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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38화 (338/1,021)

338

“좋네요. 한번 기대를 해보죠. 조 팀장님, 시작하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힐끗 강준석 얼굴을 무심히 살피고는 MP3 관련 브리핑을 시작했다. 기존에 진행한 모든 것을 고려한 내용이 아니었다.

대략 줄여서 IT와 MP3 플레이어가 어떤 식으로 결합하는가에 대한 설명이었다.

만약 아무런 결과가 없었다면 뜬구름식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런데 박광민 사원이 MP3 표본과 구조도를 내놓자 상황이 달라졌다.

당장 실물을 처음 접한 김창호 부장은 깜짝 놀랐다. 그는 역시 20년 넘는 베테랑답게 MP3가 얼마나 복잡한 제품인지 금방 눈치를 챘다. 특히 MP3 관련 자료를 읽으면서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는 경악이 가득한 눈으로 회의에 참석한 이들을 살폈다.

그런데 이미 이 사실을 다 아는 기획 팀 대다수는 대수롭지 않은 표정이었다. 아니, 그들은 이미 MP3 양산 문제를 가지고 고민할 정도다. MP3라면 이제 그들에게 신제품이 아니라 지긋지긋한 물건이었다.

딴 보따리를 몰래 챙겨두고 있었다는 것을 안 김창호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결국 옆자리에 앉은 최구만 과장 얼굴을 쳐다봤다.

“본사 쪽에서 개발 진행하던 신제품이 이거야?”

“…네.”

“맙소사 그러면 자네가 하던 그 일이 바로 이것과 관련이 있다는 거야?”

“제가 한 일은 전원 칩 파트입니다.”

“허.”

김창호 부장은 마른하늘에서 뚝 떨어진 MP3 플레이어가 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는 뒤늦게야 최근 사내의 괴상한 분위기를 이해했다. 심지어 왜 KM 전자 주가가 요동치는지도 말이다.

하지만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강준석이다. 그는 자신이 MP3 관련 자료를 조사해 봤기에 무슨 기술이 있고,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안다.

그런데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샘플과 결과물은 딱 자신이 막연하게 생각한 기술과 제품이었다.

큰 충격은 오래가지 않았다.

강준석은 뒤늦게야 MP3 시제품이나 다른 디자인에서 디스플레이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이유는 당연히 있었다.

최근 공장에 와서 기획안의 문제점을 찾다가 한 가지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아, TN이 문제구나.’

최민혁은 다양한 고민에 빠진 회의실을 한 번 쭉 살피다가 의문을 풀어줬다.

“원래는 디스플레이 없는 MP3가 원 기획안입니다. 그건 그것대로 쭉 갈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시장 타이밍이 좋지 않아서 디스플레이 타입 MP3도 병행해서 개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이 제품은 강준석 씨 기획안하고도 일부 관련이 있습니다.”

그리고 복잡한 얼굴을 한 이현탁 과장과 오상현 과장을 쳐다보았다.

“이 과장, 오 과장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사람은 LCD 타입 MP3가 나오면 지금 하던 일을 바로 적용해야 할 겁니다. 어때요?”

“아, 네? 그게 좀…….”

크게 당황한 이현탁 과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PC에 막연하게 진행하던 것과는 이야기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오상현 과장 역시 당황하기는 매 한 가지다. 그 역시 LCD 없는 MP3만 생각하다가 갑자기 상황이 확 바뀌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군기가 빠진 두 사람을 보면서 가이드 라인을 명확하게 잡아주었다.

“개발 기획안에 이미 나와 있지만, 단순히 이 MP3에만 적용되지 않습니다. 동일한 형태의 모바일 타입에는 모두 적용됩니다. 제가 굳이 이식성 문제를 초기에 언급한 것도 다 그런 이유입니다. 설마 새로 개발해야 한다는 소리는 아니겠죠?”

두 사람은 지금까지 지시를 받았지만 명확한 부분이 아니라서 확신하지 못했다.

“아, 그게, 으음, 그 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좋아요. 아직은 시간이 좀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여유롭게 생각할 수는 없어요. 당장 MP3 타입 OS에 다양한 업체가 개발할 수 있도록 기준을 잡아도 줘야 하고 할 일이 많습니다.”

특히 외주업체를 떠올린 두 사람은 머리가 지끈 아팠다. 지금까지는 선행 개발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제품에 바로 적용될 것이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두 사람은 당혹스러운 얼굴을 한 채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가 바짝 굳어 있는 강준석을 쳐다본 후에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이거 정말 되는 것 맞아?’

두 사람의 걱정을 읽은 사람처럼 최민혁은 강준석 팀을 쳐다보았다.

“준석 씨, 어때요? 디스플레이에 대한 대응책이 있어야 할 것 같네요. 그게 있다면 지금 본인이 만든 기획안대로 상황을 풀어가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 같아요.”

“그, 그렇습니다.”

하지만 답을 해놓고도 강준석은 바로 후회했다. 그가 아무리 이미 막 대학을 졸업한 신입 사원이라고 해도 TN LCD의 문제점을 풀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은 그런 강준석 마음을 전혀 이해해 주지 않았다.

“패기가 좋습니다. 제가 전적으로 이 기획안을 밀어줄 테니, 한번 진행해 보세요. 오늘 회의에서 느꼈겠지만 다른 파트도 이 일에 깊이 관여할 겁니다.”

그는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김창호 부장을 쳐다보았다.

“공장 쪽은 김 부장님이 도와줄 겁니다.”

“아? 네, 넵, 물론입니다. 공장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좋습니다. 사장님에게는 제가 바로 보고를 할 겁니다. 이 새로운 프로젝트 야누스는 정식으로 담당자에게 바로 연락이 갈 겁니다.”

최민혁은 이 일이 마치 당연히 쉽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처럼 자리에서 일어나서 휑하니 나가 버렸다.

회의실은 한동안 침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허황하게 생각한 신입 사원의 기획안이 정말 진행되기 때문이다.

‘이거 정말 되는 것 맞아? 당장 LCD 문제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 * *

콜린스 누적 매출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갔다. 안산 공장은 그야말로 전쟁터에 출전한 군인처럼 처절하게 행동했다.

덕분에 오영근 사장은 외국에서 쏟아지는 물량 때문에 국내가 아니라 주로 해외 쪽을 나돌아 다녔다.

그런 그도 갑자기 최민혁이 들고 온 LCD 타입 플레이어 야누스 개발안에 고개를 갸웃했다.

“이게 또 뭔가?”

“LCD 타입 MP3 플레이어입니다.”

설명은 이 프로젝트를 조용히 진행하는 이현탁 과장에게 떠넘겼다.

사장실에 갑자기 불려 온 이현탁 과장은 당황하기는 했지만 자기 생각을 털어놓았다.

“아, 이 모델은 기존 MP3 전용 플레이어와는 조금 다릅니다. 미니 LCD를 넣어서 좀 더 다양한 콘텐츠를 넣은 모델입니다.”

오영근 사장은 묵묵히 듣기만 했는데, 개발 방향 자체에 크게 반대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런 그도 응용 프로그램 외주업체가 무려 10곳이 넘는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소프트웨어 회사도 아닌데, 꼭 그걸 우리가 개발할 필요가 있나?”

“그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금 당장은 인프라가 전혀 없어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외주업체 통해서 진행하는 것입니다.”

작은 LCD 액정이 달린 디자인을 고려한 것 때문에 나온 이야기였다.

오영근 사장도 마냥 최민혁의 제안을 거절하기는 힘들어서 바로 개발 기준서에 서명하려고 하다가 문득 이번 신입 사원 교육과 관련해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역시 최민혁이 갑자기 321명의 신입 사원을 뽑은 것에 고개를 갸웃해서 관심을 뒀기 때문이다.

“이건 나도 우연히 들은 이야기인데, 신입 사원 기획안을 검토한다는 소리가 있어. 그 기획안에 이와 유사한 이야기가 있던데, 설마 그것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네. 사실입니다.”

“뭐?”

오영근 사장도 깜짝 놀랐다. 그가 아무리 최민혁 실장을 믿어도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 태도에도 자신이 만든 기획안 중에 몇 가지를 쿡 찍었다.

“LCD 타입 MP3 개발 자체가 강준석, 이 친구의 아이디어입니다.”

“…정말인가?”

“네.”

오영근 사장은 잠깐 흠칫했다. 그도 이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신입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한 프로젝트라니. 그런데 무려 수백억이 넘는 자금이 소용되었다. 지금까지 MP3에 대해서도 충분히 고민했고, 번민했기에 반박했다.

“아무리 그래도…….”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 잔소리가 길어질 것 같아서 냉큼 잘랐다.

“솔직히 저도 이 방향을 고민 중이었습니다.”

“무슨 뜻인가?”

최민혁은 첨부된 파일 몇 개를 오영근 사장에게 보여주었다.

MP3 시장에 대한 출하 예측 보고서였다. 비록 정확한 미래 생산량은 기획안과 일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최민혁이 굳이 이 자료를 보여준 것은 방향성 자체는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5년 후에 전 세계 MP3 시장은 출하량만 대략 5,600만 대가 넘습니다. 이 중에는 가정용과 차량용을 모두 포함합니다.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할 겁니다. 아마 5년이 더 지나면 가파르게 성장을 거듭해서 440억 달러를 넘어설 겁니다.”

“…엄청나군. 아니, 그걸 알면서도 신입 애들에게 이 중요한 일을 맡긴다는 소리인가?”

“그건 5년 후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은 상황이 좀 다릅니다. 이제 막 시작되는 시장입니다. 과연 국내나 미국에서 얼마나 팔리겠습니까?”

“그건…….”

“매달 20만 대씩 팔아서는 재미를 많이 못 봅니다. 미국도 아직은 시장이 서서히 만들어지는 시기이니, 더 합니다. 우리가 성급하게 먼저 나서면, 뒤를 따르는 이들이 그걸 베껴서 막 찍어낼 겁니다.”

“하지만 특허는…….”

최민혁은 이 부분에서 한 가지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그런데 시장이 성숙하지 않는 시점에서는 우리 특허를 이용해서 강제할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몇 년은 그냥 둬야 합니다. 그 이후에 소송으로 수익을 챙기면 됩니다.”

“흠.”

오영근 사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최민혁 실장 이야기를 들어보니, MP3 시장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양산성 검토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상태에서도 사업이 참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아무리 봐도 신입 사원 아이디어를 이용한 프로젝트 진행은 수긍하기가 쉽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가?”

“지금은 굳이 서둘러서 남 좋은 일 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기초 체력을 키우면서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 더 낫습니다.”

“설마 LCD를 말하는 건가? 아니, 자네는 LCD 사업에 끼어들지 않겠다고 했지 않은가?”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 푸념에 한숨을 내쉬었다.

“LCD 사업 자체는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새로운 LCD가 나올 때까지 굳이 기다릴 이유는 없습니다. 정 제가 원하는 LCD가 없다면 제가 만들면 그뿐입니다.”

실제로 원천 특허만 가지고, 기술료로 버티는 회사가 있었다.

“가만 생산은 외주를 줄 생각인가?”

“그렇습니다.”

“아…….”

오영근 사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의도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걱정이 되지만 최민혁이 굳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일을 진행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그러면 차라리 자네가 주도해서 이 일을 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물론 제가 주도할 겁니다. 다만 지금 임직원에게 자극을 주고 싶은 것뿐입니다. 최근 우리 회사 임직원 사이에 사내 분위기가 축 늘어진 것은 아실 겁니다. 우리 회사는 공무원 사회가 아닙니다.”

“아, 그거야 최 실장 자네가 워낙에 경영을 잘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그걸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신입 사원을 한번 제대로 밀어줄 생각입니다. 능력만 된다면 대리, 과장을 뛰어넘어서 부장으로 바로 진급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겁니다.”

“음.”

오영근 사장은 그제야 최민혁의 꼼수를 이해하고는 혀를 찼다. 다만 그도 기획안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이거 정말 가능성이 있는 건가? 만약 실패라도 한다면…….”

“잘될 겁니다.”

“그런가? 알겠네.”

그는 결국 개발 기획안에서 서명하면서도 힐끗 최민혁을 다시 쳐다보았다. 최근 본사나 최용욱 회장을 몇 번 만나면서 들은 이야기를 떠올렸다.

“으음, 자네가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네. 다만, 요즘 최 부회장님 분위기가 좋지 않아. 이왕이면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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