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63화 (363/1,021)

#363.

더욱이 최근 기조실에서 검토한 바로는 KMP-01의 진정한 가치는 바로 MP3 원천 특허에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러니 오성 전자가 그 난리지. 안 회장이 몇 번이나 만나자고 연락한 것도 그 때문일 거고, 정말이지 놀라운 녀석이다. 그나저나 골치네. 이 일을 가지고 저 녀석에게 말해서 될지 모르겠어.’

그랬다.

최용욱 회장이 인자한 할아버지 코스프레를 하는 것은 단순히 이 식사 시간 때문이 아니다. 그는 지금 한국에 있는 모든 대기업 회장에게서 러브콜을 받는 중이다.

하지만 차마 MP3 원천 특허는 자신과 무관하다고 말하지 못했다.

그건 더 웃기는 일이었다.

자기 집안 손자조차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의미니까.

최용욱 회장은 굳이 최문경 부회장 제안이 아니더라도 따로 최민혁을 만날 생각이었다.

그가 굳이 장남 최문경 부회장의 제안을 흔쾌히 받은 이유다.

최문경 부회장 아내 김이경은 정미선과 인사를 나누면서도 최민혁을 따스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심지어 최고급 캐비어가 든 접시를 최민혁 앞으로 슬쩍 밀었다.

“민혁아, 이거 한번 먹어봐. 벨루가 캐비어라고, 철갑상어에서 나온 요리야.”

최민혁은 오늘따라 유난히 입가에 미소가 가득한 첫째 큰어머니 김이경을 보면서 툴툴거렸다.

“설마 독이 든 것은 아니겠죠?”

“어머, 이 녀석이, 말을 그렇게 하니.”

크게 당황한 김이경은 내심을 숨긴다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혹시나 독이 든 요리가 아닌가 싶어서 먹지 않았다.

김이경은 최민혁을 잠깐 째려봤다가 결국 자신이 먼저 시식했다.

최민혁은 잠깐 그 모습을 확인한 후에 음식을 먹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 모습을 따스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특히 정미선이 김이경을 비롯한 가족과 어울리는 모습도 지켜봤다.

“제가 자주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아니, 뭘 그렇게 어렵게 말해. 그냥 편하게 이야기해.”

정미선은 처음 접하는 가족의 환대에 그저 웃기만 했다.

그녀는 바보가 아닌 터라 김이경 속마음을 알 수는 없지만,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다. 그렇다고 해도 앞에서 저렇게 대해주는 것을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김이경은 실제로 다른 가족과 소개를 해주면서 분위기를 좋게 만들었다.

달빛 아래 펼쳐진 가족 식사 분위기는 그 어떤 가족보다 이상적으로 보였다.

최문경 부회장이 눈치를 보다가 최민혁에게 포도주를 따라주었다.

“KMP-01 분위기가 심상치 않더구나.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이냐?”

“잘 팔아야죠.”

그는 왠지 비아냥대는 최민혁의 목소리에 괜히 화가 났지만 억지로 참았다.

“내가 이런 말 하기는 좀 그렇지만 MP3 관련 사업은 우리 KM 그룹에도 영향을 준다. 앞으로 그런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인 거냐?”

“KM 그룹 계열사 중에는 MP3 관련 사업부가 없을 텐데요?”

최문경 부회장은 슬쩍 두 사람 대화에 귀를 기울이는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았다.

“너도 알겠지만, 아버님은 통신 사업에 관심이 많았다. 지금은 정리한 TRS 사업도 그 하나야. 그러니 기조실에서도 새로운 통신 아이템 사업을 보고 있어. 거기에 MP3 부분은 충분히 넣을 수 있다.”

실제로 TRS 사업을 무사히 정리한 최용욱 회장은 통신 사업에 대한 아쉬움을 많이 드러냈다. 그는 KM 그룹이 앞으로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통신 사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KM 그룹 기획조정실이 여전히 통신 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이유다.

“…MP3 폰 말입니까?”

“그래, 바로 그 MP3 폰!”

최용욱 회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선을 넘으면 한마디 하려다가 움찔했다. 사실 그가 핸드폰 사업에 관심이 없었다면 더 이상했다. 기조실에서는 이미 이 관련 사업을 조사했다.

그런데 굳이 휴대폰 사업에 끼지 못한 것은 경쟁사가 한국 10대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깜짝 놀란 최용욱 회장 얼굴을 살핀 후에 눈살을 찌푸렸다. 문득 CDMA에 대한 기억을 자연스럽게 떠올렸다.

‘시기적으로 좀 늦었어.’

CDMA는 미국 퀄컴사가 개발한 첫 번째 CDMA 표준이다.

흔히 IS-95로 잘 알려졌는데, TIA-EIA-95라고 알려졌다.

ETRI의 오현종 박사에게 이 아이템을 한번 들여다보라고 권한 것은 잘될 것이라 믿어서가 아니다. MP3 사업 때문에 도저히 시간이 없어서 한번 살펴보라고 권한 것에 불과했다.

‘문제는 올해 출시를 한다는 거야.’

CDMA는 역사적으로 보면 군사 통신에서 전파 방해를 방지하기 위한 용도로 사용하던 것을 이동전화로 응용한 것이다.

그 일을 진행한 한 회사가 퀄컴이다.

따라서 비록 지금 이 시점에서는 끼어들기가 어렵다.

‘있다고 한다면 올해부터 상용화 작업이 시작된다는 거야. 팬택을 빼놓을 수가 없어. 하지만 제조만으로는 국내 대기업과 경쟁하기 어려워.’

최민혁은 문득 지금 이 상황에서 CDMA에 끼어들어 봐야 오성 전자, LC 전자와 경쟁해야 하는데, 제대로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최문경 부회장은 최민혁의 표정을 보자 다르게 생각했다.

“늦다고 생각했을 때가 늦지 않다고 했어. 이제 PCS 폰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 기회는 무궁무진해. 잘만 틈새시장을 공략한다면 그룹의 캐시카우가 될 수 있어!”

“틀린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CDMA가 발전을…….”

반론을 막 하려던 최민혁은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지금 퀄컴 판에 끼기는 어려워. 가만 차라리 모바일 CPU 쪽에 작업을 쳐두면 어떨까. 저전력 CPU가 CDMA에 꼭 필요해. 이 기술을 이용해서 퀄컴과 협상을 할 수도 있어!’

시기적으로 봤을 때 지금은 저전력 CPU 쪽에 끼어들 여지가 많았다. 그가 떠올린 인생 1회차 기억으로는 이 사업을 주도하는 기업이 아직 재미를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CDMA 기술 발전을 아는 최민혁은 입장이 좀 달랐다.

2G는 이미 늦었지만, 그 이후 기술은 꼭 그렇지도 않았다.

이 사실을 잘 활용해서 ETRI의 오현종 팀장과 작품을 만들면 퀄컴을 상대로 적절한 특허 협상을 진행할 수도 있다.

최용욱 회장이 심각한 최민혁 얼굴을 보자 넌지시 끼어들었다.

“민혁아, 정말 문경이 제안대로 가능하겠냐?”

하지만 그는 냉큼 자기 내심을 부정했다.

“아,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핸드폰 쪽은 전혀 모릅니다. MP3 폰을 제가 언급한 것은 이미 기획 팀 내에서도 나온 아이디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64MB 낸드 메모리를 단 핸드폰이 가능하겠습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한길을 파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거야…….”

최용욱 회장도 핸드폰 사업은 전혀 몰라서 선뜻 답을 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오히려 이게 기회다 싶어서 집요하게 최민혁을 괴롭혔다.

최민혁은 ‘네네’를 반복하면서 수긍하는 척하면서도 뒤에 가서는 ‘안 됩니다!’를 반복했다.

‘하여간에 욕심은 많아서.’

* * *

최민혁, 최문경, 최용욱 회장, 세 사람이 대화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모습이 반복되자 다른 최씨 가족은 슬쩍 물러나 버렸다.

워낙에 분위기가 심각한 것도 있지만, 이 셋이 최씨 일가의 주도권을 잡은 이들이기 때문이다.

최민수는 착잡한 얼굴을 한 채 힐끗 그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

최민혁에 대한 증오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런데 솔직히 최민혁이 최문경 부회장, 최용욱 회장과 대놓고 협상하는 모습을 보니 부럽기만 했다.

그도 그렇지만 다른 가족 역시 저들 대화에 감히 끼지 못했다.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바로 최문경 부회장의 장녀 최영란이었다.

“괜찮아?”

“어.”

회 요리에 폭 빠져 있던 최영란의 동생 최지연이 툴툴거렸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가 가랑이 찢어져.”

최민수는 발끈했다.

“나보고 한 소리야?”

“어, 그리고 나, 너보다 나이가 한 살 많아. 그따위로 말하지 마.”

“미, 미안해.”

“쯧, 아직도 외가의 그 머저리와 같이 지내지?”

최민수는 보석으로 풀려난 김기범을 말하는 것을 금방 깨닫고는 머리를 긁적였다.

최지연이 이죽거렸다.

“나도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정말 멍청하다. 그 인간이 KM 전자를 노렸다는 것은 어지간한 사람이 다 알아. 그런데 그런 인간과 같이 지내?”

“그게…….”

최민수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다만 그도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은 감방에 가 있는 아버지 최훈열이 세팅해 놓은 환경 때문이다.

최훈열 전무는 DL 그룹 도움을 받아서 KM 전자를 자기 것으로 만들려고 했다.

그에 만들어놓은 관계는 최민수의 마음대로 끊고 말고가 되지 않았다.

최영란도 까칠한 동생 최지연의 행동에 한마디 하려다가 관뒀다. 그녀 역시 최훈열 전무를 좋아하지는 않았다. 아니, 아버지 최문경 부회장도 극도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녀가 가진 힘은 별로 없었다.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최민혁의 성장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녀는 최민혁이 묵묵히 듣기만 한 채 포도주를 홀짝이는 모습을 봤다.

최문경 부회장은 그런 최민혁을 앞에 두고 별의별 소리를 다했다.

그 효과가 있는지 최용욱 회장도 선뜻 방해하지 않았다.

‘아빠가 저런 공작은 참 잘한다니까. 저런 실력으로 자기 일에 집중하면, 벌써 할아버지에게 인정을 받았을 텐데…….’

제3자 측면에서 보고서야 세 사람의 위치를 알았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번 가족 식사 시간을 명분으로 최용욱 회장을 앞세워서 어떻게 해서라도 최민혁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민혁은 바뀌지 않았다. 그는 ‘네네’만 반복하면서 한 귀로 듣고 다른 한 귀로 다 흘려 버렸다.

‘…진짜 대단한 인간이다.’

그건 그녀만 해당하지 않았다.

최민수 역시 최민혁에게 된통 크게 당한 후에 깨달음을 얻어서인지 멍하니 최민혁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

정미선은 물론 예외다. 그녀도 뒤늦게야 오늘 식사 시간이 정말 아들 최민혁 때문이라는 것을 확연하게 깨달았다.

그녀는 시아버지 최용욱 회장이 남의 눈치를 보는 모습을 처음 봤다.

더욱이 그 대상이 자기 아들이었으니, 보면서도 잘 믿기지 않았다.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하구나.’

* * *

뒷좌석에 탑승한 정미선은 옆에 앉은 아들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의 집요한 공략에 치를 떨면서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뒤늦게야 따가운 어머니 시선을 느꼈다.

“왜 그래요?”

“우리 아들이 이렇게 대단한 줄 난 오늘에야 알았어.”

“별것 없어요.”

“아니, 난 아버님께서 그렇게 저자세를 취하는 것을 처음 봤어.”

“가족 모임이라서 그런 거죠.”

“아니야. 우리 아들이 정말 대단해.”

그녀가 한 탄식은 그냥 한 말이 아니었다. 최씨 일가 중에 그 누구도 아들 최민혁을 얕잡아 보는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덕분에 그녀도 대접을 제대로 받았다.

“네 아빠가 이 자리에 있었다면 정말 기뻐했을 거야.”

“…네.”

최민혁은 선친을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했다. 하지만 그는 그나마 어머니 정미선이 자리를 잡은 것으로 만족했다.

정미선은 최근 와서 상태가 급격히 좋아졌다.

‘주치의 통해서 확인한 사실이니까.’

“혹시라도 괴롭히는 사람이 있으면 저에게 전화해요. 그게 누가 되었던 상관없어요.”

“알았다. 우리 아들 정말 듬직해서 아주 좋아.”

“그런 말씀은 좀 그만하시고요.”

최민혁은 툴툴거리면서도 오늘 식사 시간은 만족했다. 다만 최문경 부회장이 집요하게 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했다.

‘CDMA라…….’

* * *

최민혁은 저녁 식사 시간 후에도 CDMA에 대해서 고민했다. 그런데 이 일은 차세대 MP3와도 관련이 있었다. 꼭 CDMA가 아니어도 고성능 MP3를 고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업 아이템이 존재했다.

‘저전력 CPU가 문제야.’

MP3 성능이 발전할수록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파워 소모다. 따라서 전력이 적게 소모되는 CPU 개발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그런데 고성능 저전력 CPU 제품은 다시 CDMA와 겹친다.

‘ARN이 문제군.’

최민혁도 솔직히 지금 벌여놓은 일이 많아서 이 CPU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결국 인생 1회차 기억, 기획 팀의 인력을 총동원해서 ARN에 대해서 알아봤다.

ARN은 아콘, VLSI 테크놀로지, 에플 컴퓨터가 만든 일종의 조인트 벤처였다. 목적은 바로 저전력 CPU를 만들기 위함이다.

실제로 이 ARN이 적용될 아이템은 에플 컴퓨터에서 진행하는 뉴턴이었다.

2년 전에 출시된 뉴턴은 쉽게 말해서 휴대용 PC라고 보면 된다. 흔히 하는 용어로 PDA다. 스타일러스 펜을 이용해서 화면에 글을 쓸 수 있는 혁신적인 제품이다.

하지만 결과는 완전히 망해 버렸다.

이 제품이 실패한 것은 터무니없는 가격, 큰 사이즈, 무거운 무게 때문이다.

화면 가독성은 말할 것도 없고, 배터리 수준은 논할 여지가 없다.

이 제품에 들어간 것이 바로 AR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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