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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4화 (314/1,021)

#314.

그런 일이 늘어지고, 늦어져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사실 최용욱 회장이 먼저 나서준 것은 최민혁에게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어머니께 일찍 연락을 해야 했는데, 차일피일 미루고 말았습니다.”

정미선은 아들 손을 잡은 채로 흐르는 눈물을 억지로 참았다.

“아니다. 이제 다 지난 일이잖아. 그런 말 할 필요는 없다. 못난 어미 때문에 네가 고생하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어.”

“아닙니다. 제가 먼저 연락을 해야 했습니다.”

“괜찮다니까.”

정미선은 지난 일을 떠올리면서 내색하지 않으려고 했다. 자신이 끼어들면 혹시라도 과거처럼 아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그것 또한 사실이었다.

최훈열 전무라면 정미선을 내버려 두려고 하지 않았을 테니까.

망해가는 KM 전자 경영권을 챙기려고 했던 최민혁 처지에서 정미선이 약점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그다음 막장 드라마를 찍었을 것이다.

다행히 정미선은 일정한 거리를 뒀기에 그런 일은 생기지 않았다.

최민혁도 마찬가지다. 그는 정미선을 마치 타인인 양 거리를 뒀다.

그러니 최훈열 전무를 포함해서 다른 이들도 정미선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최민혁 역시 정미선 일로 골치를 썩지 않아서 순탄하게 지금 자리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역시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죄송해요.”

“그 이야기는 그만하렴.”

오히려 마음의 짐을 덜은 정미선은 그제야 최민혁 주변을 돌아보았다.

뒤늦게 알아본 한 사람은 김명준 과장이었다.

“김 과장님?”

뒤로 조용히 물러나 있던 김명준 과장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다행히 절 알아보시는군요.”

“제가 김 과장님을 잊을 수가 없잖아요.”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김명준 과장에게 다가가서 고개를 숙였다. 지난 일이지만 알게 모르게 그녀를 도와준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김명준 과장이기 때문이었다.

정미선은 김명준 과장과 가볍게 인사를 한 후에야 비서 오혜정을 쳐다보았다.

오혜정 비서는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녀 모습은 마치 얼음꽃 사이에 핀 매화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심진모 감독조차 오혜정 비서의 미모가 김승연의 미모를 압도하는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그런데 때마침 실장실로 들어온 사람은 한선화와 오수연이었다.

“실장님, 강연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아, 그래요? 제가 정신이 없네요.”

최민혁은 가볍게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따가운 정미선 시선을 받자 어깨를 으쓱했다.

심진모 감독을 비롯한 촬영 스텝조차 입을 딱 벌린 채 세 명의 비서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화려한 미모를 가진 한선화, 화사한 백합 같은 오수연, 현대 오피스걸의 정석이라고 해도 부족하지 않은 오혜정 세 사람은 저마다 다른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영화 하이에나의 주연배우인 김승연은 어이가 없어서 힐끗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미모만큼은 나름의 자신이 있다고 생각한 그녀로서는 기가 찼다.

정미선도 세 사람의 비서 모습에 힐끗 최민혁을 째려보았다.

과거 일은 다 좋다.

그런데 비서 모습을 봐서는 아예 작정하고 뽑은 모양새다.

그런 모습이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비서 뽑는 기준이 외모가 중요하다고 해도 세 사람은 너무 과했던 것이다.

최민혁은 순순히 인정했다.

“세 사람은 모두 둘째 큰아버지가 뽑은 사람입니다.”

“둘째 아주버님이라면…….”

“네. 이번에 구속돼서 감옥에 가 있는 최훈열 전무님입니다.”

“잠깐 네 말은…….”

“제가 회사에 입사한 후에 따로 사람을 뽑은 적은 없습니다.”

“…….”

정미선은 힐끗 세 명의 비서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녀 역시 최씨 일가의 여성 편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훈열 전무는 악명이 자자했다.

최민혁은 덤덤하게 말했다.

“이 자리에서 말하기 그런 내용입니다. 결론만 이야기하면 세 사람은 제가 뽑은 것은 아닙니다.”

“그, 그래?”

“그럼요. 더욱이 오혜정 비서 같은 경우에는 이번 광고 대박으로 회사에 크게 이바지했고요. 능력만 놓고 본다면 왈가왈부할 문제는 아닙니다.”

“…….”

정미선은 힐끗 번민하는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면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최훈열 전무의 여자 문제를 새삼 다시 떠올렸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이런 일로 괜히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따로 말씀드릴 기회가 있을 겁니다.”

“내가 괜한 오해를 했구나.”

“아뇨. 다른 사람도 우리 회사 비서 팀원을 보면 한마디 합니다. 제가 일일이 다 변명하기도 그렇고, 난감합니다.”

“그, 그렇구나.”

최민혁은 민망해하는 정미선을 내버려 둔 채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세 비서 통해서 괜한 오해가 생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KM 전자 내부 사정에 대해서 정미선이 알 필요가 있었다.

‘조성돈 팀장에게 사전에 이야기해 두는 것이 좋겠어. 내 의견보다는 조 팀장 이야기를 들으면 어머니도 더 쉽게 상황을 받아들일 테니까.’

“저는 회사 일 때문에 잠깐 일어나겠습니다. 오 비서가 회사 안내나 좀 해주세요.”

“네. 실장님.”

정미선은 강연 원고를 받아서 조용히 나서는 최민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아들 최민혁은 자연스럽게 보고를 들으면서도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가 상상한 것과는 차원이 다들 아들 모습에 뒤늦게야 혀를 내둘렀다. 이제 갓 대학교를 입학한 나이의 다른 집 아들들의 모습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아, 우리 아들이 대단하구나.’

그녀는 뒤늦게 넋을 잃고 있는 심진모 감독을 쳐다보았다.

“감독님?”

“아, 미, 미선 님, 말씀하십시오.”

“갑자기 왜 그러세요?”

“아, 아닙니다.”

경직된 심진모 감독은 정미선 눈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했다.

최재현조차 상상을 초월한 전개에 어떤 모습을 취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젠장맞을 설마 최민혁 실장이 아들이었다니.’

* * *

“이곳은 홍보 팀입니다.”

홍보 팀장 이용식 부장이 최민혁 강연장에 들어간 덕분에 팀장 대행으로 급하게 일 처리를 하던 전희주 과장은 갑자기 자기 사무실을 방문한 오혜정 비서 목소리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뒤늦게야 정미선을 발견했다.

“아, 전희주 과장님, 이분은 최민혁 실장님 어머니입니다.”

“네? 네!”

딱 이 한마디면 충분했다.

깜짝 놀란 전희주 과장은 남아 있는 임직원에게 손짓했다.

홍보 팀은 마치 사장이라도 방문한 것처럼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위세에 오히려 정미선이 화들짝 놀라서 양손을 크게 흔들었다.

“아, 전 신경 쓰지 마세요. 하시던 일을 계속하세요.”

“다들 모여봐!”

하지만 그녀 말을 듣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희주 과장은 후다닥 정미선 앞에 다가가서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영광까지야…….”

민망한 정미선은 예상을 벗어난 직원들의 태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부담을 느끼자 다급하게 홍보 팀 사무실을 벗어났다.

뒤를 따르는 여 비서 세 사람은 정미선 눈치만 볼 뿐이었다.

* * *

정미선은 사무실 복도에서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우리 아들의 회사 생활은 어때요?”

오혜정 비서가 방긋 미소 지었다.

“최민혁 실장님 덕분에 KM 전자는 KM 그룹에서도 독보적인 성장을 거듭하는 중입니다. 임직원 역시 매달 인센티브 폭탄에 즐거워하는 중이고, 사내 복지도 계속 늘어나는 중입니다.”

“그렇게 대단해요?”

“실장님이 오기 전만 해도 매출이 해마다 줄어서 망해가는 회사란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주가가 고작 1,500원에 불과했으니까요. 실장님이 사내 체질을 개선하면서 주가는 급등했고, 최근 15만 원선에 안착했습니다.”

주식에 대해서 잘 모르는 정미선은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잘하고 있다는 말이군요.”

“최고입니다.”

오혜정 비서는 마치 자기 자랑을 하듯이 최민혁의 성과를 늘어놓았다. 뒤를 따르는 두 사람도 묵묵히 고개만 끄덕였다.

정미선은 아들 최민혁 성과 때문이 아니라 비서 세 사람의 태도에 오히려 혀를 내둘렀다. 여우 같은 세 미녀가 최민혁 실장을 존경한다는 것을 금방 알아봤다.

‘민혁이가 잘하기는 하는가 보구나.’

하지만 그보다 감수성이 예민한 정미선은 세 명의 여비서 태도에서 묘한 감정을 느꼈다. 마치 자신에게 잘 보이려는 모습은 비서로서가 아니었다.

연예인으로서 뛰어난 배우를 많이 접한 정미선조차 세 여 비서의 공격적인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혹시 세 사람이 제 아들과…….”

“아, 아닙니다. 그저 최 실장님의 어머니를 뵙게 되어서 놀랐을 뿐입니다.”

“그래요? 흠.”

정미선의 따가운 시선에 흥분했던 오혜정 비서는 그제야 고개를 푹 숙였다.

참다못한 한선화가 슬쩍 나섰다.

“최 실장님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KM 전자를 잘 이끌어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 한 번의 물의도 일으키지 않았고, 회사 매출은 사상 최대의 성과를 이끌어내는 중입니다. 오늘 KM 그룹 강연은 최 실장님의 입지가 KM 그룹에도 영향을 준다는 표시입니다.”

정미선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저 단순히 빈말하는 것 같지가 않았다.

그녀는 힐끗 세 명의 여비서 의견을 곰곰이 생각하고서야 최용욱 회장이 왜 자신에게 찾아와서 그렇게 저자세를 보였는지 새삼 깨닫고는 혀를 내둘렀다.

‘믿을 수가 없네.’

차라리 자신을 압박하거나 겁박했다면 오히려 이해가 갔다.

최씨 일가가 과거에 보인 행동을 본다면 그게 정상이었다.

이런 식으로 상황이 흘러갈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일이었다.

오혜정 비서는 넋이 나가 있는 정미선을 다른 사업부로 이끌었다.

“다른 사업 팀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 그, 그래요.”

* * *

조성돈 팀장은 최근 갑자기 폭등한 KM 전자 주가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정략 결혼설이라니.’

실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안 좋은 사실은 주가 조작이라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왔다는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KM 전자 대주주 중의 하나인 벨린 투자가 주식을 단기에 백만 주나 팔아치웠기 때문이다.

그는 솔직히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스러웠다.

안 그래도 산적한 일이 많은 기획 팀원 역시 이번 KM 전자 주가 폭등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려 14만 원~18만 원 사이를 횡보하는 중으로 주가 폭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습니다. 콜린스 매출을 계속 부각하는 것이 최선입니다. 그게 또한 사실입니다.]

콜린스 매출이 꾸준하게 늘어난 것은 사실이었다.

최근 중동 쪽에도 2만 개 가까운 계약이 체결되었기 때문이다.

다행이라면 이전과는 달리 KM 주식 거래량이 폭등한 점이다. 벨린 투자에서 주식을 내놓았기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런데 때마침 최민혁에게서 정미선이 방문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에게 제 사정을 사전에 좀 이야기해 주세요.]

조성돈 팀장은 정미선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마침 오혜정 비서가 한 사람을 데리고 나타났다.

“최 실장님 어머님, 정미선 여사님입니다.”

“……?”

조성돈 팀장은 정미선 방문을 전혀 알지 못한 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정미선 여사님?”

다행히 정미선은 조성돈 팀장을 알아봤다.

“가만 혹시 조성돈 팀장님이세요?”

“이거 오랜만에 뵙습니다.”

“정말 반가워요.”

정미선도 조성돈 팀장에게 살갑게 인사했다. 과거 최병문 상무가 있을 때 그녀를 챙겨주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바로 조성돈 팀장이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비록 최병문 상무의 지시를 받아서 움직이기는 했지만, 주도적으로 나서서 정미선을 이리저리 챙겨주었던 것이다.

다만 다른 기획 팀원은 정미선 여사의 신분을 알자 화들짝 놀라서 인사했다.

마치 군대 신병 모습을 떠올리게 할 정도로 일사불란한 기획 팀 모습에 정미선은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너무 과분한 인사를 받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사 오너 어머니를 대하는 임직원 모습은 그렇게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최민혁 실장의 어머니가 정미선이란 것을 뒤늦게 알고는 혀를 내둘렀다.

특히 영화 ‘하이에나’는 가끔 연예 잡지를 통해서도 언급되었다.

정미선은 조성돈 팀장을 통해서야 좀 더 아들 최민혁의 주변 상황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조성돈 팀장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그게 정말이에요?”

“네. 최 실장님의 행보는 단순히 외부에 알려진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오성 그룹 쪽에서 혼사 이야기를 한 것도 그 때문이라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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