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3화 (313/1,021)

#313.

아직 세상에 알려지지 않는 심진모 감독은 차라리 이런 분위기가 싫지는 않았다. 잘만 하면 배급도 KM 그룹 도움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그 역시 자기 뜻대로 촬영을 이끌어갈 수가 없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정미선도 눈치가 있어서인지 최동영 상무와 대화를 오래 끌고 가지 않았다.

“이런 일이 자꾸 생기니, 좀 부담스러워요. 제가 딱히 도움이 될 일도 아니라서요.”

“하지만 집안에 큰일이 있는데, 저도 나설 수밖에 없습니다.”

“민혁이 결혼 문제 말인가요?”

“네. 그 일이 생각보다는 심각합니다. 이번 벨린 투자가 KM 전자 지분 통해서 벌어들인 수익만 해도 5천억이 좀 안 됩니다. 벨린 투자 실소유자가 민혁이니, 이번 일을 간과할 수가 없었습니다.”

“네?!”

정미선은 처음에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서 경악하고 말았다.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최동영 상무도 정미선이 안정을 찾을 때 까지 묵묵히 기다렸다.

정미선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역시 제수씨는 아직 모르시군요. 자세한 것은 민혁이 통해서 물어보시면 될 겁니다. 그런데 오성가의 정략결혼이 콜린스 매각설하고도 관련이 있어서 다들 예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진짜 충격적이네요.”

최동영 상무는 방긋 미소 지었다.

“전 언제나 제수씨 편입니다. 과거 일은 도와주지 못했지만, 이번만큼은 좀 다릅니다. 혹시나 싶어서 이번 일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찾아왔고, 필요하다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고, 고마워요.”

하지만 정미선도 최용욱 회장에게 당하면서 배운 교훈이 있다. 그녀는 결코 최씨 일가를 믿지 않았다.

최동영 상무는 갑자기 자신이 찾아온 것을 사과하고 난 후에 조용히 촬영장을 떠났다.

정미선도 그 모습을 보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녀도 이제는 아들이 전화상으로 한 이야기를 쉽게 생각하지 않았다.

“죄송해요. 차라리 이렇게 하는 것이 어때요. 제 아들이 감독님하고 여러분을 보고 싶어 하던데, 한 번 만나 보실래요?”

“아드님이라면…….”

심진모 감독은 뜬금없는 아들 초청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정미선에게 아들이 있다는 소리를 최근에 들었다. 다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씨 일가만 해도 골치가 아팠고, 설마 정미선 아들이 무슨 힘이 있겠나 싶었다.

“아무래도 엄마가 하는 일이 궁금한가 보죠. 그래서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다고 해서 감독님을 뵙고 싶어 해요.”

“그렇습니까?”

심진모 감독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노린 상대는 오히려 최용욱 회장이다. 그가 오히려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다못해 최문경 부회장도 괜찮지.’

“설마 아드님을 보고 나면 이런 일은 더 없는 거라는 말씀입니까?”

‘어쩌면 이번 일도 민혁 그 녀석의 정략 결혼설 때문일 겁니다.’란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아마 제 아들이 도와줄 겁니다.”

“그렇다면야…….”

심진모 감독은 망설이기는 했지만 차마 정미선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지금까지 받은 압박이 너무 컸던 것이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성정(?)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 * *

심진모 감독은 촬영 일정까지 조정해서 정미선을 만났다.

그 자리에는 입술이 삐쳐 나온 최재현을 비롯해서 한껏 기대하고 있는 김승연도 있었다. 촬영 감독을 비롯한 스텝 몇 사람도 있었다.

특히 촬영 감독은 KM 그룹에 재정적인 도움을 기대한 눈치였다.

정미선은 한껏 고취된 마음에 들떠서 김승연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우리 아들 소문이 대단해.”

“저도 궁금해요.”

“아마 보면 깜짝 놀랄 거야.”

“그렇게 대단해요?”

“승연아, 봤잖아. 시아버님이 날 찾아온 것 자체가 황당한 거야. 그분은 결코 날 용납할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셋째 아주버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것도 다 민혁이 덕분이라네.”

“신기하네요.”

물론 김승연은 뒤늦게야 정미선 마음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

대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정미선이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았다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자세한 사연까지 정미선이 말하지 않았지만, 굳이 그 부분은 듣지 않아도 추측할 수 있었다.

심진모 감독은 그래서인지 의문이 많았다. 그는 솔직히 KM 그룹 일가 내부 역학 관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KM 그룹 일가 내부설이 너무 많아서 내막을 잘 알 수가 없었다.

‘하, 정말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수가 없네. 설마 최용욱 회장을 또 만나는 건가? 아니, 그게 더 확률이 높겠어.’

단단히 각오한 심진모 감독의 안색은 갈수록 더 좋지가 않았다.

심진모 감독은 자기 때문에 덩달아서 굳어 있는 촬영 스텝을 모른 척한 채 차량이 멈추자 제일 먼저 조심스럽게 내렸다.

우뚝 솟아 있는 KM 전자 본사 빌딩 바로 앞이었다.

그 앞에는 다행히 이미 연락을 받고 나와 있는 사내 안내원이 있었다.

정미선 역시 이미 사내 안내원이 나와 있다는 것에 놀랐다.

심진모 감독은 그제야 KM 전자 본사 건물 이곳 저것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본사 건물 앞에는 쭉 늘어서 있는 양복쟁이가 있었다.

젊은 사람은 아니었다.

최하 나이는 오십 대 초반이 될 정도로 나이가 제법 있었다.

근사한 정장을 한 채 사열해 있는 모습만 봐서는 어디 드라마에 나오는 경영진이나 다르지 않았다.

심진모 감독은 다른 일행처럼 분위기에 휩쓸려서 한쪽 구석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었다. 정미선 역시 크게 당황했다.

다행히 안내원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오늘 사내 발표 행사가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좀 많은 것 같은데요?”

“아, KM 전자만이 아니라 KM 그룹 계열사 임직원이 다 참석합니다.”

심진모 감독도 듣기만 하다가 고개를 갸웃했다.

“보통 그런 행사는 그룹 본사에서 진행하지 않습니까?”

“원칙적으로 그렇습니다. 하지만 이번 행사는 우리 최민혁 실장님이 진행하는 일이라서 KM 전자 본사에서 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까?”

“그만큼 우리 실장님이 KM 그룹에서 인정을 받고 있습니다.”

“…….”

여전히 고개를 갸웃한 심진모 감독은 힐끗 다른 일행을 쳐다보았다. 다들 쉬쉬하면서도 영문을 모르기는 매 한 가지였다.

다만 촬영 스텝 중에 한 사람이 ‘최민혁 실장’ 이야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어디서 들어본 사람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의아한 눈으로 사열해 있는 37명의 경영진을 쳐다보았다.

“KM 그룹 회장님을 기다리는 겁니까?”

“아닙니다.”

안내원도 고개를 갸웃했다. 그녀도 갑자기 일어난 일이라서 미처 대응을 못 했다.

애초에 이들 방문과 이번 행사 일정 시간을 맞추려고 한 것이 아니다.

이런저런 일로 오늘 강연 시간이 제법 조정되었기 때문이다.

심진모 감독은 영문을 몰라서 안내원의 뒤를 따르면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런데 때 마침 차량 한 대가 도착했다. 경비가 후다닥 뛰어가서 차량 뒷문을 열어주자 한 사람이 익숙한 모습으로 내렸다.

쭉 나열해 있는 경영진이 마치 조직 폭력배 집단이 보스를 만난 것처럼 일사불란하게 내리는 사람에게 허리를 숙였다.

어지간한 중견 그룹 사장단이 회장을 만난 것과 진배없는 모습이었다.

“……?”

하지만 심진모 감독은 영문을 몰라서 그 광경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상대는 아무리 많이 쳐주어도 22살을 채 넘지 못한 젊은 친구였기 때문이다.

그는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어서 정미선을 힐끗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미선은 자리에 우뚝 선 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미, 민혁아?!”

아들과의 만남 때문에 가볍게 흥분한 그녀로서는 상상도 못 한 전개였다.

다행히 작은 소리였지만 그 소리에 반응한 이는 바로 최민혁이었다.

그는 정미선을 보자 자신을 기다리는 경영진에게 가볍게 몇 마디만 한 채 정미선을 향해서 빠른 걸음으로 다가갔다.

“어머니, 정말 오랜만입니다.”

“저, 정말 민혁이구나!”

경악에 빠진 정미선은 쪼르르 달려가서 최민혁 손을 잡았다.

“맙소사 진, 진짜 민혁이구나.”

최민혁에게 인생 1회차를 합쳐서 가장 미안했던 사람이 바로 정미선이었다.

인생 2회차에 와서도 정신질환 때문에 어머니를 마주하지 못했다.

최훈열 전무 일을 정리하지 않고서야 오히려 정미선은 약점이 되기 때문에 참았다.

어느 정도 힘을 갖출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리고 드디어 정미선을 보게 된 것이었다.

복받친 감정을 주체 못한 최민혁은 눈물을 흘린 채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네. 저 맞습니다. 민혁입니다.”

“…….”

모자 상봉을 지켜본 다른 경영진이야 고개를 갸웃했지만 심진모 감독 일행은 달랐다.

그들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한 정미선의 아들이 KM 전자를 휘어잡고 있는 최민혁 실장이라는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맙소사, 최, 최 실장이 바로 정미선 씨의 아들이였어?!’

* * *

최민혁은 콜린스 매각설 이후에 갑자기 바빠진 KM 그룹 움직임 때문에 정신없이 움직였다. 다만 그는 다른 일과는 달리 정미선에게 연락을 받자 그 일을 우선순위로 잡았다.

예상 밖의 전개였지만 어머니와의 만남을 억지로 만들 생각은 없었다.

물론 오늘 KM 그룹 경영진 강연이 있었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차량에서 내린 후에 경영진 인사를 받으면서 정미선과의 만남만 생각했다.

그러다가 보게 된 정미선 모습.

한눈에 알아봤다.

최민혁은 경영진 인사를 내팽개친 채 정미선에게 다가갔다.

정미선이 달려와서 손을 잡자 이상하게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서울 내에서 만나려고 하면 고작 2시간이면 가능한 거리에 있었다.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이상에서는 정미선과 계속 거리를 두었다.

다행히 이제까지 일은 잘 풀렸다.

최용욱 회장조차 자신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최민혁은 이제는 힘을 가진 덕분에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정미선을 보게 되었다. 누구도 두 사람의 만남을 방해하는 이는 없었다.

바로 최민혁 자신이 원한 만남이었다.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최민혁은 새처럼 수다를 털어놓는 어머니 이야기를 묵묵히 듣기만 했다.

“세상에 정말 난 놀랐어.”

“아버님이 갑자기 찾아온 것이 이상하다 싶었는데, 다 이유가 있었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거니?”

쏟아지는 질문에 최민혁은 물론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바로 대답해 주지 않았다. 간단하게 대답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모자 사이를 끼어드는 이는 없었다.

생소한 최민혁 실장 모습 때문이다.

“…….”

심진모 감독은 숨조차 죽인 채 힐끗 주변을 돌아보기 바빴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경영진이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강연장 쪽으로 사라지는 모습에 정미선이 말한 아들이 그 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다행히 최민혁을 아는 이도 있었다.

바로 최재현.

“마, 맙소사, 서, 설마 KM 전자의 최민혁 실장?”

“재현 씨, 그게 누군데?”

“어? 모르세요? 망해가는 KM 전자 초대박을 터뜨려서 일약 억만장자가 된 재벌 3세잖아요. 주식의 신이라고 소문이 자자한 사람인데, 정말 모르세요?”

“아, 그 최 실장, 응? 그 말은 정미선 씨 아들이 최민혁 실장이었어?”

“저걸 보고도 모르겠어요?”

“하.”

“…….”

뒤늦게 상황 파악을 한 하이에나 촬영 스텝은 다들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들조차 악명이 자자한 최민혁 실장을 한 번씩은 들어봤기 때문이다.

단순히 억만장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온갖 이슈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특히 항공 마약 사건 인터뷰는 유명했던 것이다.

* * *

“어머니, 죄송해요. 오늘 회사에 중요한 일이 있어서 오래 있지는 못하겠어요.”

눈물을 글썽이는 정미선도 아주 바보는 아니었다.

“아니다. 괜히 회사를 찾아온 내가 잘못한 거지. 정말 고맙구나. 이렇게 건강하게 잘 커서. 난 내가 중앙지검에 수사받는다는 소리를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정확히는 당시 정미선은 충격을 받아서 다시 병원에 입원했다. 정신질환도 더 나빠져서 누군가를 만날 상황이 아니었다.

최민혁이 나서지 못한 것은 주치의 반대 때문인데, 주치의가 정미선 방문을 철저하게 막았기 때문이었다.

최민혁도 모든 문제의 근원이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는 힘을 갖춰야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을 알기에 오직 KM 전자에만 집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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