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45화 (345/1,021)

#345.

생각보다는 그 숫자가 많았다.

KM 전자 주가는 불과 몇 개월 남짓한 사이에 마치 작전주처럼 폭등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증권 감독원, 금감원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은 최민혁 덕분에 KM 전자 주가가 왜 오른지 잘았다.

당연히 KM 그룹은 난리가 났다.

최문경 부회장은 비서실이 아닌 뉴스를 통해서 이 사실을 알았다. 그는 결국 장승일 실장실 문을 부서지도록 열었다.

“장 실장, 민혁이가 실리콘 밸리 건물을 사들인 사실을 사전에 알았어?!”

장승일 실장은 양손으로 얼굴을 감싸 쥐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몰랐습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은 기획조정실의 실장실에 있는 직원을 다 내보낸 후에 책상 맞은편에 바짝 붙어서 살기가 가득한 시선으로 내려다봤다.

“설마 그 대단한 장 실장 자네가 언론 기사를 통해서야 민혁의 실리콘 밸리 부동산 매입건을 안 건가? 정말 웃기지도 않아.”

비꼬는 최문경 부회장 목소리에도 장승일 실장은 화내지 않았다. 그 역시 이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상상도 못 했다.

그가 알아보라고 지시하고, 지시받는 시간만 적어도 1주일은 걸린다. 이 일은 바로 그 짧은 시간에 전광석화처럼 일어났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불과 일주일 남짓한 사이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니 최민혁 실장님 측근이 아니고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정확히는 최민혁 실장 측근도 이 사실을 잘 몰랐다. 정작 아는 이라면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인데, 그는 그 사이에 미국으로 가버렸다.

최문경 부회장은 질투가 가득한 눈으로 장승일 실장을 씹어 먹듯이 쳐다보았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설마 아버지 허락도 없이 민혁 이놈이 독단으로 이 일을 저질렀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장승일 실장은 답답했다. 왜 자신이 최민혁 실장을 대신해서 답변해야 하는지, 이 상황이 편치가 않았다. 그래도 답은 했다.

“벨린 투자는 이제 회장님하고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러니 벨린 투자가 자기 투자 수익금으로 건물을 매입한 것을 가지고 뭐라고 하기는 힘듭니다.”

“아니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해? 벨린 투자 실소유자가 누군지도 몰라?!!!”

장승일 실장도 씁쓸한 표정을 한 채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물론 고 최병문 상무님이 벨린 투자에 있을 때는 그랬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최민혁 실장님이 벨린 투자 실소유주입니다. KM 전자와도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니,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병문이가 운영할 때 비자금 규모만 해도 수천억이 넘었던 것으로 알아. 그런데 정리를 했다고?”

“그건 회장님에게 확인하기 바랍니다. 다만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말할 수 있는 것은 벨린 투자와 KM 그룹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겁니다.”

“…진심이야?”

“네. 회장님도 최병문 상무님 일 때문에 벨린 투자와 거리를 뒀습니다. 그리고 자금을 다 회수한 후에 정리 절차를 밟았습니다. 그러다가 최민혁 실장님에게 명의를 다 이전했고, 마지막으로 청산 절차에 들어가려고 했습니다.”

정확히는 최민혁 명의를 내세워서 벨린 투자가 진행한 투자 내역을 정리하려고 했다. 실제로 인생 1회차에서는 KM 그룹이 공중 분해되면서 벨린 투자도 문제가 된다.

KM 그룹이 청산절차를 받는 과정에 이 자금이 해외로 다 샜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이 부분에서도 불법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서 검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만약 IMF가 없었다면 법적으로 크게 문제가 될 일도 아니었다.

벨린 투자를 정리하게 되면 비자금과 관련된 모든 증거는 다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설마 최민혁이 이 벨린 투자를 이용해서 투자하게 될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심지어 조 단위 이익을 올리리라는 것은 상상도 못 했다.

최문경 부회장이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장승일 실장 말에 자신이 잊고 있던 사실을 떠올리고서야 이를 악물었다.

간혹 최용욱 회장과 둘만 있을 때 이 비자금은 다 장남인 자신 몫이라는 사실을 누누이 들었다. 다만 최근 와서 최용욱 회장 태도가 이상했다.

그가 최민혁과 노골적인 분쟁을 삼가는 것도 다 이것 때문이었다.

그래도 여전히 한 가지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민혁이 그놈이 청산절차를 밟지 않고, 벨린 투자를 다시 살렸다는 소리를 하는 거야?”

“제가 알기에는 그렇습니다.”

“음.”

최문경 부회장은 잠깐 장승일 실장을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다가 곧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무래도 아버지를 찾아가서 이야기를 확인해 봐야겠어.’

장승일 실장은 최문경 부회장이 사라지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다시 최용욱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서 지금 사정을 말해주었다.

최용욱 회장은 묵묵히 듣기만 하다가 조용히 전화를 끊고 말았다.

‘하긴 지금 와서 가장 배가 아픈 사람은 최 회장님일 테니까.’

* * *

부산에는 골프장이 많은데, 시원한 바람 때문에 이곳을 찾는 사람이 많다.

스타록스 골프장이 그런 골프장 중의 하나다. 바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 때면, 마음을 괴롭히는 스트레스가 다 씻겨 나간다.

최용욱 회장은 건강을 회복하기가 무섭게 꾸준하게 전국 곳곳에 있는 골프장을 찾았다. 그는 서울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면 도심에서 먼 곳을 선택했다.

PGA 프로도 선호한 이 스타록스 골프장은 그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유쾌한 골프장이 되지 않았다.

마치 수금하러 온 사채업자처럼 자신을 갑자기 찾아온 자식들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 그의 처 김이경, 감옥에 간 최훈열 전무를 대리한 그의 아내 김여정, 최동영 상무와 그의 처 조희정까지 자리했다.

제사를 지낼 때도 늘 한두 명씩 빠지는 구성원이라 모두 같이 모이기 힘든 인적 구성이었다.

경영 승계 구도가 원래는 최문경 부회장으로 잠정 결론이 난 후에 갈등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경영권 레이스가 다시 시작된 후에 상황이 달랐다.

최용욱 회장은 오히려 이런 가족 모임을 원했기에 한편으로 슬픈 미소를 지었다.

“골프장에서 가족 모임을 하는 것이 편치는 않다만 나쁘지는 않구나.”

“…….”

다들 말이 없었다. 섭섭한 마음을 숨기지 않는 눈빛이었다.

최용욱 회장은 이미 장승일 실장에게 전화로 연락을 받았기에 왜 이들이 이곳에 나타났는지 모를 수가 없다. 굳이 그런 마음을 내색하지는 않았다.

“막내 며늘아기에게는 연락했느냐?”

최문경 부회장은 혀를 찼다.

“아직 이런 자리에 부르기는 좀 그랬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까칠한 장남 목소리에 큰 며느리에게 시선을 돌렸다.

“큰 아기야, 너도 그러냐?”

최민혁 정략결혼 때문에 자주 최용욱 회장을 찾아갔던 김이경은 최용욱 회장 눈치만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직은 좀 아닌 것 같습니다. 지난 일도 있는데, 너무 서두르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가까워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냐? 동영이, 넌?”

최동영 상무는 골프채를 이리저리 휘두르면서 툴툴거렸다.

“제가 무슨 힘이 있습니까? 큰 형수님이 알아서 한 일이죠.”

김이경은 갑자기 자신을 걸고넘어지는 최동영 상무가 야속했다.

“저라고 해서 할 수 없는 일이 있어요.”

“그렇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슬쩍 정미선 이야기를 회피하는 이들을 보자 혀를 찼다. 그리고 이들이 왜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났는지 모를 수가 없었다.

“나도 너희 데리고 피곤하게 골프 치기는 싫구나. 민혁이 때문이지?”

눈치가 보고 있다가 최용욱 회장이 최민혁 이야기를 꺼내자 김이경이 냉큼 끼어들었다.

“아버님, 정말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아니, 어떻게 민혁이가 실리콘 밸리 건물을 사들이게 그냥 내버려 두신 겁니까?”

최용욱 회장도 비서에게 골프채와 장갑을 넘기고 나서 생수를 받아서 꿀꺽꿀꺽 마셨다. 그제야 좀 살 것만 같았다.

“말이 좀 이상하구나.”

“제 말은 벨린 투자는 어차피 아버님 소유이지 않습…….”

최용욱 회장은 중간에 말을 냉정하게 잘랐다.

“벨린 투자는 나랑 아무런 관련이 없다. KM 전자 이전에 이미 정리하려고 했던 거야. 다만 민혁이 명의를 빌려서 벨린 투자를 청산하려고 했다. 민혁이에게 회사 청산 절차를 옆에서 지켜보면서 배우라고 한 거야. 어떻게 보면 방치된 거다.”

“네?”

“벨린 투자는 당시 껍데기였다.”

“잠깐만요. 그러면 벨린 투자가 소유한 돈은 다 어디로…….”

최용욱 회장 표정이 얼음처럼 차갑게 변했다. 목소리마저 달라졌다.

“허허허, 큰 아기야. 지금 날 보고 회사 자금 내용까지 너에게 보고하란 소리야?”

김이경도 갑자기 바뀐 최용욱 회장 태도에 크게 당황했다.

“아, 아닙니다. 제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그 돈이 KM 그룹의 종자돈 아닙니까.”

“그래. 맞다. 그래서 그 돈은 만약을 대비해서 조용히 처리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으냐? 아, 걱정하지 마. 민혁이에게는 단돈 1원도 가지 않았으니까.”

“…….”

김이경도 쉽게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KM 그룹 비자금 이야기는 오래전부터 나왔다. 그 대부분은 벨린 투자에서 굴렸다는 소리가 파다했다.

그리고 전 최병문 상무는 투자 부분에는 타의 추종을 허락하지 않았기에 그 돈을 관리했던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도 탐욕을 숨기기 위해서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저 돈만 있다면 KM 그룹을 완전히 휘어잡을 수가 있었다.

심지어 최민혁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최용욱 회장 성격을 잘 알기에 나서지 않았다.

조용히 눈치만 보던 최동영 상무조차 탐욕을 감추지 못했다.

욕망에 물든 자식들의 모습을 본 최용욱 회장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민혁이 반만 되어도 너희에게 이렇게 실망하지 않을 거다.’

특히 장난 최문경 부회장의 무관심한 태도에 혀를 찼다.

그의 두 눈빛만큼은 욕망을 쉽게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는 것은 며느리들이다. 그 누구 한 사람도 쉽게 비자금을 포기한 눈치는 아니었다.

그는 물론 그 막대한 비자금을 사회 재단에 넘길 생각 따위는 없었지만 지금 이 상황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자꾸 이야기가 산으로 가는구나. 너희들이 지금 이 자리에 온 것은 민혁이가 실리콘 밸리 빌딩을 매입한 것 때문이냐. 아니면 벨린 투자 자금 때문이냐?”

다들 최용욱 회장 태도에 부담을 느낀 이들은 최문경 부회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졸지에 다른 이들을 대표하게 된 최문경 부회장은 주변의 시선을 받자 어쩔 수 없이 나섰다.

“저희가 걱정하는 것은 혹시나 아버지 자금이 민혁에게 넘어간 것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건 절대 아니다.”

그는 잠깐 멈칫거렸다. 최용욱 회장이 저렇게 단호하게 대답하는데, 괜히 이 자리에서 아버지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받고 싶지 않았다.

“하면 벨린 투자 실소유주는 민혁이란 말입니까? 아버님은 단 한 푼도 도와준 것도 없고요?”

“그래. 다시 말하지만 벨린 투자는 정리하려고 했다. 하지만 민혁이, 그 녀석은 벨린 투자를 이용해서 투자한 거야. 그리고 그 돈의 출처 중에 일부는 민수와 김기범 그 녀석 돈이었어. 너희들이 누구보다 가장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

그들은 뒤늦게야 과거 최민혁 실장이 주식 투자를 할 때 시절을 떠올렸다. 당시 그 일을 이용해서 어떻게 해서라도 최민혁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다.

‘결국 그 돈이 씨앗 자금이 된 거였어?’

다시 머릿속 깊이 감추어둔 아픈 기억을 떠올리자 속이 쓰렸다.

김이경을 이를 악물고 반박했다.

“아버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벨린 투자가 이번에 벌어들인 수익은 조 단위가 넘습니다. 그게 말이나 되는 투자입니까? 아버님이…….”

“말이 안 되지. 나도 그 부분은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기조실 통해서 계속 조사를 하는 것이야. 하지만 모든 것은 사실이다.”

시기를 잘 맞추어서 귀신처럼 나타난 장승일 실장이 따가운 시선을 받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회장님 말씀이 사실입니다. 지금까지 조사한 바로는 최민혁 실장님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종잣돈도 최민수와 김기범 돈으로 한 겁니다.”

그는 믿지 못한 이들에게 지금까지 벨린 투자가 어떻게 돈을 불려왔는지 현황을 보여주었다. 금감원에서도 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다. 딱히 숨기고 말고 할 일은 아니었다.

“…….”

최용욱 회장은 피식 웃었다.

“너희들이 여기 왜 왔는지는 알겠다. 하지만 나라면 민혁이가 왜 굳이 실리콘 밸리 건물을 사들였는지 그것부터 조사할 거다. 그 녀석은 어떤 목적을 가지고 그 일을 진행한 것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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