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37화 (337/1,021)

#337.

조성돈 팀장은 기획 팀장답게 최민혁이 사내에서 움직이는 동선을 따라다녔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이 이현탁 과장과 오상현 과장을 앞에 두고 설명하는 것을 다 들었다.

괜히 중간에 끼어들어서 말을 끊기 싫어서 조용히 있었지만 최근 신설된 본사 중앙 연구소를 나오자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외주를 준 게임 프로그램은 사전에 염두에 두고 진행하신 겁니까?”

최민혁은 연구실을 오가는 직원의 인사를 받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하면 디스플레이 타입 MP3를 이미 검토하신 겁니까?”

“당연하죠. 그렇지 않았다면 애플리케이션이나 OS팀 인력을 계속 늘릴 이유가 없습니다.”

KM 전자가 최근 공채 자체는 하지 않았지만, 경력 사원은 이야기가 다르다. 최병연 팀장의 추천을 받아서 꾸준하게 사람을 뽑았다.

그 대부분이 오성 전자나 LC 전자 출신이었다.

최민혁이 최병연 팀장의 안목을 믿었기에 취한 조치였다.

그 덕분에 자체 OS 개발은 이미 탄력을 받았다.

그것이 바로 프로젝트 아르고스다. 온몸에 100개의 눈이 달린 이 괴물은 그리스 신화에는 거인족으로 나온다.

“아르고스 프로젝트는 단순히 MP3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객체지향 형태로 시작해서 이식성을 높인 거죠.”

그리고 초안으로 나온 아르고스 성과는 나쁜 편이 아니었다.

실시간 리눅스를 바탕으로 했지만 리얼 타임 리눅스와는 달랐다.

이질적인 이 OS에 조성돈 팀장은 곤혹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기획실 중회의실 안으로 들어서면서도 계속 눈치를 봤다.

회의실에 이미 자리한 기획 팀은 다들 일어나서 두 사람의 대화에 집중했다.

최민혁은 기획 팀이 이미 준비해 둔 파일에서 아르고스 일정 차트를 돌렸다.

그는 의욕에 넘치는 기획 팀원을 돌아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요즘 들어서 이런저런 일이 많아서 회사가 좀 소란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마저 그런 분위기에 휩쓸리면 안 됩니다.”

시작은 경고로.

그다음은 앞으로 진행되는 일에 대한 개요를 먼저 제시했다.

“MP3 일정 출시가 늦어진 것은 불가피한 일입니다. 비록 한국에서는 PC 통신 통해서 MP3 파일을 구할 수 있지만, 아직 활성화된 것은 아니에요.”

신호란 것은 별것 없었다. 미국 메이저 음반사가 MP3 불법 파일에 위기감을 느껴서 대대적으로 소송 쇼를 벌이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미국 메이저 음반사는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MP3 불법 파일이 오히려 홍보 효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굳이 세세한 부분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대신 5년 후의 전 세계 판매 예측량을 예로 들어서 말했다.

“국내에서 MP3를 고작 한 달에 20~30만 대 팔아봐야, 고작 600억 매출 남짓한 시장만 나옵니다. 그렇다고 미국 MP3 시장이 또 폭증한 것도 아닙니다.”

조성돈 팀장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MP3 시장을 확신하지 못한 이유다. 이미 기획 팀은 몇 차례에 걸쳐서 조사를 진행했다.

아니, 그는 오히려 감탄했다.

‘실장님이 저돌적으로 막 밀어 붙일 때는 오히려 막아야 하나 싶었는데, 아니나 싶으면 절대로 그 길을 가지 않는다니까.’

물론 시간이 더 지난다면 MP3 시장이 활성화될 것이다.

그런데 그때는 지금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최민혁은 씩 웃었다.

“더욱이 이제 국내를 시작으로 콜린스 매출이 본격화되기 시작했습니다.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습니다. 콜린스 매각설은 또 나름 우리 회사에 유리한 측면이 많아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뭘까요?”

듣고만 있던 배종대 과장은 슬쩍 끼어들었다.

“MP3 완성도를 높이고, 다양한 사양을 추가하는 겁니다. 시장 선점과 동시에 후발 주자를 따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필요하다면 MP3 로열티 수익을 최대한 뽑아내는 겁니다.”

박상기 차장이 못마땅한 얼굴로 배종대 과장을 슬쩍 째려봤다.

최근 기획 팀 내에서도 MP3 판매 일정이 몇 개월 연기된 것 때문에 불평을 털어놓던 이 중에 대표적인 이가 배종대 과장이었다.

최민혁은 딱히 배종대 과장을 타박하지 않았다. 그는 이보다 기획 팀이 앞으로 그리는 방향성을 제대로 알기를 바랐다.

“맞습니다. 굳이 불확실한 MP3 시장에 물건을 던져서 마녀 사냥을 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최소한 우리가 먼저 시작할 때는 MP3 변화뿐만 아니라 후속 모델에 대한 방향성도 제시해야 합니다.”

조성돈 팀장이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디스플레이 타입 MP3가 그런 의도였다는 말씀이군요. 하면 아르고스 용 미니 게임을 계속 만드는 것도 그 때문입니까?”

“맞아요. 우리와 동반하는 업체가 많으면 좋겠지만, 굳이 서두를 이유는 없어요. 아르고스 게임이 돈이 된다는 것을 그들이 알도록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시장이 그렇게 클까요?”

“크지는 않을 겁니다. 설사 300만 대 시장이 열린다고 해도 돈 주고, 미니 게임을 사들이는 이들이 많지는 않을 겁니다. 하지만 당장 수익이 나지 않아서 죽어가는 업체 사정은 다릅니다.”

정확히는 앱 타임 프로그램 기반 시장을 열려는 목적이었다.

다만 최민혁은 굳이 그런 것까지 세세하게 언급하지는 않았다.

“불법 복제와 같은 부분을 말씀하시는 군요.”

“그렇죠. 국내 프로그램 업체는 불법 복제 때문에 성장하는 것도 많은 한계가 있어요. 만약 아르고스처럼 작은 이익이라도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둔다면 상황이 좀 다를 겁니다.”

“…….”

조성돈 팀장은 최근 KM 전자 중앙 연구소에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떠올렸다. 당장 돈이 되지 않은 쪽에도 투자가 이어졌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게 다 수익성과도 관련이 있었다.

“하면 강준석이 내놓은 기획안은 이미 사전에 검토하신 겁니까?”

“아뇨. 저도 막연하게 그런 방향 쪽으로 나아간다고만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 기획안을 보고 나서야 확신을 잡았을 뿐입니다.”

“시점이 좀…….”

이상하다는 말을 하던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 얼굴에 떠오른 야릇한 미소를 보자 흠칫 입을 다물고 말았다.

최민혁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기획안은 모두 강준석 팀이 내놓은 기획안을 토대로 진행되는 일입니다. 비슷한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골격은 차이가 있어요.”

“…네.”

조성돈 팀장이 입을 다물자 기획 팀원도 다들 눈치를 봤다.

딱 봐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이 왜 강준석 팀을 일방적으로 밀어주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정말 아이디어 때문인지는 아리송했다.

그들은 최근 최민혁 실장이 강준석 팀을 작정하고 밀어주는 것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최민혁이 왜 저런 태도를 보이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회의실 한쪽에 나타난 기획 팀 장기 프로젝트 현황을 보면서 꼼꼼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MP3는 어디까지나 시작에 불과할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들어가는 속 내용물이 단순히 MP3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장기 프로젝트 현황에 나와 있듯이 다양한 아이템에 적용됩니다. 단적인 예로 전원 칩은 전 모델에 적용됩니다. 그래서 콜린스 개발의 주역인 최구만 과장에게 기회를 준 겁니다. 강준석 씨가 제시한 디스플레이 타입 MP3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굳이 여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디스플레이를 통한 새로운 콘텐츠 시장을 만들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지금 진행되는 어플 프로젝트 현황과도 일치합니다.”

그는 슬쩍 고개를 돌려서 한 가지 점을 지적했다.

“그런데 굳이 우리가 이 어플 프로젝트까지 다 할 필요는 없어요. 만약 협력업체가 있다면 손을 잡으면 됩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런 업체가 없어요. 그들에게 이런 수익 시장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면 서서히 그런 콘텐츠가 늘어날 겁니다.”

“…….”

묵묵히 최민혁 설명을 듣던 기획 팀은 혀를 내두르고 굳이 질문하지 않았다. 그들은 뒤늦게야 강준석 기획안이 저 프로젝트의 핵심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했는데, 진짜잖아.’

당연히 불만이 나왔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기회를 박탈당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지가 않았다.

최민혁은 그들 얼굴에 떠오른 욕망에 방긋 웃었다.

‘그렇지, 그래야지. 공무원도 아니고, 늘 축 처진 표정은 아니었지.’

“이 부분을 명심하고, 이번 프로젝트에 최선을 다했으면 합니다. MP3 그 자체에만 집착할 필요는 없어요. 시간은 우리 편이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굳이 강준석 팀을 안산 공장에 내려 보낸 것은 경험이 너무 없어서 그 기반을 쌓도록 한 것에 뿐입니다. 성과가 보인다면 빠르게 관련 프로젝트를 진행할 것이니, 기획 팀에서도 발 빠르게 움직여 주세요.”

“…네.”

대답하는 기획 팀원들의 표정은 썩 좋지가 않았다. 그들은 지금까지 MP3 성과에 만족해 있었지만 아차 싶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래도 이제까지 그들이 조사한 바가 있기 때문에 위기감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디스플레이 타입 MP3가 과연 쉽게 될까? 하지만 실장님이 저렇게 단호하게 나갈 때는 반드시 뭔가 나왔어. 제길 아무래도 다시 확인을 해봐야겠어.’

* * *

김창호 부장은 강준석을 비롯한 신입 사원 행동 때문에 큰 불만을 느끼지 않았다. 다만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런 차에 갑자기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다짜고짜 안산 공장을 내려오자 깜짝 놀랐다.

그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몸을 사린 채 회의실에 참석했다.

회의실 안에는 이현탁 과장, 오상현 과장 두 사람을 비롯한 조성돈 팀장까지 내려와 있었다.

막 회의실에 참석한 강준석을 비롯한 신입 사원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바짝 얼어서 회의실 한구석에 조용히 대기했다.

최민혁은 피로에 절어 있는 강준석 팀원들을 힐끗 살폈다.

그는 그들에게 가벼운 안부 인사를 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했다.

다들 최민혁 기획실장의 압박에 눌려서 제대로 얼굴조차 들지 못했다.

“공장 생활은 어때요?”

그래도 강준석만큼은 최민혁 실장의 질문에 대답했다.

“다른 분의 도움 덕분에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공장에서 직접 일해본 소감은 어때요?”

“…그게 제가 생각한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최민혁은 아직 안색이 굳어 있는 강준석을 상대로 계속 질문했다.

“어떤 점에서요?”

“단순히 제품을 막연하게 만든다는 생각과는 달리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너무 많았습니다. 당장 눈에 걸리는 것은 불량품 관리인데, 이게 생각한 것과는 너무 달랐습니다. 심지어 부품 하나 바꾼 것만으로 불량이 발생한 것은 생소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본인이 제출한 기획안에도 문제가 있겠네요?”

긴장이 제법 풀린 강준석은 최민혁 질문에도 또박또박 말했다.

“아직 어떤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다는 것은 확인했습니다. 검토할 것이 너무 많아서 어디서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최민혁은 흥미로운 대답에 방긋 웃었다.

“설마 포기하는 겁니까?”

조용히 대답하던 강준석은 ‘포기’란 말에 태도를 완전히 바꾸었다.

“물론 우리 팀 기획안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기획안이 절대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가볼 자신은 있어요?”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 이번 일을 반드시 끝내고 싶습니다!”

다부진 포부.

일반적으로 기가 죽는 신입 사원과는 전혀 달랐다. 비록 경험이 없어서 아직 실력이 떨어진다고 해도 의지만큼은 그 어떤 이들에 비해서 부족하지 않았다.

회의에 참석한 이들은 놀란 시선으로 강준석을 힐끗 쳐다보았다.

신입 사원이 최민혁 기획 실장을 상대로 저렇게 따박따박 말하는 경우는 처음 봤기 때문이다.

심지어 다른 신입 동기가 강준석을 조심스럽게 말리기도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오히려 만족스러웠다. 그가 굳이 강준석 팀을 모두 안산 공장에 보내서 콜린스 생산 경험을 쌓도록 한 이유가 너무 허황한 기획에만 사로잡히지 않도록 했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기획안을 포기하지 않을 강인한 의지다.

그 기반에는 경험이 없다면 실패할 확률이 높았다.

최민혁은 굳이 강준석 팀이 그런 시행착오를 경험하도록 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이왕이면 강준석 팀이 KM 전자의 일약 다크호스가 되기를 바랐다. 그게 자신의 인지도를 줄이는 방법이니까.

‘이제는 재벌 3세가 조용히 살고 싶다고 말해봐야 믿는 놈은 세상에 아무도 없겠지만 그게 내 원래 바람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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