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51화 (351/1,021)

#351.

“아, 건물 하나 샀습니다.”

무슨 단독 주택 하나를 사들인 것만 같은 편안한 태도에 최용욱 회장도 혀를 찼다.

“그 건물이 고작 2억 달러가 조금 넘는다고?”

“아, 아파트도 하나 샀습니다. 아마 다 합치면 3억 달러가 좀 안 될 겁니다.”

“…대단하구나.”

얼핏 봐서는 사내 직원 복지로 보이지만 그렇게 단순할 리가 없다. 실리콘밸리 땅값이 폭등한다는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다만 지금도 이미 거품이 낀 실리콘 밸리 부동산이 거기서 더 오를까 하는 의문이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을 탓하지 않았다. 지금처럼 한국 지방 경제가 심상치 않는다는 것을 고려하면 미국이 오히려 최선의 투자다. 손자는 마치 그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KM 전자 보고서를 감안하면 당연할지도.’

최용욱 회장은 신기한 눈으로 손자 최민혁의 아래위를 살폈다.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 맞은편에 떡하니 앉은 채 툴툴거렸다.

“어제 한국에 도착해서 시차 적응도 못 한 손자를 왜 자꾸 오라 가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긴히 할 이야기가 있었다.”

“아니, 할아버지가 저에게 무슨 이야기할 것이 있습니까?”

불만이 가득한 손자 최민혁의 반응에 고개를 갸웃했다.

“나에게 무슨 불만이라도 있냐?”

최민혁은 임원 회의가 끝난 후에 오영근 사장에게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골프장에서 오붓한 가족 모임을 했다면서요? 그런데 왜 제 어머니는 부르지 않은 건가요?”

“쯧, 그 이야기는 어디서 들었나 모르겠다. 하지만 그 모임은 문경이 그놈이 제멋대로 와서 설친 것에 불과해. 정식 모임은 아니었다. 그리고 며늘아기는 연락해도 반응을 안 보여. 강제로 오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

“그렇습니까? 하지만 할아버지가 과거에 한 일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점을 고려해서 제 어머니에게 잘 좀 행동하셔야죠.”

손자의 잔소리에 최용욱 회장은 혀를 찼다.

“…그래. 알았다. 앞으로는 내가 신경 쓰마.”

최민혁은 그제야 불량스러운 태도를 바꾸었다. 그도 최용욱 회장이 굳이 왜 이 자리에 부른 것인지 모르지 않았다.

“뭘 알고 싶은 겁니까?”

“…도대체 미국에서 뭘 하는 거냐?”

“저도 남들처럼 실리콘밸리 인재를 한번 추려볼 생각입니다.”

“그래서 소프트웨어 회사도 하나 설립한 거냐?”

“호오, 그 소식은 어떻게 들었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자기 책상 한쪽에 놓인 신문 더미를 최민혁 앞에 던졌다.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한 것은 역시 최민혁 실장의 과감한 투자다.

온갖 이야기로 가득한 기사는 사실이 아니라 대부분은 예측에 가까웠다. 과장된 허위기사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된 정보는 거의 없었다.

“한국 언론사가 난리다. 내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다는 소리야?”

“아, 그런가요?”

기사는 진짜 난리였다.

[벨린 투자가 드디어 실리콘밸리 공략에 나섰다.]

[과연 벨린 투자는 실리콘밸리에서도 투자 대박을 터뜨리는 건가?]

[KM 전자와 벨린 투자의 관계는 무엇인가?]

[벨린 투자 실소유주 의혹?]

[벨린 투자는 KM 그룹 막내 전 최병문 상무가 재직하던 회사였다.]

[벨린 투자 전 사장 이영민은 누구인가.]

최민혁의 예상과는 좀 다른 반응이었다.

그런데 그도 그럴 것이 벨린 투자가 이번에 KM 전자 주식으로 번 수익이 너무 컸다.

벨린 투자에 관심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벨린 투자 과거 이력이 하나씩 다 들춰진 것이다.

이런 벨린 투자가 실리콘밸리에 무려 3억 달러를 투자했으니, 관심은 기하급수적으로 더 늘어났다.

금감원과 같은 기관도 벨린 투자를 지켜본 터라 관련 소식은 더 빠르게 국내에 퍼졌다. 3억 달러라는 막대한 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는 일이기 때문이다.

최민혁조차 ‘이영민’이란 이름에 깜짝 놀랐다. 한국 언론이 이영민까지 파고들지는 몰랐다. 그는 힐끗 최용욱 회장을 쳐다보았다.

“이것 때문입니까?”

“아, 영민이 말이야? 나도 내막은 잘 몰라. 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 애초에 그 친구를 소개한 것이 병문이었으니까.”

최민혁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는 어차피 이 부분에 대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묻고 싶었는데, 마침 기회가 왔다고 생각하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자세한 것은 모른다는 말입니까?”

“그 친구 프로필은 안다면, 그 이상은 나도 몰라. 한때는 월가에서도 꽤 유명한 친구였지. 한국인으로 하버드 대학을 나와 월가에서 그렇게 성공한 경우는 드무니까.”

“그렇군요.”

최민혁은 몇 가지 이야기를 더 들었지만, 최용욱 회장은 이미 이영민에 대해서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이미 벨린 투자는 효용가치를 다했다. 그는 애초에 비자금 흔적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벨린 투자를 청산하려고 했던 것이다.

최용욱 회장도 이 문제를 더 언급하기 싫었다.

“앞으로는 행동을 조심하는 것이 좋을 거다. 과거와는 달리 너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이들이 많다.”

최민혁도 씩 웃었다.

“그게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한 이유기도 합니다.”

“아니, 이해가 안 된다. 어차피 KM 전자 내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냐. 굳이 따로 소프트웨어 회사를 설립할 필요가 있느냐?”

“아무래도 KM 전자와 독립적인 경영을 보장할 의도가 있습니다. 더욱이 실리콘밸리 인재들만으로 단독 부대를 만들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래? 하면 뭔가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냐?”

최민혁은 최용욱 회장이 필요 이상으로 관심을 보이자 슬그머니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는 뒤늦게야 대화를 거듭할수록 최용욱 회장이 KM 전자 주식에 대해서 은근히 관심을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나에게 넘긴 지분 가치가… 꽤 되지.’

물론 그는 지난 일은 이미 지난 일로 치부했다. 대신 비자금 문제를 잘하면 이와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혹시 벨린 소프트 투자에 관심 있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이미 손자 능력을 직접 옆에서 경험해 봤기에 순순히 시인했다.

“…없다고는 말 못 하겠구나.”

“지분을 원하는 겁니까?”

“그래. 나도 좀 노는 돈이 있는데, 손자 회사라면 관심이 간다.”

최민혁은 예상 밖의 상황에 쾌재를 불렀다. 그는 어떻게 하면 최용욱 회장 비자금을 묶어둘까 고민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썩 내키지 않네요. 지분 가치가 생각보다 비싸니까요.”

“네 녀석이 이 할아비를 아주 우습게 보는구나.”

“6% 지분에 1억 달러인데, 가능하겠습니까?”

“뭐? 말도 안 되는 소리 말 거라. 아니, 아직 벨린 소프트 설립 정식 인가는 안 난 것으로 안다. 그런데 6% 지분에 1억 달러라고?!”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설마 KM 전자 가치를 보면서도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KM 전자 현재 주가 기준으로 대략 6억 달러 정도 됩니다.”

“그거야…….”

최용욱 회장은 두 사람 이야기에 경악해서 입을 딱 벌리고 있는 채윤집 집사와 눈이 동그랗게 변한 장승일 기획조정실 실장을 쳐다보았다.

둘 다 아주 공황에 빠졌다.

하지만 최민혁은 아쉬울 것이 없었다. 지금 할아버지 비자금 규모를 키워줘서 좋을 것도 없다. 그 돈이 최소한 최문경 부회장에게 흘러가지 않도록 족쇄를 걸 필요가 있었다.

실상 그가 알고 싶은 것은 최용욱 회장의 비자금 규모였다. 그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최용욱 회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설마 6억 달러를 넘는 거야? 하긴 그 돈은 따지고 보면 아버지가 만든 것이니까.’

“…생각을 좀 해보자꾸나.”

“원래 가족끼리 돈거래는 하는 거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니 굳이 저는 할아버지에게 강요할 생각은 없습니다.”

최민혁은 그 말만 남기고는 냉큼 돌아서 버렸다.

* * *

최민혁은 기겁한 최용욱 회장 덕분에 더 길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KM 전자로 돌아와서도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다.

다행히 최용욱 회장도 최민혁의 억지에 바로 전화하지는 않았다.

그는 결국 정보를 안 것으로 만족했다.

대신 최병연 팀장, 조성돈 팀장을 비롯한 회사 측근을 불러서 회의를 시작했다.

다행히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이현탁 과장과 오상현 과장은 제법 결과를 보내왔다. 기본적인 동작이 가능한 새로운 OS를 보낸 것이다.

최병연 팀장은 그 OS를 올린 MP3를 직접 시연해 보였다.

겉으로는 보면 차이점은 크게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세세한 것에서 몇몇 강점이 드러났다.

특히 확장성 면에서는 비교조차 하기 힘들었다.

“일단 쉽게 다운되는 현상이 없습니다. 기존 모델에서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오동작이 있었는데, 그런 현상이 다 사라졌습니다.”

“그 원인은 아직도 모릅니까?”

“그게 오상현 과장 말로는 자신도 아직 파악 중이라고 합니다.”

“쯧.”

최민혁은 대충 짐작했다. 오상현 과장은 리눅스 커널을 이용해서 자체 OS를 제작했다. 그 혼자 한 일인데, 버그가 없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거기에 잦은 설계 변경으로 구멍이 숭숭 나 있어서 손을 대기도 쉽지 않았다.

그런데 Darwin으로 포팅한 경우는 좀 달랐다.

오상현 과장이 설계한 OS를 Darwin에 올린 작업을 한 사람이 모두 다섯 명이다. 그들은 결국 역할 분담을 했다.

이 과정에서는 NestOS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크레이그 행크스 능력이 빛을 발했다. 스콧 포스탈이나 베트랑드 실브 역시 각각 분담했다. 두 사람은 특히 애플리케이션과 SDK 쪽에도 이미 어느 정도 작업을 진행했다.

덕분에 오상현 과장은 새로운 OS, 바로 KOS에만 집중하면 되었다.

그러니 기존에 했던 성과와는 차이가 크게 났다.

최병연 팀장도 이 강점에 대해서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예 기존 OS를 다 엎어서 새로 작업하는 것이지만 차라리 잘되었다고 생각합니다. KOS 분할이 워낙에 명확해서 이중 삼중으로 손을 쓸 필요가 없었습니다.”

“기존에 작업한 게임은 어때요?”

“그게 좀 문제입니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어느 정도 손을 봐야 합니까?”

“드라이버 단은 전부 다 따로 손을 봐야 합니다. 그나마 초기 설계 자체가 객체 타입으로 진행되어서 그 부분은 손을 안 봐도 됩니다.”

하지만 이런 말과는 달리 생각보다는 더 많은 부분을 손봐야 했다.

최병연 팀장은 이런 부분에 오히려 안도했다.

“차라리 정말 잘되었습니다. 만약 기존 OS를 그대로 가져갔다면, 다음 모델에서는 새로 다시 다 수작업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이번 기회에 OS 구조를 체계적으로 변경하면 됩니다.”

최민혁은 이 부분에서 의문을 떨치지 못했다.

“오성 전자에 있을 때는 그런 부분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까?”

“아, 그건 선행 개발 성격이 강하고, 단종 되는 모델도 많습니다. 어차피 기획 팀 요청에 따라서 모델이 바뀌면 다 새로 해야 합니다.”

지속성의 부재였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소프트웨어에 대한 안이한 시선이 영향을 미쳤다.

조성돈 팀장은 조용히 듣기만 하다가 음반 업체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를 거론했다.

“저도 간과한 사실이지만 음반 업체가 MP3 플레이어에 태클을 걸 확률이 높습니다. 특히 미국 시장은 그 점이 심각합니다.”

“그렇죠.”

최민혁도 순순히 수긍했다. 그 역시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다시 한번 언급하는 조성돈 팀장 이야기를 듣자 뒤늦게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가 인생 1회차 지식으로 아는 것보다 더 큰 방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1회차 지식도 단편적이니까. 음반 업체가 느끼는 불만이 크겠어. 불법 MP3가 시장에 더 커지는 것에 위기를 느낀다면 MP3 플레이어 업체부터 조질 테니까. 아 가만…….’

최민혁은 뒤늦게야 음반 업체가 가지는 위기를 새삼 깨달았다. 그들이 MP3 플레이어를 보고 조용히 있을 리가 없었다.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공격이 들어올 테니까.

조성돈 팀장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실장님이 미국 시장을 노리는 것은 저도 이해가 됩니다. 그런데 저작권 문제 때문에 글로벌 음반 업체의 견제를 받는다면 MP3 시장 자체를 키우기가 어려울 겁니다.”

“…확실히 그게 문제네요.”

“그래서 말입니다만 계획을 좀 바꾸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음반 업체와 타협하는 것은 어떨까요?”

“그건 어려울 겁니다. 걔들이 뭐가 아쉬워서 우리 KM 전자 손을 들어주겠습니까? 아마 그 협상만으로 몇 달은 그냥 갈 겁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계획대로 국내 시장을 먼저 공략하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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