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44화 (344/1,021)

#344.

‘지수 때문에 벨린 투자를 설립한 지수 아버지 이영민 씨와 거리를 두고는 있지만 한번 연락이나 해볼까. 아니, 아직은 여유가 있어. 괜히 연락해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어. 아마 알아서 먼저 연락을 하겠지.’

벨린 투자와 관련된 몇 가지 인생 1회차 기억이 떠올랐다.

최민혁은 힐끗 한국에 있을 때와는 달리 긴장한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1회차 때는 그 자신도 생존을 위해서 이리저리 발버둥 쳤다. 그래서 벨린 투자와 얽힌 이야기는 알지 못했다.

어머니 정미선도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자신을 만났을 때는 모르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도 정확한 내막은 잘 몰랐다. 외부로 이 일이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인생 1회차 기억에서 석연치 않은 기억을 떠올리다가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굳이 지난 삶에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어차피 내가 힘이 있다면 저절로 알게 될 테니까. 지금은 내 일에만 집중하자.’

* * *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는 12에이커에 달하는 넓이답게 단순히 건물만이 아니라 대학 캠퍼스를 떠올리게 하는 잔디가 넓게 펼쳐져 있다.

멀리서 본다면 스탠퍼드 대학과 별반 차이를 구분하기 쉽지 않다.

이곳을 오가는 직장인의 얼굴에는 여유가 한껏 더 올라 있었다.

외부에서 실리콘 밸리는 첨단 기업의 요람이라는 인상이 있지만 정작 이곳을 오가는 이들에게는 그저 대학 캠퍼스를 오가는 대학생들이 캠퍼스를 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최민혁 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기가 무섭게 이곳에 도착했다.

대부분은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 뒤를 종종 따르기만 했다.

조성돈 팀장은 덕분에 최민혁의 대리로 다른 팀에게 여러 질문을 받았지만 그라고 해서 아는 것은 별로 없었다. 최민혁이 제대로 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다른 직원은 그래도 다들 해외 출장을 한 두 번씩은 가봤기 때문에 크게 거부감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색다른 실리콘 밸리 광경에 ‘흠’하고 둘러볼 따름이다.

다만, 실리콘 밸리가 처음인 강준석만큼은 달랐다. 그는 꿈에서도 그리던 실리콘 밸리, 그 한복판에 와 있다는 감흥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인천 공항을 떠나 비행기에 오를 때만 해도 흥분으로 숨조차 쉽기 어려웠다. 캘리포니아 공항을 나올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지만 2,500명이 일하는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

나름의 자긍심이 있다고 하지만 미국 실리콘 밸리의 삶은 공돌이라면 누구나 꾸는 꿈이었던 것이다.

‘죽인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왜 일행을 이끌고 이곳에 온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최민혁은 실리콘 밸리의 색다른 풍경에도 하품마저 했다. 그는 미국에 와 있다는 그런 모습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마치 가까운 산자락을 오른 등산객처럼 지겹다는 표정이었다.

강준석은 그나마 안면을 튼 정성근 대리의 팔을 붙잡았다.

“저기 정 대리님, 혹시 이곳을 왜 온 것인지 알 수 없을까요?”

“…….”

정성근 대리는 물끄러미 강준석을 쳐다보았다. 대답은 하지 않았다. 딱히 그를 무시해서라기보다는 사람 얼굴을 가리기 때문이다.

결국 강준석은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

정성근 대리는 여전히 대꾸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이 보다 못해서 정성근 대리를 쿡 쥐어박았다.

“이봐, 정 대리, 이제 신입인 준석 씨에게 잘 알려주라고 했잖아.”

“대리인데요?”

“그래도 회사 생활이 처음이잖아. 정 대리에 대해서도 오해할 수가 있으니, 신경 좀 써줘.”

“…네.”

머리를 긁적이는 정성근 대리는 여전히 강준석이 편치 않았다. 그런데 그 모습이 오히려 강준석을 압박하는 것 같았다.

강준석은 눈치를 굴리면서 혹시 자신이 대리 진급한 것 때문에 앙심을 품은 것이 아닌가 싶어서 눈치만 봤다.

조성돈 팀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준석 씨, 정 대리가 사람 얼굴을 좀 가려. 이번 기회에 자네 통해서 좀 익숙해지라고 데려왔어. 오히려 불편하지?”

“아, 아닙니다.”

강준석은 크게 당황했다. 그는 정성근 대리가 사수가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괜히 그에게 치이고 쉽지 않았다.

인생 1회차에 미국에서 몇 년을 산 적이 있는 최민혁은 자신이 원한 것은 아니지만, 강준석이 기가 죽는 것을 보면서 혀를 찼다. 그렇다고 정성근 대리에게 괜한 말을 하지는 않았다. 정말 강준석이 찍힐 수도 있으니까.

다행히 우영민 과장이 몇 사람을 데리고 최민혁 일행 앞으로 왔다.

“실장님!”

최민혁은 슬쩍 동행한 사람을 쳐다보았다.

“일은 잘 진행되었습니까?”

“네. 일단 급한 문제는 다 해결했습니다. 마무리되면 건물 매입 대금을 입금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이분은?”

우영민 부장이 데려온 사람은 모두 네 명이었다. 그중에 제일 앞에 선 이는 50대 초반에 전형적인 백인 남성이었다.

검은 슈트가 잘 어울리는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을 떠올리게 했다.

우영민 부장은 나서서 양쪽을 한 사람씩 소개해 주었다.

“아, 이분은 마이클 케이지 팔로알토 네트웍스 부사장입니다. 그리고 이분은 벨린 투자 실소유자이자, KM 전자 기획실장인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콜린스를 세상에 선보인 분입니다.”

대답은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이 가장 빨랐다. 그는 콜린스란 말에 감탄사를 터뜨린 채 최민혁 실장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린 나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그보다는 그 역시 콜린스의 탁월한 품질에 더 반했다.

“세계 최고의 TV를 만든 분을 이렇게 뵙게 되다니, 영광입니다.”

“천만에요.”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한 채 환대하는 마이클 케이지에게서 우영민 과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우영민 과장도 어쩔 수가 없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경영진도 계약을 진행하면서 빌딩 매입자가 누구인지 알고 싶어 했다.

무려 2억 달러가 넘는 거래 당사자가 혹시라도 일본 야쿠자와 불법 조직의 검은돈이 아닌가 의심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일시금으로 현금 2억 달러를 은행 대출도 없이 줄 수 있는 자금력에 놀랐기 때문이다.

거기다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본사 건물을 매각하고도 당분간은 본사에 그대로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을 믿었고, 지금의 불황은 곧 해결할 것이라 봤던 것이다.

그들 상황인 상황인지라 건물주가 누구인지도 확인하고 싶었다.

다행히 이런 의문은 콜린스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사실 때문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최민혁은 덕분에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과 그 일행에게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초롱초롱한 눈빛만 봐서는 다들 최민혁 실장의 전설적인 행보를 듣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최민혁은 부담스러운 시선을 뒤로 한 채 결국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를 둘러봤다.

뒤를 따르는 이들 중에 강준석은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경악했다.

“조 부장님, 그러면 이 건물이 전부 우리 회사 소유가 되는 겁니까?”

“…….”

조성돈 팀장은 벨린 투자 소유라는 것을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에게 미국 빌딩을 알아보라는 지시를 받기는 했지만 벨린 투자를 통해서 벌써 사고를 칠 줄은 몰랐다. 그것도 불과 일주일이라는 짧은 시간에 말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2억 달러라니.’

그 역시 최민혁 실장 뒤를 따르면서도 힐끗힐끗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이 KM 전자 주식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는 것은 알았다. 그런데 실리콘 밸리의 건물을 보자 뒤늦게 실감했다.

2,50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는 건물이 벨린 투자 소유가 되리라는 것이 잘 믿기지 않았다.

그런데 굳이 따로 질문할 필요는 없었다.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 건물 5~6층 안내에 이미 KM 전자 본사 로고가 새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은 최민혁이 콜린스 신화의 주인공이라는 알자 저자세를 감추지 않았다. 그는 새로운 건물주에게 잘 보이려고 처세술을 보인 것이다.

“최 실장님,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제가 드릴 말씀입니다.”

하지만 최민혁의 얼굴엔 딱히 그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는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을 아예 믿는 것 같지가 않았다.

불과 단 몇 분 만에 태도가 바뀐 두 사람의 모습은 적지 않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그건 강준석 역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첫인상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비록 자신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전혀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의 아버지 같은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자신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마이클 케이지 부사장은 실제로 최민혁에게 깊은 호감을 떨치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를 통해서 많이 접했지만 직접 보니, 실장님이 더 대단하구나.’

* * *

“와!”

강준석은 마치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경치를 즐기면서 사무실이 좁다고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그는 자신 이름표가 달린 자리에 앉아서 흥분을 쉽게 감추지 못했다.

KM 그룹 입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는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차라리 다른 대기업에 입사 신청을 해볼까 싶었다.

그렇지 않았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해서 묵묵히 기다렸다.

그런데 그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

조성돈 팀장조차 자신의 자리를 돌아보고 난 후에 다른 직원을 불렀다.

그는 특히 이현탁 과장과 오상현 과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두 분은 실장님에게 따로 지시를 받았을 테니, 자리 세팅은 알아서 하기 바랍니다.”

불과 며칠 전에 최민혁 실장에게 거부하기 힘든 압박을 받은 오상현 과장은 반쯤 넋이 나가 있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이 의미가 있다고 알았지만 이런 상황을 접할지는 상상도 못 했다.

‘한다.’란 말과 함께 시작된 일의 결과에 최민혁 실장의 추진력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새삼 깨닫고 말았다.

“아,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희 두 사람은 당분간 이곳에 지내는 겁니까?”

“네, 여기 잘 곳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이 아파트 역시 벨린 투자에서 매입을 검토 중이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을 겁니다. 두 분은 당장 프로젝트를 진행하셔야 하니까요.”

강준석은 그제야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조 팀장님, 그러면 저는 바로 한국으로 돌아가는 건가요?”

“아, 강 대리도 아직 확실치가 않아. 상황에 따라서 바뀔 테니까. 상황이 정해질 때까지 이곳에 있으면서 정 대리에게 도움을 얻어.”

“…알겠습니다.”

강준석은 부담스러운 정성근 대리를 힐끗 쳐다본 후에 입을 다물었다.

그는 뒤늦게야 자기 기획안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도 여전히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정말 내 기획안 때문에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일까?’

조성돈 팀장은 상념에 잠겨 있는 팀원들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 말았다. 그 역시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실리콘 밸리의 한 경관에 깊은 감흥을 느꼈고 말았다.

‘하긴 그렇게 돈을 많이 벌었는데, 부동산 투자는 당연한 순서겠지. 사실 굳이 사업하지 않아도 이 부동산만으로 몇 년 안에 막대한 수익을 올릴 테니.’

* * *

팔로알토 네트웍스는 그렇게 부실한 기업이 아니다. 최근 후발 주자에 대한 견제 때문에 무리한 자금 집행 때문에 힘들어했을 뿐이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2억 달러라는 건물 매각 대금을 일시불로 내놓지 않았다면 당장 건물을 매각할 이유는 없었다.

덕분에 알토란같은 팔로알토 네트웍스 본사 건물은 그렇게 벨린 투자로 넘어갔다.

당연히 이 소식을 들은 국내 언론은 가만히 있지 않았다.

[벨린 투자가 실리콘 밸리의 팔로알토 네트웍스 건물을 2억 천만 달러에 사들이다!]

이 소식은 저녁 뉴스에도 나왔고, 며칠 동안 모든 한국 언론이 받아쓰면서 이슈가 더 커졌다.

일종의 국뽕빨이다.

국내 기업 중에 실리콘 밸리 건물을 수천억 단위로 사들인 사례는 그렇게 흔치가 않았다.

벨린 투자가 KM 전자 주식을 초대박을 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런데 그들이 천문학적인 수익으로 설마 실리콘 밸리 부동산을 사들일지는 상상도 못 한 것이었다.

지켜보는 많은 이들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일반 시민 역시 혀를 내둘렀다.

[벨린 투자가 KM 전자 주식으로 돈 좀 벌었다고 하던데, 실리콘 밸리에 부동산을 사들일 정도로 많이 벌은 건가?]

덕분에 KM 전자 주식 폭등으로 갑부가 된 성공 스토리가 나왔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