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49화 (349/1,021)

#349.

[죄송합니다. 제가 최 실장님을 잘못 생각한 것 같습니다. 그 보답으로 다른 두 사람에게 최선을 다해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저야 좋죠. 아, 성공만 하면 보너스도 주겠습니다. 그러면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네.]

* * *

켈리는 이미 DALL에 잡 오퍼를 받은 덕분에 학과 생활에 큰 부담을 느끼지 못했다. 그녀는 크레이그와 관계를 더 걱정했다.

그녀도 크레이그의 행동이 석연치 않은 것을 걱정하면서도 한숨을 내쉬었다. 크레이그가 뭘 걱정하는지 모를 수가 없다.

그런 차에 지도교수가 갑자기 자신을 불러 벨린 투자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네? 정말 벨린 투자에서 저에게 잡 오퍼를 제안했다는 말인가요?”

“켈리는 이미 DALL의 잡 오퍼 제안을 받았지만, 막상 그쪽에서 원하는 사람으로 켈리가 가장 이상적이라서 말이야.”

실제로 켈리는 IT 사업의 미래에 대해서 재능이 제법 있었다.

논문 자체가 이 미래에 대한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을 제시한 것이었다.

그 가능성은 가볍게 논할 일이 아니다.

DALL에서 그녀에게 관심을 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지도교수는 딱히 우영민 부장에게서 투자를 받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 역시 벨린 투자의 가능성을 아주 높게 봤다.

그는 최근 KM 전자를 조사한 원천 기술 자료를 보여주었다.

“이걸 봐. 벨린 소프트의 실소유주인 KM 전자가 가지고 있는 원천 기술이니까. 지금까지 내가 파악한 것이 이 정도야.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더 있을 거야. 어쩌면 실리콘 밸리에 온 이유도 이것과 관련이 있을 거야.”

“…이건 정말 놀랍네요.”

IT 기술이라면 원천 기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 기술을 개발하는 것을 뛰어넘어서 오히려 MP3 국제 표준 원천 기술을 다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알기로 이쪽저쪽에 다 흩어진 기술이었다.

“…톰슨 멀티미디어가 가지고 있던 원천 기술도 KM 전자로 다 매각된 겁니까?”

“충격적이지. 알고 보니, 콜린스 이권 때문에 톰슨은 그 기술을 매각했던 거야. 완전히 미친 짓이지. 눈앞에 이익에 빠져서 미래에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팔아치운 것이니까.”

하지만 말을 하던 지도교수도 멈칫했다. 자신이 켈리에게 한 제안도 따지고 보면 형태가 달라서 그렇지 다를 바가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켈리 역시 냅스트 덕분에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MP3 불법 파일을 떠올리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건 작정하고 기술을 다 확보한 것이군요. 지금은 아마 이런 식으로 기술을 확보하기가 쉽지는 않을 거예요.”

“시기가 참 좋았지. 그때만 해도 MP3에 대해서 사람들이 잘 몰랐으니까.”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 재학생도 냅스트에 푹 빠져 있었다.

물론 법적인 문제 때문에 말이 많이 나오기는 하지만 그뿐이다.

MP3에 대한 인식은 스탠포드 대학에도 그 비중이 달라졌다.

켈리 지도교수도 MP3에 관한 연구를 폭넓게 진행했다.

“대단하지. 내가 직접 독일 엘랑겐 대학의 디이터 사이처 교수에게 확인한 사실이니까. 이미 MP3 특허 권리를 다 남겼다고 하더군. 이 정도라면 절대로 망할 회사는 아니야.”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민은 당연히 길지 않았다.

우영민 부장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켈리를 만나서 스카우트 제안을 했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입니다. 이미 지도교수님 통해서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켈리 양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하고 싶습니다.”

“…생각해 볼께요.”

* * *

켈리는 이 상황을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DALL의 제안보다 더 나았다. 더욱이 일자리가 이곳 캘리포니아였다.

그녀는 결국 크레이그에게 이 사실을 말했다.

“와, 대박이다.”

크레이그는 마치 자신은 모르는 사람처럼 축하해 주었다.

켈리는 석연치 않았지만 그렇다고 벨린 투자의 달콤한 제안을 거절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영민 부장이 내놓은 제안 중에는 실리콘 밸리 기업에 대한 투자도 있었기 때문이다.

“벨린 투자가 좋겠지?”

“그걸 말이라고 해? 나도 어제 알아봤는데, 겉보기와는 다른 회사야. 한국 대기업 재벌 3세가 그저 돈으로 지랄하는 것이 아냐. 그 재벌 3세가 스스로 일군 기업 중의 하나가 벨린 투자야!”

“지나치게 좋아하는 것 아냐?”

크레이그는 찔끔했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그녀는 켈리를 포옹한 채 키스만 해주었다.

“잘되었잖아. 우리 같이 있을 수가 있어. 나도 차라리 벨린 소프트 스카우트 제안을 받아들일까 싶어. 그게 최선이다 싶어.”

“정말?”

“솔직히 스티븐 사장만 보고 버티고 있지만, 그것도 이젠 한계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어.”

“…그래.”

켈리는 석연치 않은 점을 느꼈지만, 굳이 반대하지는 않았다. 그녀도 크레이그의 스카우트 제안 중에 렌트비 0원인 집까지 포함된다는 말에 혀를 내두를 뿐이었다.

‘유령에게 홀린 기분이야.’

* * *

벨린 소프트 정식 설립이나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 매각 과정 자체는 시간이 제법 걸린다.

최민혁은 굳이 이렇게 정식으로 기다릴 생각이 없어서 일단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 2개 층에 인테리어를 설치했다.

필요한 보안 시선은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 도움을 얻었다.

기존에 이미 설비된 시설을 응용한 것이라서 세팅 자체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다음은 크레이그 행크스를 비롯한 나머지 스콧 포스탈, 베트랑드 실브와 인사했다.

세 사람 중에 특히 크레이그 얼굴은 몰라보게 좋아 보였다.

마치 막 결혼을 한 사람처럼 얼굴에서 활력이 넘쳐흘렀다.

다른 두 사람도 같은 건물에 이사한 까닭에 크레이그가 왜 저러는지 잘 알았다. 그들은 크레이그를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최민혁은 세 사람의 따스한 시선에 꽤 만족했다. 그들은 스티븐 사장에게 그러했던 것처럼 자신에게 등을 돌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제법 공을 들였지만 나쁘지는 않아. 이제 소프트웨어 쪽은 신경 안 써도 되겠어.’

이현탁 과장과 오상현 과장은 외국인 엔지니어가 처음이라서 버벅거렸다. 정확히는 영어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아,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크레이그 행크스는 그나마 최민혁과 만나서 사전 정보를 들어서 덜 어색했다.

그런데 크레이그 통해서 마음을 굳힌 두 사람은 상황이 좀 다르다.

그들도 사전에 충분히 듣기는 했지만, 아직도 흥분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다른 회사 복지를 떠나서 무상 집 렌트는 그들에게도 꽤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대출금을 끼고 살던 집도 다 팔아치워 버렸다.

벨린 소프트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다른 것보다 집은 빠르게 얻을 수 있다고 확신했다.

스톡옵션은 더 말할 것이 없었다.

그들은 입사와 동시에 주식 삼만 주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앞으로 5년 동안 벨린 소프트에 있어야 한다는 조건이 있었다.

최민혁은 아직도 버벅대는 오상현 과장에게 손짓했다.

임시로 만들어진 회의실 책상에서 일어나 회의실 앞에서 오상현 과장은 익숙하지 않은 영어로 지금까지 자신이 한 MP3 OS를 간단히 소개했다.

“이 프로그램은 리눅스 커널을 모태로 해서 제가 직접 설계한 OS입니다.”

MP3 OS는 완전히 맨땅에 헤딩해서 나온 것은 아니었다.

리눅스 커널이 기반이 되었고, 그 위에 오상현 과장의 노하우가 하나씩 올라갔다.

따라서 독창적인 면만 본다면 누구라도 감탄이 절로 나올 만한 결과물이다.

세 사람도 오상현 과장의 실적에 탄성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크레이그는 오상현 과장의 아픈 부분을 지적했다.

“리눅스 네트워킹 부분을 가져온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수정이 너무 많이 가해졌는데, 혹시 충돌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까?”

“충돌이 일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그런 부분까지 고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아직 MP3가 네트워크 자체를 사용하지 않았다. 인터페이스 드라이버 통해서 정보 교환이 충분하기 때문이었다.

“모바일 기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아예 외부 통신 자체를 생각하지 않은 겁니까?”

오상현 과장은 힐끗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혀를 찼다. MP3에 굳이 당장 네트워크 관련 드라이버는 필요 없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당장 블루투스도 있으니까.

‘가만 아직 블루투스 표준은 나오지 않았지? 이것도 만들어야 하나. 흠, 이건 한 번쯤 고민해 볼 필요가 있어.’

물론 저렇게 방치된 부분이 꽤 적지 않았다.

오상현 과장 나름 최선을 다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한계가 존재했다.

문제는 이번 회의 소개로 내놓은 자료 일부에서 프로그램 오류도 있었다.

컴파일 자체에서 발견되지는 않은 이 오류는 당장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프로그램을 오래 사용하는 경우에 오류를 일으킨다.

소위 말하면 다운 현상이다.

크레이그는 굳이 전체 프로그램을 몰라도 딱 자신이 본 프로그램만으로 논리적인 오류를 찾아냈다.

아직 분위기 파악을 못 한 스콧 포스탈이 넌지시 한 가지를 걸고넘어졌다.

“리눅스 커널을 사용한 것은 좋았지만 이를 응용하는 과정에서 논리적인 오류가 제법 보입니다. 저런 부분은 SDK를 개발할 때 많은 문제를 일으킵니다.”

스콧 포스탈은 아예 자신이 일어나서 회의실 한쪽의 화이트보드에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가 일어나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

오상현 과장은 화를 내지 않았다. 아니, 그는 오히려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성과를 이렇게 대놓고 지적받기는 오랜만이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자신과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연구원은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의사소통은 일방적으로 흐른다.

자신은 지시를 내리고, 다른 이들은 로봇처럼 그 지시에 따를 뿐이다.

그것은 KM 전자로 이직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래도 KM 전자로 와서는 오성 전자보다는 나은 점이 있었다.

오상현 과장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마음껏 연구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도 자신의 성과물이 완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늘 밤을 새우는 그 이유였다. 늘 그러한 것처럼 밑 빠진 독과 같이 문제는 끊임없이 터졌다.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최병연 팀장과 같이 조율하면서도 갈증을 느꼈다.

최병연 팀장은 이제 콜린스를 비롯한 KM 전자 모든 프로젝트를 총괄한다. 오상현 과장에게만 시간을 할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그때는 문제가 무엇인지 몰랐다.

지금에서야 안 것이었다.

“…맞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어떻게 그런 점을 바로 찾은 겁니까?”

영어는 어색했다.

하지만 기술적인 면을 서로 잘 아는 세 사람은 오상현 과장의 성과를 비하하지는 않았다.

“그거야, 이 일을 혼자 다할 수는 없습니다. 혼자서 이 정도 성과를 만든 것만으로 진짜 대단한 일입니다. 미친 겁니다. 하지만 다양한 개발 스펙을 충족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랬다.

그들 역시 NextOS를 개발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 덕분에 자신만의 독특한 영역을 확보했다. 그랬기에 오상현 과장의 단점을 바로 찾아냈다.

아니, 오상현 과장이 자신의 강점을 피력했기에 세 사람도 오상현 과장이 동양인이라는 점을 가볍게 잊고 말았다.

만약 오상현 과장이 일방적으로 세 사람 기술을 배우려고 했다면 관계는 시작부터 안 좋았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네 사람은 절묘한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다.

세 사람 역시 오상현 과장과 의견을 주고받으면서 자신의 비약적인 능력 향상이 스티븐 사장 덕분이라는 것을 떠올려서 한숨을 내쉬다가도 고개를 흔들었다.

그렇지만 사직서를 받아든 스티븐 사장이 ‘너희가 나를 이렇게 배신하다니!’라고 겁박하던 것을 쉽게 잊을 수가 없었다.

스티븐 사장은 세 사람의 행동에 생각보다는 극한 반응을 보였다.

스티븐 사장을 이제 잊어야 했다.

그 다음은 더 쉬웠다.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나자 굳이 최민혁이 나서서 더 언급할 필요가 없었다.

정확히는 최민혁도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의 능력은 인생 1회차 미래 지식이다. 저렇게 구체적인 공학 지식은 아니었다. 그 자신의 인지를 벗어난 지식은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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