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10화 (310/1,021)

#310.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최대한 시간을 끌도록 하겠습니다.”

“좋네요.”

최민혁은 뒤늦게야 최문경 부회장이 뭔가 행동으로 옮길 것이라 확신했다.

‘하긴 지금까지는 너무 쉽게 갔어. 이제 첫째 큰아버지도 날 우습게 보지 않을 테니, 앞으로는 만만치 않을 거야. 그렇게 만만한 상대는 아니니까.’

* * *

천안 연수원 건설은 결코 공짜가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굳이 야당을 밀어준 것은 당연히 원하는 것이 있어서였다.

이를 명분으로 삼아서 증권감독원을 압박했다.

실제로 증권감독원은 사전 정지 작업으로 삼도 물산의 김재식 사장이 회사자금으로 주가 조작한 혐의를 검찰에 고발했다.

작년 한 해만 회사 자금 20억으로 30만 주를 매수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작한 혐의다.

증권감독원은 다른 한편으로 대명 증권 광범 지점도 같은 혐의로 고발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번 사건을 빌미로 해서 강남투자클럽 모임 회원도 검찰에 고발했다.

검찰은 이들을 모두 소환해서 조사에 착수했다.

증권감독원의 다음 움직임은 뜻밖에도 KM 전자와 벨린 투자였다.

다만 그들도 명확한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검찰에 KM 전자를 바로 고소할 수는 없었다.

증권감독원 직원이 이들 당사자를 불러 소환 조사를 시작한 것이었다.

최민혁은 원래 자신이 가려고 했지만, 이번에 부장으로 승진한 우영민이 직접 출두하겠다고 해서 내버려 뒀다. 대신에 짱짱한 안현수 변호사를 동행시켰다. 물론 뒤따르는 변호사는 세 명 더 있었다.

“조사는 별일 없었습니다.”

“괴롭히지 않던가요?”

“안 변호사님이 저를 대리한 덕분에 저는 그냥 구경만 했습니다.”

“분위기는 어때요?”

“딱히 우리 벨린 투자가 불법을 저지른 적은 없으니까요. 다만 몇 가지 신고를 누락시킨 부분이 있는데, 그건 벌금 내면 끝입니다.”

우영민 부장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위기가 닥치면 그 사람 실력을 알 수 있다는 말처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최민혁도 우영민 부장 능력을 잘 알았기에 피식 웃었다.

“KM 전자 주식 때문인가요?”

“네. 특히 문제 삼은 것은 과거 최두진 사장의 지분 매입 과정입니다. 그 과정에서 어떤 불법이 있지 않았나를 확인했습니다.”

“그래요?”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콜린스 매각설로 인한 정략 결혼설 때문에 첫째 큰아버지에게 반격을 당하니, 기분이 오히려 신선했다. 이런 맛도 있어야 대응하는 맛이 나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즉시 그 자리에서 박두영 부장검사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확인 좀 해주세요.]

[이거 곤란합니다.]

[딱히 무슨 대단한 정보를 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최두진 사장은 예상한 범주이니까. 다만 사람 마음은 모르니까. 그래서 부탁한 겁니다.]

[하아, 알겠습니다.]

확인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10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연락이 왔다.

[최두진 사장 쪽에서는 당시 거래가 별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때는 KM 전자가 정말 미래가 없었기에 매각했다고 증언했습니다.]

[그건 정말 뜻밖이군요.]

[뭐가 말입니까? 조사가 말입니까? 아니면 최두진 사장 말입니까?]

[둘 다죠. 아무튼, 협조 감사합니다.]

박두영 부장검사도 작정한 듯 말했다.

[최두진 사장 건은 이미 몇 차례 확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이 건을 파고드는 것은 실장님을 겨냥한 겁니다.]

[그렇겠죠. 저도 검찰이 과연 어떤 식으로 공격하는지 알고 싶은 것뿐입니다.]

[앞으로는 좀 조심해 주십시오. 실장님에 대한 말이 너무 많이 나오니까. 특히 특정금전신탁 문제 때문에 손해를 본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이상하군요. 전 특정금전신탁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DL 화재 측에서 정보를 흘리는 것 같습니다.]

[DL 화재라…….]

최민혁은 뒤늦게 김상구 회장이 최용욱 회장을 만난 이야기를 떠올렸다. 설사 자신을 의심하지 않더라도 최용욱 회장을 의심하고도 남았다.

‘김상구 회장이라면 그냥 입을 다물고 있지는 않았을 거야. 이쪽저쪽에 정보를 다 흘렸겠지. 설사 정보가 틀려도 상관은 없지. 어차피 날 압박할 수 있을 테니까. 더욱이 첫째 큰아버지가 그 정보를 들었다면 얼씨구나 했을 거야.’

그는 슬그머니 박두영 부장검사를 떠봤다.

[박 부장검사님에게 전해준 자료는 저도 다른 채널 통해서 받은 것에 불과합니다.]

[실장님!]

[네?]

[자꾸 이러실 겁니까?]

[아니, 정말 억울합니다. 설마 제보한 것으로 죄가 있다고 하실 겁니까?]

박두영 부장검사도 결국 하소연을 털어놓았다.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이 너무 튀니, 문제가 됩니다. 특정금전신탁만 해도 당장 이번 일로 보험업계는 막대한 손실을 보았습니다.]

[DL 화재 외에는 직접적인 피해를 본 기업은 없는 걸로 압니다만?]

[뒤에서 딜을 해서 그렇죠. 그것만 해도 돈이 제법 깨진 기업이 많습니다.]

[흠.]

최민혁도 혀를 찼다. 단순히 DL 화재만 생각했는데, 특정금전신탁과 관련이 있는 업종 대부분이 유탄을 맞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김상구 회장과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는 절호의 찬스네. 그래, 그럴 수 있지.’

박두영 부장검사도 처연한 어조로 최민혁에게 부탁했다.

[아니면 좀 적당히 해주십시오. 여러 채널 통해서 들어오는 이야기로는 실장님에 반감을 품은 사람이 너무 많습니다.]

[참고하죠.]

최민혁은 전화를 끊고 나서는 눈치만 보고 있는 우영민 부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어디에 전화를 한 것인지 눈치챈 얼굴이다.

“너무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시죠. 저도 보험이 있어야 하니까.”

“아, 그런 뜻은 아닙니다.”

“그런가요?”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최근 코스피 현황과 관련된 보고서를 살폈다.

사실 벨린 투자는 다른 때와는 달리 외부 시선을 끌 수밖에 없었다.

종합주가지수가 1,000을 회복하면서 급등세를 보이는 와중에 유독 두드러진 투자로 막대한 수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의 증시 안정 대책에 대한 우려감 때문에 종합주가지수가 밀리는 상황에서도 KM 전자가 상승세를 이어갔기 때문이다.

벨린 투자가 KM 전자 대주주 중의 하나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니 그 수익 규모에 증시 전문가도 시선을 모을 수밖에 없었다.

최민혁조차 우영민 부장에게 보고를 듣고 나서는 혀를 내둘렀다.

‘2,700억이라.’

주가 1,000선 지점으로 가지고 있던 모든 주식과 부동산을 정리하면서 벨린 투자가 보유한 현금이 무려 2,700억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KM 전자 주식을 뺀 금액이었다.

과거 2억, 10억으로 시작한 투자가 이 정도 규모로 늘어났다.

튀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어쩐지 할아버지가 이전과는 달리 예민하게 반응하더라.”

하지만 우영민 부장은 최민혁 앞에서 연일 찬사를 털어놓았다.

“투자의 신입니다!”

단 한 번의 손실을 보이지 않았다.

최민혁이 준 가이드라인은 금광이었다.

우영민 부장도 한때는 회의한 적이 있었지만, 이제는 철저한 최민혁 추종자가 되었다.

“그런데 우리 KM 전자 지분이 너무 많네요.”

“그게…….”

돈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KM 전자 지분을 늘리다 보니, 지금은 많아도 너무 않았다.

시장에서 돌고 있는 지분과 외국인 지분을 다 합치면 고작 30%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주식 대다수는 과거 1,500원 시절에 매집했다.

최민혁도 잠깐 고민했다. 경영권 방어를 생각해도 지금 가진 지분은 너무 많았다.

“말이 나옵니까?”

“이쪽저쪽에서 최근 말이 계속 나오는 것은 사실입니다.”

“딱히 불법을 저지른 적이 있나요?”

“말이야 만들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외국인 투자 특별법 이야기까지 나오는 상황입니다.”

“그건 아마 이루어지기 힘들 겁니다.”

“네?”

최민혁도 자세한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도 한 가지를 고민했다. 바로 IMF다. 아무리 KM 전자 상승세가 좋다고 해도 IMF 영향을 안 받을 수가 없다. 그렇다면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주식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다.

‘더욱이 콜린스 매각과 MP3 플레이어 수정 작업 사이에 시간 텀이 있어. 결국, 그 기간이 조정장이 올 수밖에 없어.’

“…십만 주, 아니 오십만, 아, 백만 주 정도는 시장에서 정리할 수 있겠죠?”

툭 나온 말.

하지만 그 말의 의미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KM 전자 백만 주는 결코 단순한 백만 주의 의미가 아니었다.

“네?”

“문제가 되면 물량을 좀 줄여도 됩니다. 아마 코스피 상승세 때문에 장이 좋아서 몰리는 시기가 있을 겁니다. 그때 100만 주 내에서 물량을 정리해 보세요.”

“…매매가는 어느 정도로 할까요?”

“15만 원 정도가 좋겠네요. 주가가 항상 오르기만 하지 않을 겁니다. 큰 폭의 조정장이 시작되면 주가는 내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괜찮을까요. 이미 아는 세력은 다 아는데, 대주주가 지분을 파는 것을 이상하게 볼 수도 있습니다.”

최민혁은 최근 콜린스 매각설 이후에 어머니 정미선을 둘러싸고 시끄러운 집안 분위기를 떠올리면서 피식 웃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합니까?”

우영민 부장은 문득 KM 전자 실적을 떠올렸다. 그리고 KM 전자 내에 보유한 현금성 자산이 아닌 현금 보유고를 떠올리고는 쓰게 웃고 말았다.

“아닙니다.”

아니, 그는 그보다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실장님, 한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뭐죠?”

“콜린스 매각설은 사실입니까?”

“두고 보면 알 겁니다.”

우영민 부장도 이번 안건에 대해서는 최민혁 눈치를 계속 보면서 말을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고 말았다.

“아, 하나만 더 묻겠습니다. 그게 말입……. 혹시 최 실장님이 오성 전자와 정략결혼설이 있던데, 그것은 사실입니까?”

최민혁은 잠깐 우영민 부장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무안한 우영민 부장이 결국 시선을 피하고 말았다. 그 역시 난감했다.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게 단순히 남의 사생활로만 치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실장님과 무려 오성가와 사이에 혼사 문제이니까요.”

“그것도 한 번 두고 봅시다. 지금은 주식 매각만 신경을 써주세요. 아, 차라리 그놈의 정략 결혼설을 이용해서 주가나 더 올리죠. 다만 괜히 문제 만들어서 주가 조작 협의로 조사받지 않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 * *

최근 코스피 1,000 돌파는 그 어느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블루칩 가운데 실적이 낮은 건설업종은 주춤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종목이 괄목한 상승으로 이루어졌다.

흥미로운 것은 한창 구조조정 때문에 말이 나오는 KM 그룹 주가 큰 폭을 올랐다는 점이다.

그중에 눈에 뜨이는 종목이라면 KM 산업이 +11%를 기록하면서 무섭게 치솟아 올랐다.

하지만 역시 KM 그룹의 주인공은 KM 전자였다. 10만 원대를 횡보하던 주가가 결국 14만 원을 돌파하나 싶더니, 15만 원까지 가볍게 넘어갔다.

최민혁 실장과 관련된 정략결혼설 때문이었다.

이 혼사는 콜린스 매각설과 연루되면서 무수히 많은 설을 만들어냈다.

결국 KM 전자의 기술과 오성 전자의 자본이 결합할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 설 덕분에 KM 전자와 오성 전자가 동시에 상승세를 이어가면서 강세를 이끌어냈다.

거래량과 거래대금이 폭주했다.

그런데 이 시장을 주도한 것은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었다.

바로 외국인 투자자였다.

벨린 투자의 우영민 부장도 기회가 왔다가 판단하자 장내에서 주식을 조심스럽게 매각했다. 보통은 주식 매도 물량이 늘어나면, 주가 상승세가 떨어져야 하지만 오히려 더 늘어났다.

3일 내내 이어진 물량은 모두 100만 주.

평균 매매 가격은 15만 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과거 15억에 불과하던 주식 대금이 무려 1,500억이나 되었다.

최민혁도 뒤늦게 이 보고를 받자 우영민 부장을 찾았다.

“수고했습니다.”

“정말 믿기지 않습니다. 15억 투자금이 1,500억이나 되다니.”

우영민 부장도 기계적으로 주식을 정리하기는 했다.

그런데 막상 결과만 놓고 보니, 수익이 장난 아니었다.

무려 100배 수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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