가인 토비 스핀들러는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돈으로 모든 것이 다 해결된다고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700만 달러를 내놓겠습니다.”

“쯧, 아직 제 말을 이해를 못 하는 군요. 도대체 ARN지분을 왜 요구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권태성 실장은 왜 사람을 차별하는지 묻고 싶었지만 차마 그러지 못했다.

“이미 과거에 ARN 지분 인수와 관련해서 우리 오성 전자 측에서 몇 차례 제안서를 낸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때는 서로 협상이 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에플 컴퓨터가 돈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토비는 버럭 화냈다.

“하, 지금 놀리는 겁니까?!”

권태성 실장은 이를 악물었다. 딱 한마디만 했는데, 상대 반응이 격렬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무슨 제주로 ARN 지분 50%를 인수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가 미처 모르는 사실이 있었다.

토비가 마크 듀켄 이사 제안을 받아준 것은 VLSI가 입은 손실 때문이다. 기회비용에 대한 보상으로 지분을 넘긴 것이었다.

그런데 오성 전자 경우는 이야기가 전혀 달랐다. ARN 지분 가치 기준으로 평가해야 하는데, 그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미래 가치도 어느 정도 포함한다.

토비 스핀들러도 실상 VLSI에 지분을 매각하고 나서 후회했다. 이 미래 가치가 현재 가치와는 전혀 다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ARN 지분 매각 사실을 뉴스를 통해서 안 뉴턴 메시지 패드 실무진을 통해서 항의도 받았던 것이었다.

그걸 잘 모르는 권태성 실장은 다시 승부수를 띄웠다.

“천만 달러!”

천만 달러란 말에 토비는 움찔하기는 했지만 ARN 지분 매각 뉴스 후에 다양한 채널 통해서 얻은 정보 때문에 혀를 찼다.

“그건 곤란합니다. ARN 지분 매각 이야기라면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그는 권태성 실장 일행에게 떠나라는 말만 남긴 후에 협상장을 나가 버렸다.

“…….”

권태성 실장은 돈으로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느끼고는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는 위에 보고는 했지만, 아직 매각 대금에 대한 허락도 받지 않고 미국에 와서 계약에 임했다.

그런데 그런 노력 자체가 의미가 없었던 것이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은 어떻게 ARN 지분을 인수한 것일까?’

* * *

권태성 실장은 자신이 성급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미국에서 진행한 협상 결과에 대해서는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에 보고했다.

일단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 했다고 생각하자 차라리 한 걸음 물러섰다.

오성 그룹 전략 기획실도 최민혁 안건이라는 것을 알자 최고 윗선에 보고했다.

반응은 당연히 없었다.

이미 ARN 지분 인수 자체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정작 이 소식은 안건민 회장 입을 통해서 최용욱 회장 귀에 들어갔다.

최용욱 회장은 뜬금없는 ARN 지분 인수를 안건민 회장 통해서 알았다. 그는 오영근 사장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최민혁 실장이 미국에서 진행한 일입니다.”

“민혁이는 어디 있는가?”

“아직 미국에 체류 중인 것으로 압니다. 아, 잠깐만요. 어제 비행기로 다시 한국에 돌아왔습니다.”

“자네는 이 안건에 대해서 전혀 몰라?”

“벨린 투자 통해서 진행한 일이라서 KM 전자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최 실장이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피한 것도 있습니다.”

“그런가?”

최용욱 회장은 오영근 사장을 탓하지 않았다. 과거 일을 봤을 때 중요한 일이라면 최민혁은 누구에게도 알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대신 장승일 기획실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자초지종을 물었다.

당연히 장승일 기획실장도 얼마 전에 오성 전자 라인을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아서 제대로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있었다.

“알겠네. 최대한 빨리 관련 자료를 정리해서 보고를 해봐. 민혁이가 왜 굳이 ARN 지분을 인수한 것인지도 확인하고.”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하고도 업무가 겹치는 것 같아. 그런 점도 검토를 해봐. 꼭 외국 업체와 계약할 이유는 없잖아.”

“…네.”

* * *

장승일 기획조정실 실장은 조금 뜬금없는 지시에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 매출은 유심히 지켜봤다.

꽤 괜찮았다.

최민혁 실장이 긍정적인 말에 나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 내년 예상 매출은 600억을 넘을 것이라 예상하기 때문이다.

‘물론 한전 쪽 매출이 대부분이라서 한계는 있어.’

딱 정해진 계약에 따른 매출이라서 매출 둔화세라는 문제점이 있다.

하지만 이 매출을 꾸준히 유지만 한다면 어지간한 KM 계열사보다는 나았다.

따라서 KM 전자 측에서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 쪽에 물량 몰아주기를 한다면 매출은 폭증해서 1,000억은 넘을 수도 있다.

최용욱 회장이 지적한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장승일 실장은 전략 기획실 인원을 총동원해서 ARN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다.

물론 답을 찾지는 못했다.

그저 어렴풋한 추측만 확인할 뿐이다.

특히 구길모 차장은 이번 일에 대해서는 확신했다.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 경우도 있지만, 최 실장님이 칩 설계에 관심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MP3 CPU도 자사 IP를 사용하려는 것이 아닐까요. 기반 기술이 없으니, ARN 지분 50%를 인수한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ARN610 평이 별로잖아.”

“차세대 IP는 어떨까요? 다음 세대 칩이라면 성능도 성능이지만 다른 기능도 더 보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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