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24화 (324/1,021)

#324.

이번 일의 배후가 최문경 부회장이라는 것을 짐작한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어이가 없어서 신음만 낸 채 대답하지 않았다. 조용히 서 있는 박두영 부장검사를 보고 박두영 부장검사가 답을 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이 자리에서 대답하란 말입니까?”

“그건 아니지. 최민혁 실장 부탁인데, 이준모 부장검사 쪽에도 한번 이야기를 해봐.”

“하, 정말 대단한 분이네요.”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고심했다. 그런데 그 일도 쉽지만은 않았다.

고무신을 거꾸로 신는 것이니까.

‘어째 최민혁 실장을 아무리 뒤져봐도 횡령이나 배임 관련해서 나오는 것이 전혀 없어서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어.

* * *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직장 생활도 좀 하다가 사법 고시에 합격해서 검사가 된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경제 분야만큼은 자신 있었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자료를 수십 차례나 분석하면서 자신이 알았다고 생각한 밑바닥에는 뭔가 더 숨겨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게 다가 아니야.’

그는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서 시간이 갈수록 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신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을 보고서도 그 깊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이걸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이 다 만들었다.

그럼에도 이 결과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

‘인간 맞아?’

그가 더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특허풀이다.

최민혁 실장이 만들어놓은 특허풀은 날실과 시실처럼 절묘하게 어우러져 있어서 도저히 빠져 들어갈 틈 자체가 없었다.

그렇게 본다면 무궁화 위성은 이 특허풀 가치를 끌어올리는 사전 정지 작업이나 마찬가지다.

‘세상에 누가 상상이 했을까. 오큘러스 지분 매각을 통해서 2,500억 대박을 터뜨렸다고만 생각했는데, 아니었어. 이것도 그저 큰 시나리오 중의 하나일 뿐이야.’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이 위성 사업을 조사하면서 최민혁 실장이 뭔가 불법적인 일을 저질렀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철저하게 조사했다.

그런데 드러난 것만 봐서는 최민혁 실장 행보를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자료 일부를 토대로 해야 대충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도대체 KM 전자의 가치는 어느 정도일까?’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상식을 초월한 최민혁 실장의 행보에 경악했다. 그는 결국 자료 조사가 끝나자 이준모 부장검사에게 보고했다.

“어떻습니까?”

“…이건 좀 놀랍네.”

어지간한 일에 감정을 잘 보이지 않던 이준모 부장검사도 KM 전자 주가 폭등 밑에 놓여 있는 정보를 알고 나서는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그는 물끄러미 보고서를 보고 또 보기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이것은 주가 조작 의미 따위가 아니었다.

검찰에서 왈가왈부할 문제도 아니었다.

“가만 혹시 이 정보는 아는 사람이 누구누구였다고 했지?”

“KM 전자 핵심 인력, 원천 기술을 매각한 시즈벨 쪽일 겁니다.”

“다른 이들은? 최문경 부회장이나 최용욱 회장 쪽은 몰라?”

“다른 이들은 몰라도 최문경 부회장 일파는 아닐 겁니다. 이런 정보를 알았다면 이런 식으로 최민혁 실장에게 수작을 부리지 못했을 테니까요. 다만 최민혁 실장을 인정한 최용욱 회장은 다를 것으로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는 알고 있을 겁니다.”

“가만 그리고 보니, 20살짜리 재벌 3세가 KM 그룹 경영 승계 후보자라는 이야기 때문에 언론에서 한동안 난리를 쳤는데, 이게 다 이유가 있었어.”

“아마 그럴 겁니다.”

“그러면 최문경 부회장은?”

“구속된 최훈열 전무가 최민혁 실장과 사이가 아주 안 좋다고 합니다.”

“그런가?”

이준모 부장검사도 이번 사건이 KM 전자 내부의 경영권 분쟁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고 나서는 다시 최민혁 실장의 보고서를 살폈다.

그도 최민혁 실장의 악명은 제법 들었지만 새삼 그 내면을 알고 나서는 탄식하고 말았다.

“진짜 대단하네. 도대체 이런 일을 어떻게 벌일 수 있는 걸까?”

“그 부분은 저도 최대한 알아봤지만 알 수가 없었습니다. 최민혁 실장의 진정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믿기지 않네. 이러니 증권감독원과 금감원에서도 그렇게 호들갑을 떨었나 보네.”

눈치를 보던 박상희 부부장검사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최민혁 실장이 검찰 내에 자기 인맥을 쌓고 싶다고 하던데, 혹시 관심이 있습니까?”

“나? 관심 없어!”

“에이, 뇌물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지금 봐서는 이 정보만 알아도 돈이 됩니다. 최민혁 실장이 가지고 있는 정보는 어마어마할 겁니다. 그렇다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한 방법 아닐까요?”

“당장은 모르겠어.”

“그런데 제 선배인 박두영 부장검사님 아시죠? 그분도 KM 전자 주식으로 수십억을 벌었다고 합니다.”

“수십 억이라…….”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당혹스러워하는 이준모 부장검사를 쿡 찔렀다.

“이건 정보를 얻은 후에 얻은 이익입니다. 솔직히 그걸 누가 알겠습니까?”

“글쎄.”

모호한 태도.

하지만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가 아는 이준모 부장검사 성격에 저 정도는 이미 허락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면 이 차장검사님에게도 잘 좀 이야기를 해보십시오. 아마 김상무 지검장님도 이번 제안에 꽤 관심 있을 겁니다. 어차피 최문경 부회장 쪽과 거리를 두려면 동반자가 있어야 합니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한번 이야기는 해보겠네.”

이준모 부장검사도 보고서를 부채처럼 이리저리 흔드는 박상희 부부장검사 태도를 구박하지는 않았다. 그의 제안이 마냥 틀린 것은 아니었다.

특히 박두영 부장검사가 얼마나 조심스럽게 행동하는지 안다. 그런 그가 문제가 될 일을 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주식으로 돈을 번 것은 실로 매력적인 일이었다.

‘수십억이라…….’

* * *

이준모 부장검사는 남부지검 증권 수사팀을 이끄는 실세였다. 그는 이정준 차장검사에게도 인정을 받은 터라 보고는 어렵지가 않았다.

이정준 차장검사도 최민혁 실장이 내놓은 자료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즉시 김상무 남부지검장을 찾아가서 보고했다.

이 자리에는 이준모 부장검사가 나서서 자세한 상황을 브리핑했다.

KM 전자가 가지고 있는 막강한 힘.

금력이 가지는 마력은 결코 간단한 힘이 아니었다.

김상무 지검장으로서 굳이 최문경 부회장 제안을 받을 이유는 없었다.

다만 지금까지 최문경 부회장과 좋은 관계를 유지한 터라 이번 사건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기로 했다.

즉 실무진 선에서 이 일을 알아서 다 처리하기로 한 것이었다.

“난 모르는 일이야.”

“제 선에서 다 처리하겠습니다.”

남부지검은 놀랍게도 최문경 부회장 택시에서 최민혁 실장 여객기로 노선을 갈아탄 것이었다.

남부지검 변화를 알지 못한 민상수 비서실 2팀장은 이번 일은 기회라고 확신했다. 잘 만하면 주가 조작 혐의로 최민혁 실장을 법정에 세울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소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를 주기적으로 방문해서 이번 주가 조작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오늘도 마찬가지다.

증권 수사 팀에서 정식으로 수사하지 않는 것을 두고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이전 만남까지는 그렇게 살갑게 대하던 박상희 부부장검사 얼굴이 냉랭하게 바뀌었다.

“무슨 의도로 방문했는지는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우리 검찰이 아무런 죄도 없는 사람을 수사할 수는 없습니다.”

“네?”

크게 당황한 민상수 팀장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었다.

“같은 말 두 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죄 없는 사람을 잘못 고소하면 무고죄로 오히려 고소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이게 죄가 안 됩니까? 뻔히 보이는 주가 조작 아닙니까?!”

“이번에 KM 전자 주식을 산 대부분은 국내 투자자가 아니라 외국인 투자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오히려 주식 매입을 늘리고 있어요.”

“아니,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정략결혼설을 매개로 주가를 폭등시킨 것이 문제가 아닙니까?!”

“…정략결혼설과 주가 조작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입니까? 제가 최민혁 실장을 불러 데이트를 이용해서 주작 조작했다고 심문이라도 하란 말입니까? 그러면 최민혁 실장 변호사가 비웃을 겁니다!”

“아니, 제 말은 그런 의도가 아니라…….”

“제보해 준 것은 고맙습니다. 하지만 수사는 우리가 알아서 할 일입니다. 그러니 오늘은 그만 가주시기 바랍니다.”

“자꾸 이러면 언론에 제보를…….”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벌떡 일어나서 양손으로 책상을 쾅 소리가 나도록 쳤다. 검사실에 있던 수사관이 깜짝 놀라서 쳐다봤다.

“지금 현직 검사를 협박하는 겁니까?!”

“그, 그런 말이 아니지 않습니까. 제 말은 주가를 조작한 세력을…….”

“아니, 그게 주가 조작인지 아닌지 당신이 어떻게 압니까? 정 억울하면 당장 언론에 제보하세요. 아니 제가 기자 불러줄까요?!”

상상을 못 한 반응에 크게 당황한 민상수 부장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그는 울상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도, 도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

“원칙대로 한 겁니다.”

박상희 부부장검사는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가는 이들 중에는 그의 상급자도 있었다. 돌아가는 내막을 잘 모르는 이들은 박상희 부부장검사를 힐끗 쳐다보기만 했다.

보다 못한 이상희 부부장검사는 냉정하게 일축했다.

“여보세요. KM 전자 내부 문제 때문에 이 난리를 치는 것은 알겠는데, 제대로 조사를 해보고 나서 일을 진행하세요!”

“…….”

애매한 이야기에 가슴이 답답한 민상수 부장은 화가 났다. 그런데 그도 사무실을 오가는 시선이 차갑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제야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말을 자신이 직접 경험해서 황당했다.

따가운 여의도 증권 수사 팀의 시선에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설마 최민혁 실장이 남부지검에도 손을 쓴 거야? 아니, 어떻게?’

* * *

최문경 부회장은 짜증스러운 얼굴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김상무 남부지검장에게 몇 번이나 전화해도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았고, 결국 비서에게 얻은 이정준 차장검사 번호로도 연락되지 않자 분노했다.

그는 겨우 진정하고 나서야 고개를 숙인 권재홍 비서실장을 쳐다보았다.

“민 부장 이야기로는 여의도 증권 수사 팀이 이번 수사를 접는 것으로 했다고?”

“그게 좀 이상합니다.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서 언론에 제보해도 괜찮다고만 하니까요.”

“언론 반응은 어때?”

“이번 KM 전자 주가 급등에 대해서 말은 많지만, 여론이 호응해 주지 않습니다. 이번 기회에 KM 전자 주식을 가지고 있던 주주 대부분은 대박을 쳐서 오히려 열광하는 중입니다.”

KM 전자 주식 커뮤니티는 완전 잔치 분위기였다. KM 전자 주식을 소유한 이들 중에 손해를 본 사람은 없었다.

그나마 있다고 한다면 21만 원에 들어가서 물린 이들이다. 그들도 딱히 상황을 비관적으로 보지는 않았다.

새롭게 등재된 KM 전자 대주주 중에 한국 기관이나 투자자는 없었다. 전부 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외국인 투자자가 대부분이었다.

단기로 최민혁이 장내에 부린 400만 주라는 막대한 물량을 외국인 투자자가 아귀처럼 나눠 먹었다. 이 열기가 얼마나 대단한지 오히려 지금 18만 원대로 다시 주식을 매집한 기관 투자자도 적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주가 조작이란 것이 뻔히 보이는데, 수사 팀은 모르겠다고 나올 수가 있는 거야?!”

“죄송합니다.”

“하, 살다 보니 별의 별일을 다 경험하네. 도대체 최민혁, 이 새끼는 무슨 짓을 했기에 여의도 증권 수사 팀이 저래. 아 증권감독원은 뭐래?”

“…연락을 안 받습니다.”

정확히는 김상무 지검장이 증권감독원 실무진을 직접 만나서 조치한 결과였다. 실제로 이 일 때문에 증권감독원 담당자도 크게 놀랐다. 최근 KM 전자 지분을 매입한 외국인 세력이 왜 미친놈처럼 날뛴 이유를 알아낸 것이었다.

내막을 잘 모르는 최문경 부회장으로서는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이번 일과 관련해서는 저희 쪽의 연락을 아예 배제하고 있습니다.”

“이해할 수가 없군. 그놈에게 따로 돈이라도 받았다는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어. 민혁이 그놈이 뇌물을 뿌리고 다닌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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