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6.
처음에는 요령이 없어서 버벅거리던 이들이 조금씩 양산 라인에 적응했다.
특히 흥미로운 친구는 바로 강준석이다. 그는 다른 팀원이 힘들어서 포기하려고 할 때 옆에서 거들어주면서 끝까지 그들을 놓지 않았다.
덕분에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이번 단기 트레이닝을 마쳤다.
김창호 부장은 결국 망설이다가 다시 최구만 과장을 찾아가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최 과장, 부탁 좀 하자. 지금은 원숭이 손이라도 빌려야 할 상황이야.”
“그건 안 됩니다. 지금 과정은 강준석 팀이 생산 경험을 쌓을 수 있도록만 하는 겁니다.”
“정말 안 될까?”
“조금만 참아보세요. 신입 사원 교육이 끝나면 생산 라인에 바로 투입될 겁니다. 아마 그때쯤이면 숨통이 트일 겁니다.”
김창호 부장도 깜짝 놀랐다.
“321명 전원을 다 공장에 내려 보내는 거야?”
“네. 지금 KM 전자 상황이 정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느 정도 생산 라인이 안정화될 때까지는 그 인력을 투입할 겁니다.”
“하지만 다른 부서에 지원한 친구가 많을 텐데, 본사 쪽에 지원한 친구를 생산 라인에 보내면 버티지 못할 거야.”
“최 실장님도 그 정도는 다 고려할 겁니다.”
“그래? 그건 좀 애매하겠어.”
김창호 부장도 KM 전자 인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잘 알았다. 그 역시 선후배를 통해서 계속 채용 문제로 연락을 많이 받았다.
그저 지금은 기다려 달라는 이야기만 했다.
따라서 설사 인사 팀, 홍보 팀을 원하는 친구들이 설사 공장에 내려와서 일하게 된다고 해도 쉽게 포기하지는 못할 것이다.
‘설마 최 실장님이 이런 의도로 321명을 다 끌어안은 것은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도 최민혁 실장이라면 당연히 그럴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그는 결국 돌아가는 분위기를 파악하자 아쉬운 표정을 한 채 결국 입맛을 다셨다. 다른 신입 사원이 얼마나 잘 적응할지 모르겠던 것이었다.
결국 다른 대안이 없자 이번에는 최구만 과장이 아직도 집중하고 있는 실험대 위에 놓인 테스트 베드를 쳐다보았다.
최구만 과장은 며칠 동안 문제가 된 버그에 대한 힌트에 대해서 감을 잡아서인지 김창호 부장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타이밍이었구나.’
신기한 일이지만 전원 칩의 타이밍 딜레이가 문제가 되었다.
그 대안은 칩 내부적으로 타이밍을 조절하는 기능을 넣으면 된다.
그 확인만 하면 완성이었다.
김창호 부장은 그 모습이 신기했다.
“최 과장, 하는 일은 잘돼가?”
최구만 과장은 근 한 달 가까이 자신을 괴롭힌 문제를 푼 덕분에 성취감을 느꼈다. 아날로그 설계 업무까지 한 이후로 처음 얻은 즐거움이었다.
“다행히 잘 해결한 것 같습니다.”
“그래? 정확히 뭔데?”
“그게 이 칩에 들어가는 전원 신호는 크게 몇 가지가 있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 전원 신호가 여러 개가 있다니?”
최구만 과장은 김창호 부장이 자신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자 자리에서 일어나서 커피를 홀짝였다.
그 역시 콜린스 대박 덕분에 이제 꽃길만 걸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최민혁이 유럽에 가 있는 동안에 피똥을 샀다.
전혀 모르는 아날로그 칩 기술을 배우고, MP3 전원 칩을 설계를 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주옥 과장이다. 그는 불만도 많고, 늘 비관적이기는 하지만 실력 하나만큼은 정말 최고라 제대로 배운 것이다.
그렇다고 칩 샘플 하나 제작하는데, 수천만 원, 많게는 억 단위가 깨지는 칩 설계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마치 좀비와도 같은 몰골이 그 증거였다.
그래도 이제 한고비 넘긴 것에 기분이 좋았다.
자기만족에 빠진 최구만 과장 모습에 김창호 부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이게 TV 쪽하고는 전혀 다른가 봐.”
“네. 아주 다릅니다.”
“그 칩이 그렇게 중요해?”
최구만 과장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도 공장 쪽에 왜 굳이 MP3에 대한 것을 알리지 않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설명하려면 한도 끝도 없었다. 보안 문제 때문에 중요한 기술을 더 알리기도 곤란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최민혁 실장님이 직접 컨트롤하는 일입니다.”
“후유, 난 잘 모르겠어.”
“…….”
그도 김창호 부장의 말에 딱히 반박하지는 못했다. 최민혁 실장이 도대체 왜 이러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경험으로 최민혁 실장이 이러는 이유가 있을 것으로 추측했다.
‘어차피 며칠 안에 최 실장님이 안산 공장에 내려온다고 했으니, 그때 가면 알 수가 있겠지.’
* * *
최민혁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관련자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들은 지시를 받아놓고도 과연 이 일이 잘될까 생각했다.
그런데 아닌 이도 있었는데, 바로 이현탁 과장이었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MP3 개발에서 PC 애플리케이션을 주로 개발했는데, 최민혁에게 계속 지시를 받으면서 그 업무 영역을 넓혔다.
푸념은 덤이다.
“도대체 게임 프로그래밍까지 개발하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당연히 PC나 윈도우용 게임이 아니다. 지뢰 찾기와 같이 작은 게임이다. 동작 환경은 핸드폰 화면 정도 수준이었다.
이미 오성 전자에서 이와 유사한 업무를 해본 이현탁 과장은 외주를 줘서 모두 10가지를 개발했다. 미니 테트리스와 같이 아기자기한 게임이었다.
하지만 막상 간단한 것 같아도 업체 관리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나마 핸드폰 개발 경험이 있어서 아는 업체였기에 그럭저럭 결과를 이끌어냈다.
자신이 받은 인센티브가 억대를 넘는다는 것을 알았지만, 막상 업무를 진행하니 그 금액이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니까.’
오상현 과장이 옆에서 이 일을 도왔는데, MP3 OS 자체에서 테스트할 수 있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현탁 과장은 이 일을 진행하면서도 고개를 갸웃했다.
“다양한 업체를 관리해서 재미있기는 한데, 도대체 왜 이 일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휴대폰 개발이라도 하려는 것은 아니겠죠?”
“아마 이식성 때문이 아닐까요?”
“설마 MP3에서 이 게임을 돌린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죠? 아니, 화면이 없는데, 어떻게 그게 가능하다는 소리죠?”
“핸드폰 LCD를 추가하면 어느 정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MP3에 이 게임을 적용하는 것도 문제지만 키가 없을 텐데요?”
“그게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오상현 과장도 일을 진행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그도 이 일 덕분에 얻은 것은 있다.
바로 커리어였다. MP3 프로그램 자체가 이식성이 좋도록 개발할 수밖에 없었다.
MP3와 게임 프로그램이 서로 같은 환경 아래에서 돌도록 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MP3 OS를 자체 개발해야 했다. 정확히는 과거 자신이 주로 애용하던 리얼 타임 리눅스를 기반으로 사용하던 기능만을 뽑아서 자체 OS를 만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성 전자에서 쭉 해왔던 일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 작업 환경을 만들어 뒀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은 이 일이 진행할 수 있도록 개발 비용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현탁 과장은 오상현 과장과는 입장이 전혀 달랐다.
“게임 하나당 들어가는 외주 비용만 해도 작게는 2억 많게는 5억이 넘습니다. 괜히 이러다가 이 일을 다 제가 책임지는 것이 아닌가 싶네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최민혁 실장이 이들은 찾은 것은 두 사람의 대화가 한창 절정에 이르렀을 때다.
그는 PC 모니터 에뮬레이터에 떠 있는 게임 결과에 꽤 만족했다.
“좋네요. 이 방식은 다른 응용 프로그램에도 적용되는 거죠?”
이현탁 과장은 괜히 최민혁 눈치를 봤다.
“10가지 프로그램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적용되기 때문에 호환성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MP3 OS에서 동작하는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까지 개발한 MP3 타입에는 굳이 필요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모델은 상황이 좀 다를 겁니다.”
“네?”
최민혁은 두 사람이 아직도 기획 방향을 잘 이해 못 한 것 같자 기획 팀에서 만든 MP3 개발에 첨부된 기획안을 보여주었다.
그 기획안에는 MP3 OS와 응용 프로그램이 나아갈 방향이 쫙 나와 있었다.
모두 10년에 걸친 총 장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MP3를 시작으로 해서 핸드폰, 웹패드와 같은 개념이 추가되어 있었다.
기획실에서 회의할 때는 너무 장황해서 MP3를 제외하고는 다들 저 일정이 가능할까 의구심이 나온 플랜이었다.
이현탁 과장도 이미 기획 팀 회의에서 들은 내용이지만 아직 실감하지는 못했다. 핸드폰, 웹패드에서 동작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가장 중요한 것은 MP3를 포함해서 시장 자체가 아예 없었다.
최민혁은 스마트폰 개념이 두루뭉술하게 핸드폰 계획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보면서 의아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두 사람에게 피식 웃고 말았다.
“기획안에 나와 있는 대로 진행이 될 겁니다. 그러니 의심을 하지 마세요. 두 분은 이 일정에 맞추어서 필요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됩니다. 돈은 필요하면 요청만 하세요. 100억이 되었던, 1,000억이 되었던 지불할 테니까.”
“…….”
두 사람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최민혁이 던진 말이 장난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실제로 지금 KM 전자 내에 쌓여 있는 돈이 현금 유보금이 아니라 현금만 5천억이 넘었던 것이다.
“제 말이 아직도 장난 같습니까?”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매사에 까칠한 이현탁 과장은 선뜻 최민혁 의견에 공감하지 못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다가 실효성이 없으면 드랍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자신이 진행하는 외주 프로그램이 딱 그 모양이었다.
그런데 최민혁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반드시 성공한다고 확신했다. 그건 정말 그로서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민혁은 이현탁 과장 눈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읽자 의자를 가져와서 두 사람 앞에 앉은 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OS 시장을 장악한 것은 MS라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따라서 PC 시장에서 MS를 이기기는 어렵습니다. 굳이 그럴 시도를 할 생각도 없고요.”
“아니, 그러면 제가 진행하는 일은 의미가 없다는 말입니까?
“동작 환경이 MP3란 점을 잊었나 보군요. 그것도 자체 OS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돌리기 위해서는 버튼과 같은 입력 수단이 있어야 합니다.”
“그거야 넣으면 됩니다.”
“그 말씀은 다른 MP3 모델도 개발한다는 말씀이군요.”
“정확히는 그게 더 핵심입니다. MP3도 어떻게 보면 징검다리에 불과하니까. 그래서 호환성이 높도록 OS를 개발해 달라고 한 겁니다.”
“…그게 그런 의미였군요.”
오상현 과장도 그제야 화들짝 놀랐다. 최민혁이 이제까지 하던 개발 방향이 그냥 단순히 한 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제가 이전에 한 개발 방향은 그냥 한 말이 아닙니다. 이 길로 가볼까 그런 의도로 한 말이 아니에요. 반듯이 이 길로 가겠다는 뜻입니다. 이미 지금 개발하고 있는 MP3에 동작 가능한 게임은 그 흐름을 따른 겁니다.”
하지만 매사에 부정적인 이현탁 과장은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
“혹시 터치를 생각하시는 겁니까?”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주로 사용되는 TN 타입만 해도 화면을 손이 스치기만 해도 물결무늬가 생깁니다. 과연 상업성이 있을까요?”
최민혁도 순순히 인정했다.
“기존 TN 타입 LCD는 문제가 많아서 곤란하죠. 다른 대안을 선택해야 할 겁니다. 그래서 몇 가지 방안을 염두에 뒀습니다.”
“네?”
이현탁 과장은 거침없는 최민혁 주장에 화들짝 놀랐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있는지는 상상도 못 했다.
“자자, 자세한 이야기를 할 시기가 있을 겁니다. 지금은 결과만 우선 더 확인하죠.”
두 사람이 보여준 성과는 꽤 만족스러웠다.
비록 MP3에 디스플레이가 없어서 개발이 쉽지 않았지만, 에뮬레이터를 이용해서 어느 정도 결과를 내놓았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다소 아쉬운 점을 많이 느꼈지만, 굳이 더 욕심내지는 않았다. 지금 이 시기에 나올 수 있는 최대한의 결과였다.
“이 정도면 충분합니다. 자 두 분도 일어납시다. 가서 할 이야기가 있으니까.”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