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5화 (315/1,021)

#315.

조성돈 팀장이 말하는 최민혁 이야기는 오혜정 비서가 하는 이야기와는 또 달랐다.

그중에 한 가지는 실로 쇼킹한 것이었다.

“최 실장님 덕분에 KM 전자는 환골탈태했고, KM 그룹은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미 KM 그룹 경영권 승계 후보 경쟁에까지 나섰는데, 최문경 부회장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설마 아버님에게도 인정을 받았다는 말인가요?”

“최 회장님께서 이미 공개적으로 인정한 사실입니다.”

“…놀랍네요.”

정미선은 충격적인 이야기에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상상한 것과는 차원이 다른 대답을 계속 듣기 때문이었다.

그나마 단계적으로 충격을 경험한 조성돈 팀장은 혀를 찼다.

“저조차 지금 상황이 잘 믿어지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아마 사모님이라면 이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 정도에요?”

“아니, 그 이상입니다. 정략 결혼설이 나오는 것도 KM 그룹과는 무관합니다. 최민혁 실장님의 능력이 워낙에 출중하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네요.”

최병문과 있을 때도 이런 일은 경험한 적이 없는 정민선은 지금 상황을 도저히 잘 이해할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이 한 말이 아니라면 믿지 않았을 정도였다.

* * *

최민혁은 어머니 정미선 문제를 쉽게 해결해서 기분이 좋았지만, 강연 출석자 명부를 확인하면서 혀를 내둘렀다.

‘불참자가 단 한 명도 없다니.’

오늘 참석자 중에 몇 사람은 최문경 부회장과 최근 자주 만난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 태도를 바꾼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박쥐도 아니고.’

그래도 이번 일 통해서 한 가지 얻은 점은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 눈치를 보지만 자신의 위치도 이에 못지않다는 점이다.

최민혁은 그래서 고민이었다. 애매한 경우는 손을 대기가 어려웠다. 문제는 이들이 얼마든지 자기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는 솔직히 KM 그룹 따위는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 없는 이유는 최문경 부회장 때문이다.

저들을 방패 삼아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이 최문경이었다.

차라리 그럴 거면 공격적으로 나서서 저들을 구조조정 하는 것이 훨씬 나았다.

‘일단 성향 파악을 한 것으로 만족하자.’

최민혁은 곧 미래 변화에 대한 강연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물론 그 강연에 집중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최민혁 그 자신이 이룬 성과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일어난 일이다.

그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는 별다른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흥미로운 점은 질문 시간에 일어났다.

이번 KM 그룹 구조조정의 마루타가 된 KM 인스트루먼트 김환진 사장이 손을 들었다.

[몇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을 이끌어가는 주체가 LCD라고 하셨는데, 지금까지 특별한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실장님 의견대로라면 뭔가 새로운 현상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질문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KM 산업과 KM 인스트루먼트 경영진이 주도해서 최민혁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콜린스 성과에 대해서는 인정합니다. 하지만 콜린스 기반 기술은 KM 전자가 이제까지 몇 년간에 걸쳐서 꾸준히 쌓아왔던 기반을 토대로 한 것입니다. 하지만 LCD 사업과 같은 부분은 그런 기반이 전혀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실장님 말씀처럼 LCD 사업과 관련된 사업이 급성장할 것이라 주장은 설득력이 없습니다. 솔직히 오성 전자나 LC 전자에서도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을 고려하면 별 장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최민혁은 냉랭한 김환진 사장 모습에 피식 웃고 말았다.

‘첫째 큰아버지로 노선을 갈아타기로 했나 보구나. 그리고 이번 강연을 빌미로 내 영향력을 죽이려고 하는 건가?’

그는 어째 이번 강연이 별다른 이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닌 셈이다.

최민혁은 굳이 김환진 사장 지적에 바로 반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고민에 빠졌다.

어차피 MP3 판매 일정은 늦어졌다. 그렇다면 기존 MP3에 색다른 기능을 추가하는 것에 대해서 계속 고민 중이었다.

‘정확히는 스마트폰 기술에 필요한 LCD 핵심 기술이지. 그건 대형 LCD와는 좀 다르니까. MP3 사업 이후에 어차피 스마트폰으로 가려면 차라리 지금 이 시점에서 기술 확보해서 MP3에 적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최민혁은 곰곰이 고민하다가 문득 인생 1회차에서 한 가지 사실을 뒤늦게 떠올렸다.

‘LCD 특허를 먹는 애들이 일본 애들이란 점이야.’

사실 번거로운 LCD 원천 기술을 일본 애들이 먹게 놔두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에 결국 결정을 내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제가 말로만 내세우니 그런 질문이 나오는 것 같습니다. 좋습니다. 그러면 앞으로 LCD 사업에 제가 한번 손을 써 보겠습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 사업이 왜 LCD가 되어야 할지 보여드리겠습니다.]

[네?]

예상을 벗어난 최민혁 답변에 김환진 사장은 움찔 몸을 떨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까지 그냥 말로 때운 적은 없기 때문이다.

이 강연에 참석했지만, 조용히 눈치만 보고 있던 KM 산업 조철동 부사장이 슬쩍 손을 들었다.

[무슨 말씀인지 잘 이해가 안 됩니다. 혹시 김환진 사장 때문에 흥분하셨다면 굳이 그럴 필요는 없습니다. 설마 이번 일로 LCD 사업에 손을 대겠다는 말입니까?]

최민혁은 아예 노골적인 조철동 부사장 말에도 씩 웃었다. 그는 어떻게 선전포고를 해야 할까 고민했다. 강연에 참석한 KM 그룹 계열사 임원의 눈빛이 달라졌다.

[우리 KM 전자가 LCD 사업은 진행하기에는 여러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가 LCD 사업은 우리 KM 전자 사업 방향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다만 미래 IT 먹거리를 위한 기술은 필요합니다. 틈새 전략이라고 할까요. LCD 사업 중에 우리가 먹을 수 있는 분야도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그 생산을 할 필요는 없어요. 기술만 있다면 얼마든지 외주할 수 있으니까요.]

조철동 부사장은 말을 빙빙 돌리는 최민혁 실장 태도에 말을 조심했다.

[…정확히 무슨 사업인지 모르겠습니다. 설마 LC 전자 쪽에서 우리 요구를 받아줄 거로 생각하십니까? 그런 일은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적은 물량이라면 그럴 겁니다. 하지만 물량이 많다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대형 인프라 쪽에 경험이 많은 조철동 부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실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LCD 사업은 생각보다는 자본이 많이 들어갑니다. 정확히 어떤 식으로 기술을 확보하겠다는 건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알 리가 없지. 하지만 굳이 이 자리에서 힌트를 줄 이유는 없지. 기술을 확보하고 나서 이야기를 해도 늦지 않으니까.’

[그건 가능한 빠른 시기에 결과를 보여드리면 되겠습니까?]

[네? 하, 하지만…….]

[뭐 구질구질하게 이 자리에서 말로만 내세워서는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직접 보여드리겠습니다. 왜 LCD 사업이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되는지 말입니다. 그러면 되겠습니까?]

[무슨 말도 안…….]

다만 그와 김환진 사장은 할 말은 많았지만 따가운 다른 임직원의 시선에 슬그머니 입을 다물었다. 도대체 최민혁이 뭘 보여주겠다는 건지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문을 모르겠군.’

* * *

최민혁은 강연이 끝난 후에도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그가 약속한 LCD 기술 때문이었다. 아마 콜린스 성과가 없었다면 허풍이라고 비난받았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좀 달랐다.

그 누구도 최민혁 실장을 일방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다.

조철동 부사장 일파는 예상을 벗어난 최민혁 행보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들은 이번 강연을 통해서 최민혁을 공격하려고 했다가 그들 관점에서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이번 강연에 대해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이미 기반 기술 관련한 정보를 사전에 다 파악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되었어. 아직도 내 말이 실감이 잘 안 되나 본데, 직접 보여줄 수밖에 없지. LCD 핵심 기술로 특허료만 받아도 되니까. 아마 오성 전자와는 달리 LC 전자라면 이 제안을 거절하기 힘들 거야.’

최민혁은 이보다 회사 구경을 끝내고 나서 넋을 잃은 정미선을 먼저 따로 만났다.

정미선은 뜻밖에도 혼사 문제에 대해서는 쓸데없이 간섭하지 않았다.

“민혁아, 혼사 문제는 네가 알아서 하면 좋겠다. 난 언제나 네 의견을 따르마.”

정미선은 뜻밖에도 최민혁에게 그 어떤 의견을 내세우지 않았다.

그녀도 조성돈 팀장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이번 혼사 문제가 수천억 판돈이 걸려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만 아직도 선뜻 믿는 눈치는 아니었다.

“그렇습니까?”

“그래. 하,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이가 없더구나. 난 아버님이 왜 그렇게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지는 몰랐는데, 이제야 알겠더라. 뭐 자세한 것은 여전히 의문이 많지만.”

최민혁은 자신이 자세한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그제야 자기가 계획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 일은 오성 측과의 콜린스 사업부 인수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래서 저도 좀 냉정하게 나갈 겁니다. 그쪽에서 혼사 문제를 가지고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니, 저도 맞불을 놓을 겁니다.”

“그 말은……. 설마 혼사 문제를 최대한 이용할 생각이니?”

“그렇죠. 아마 이제 언론에서도 저랑 오성가 문제를 다룰 겁니다. 언론에서는 마치 당장에라도 결혼할 것처럼 몰아갈 거예요. 저도 그 상황을 부추길 겁니다.”

“…하지만 결혼은 하지 않을 거다?”

“제 나이가 몇인데, 벌써 결혼하겠습니까. 그건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하니?”

“이번 혼사로 대략 2~3천억 돈이 걸린 도박판이 될 텐데요?”

정미선도 화들짝 놀랐다.

“저, 정말이니? 하, 하지만 그건 너무 나간 것이 아닐까. 들어보니, 너 돈도 많이 벌었다고 하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저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닙니다. 어머니도 재벌가 사정은 잘 아시잖아요.”

정미선은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잠깐 입을 다물었다. 그녀 역시 자신이 직접 경험했기에 모를 수가 없었다.

아니, 오히려 지금에서야 이 사실을 안 것이 오히려 신기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아들 최민혁이 배려한 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엄마는 정말 걱정이 되는구나. 그러다 잘못되기라도 한다면…….”

“혼사 문제를 가지고 주가 조작으로 모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왕 일이 생겼으니, 이번 기회를 최대한 이용해서 최대한 이익을 보려는 것뿐입니다. 그러니 제 혼사 문제에 관한 뉴스는 보지 마세요.”

“…알았다.”

* * *

최민혁은 정미선과 만남 후에 심진모 감독과도 따로 만났다.

심진모 감독을 비롯한 촬영 스텝은 숨조차 쉬지 않았다.

그들 역시 KM 전자 임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듣고서야 최민혁의 영향력을 어느 정도 알아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민혁은 10억이란 투자를 약속했다. 정확히는 이 영화가 상업적으로 중박은 터뜨린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번 영화가 처음인 심진모 감독으로서는 적은 돈은 아니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민혁은 물론 영화 촬영에 간섭할 생각은 전혀 없었다.

“최선보다는 제 어머님 입에서 이상한 이야기가 안 나오기를 바랄 뿐입니다. 만약 일이 틀어지면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습니다.”

“…네.”

투자를 위한 투자가 아니라 정미선을 위한 투자란 말이다.

심진모 감독 안색이 좋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촬영 스텝은 좋은 게 좋다는 태도였다. 그들은 비록 영화 지분 40%를 넘겨야 했지만, 딱히 부정적이지 않았다.

정미선 일을 끝낸 최민혁은 김기범 일도 있고 해서 조성돈 팀장을 불러 최근 회사 프로젝트 진행 내역을 간단하게 확인했다. 특히 송도연이 잘 적응했다는 보고에 꽤 만족했다.

다만 한 가지 일 때문에 고민했다.

바로 정략 결혼설.

이 일은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최민혁은 자신이 물론 특정금전신탁 소송을 일으킨 일을 보복하는 과정에서 나온 일이지만 공격당한 것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DL 그룹 말인데요. 김현탁 사장이 DL 스카이에서 물러났다고 했죠?”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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