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5.
정확히는 차라리 최민혁이 뇌물을 부리고 다녔으면 했다. 이건 증거만 잡아내면 최민혁을 감방에 보낼 수 있는 절호의 방법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이런 문제만큼은 철저할 정도로 틈을 보이지 않았다.
“그랬으면 이렇게 문제를 복잡하게 끌 필요가 없는데, 그런 일은 없습니다. 다만 남부지검 증권 수사 팀이 내사를 시작한 이후에 갑자기 태도를 바꾸었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골치가 아픈 최문경 부회장은 이마를 양손으로 잡았다. 이번 일은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또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긴장했다.
어설프게 최민혁을 건드렸다가는 반드시 보복을 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로서도 박두영 부장검사가 흘린 정보 때문에 남부지검 증권 수사 팀이 이 수사를 접었다는 것까지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증권감독원조차 검찰을 통해서 얻은 정보 때문에 크게 당황했다.
그들도 뒤늦게야 KM 전자 주가를 둘러싸고 일어난 이변의 원인에 대해서 안 것이었다.
심지어 왜 외국인 투자자가 KM 전자에 유독 미쳐서 발광했는지도 말이다.
갑자기 한국 증시에 들어온 16억 달러 때문에 한국 환율과 증시가 요동친 일의 원인이 드디어 밝혀졌다.
결국 KM 전자 주가 폭등은 정략 결혼설 때문이 아니라 KM 전자 가치 때문에 일어난 일이라는 것이 뒤늦게 드러난 셈이다.
심지어 벨린 투자가 전체 물량을 블록딜로 처리하지 않고, 장내에 주식을 매각해서 이렇게 야단법석을 떤 이유가 해외 투자자와 최민혁 실장의 불화 때문이라는 것도 뒤늦게 파악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 정보를 최문경 부회장 측에 알리지 않았다. 이 정보를 잘만 이용하면 재미를 볼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KM 전자 주가는 올라도 너무 많이 올랐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KM 전자 주식은 사들이기도 했다.
그 내막을 잘 모르는 최문경 부회장은 그저 속이 탈 뿐이었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이번 일에 관해서는 조사를 해봐.”
“…알겠습니다.”
* * *
최근 KM 전자 주가 폭등에 대해서는 많은 말이 있었다.
왜 증권감독원이나 검찰에서 KM 전자를 수사하지 않는가에 대한 의문이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검찰에서 뒤늦게 이번 사건에 대해서 발표했다는 것이다.
[KM 전자 주가는 주가조작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딱 이 한마디였다.
당연히 반발한 이들도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검찰도 넌지시 이번 일의 어려운 부분에 대해서 한계를 토로했다.
[증권가에서 차명계좌를 이용한 주가조작이 끊이지 않고 있다. 증권회사는 특히 과도한 약정경쟁을 지속해서 불공정거래행위를 일으킨다. 문제는 이를 원천 봉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증권회사의 시세조종 행위는 이게 정말 불법인지, 아니면 회사 가치가 그만큼 높아서 합법적인 투자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웃기는 사실은 여기에 대해 답변을 해준 사람은 오히려 금융감독원 실무진 지인으로, 그는 익명으로 언론에서 정보를 흘렸다는 것이다.
[KM 전자 주식을 매입한 외국인 투자자는 주가조작 행위 때문이 아니라 KM 전자 미래가치를 보고 투자한 셈입니다. 과거 KM 전자 주식 거래량이 없었던 시점은 오히려 주식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고, 18만 원인 지금에 와서야 거래가 되는 이유는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여론 역시 여기에 손을 들어주었다.
[결국, 정략결혼설 때문에 주가가 폭등한 것이 아니라 KM 전자 가치가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그랬다는 이야기구나.]
[하긴 무궁화 위성 솔루션 원천 기술권자가 KM 전자란 소리도 있잖아. 오큘러스 지분 매각해서 수천억을 벌었다고 하던데, 그게 주가에 반영되었을 수도 있어.]
실제로 이 글에 KM 전자에 대해서 제법 아는 이들이 살을 붙였다.
[KM 전자는 다양한 원천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위성 솔루션에 적용된 기술도 예외가 아니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지금 KM 전자 주가도 저평가된 것에 불과하다.]
뒤늦게야 KM 전자 진짜 가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다만 드러난 것은 위성 기술과 관련된 일부 정보뿐이라서 나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이러니 KM 전자에 대한 온갖 음모론만 더 기승을 부릴 뿐이었다.
최민혁은 자신이 그린 그림대로 흘러가는 것이 만족스럽기만 했다.
“좋네요.”
조성돈 팀장은 KM 전자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온갖 소문 때문에 최민혁 눈치만 봤다.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중요한 것은 회사 가치이니까. 회사 매출이 모든 것을 답해줄 겁니다. 참, 콜린스 상황은 요즘 어때요?”
“일본 측에서 추가 주문이 들어왔고, 월마트 측 반응이 이전과는 달라졌습니다.”
“KM 전자 대주주 때문인가요?”
“그건 확실치가 않습니다만 아무래도 이번 주가 폭등 때문에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 시선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이제까지 듣보잡 KM 전자가 지금은 들어본 적은 있는 그 회사로 이미지가 바뀌었다.
즉 KM 전자의 브랜드가치가 커지면서 미국 분위기도 변곡점을 넘어섰다.
월마트도 미국 수요를 이전처럼 소극적으로 대응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도 이 문제만큼은 진지하게 생각했다.
“안산 공장 쪽을 한번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소형 TV 선행 개발 팀 김창호 부장은 어수선한 회사 분위기를 썩 좋아할 수 없었다. 그 역시 사내에 카더라 이야기를 많이 들었지만 정작 그 출처를 확인하지는 못했다.
더욱이 그는 안선종 팀장 일 이후로 마음이 편치가 않았다. 어수선한 노조가 걱정스러웠다. 과거 최민혁 실장이 보인 행보를 본다면 노조와 충돌할 때 최민혁 실장이 보일 행보는 뻔했다.
대규모 구조조정.
그런 차에 갑자기 터져 나온 DL 화재 이슈는 충격적이었다.
“설마 이 일도 최 실장님 솜씨라는 거야?”
“최훈열 전무의 배후가 DL 그룹 김용만 전무라는 것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결국, 김상구 회장이 지난 사태를 만든 최종 보스 아닙니까. 거기에 대한 보복이란 설이 파다합니다.”
“아닐 거야. 아무리 최 실장님이라고 해도 설마 DL 그룹을 상대로 싸우지는 않을 거야.”
“그건 모르는 이야기입니다. 지금 검찰에서 KM 전자를 내사했다가 접었다는 소리가 파다합니다. 그것 때문에 언론도 난리가 났습니다.”
“후유, 하긴.”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KM 전자.
김창호 부장은 이게 마냥 좋은 일인지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물론 최민혁 실장과 DL 그룹 간의 갈등은 밝혀진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저 알음알음 음모론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시할 만한 일도 아니었다.
“전 조상도 연구소장, 최훈열 전무, 김용만 전무가 골프 치러 자주 어울려 다닌 사실은 이미 알려진 사실입니다.”
“흠.”
전 조상도 연구소장에게 시달렸던 김창호 부장은 새삼 지난 기억을 떠올렸다. 이미 지난 일이라서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다시 돌이켜 보고서야 그 일이 가볍지가 않다는 걸 느꼈다.
당시에는 최민혁 실장이 DL 그룹에 대응할 방법이 없었다.
‘하긴 지금은 좀 다르구나.’
천문학적인 재산을 소유한 최민혁 실장이라면 DL 그룹을 꼭 상대하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김현탁 사장이 구속된 것도 그저 흔하게 일어난 일은 결코 아니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DL 그룹을 상대로 보복전을 펼치는 중이라면 안산 공장에도 칼날을 휘두를 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안산 공장 분위기는 이번 일 때문에 과거보다 더 흉흉했다.
최민혁에게 반감을 보인 이들은 다들 입을 다문 채 침묵했다.
그들 중에는 최문경 부회장 쪽과 만난 이들이 있었는데, 다들 몸을 사렸다.
대신에 다른 불만을 토로했다.
바로 콜린스와 관련된 몇 가지 사내 정책에 대해서 불만을 토로했다.
“정말 힘들어 죽겠습니다. 도대체 신규 인원은 언제 충원하는 겁니까?!”
이 불만은 이전과는 달리 단순히 불만에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쪽에 수출 물량이 늘어나면서 주문 물량은 누적되고 누적되어서 공장 인력도 다들 지쳐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불만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바로 최병연 팀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진 것이었다.
최병연 팀은 최민혁 실장 지시를 받아서 안산 공장이 아니라 외부에서 독단적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 덕분에 안산 공장에서는 이들이 뭘 하는지 어림짐작만 할 뿐이다.
콜린스를 주도한 이들이 최병연 팀인데, 정작 이들은 콜린스에서 손을 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불만이 표면화된 것은 MP3 프로젝트에서 서서히 과시적인 결과가 나온 이후다.
최병연 팀도 콜린스 양산을 돕기 위해서 안산 공장에 자주 내려왔는데, 어느 순간부터 발길을 뚝 끊어버린 것이었다.
덕분에 콜린스 특성상 양산 공정에서 많은 문제가 생겨났는데, 공장 쪽은 최병연 팀의 도움을 얻지 못하게 된 것이었다.
김창호 부장도 최병연 팀의 소극적인 태도를 좋아할 수가 없었다.
[최 팀장, 그 정말 너무한 것 아닙니까. 콜린스 이거 다 당신이 개발한 것 아닙니까. 지금 주문이 밀려서 우리 공장 쪽은 다 죽을 지경인데, 여유가 되면 내려와서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근 콜린스 안정화가 진행된 후에 부품도 제법 바뀌었는데, 그 와중에 불량이 다시 늘어났다.
뒤늦게 사실을 안 최병연 팀장도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후유, 죄송합니다.]
사실 대기업이라면 인적 자원이 풍부해서 그럴 필요가 없다.
사람이 부족한 중견 기업은 바쁠 때 가용 인원이 도와주는 경우가 있다.
지금 상황이 그랬다.
하지만 MP3 양산성에 대한 검토를 비밀리에 진행하는 최병연 팀장은 최근 최민혁 실장의 추가 수정 요구에 그럴 수가 없었다.
단순히 MP3 디자인뿐만 아니라 칩 내부도 계속 손을 보기 때문이다.
[저희도 정신이 없습니다.]
[도대체 뭐가 바쁘다고 그럽니까. 지금 콜린스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어요!]
MP3 상황을 밝힐 수 없는 최병연 팀장도 이 상황이 답답하기만 했다.
[저도 압니다.]
[정말 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까지 가까스로 누적 30만 대 공급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일본 쪽에 추가로 5만 대를 납품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것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35만 대면 총 누적 매출 1조 4천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올해 KM 전자 예상 매출을 또다시 갱신하고 있었다.
MP3 개발에 지쳐 있는 최병연 팀장은 혀를 찼다.
[아, 일본 말이군요.]
[이봐요, 최 팀장, 바쁜 것은 알지만, 정신 좀 차립시다!]
김창호 부장이 최병연 팀장 입장을 몰라서 소리치는 것이 아니다. 그 역시 최병연 팀장이 신제품 개발하고 있다는 것은 짐작했다. 그래도 이렇게 구박하지 않으면 최병연 팀장은 아예 눈도 깜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병연 팀장 역시 지친 목소리로 바로 반박하지 못했다. 동남아 쪽으로 물량이 늘어난 후에 각국에서 추가 주문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역시 월마트와 정식 계약이다. 초기 물량을 받아간 후에 이를 접한 미국 소비자 반응이 폭발했기 때문이다.
만약 월마트와 정식으로 계약이 체결된다면 그 물량이 무려 50만 대였다. 단일 모델로는 사상 최고의 계약이었다.
이전처럼 말로만 하는 계약이 아니었다.
해외 영업 팀도 KM 전자 주가 폭등 후에 월마트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것을 알자 부랴부랴 공장에 납품일에 대해서 심각하게 다루었다.
심지어 지난달에는 해외 영업 팀이 전원 공장에 내려와서 이 문제를 다루었다.
기존 35만 대 매출을 배제하고라도 단일 계약 단순 매출로만 무려 2조억 원이다.
최병연 팀장은 머리를 굴리다가 슬쩍 오리발을 내밀었다.
[최구만 과장은 공장에 자주 내려가지 않습니까. 최 과장에게 문의하면 답을 해줄 겁니다.]
[아, 그 최구만 과장, 말 잘했습니다. 아니 도대체 그 친구는 자신이 한 프로젝트를 나 몰라라 내버려 두고, 한국대를 계속 돌아다니는 건 뭡니까. TV 설계 엔지니어가 무슨 아날로그 설계를 공부합니까. 그런데 최근 아날로그 칩 설계까지 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입니까?]
[그게 맞습니다.]
[허, 정말 영문을 모르겠어요.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겁니까?]
[실장님 지시에 따라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끙.]
의문은 많았다.
공장 쪽은 아직도 최민혁의 의도를 잘 모르고 있었다.
정확히는 안산 공장은 콜린스에 대응하는 것만으로 이미 한계를 넘은 상황이었다. MP3 정보를 알릴 상황이 아니었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TV 사업부와 관련해서 괜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콜린스 매각설, 정략결혼설, 여기에 MP3가 같이 엮이면 안산 공장은 혼란의 소용돌이가 될 수 있었다.
내막을 잘 모르는 김창호 부장은 끔찍한 노동에 질려서 불만을 토로했다.
[제가 최 실장님에게 불만이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아니 사람이 없으면 새로운 신규 인원을 충원해야 할 것 아닙니까. 도대체 왜 안산 공장은 나 몰라라 하는 겁니까.]
최병연 팀장도 당황스러웠다. 그 역시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곤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