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
최광수 기자는 최근 벨린 투자가 초대박을 터뜨렸다는 소식을 떠올렸다. 1,500원에 산 주식이 무려 100배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KM 주가는 오히려 더 오르고 있다는 거다. 거래량이 터지면서 오히려 장대 양봉을 만들어낸 것이었다.
범용구 기자 역시 KM 전자의 주가 횡보를 너무도 잘 알았다. 그는 때마침 카페 앞에 나타난 최민혁 실장을 발견했다.
두 남녀가 카페에 앉아서 뭔가 이야기를 나눈 것을 확인했다.
그는 즉시 망원 카메라로 두 사람을 찍기 시작했다.
대부분은 남녀 데이트 장면.
별것 아닐 수도 있지만 이미 카더라 이야기에 종지부와 같은 현장이었다.
‘찍었다!’
안지연과 최민혁이 만나는 장면. 이제 정략결혼설은 단순히 설이 아니라 실제로 진행될 것으로 보이는 장면이었다.
범용구 기자는 두 사람이 나오는 것을 보자 슬쩍 차량 안으로 몸을 숙였다.
최광수 기자 역시 바짝 몸을 숙이면서 온갖 설의 주인공인 두 사람의 데이트 장면을 멍하니 쳐다보기 시작했다.
첫 만남임에도 두 남녀의 태도는 어색하지 않았다.
특히 안지연은 최민혁에게 적극 나섰다. 앵무새처럼 쫑알거리는 모습만 봐도 최민혁에게 호감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최민혁은 오히려 차도남 모습을 취한 채 그저 가볍게 고개를 끄덕일 뿐이다.
안지연은 그런 최민혁 태도에 심통이 나서 주먹으로 옆구리를 쿡쿡 쥐어박았다.
스킨십이었다.
두 사람은 두 남녀가 사라지고서야 몸을 바로 한 채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특히 범용구 기자는 아직도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거 제가 잘못 본 것은 아니죠?”
“아닙니다. 저도 봤습니다. 서로 꽤 마음에 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면…….”
“지금 모습을 봐서는 약혼은 이미 기정사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죠. 맞아요!”
그들은 조심스럽게 차량을 몰았다. 두 사람은 심호흡까지 하면서 두 사람의 데이트 광경을 보고선 환호성을 내지르고 말았다.
‘대박이다!’
* * *
안지연은 최민혁과 헤어진 후에 집에 들어가기가 무섭게 오빠 안재운 방으로 쳐들어갔다.
안재운은 무궁화 위성 발사 성공으로 말미암은 흥분 때문에 포도주 한잔을 즐기는 중이었다.
이미 몇 차례 파티를 했고, 집에서 조용히 음미하는 중이었다.
“야, 노크는 좀 하고 다녀!”
“아, 몰라. 한 가지 질문할 것이 있어서 그래.”
“나중에 이야기하자. 오빠는 지금 조용히 있고 싶으니까.”
사실 일본 유학을 명분 삼아서 외국으로 쫓겨날 뻔했던 안재운은 지금은 누구와도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무궁화 위성 발사 성공 덕분에 e오성은 이제 그가 굳이 나서지도 않아도 성공한 사업이나 마찬가지다.
디지털 위성 사업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아도 이미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올 때면 e오성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나왔다.
안재운 그 자신의 이야기는 빼놓기 어렵다.
굳이 오성 그룹이 나서지 않아도 이제 오성 그룹 황태자로서 탁월한 식견과 결과를 보였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오성 그룹 윗선에서 그렇게 만들려고 했던 시나리오가 드디어 제대로 실현된 셈이다.
그러니 동생 이야기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안지연은 혀를 찼다.
“설마 무궁화 위성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라서 그래?”
“응? 아, 너도 방송 봤구나. 그러면 내 설명은 필요 없잖아.”
“그 방송에는 최민혁 씨 이야기만 나오던데?”
“아, 그거…….”
안재운은 최민혁 이야기에 표정을 살짝 구기고 말았다. 디지털 위성 사업을 주도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은 그 자신이 더 잘 안다.
무려 천억이 넘는 돈을 퍼부어서 위성 사업 지분까지 인수했으니까.
다만 그뿐만 아니라 뒤늦게 위성 사업에 합류한 모든 이들이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최민혁 이야기가 나오면 자신들의 실적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안지연은 안재운 표정 변화를 보고서야 TV 방송이 마냥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상식적인 기준에서 떠오른 의문을 하나씩 내놓았다.
“민혁 씨가 그 위성 사업에 어떤 역할을 한 거야? 가만 그러면 오빠는 이미 민혁 씨와 잘 알고 있었던 거야? 왜 그러면 사전에 말을 안 한 거야?”
“굳이 그런 일까지 말할 이유는 없잖아. 그리고 난 최 실장이 괜찮은 친구라고 말까지 했고.”
“그러면 그런 말을 한 것이 이 일 때문이었어?”
“뭐 아니라고 말은 못하겠다.”
다만 안재운은 딱히 최민혁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았다. 최민혁 이야기가 나올수록 자신의 성과가 최민혁 때문에 덮이기 때문이다.
“참 오늘 최 실장 만났겠네. 괜찮지?”
“어.”
안재운도 그제야 술잔을 내려놓고 동생 표정을 세세하게 살폈다.
“오, 우리 동생 표정 봐라. 최 실장이 상당히 마음에 들었나 보네.”
“아직은 모르겠어. 그냥…….”
“그 친구 가볍게 보지 마. 권 실장조차 최 실장이라면 기겁하니까.”
“그 감정 없는 권태성 기획실장님이 그런다고?”
“그래서 내가 너에게 충고하는 거야. 솔직히 다른 재벌 2세 따위는 최 실장하고 비교조차 하기 힘들어.”
안재운도 딱히 최민혁 이야기를 더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동생 표정을 보자 한마디는 해주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이번 디지털 위성 사업도 원래 자빠질 뻔했다. 그런데 그 상황을 구제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이라는 것은 틀림없다. 능력 하나만 놓고 보면 끝내주지.”
“그러면 더 이상하잖아.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는 왜 없었어. 막 무궁화 위성이 발사되고 난 후에야 이름이 거론되는 것은 더 이상하잖아.”
안재운은 답을 아는 사실이지만 굳이 답변하지 않았다. 그 역시 무궁화 위성 퓨즈 사건을 사전에 알린 최민혁 행동에 대해서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일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심장이 무거웠다. 자칫했으면 무궁화 위성 폭발과 함께 일본이 아니라 유럽으로 쫓겨날 뻔했으니까.
“…나도 그건 모르지. 본인 딴에는 지분 수익도 있으니, AS라고 말하는데 믿기 어려워. 아, 이왕이면 최 실장에게 한번 물어봐.”
“쳇.”
안지연은 질문하러 왔다가 오히려 더 많은 의문을 품은 채 안재운 방을 나서고 말았다. 그녀 역시 무궁화 위성 방송 내용을 떠올리면서 고개를 갸웃하고 말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것일까?’
삐딱한 태도를 보인 최민혁 실장을 다시 한번 떠올리게 했다. 첫인상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능력만큼은 인정하고 말았다.
‘나쁘지는 않아. 자존심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저 인간이 저러는 것도, 남자라면 학을 떼는 아버지 행동도 믿기지 않으니까. 가만 엄마도 이번 일에 난리였잖아.’
* * *
안지연 행동을 본 안재운은 아버지 안건민에게 슬그머니 두 사람의 데이트 결과를 알렸다.
안건민 회장은 안지연의 싫지 않은 모습에 최용욱 회장에게 넌지시 이야기했다.
최용욱 회장은 손자 최민혁이 안지연에게 첫 만남에서 어필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장승일 실장을 불러 치하했다.
“수고했네.”
“…잘되었습니까?”
“그래. 안 회장 이야기로는 안지연이 흥미를 보인 남자는 민혁이가 최초라고 하니까.”
“아마 어떤 여자라도 다르지 않을 겁니다. 무궁화 위성 사업을 이끌어간 천재 사업가가 최민혁 실장님이니까요.”
최용욱 회장은 오히려 당당한 장승일 실장에 피식 웃었다.
“하지만 방송 보면서 느낀 건데, 과장이 좀 심한 것 같더군. 그 김문호 박사란 친구는 너무 행동이 가벼워 보였어.”
“절대로 아닙니다. 김문호 박사는 압박한다고 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면 뉴스 패널에 나와서 한 이야기가 사실이란 말인가?”
“네. 아니 오히려 갑자기 진행된 인터뷰라서 이야기가 축소되었다고 봐야 합니다.”
“무슨 소리야? 자네가 올린 보고서에는 그런 내용이 없었잖아?”
장승일 실장도 뒤늦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행보가 너무 비밀스러웠고, 최민혁 실장님에게 부담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작정하고 최민혁 실장님에게 관한 기록을 지운 덕분에 미처 간과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건 정말 놀라운 사실이군.”
최용욱 회장도 이미 사전에 보고를 받았지만, 그 이상의 숨은 이야깃거리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장승일 실장은 이보다는 최문경 부회장에 대해서 넌지시 말했다.
“그런데 최 부회장님의 행보가 심상치 않습니다.”
“큰 며늘아기가 하는 행동을 보면 굳이 뭐라고 할 말이 없지. 하지만 그놈이 정신이 나가지 않고서야 안건민 회장의 막내딸을 상대로 헛짓하지는 않을 거야.”
“그렇기는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일이 터져서 안건민 회장 귀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지 뻔하잖아. 잔술수에 능한 문경이 그놈이 감히 그런 사고를 칠 리가 없어. 그렇다고 기세가 한 끗 치솟고 있는 민혁이를 상대로 무리수를 두지는 않을 거야.”
“제가 그 부분은 자세히 지켜보겠습니다.”
“일단 계획대로 민혁이 그 녀석에 대한 이슈를 계속 더 키워봐.”
“…알겠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안도했다. 최민혁이 여자를 만나고 난 후면 지금과 같은 행동을 자제할 것이라 생각했다.
‘까칠한 그 성격도 좀 누그러지겠지.’
* * *
최민혁 이야기는 꾸준하게 언론에서 나왔다.
다만 좋지 않은 소문이 많이 엮여 있어서 주목을 크게 받지는 못했다.
그런데 무궁화 위성 발사를 성공으로 다시 일약 조명을 받았다.
정확히는 최용욱 회장과 안건민 회장이 대형 언론사를 압박했다.
이 정도라면 없는 이야기라도 만들어서 기사도 가능했다.
그런데 있는 이야기, 그것도 쇼킹한 이야기라면 상황이 좀 달랐다.
언론사 담당 기자조차 이게 정말 맞는지 고개를 갸웃하면서 다시 최민혁 실장이 한 일을 하나씩 조사하기 시작했다.
김문호 박사는 아예 자신이 총대를 메고 앞으로 나서서 최민혁 실장이 디지털 위성 사업에 정확히 무슨 일을 했는지 나발을 불었다.
결국 최민혁 실장이 이번 디지털 위성 사업과 관련해서 크게 이바지한 부분이 점점 더 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별의별 이야기가 다 나왔다.
조용히 살고 싶었던 최민혁 입장에서는 썩 마음에 든 상황은 아니어서 결국 김문호 박사에게 전화해서 약속을 잡았다. 그는 김문호 박사뿐만 아니라 ETRI 연구원 측에게도 한마디 해주기 위해서 단단히 마음먹었다.
그런데 방문 날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ETRI 입구부터 방문한 차량이 하염없이 늘어서 있었다.
최민혁도 그 차량의 정체를 몰라서 기다렸고, 가까스로 주차장에 차를 댔다.
푸념이 절로 나왔지만, 주차장에서 내린 이들이 하는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
[그게 정말일까? 최민혁 실장이 이번 무궁화 위성 솔루션 전체를 설계했다니?]
[김문호 박사님이 과장할 분은 아니잖아.]
[이번 위성 솔루션은 아예 국제 특허가 될 만한 중요한 기술도 많이 포함되었어. 그건 ETRI 연구원도 감당할 만한 내용이 아니잖아. 난 김문호 박사팀이 그 난관을 극복한 것도 믿기지 않던데, 그걸 최민혁 실장이 다 해결했다고?]
이번 디지털 위성 방송 솔루션에는 다양한 기술이 들어갔는데, 대부분은 최민혁의 핵심 특허를 기반으로 한 기술이다.
그런데 그 기술 중에는 국제 표준이 된 오디오 압축과 디지털 압축 기술이 포함되어 있었다.
문제는 이 압축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나온 에러 정정 기법과 같은 신기술이다.
디지털 통신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이 기술은 에러율을 획기적으로 늘려서 영상, 오디오 압축 기술 효율을 최대한 올렸다.
그 덕분에 국제 표준화 협회에서도 깊은 관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김문호 박사님이 지난 독일 학술회의에서도 이 기술에 대해서 공개했잖아. 그것 때문에 MPEG 위원회도 난리가 났고.]
실제로 김문호 박사의 오큘러스 프로젝트는 이제 단순히 국내 문제가 아니라 해외 학술 대회에서 어느 정도 인정을 받았다.
오늘 ETRI를 방문한 이들은 다들 이에 관한 관심 때문에 온 이들이었다.
이번 무궁화 위성 발사가 디지털 위성 방송 시대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냈다.
따라서 위성 방송 사업 이권에 관심이 있는 연구원이나 기업에서는 이전처럼 남 일처럼 취급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
최민혁은 그제야 오늘따라 ETRI가 시끄러운 이유를 알 수가 있었다. 무궁화 위성 발사 성공이 이런 분위기를 이끌어낸 것이었다.
‘설마 방문 날짜를 일부러 오늘로 정한 것은 아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