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03화 (303/1,021)

#303.

“할아버지 자존심은 끝내주죠. 괜히 좋은 분위기에 제가 끼면 또 할아버지 마음이 복잡할 겁니다. 본인 스스로 결정해 사과해서 잘 해결 중인데, 문제를 악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그랬군요.”

김명준 과장은 복잡한 고심에 빠진 최민혁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가 이제까지 봐왔던 모습과는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최민혁은 따가운 시선에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일은 정말 잘되었어.’

하지만 그는 곧 인상을 찡그리고 말았다.

‘설마 어머니가 정말 내 중매를 밀어붙이는 것은 아니겠지?’

“아, 그보다 심진모 감독에 대해서 한번 알아보세요.”

“알겠습니다.”

그는 문득 이번 영화 ‘하이에나’에 인생 1회차 기억을 떠올렸다. 영화 자체 평가는 좋았다. 그런데 심진모 감독 뒷이야기가 문제였다. 비록 탁월한 평가를 받았지만 배우는 좀 달랐다.

최민혁은 밥차가 들어가기 전에 있었던 미묘한 촬영장 분위기를 떠올렸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한편으로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하자 또다시 피식 웃고 말았다.

‘어머니는 조연이라서 별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측했는데, 아닐 수도 있어. 그렇다고 내가 끼어들기에는 모호한데, 고민스럽네. 일단 상황을 알아보고 나서 결정해야겠어.’

* * *

최용욱 회장의 방문은 심진모 감독에게도 큰 충격을 줬다.

심진모 감독도 정미선이 재벌가 쪽과 결혼했다는 것을 들었지만, 자세한 내막까지는 몰랐다. 그는 다만 촬영 중에 정미선이 정식으로 결혼하지 않아서 첩에 가깝다는 것까지 알았다.

심지어 남편이 사망했다는 것까지 알자 정미선이 크게 부담스럽지는 않았다.

실제로 정미선 남편 최병문은 이미 죽었다. 정식으로 결혼한 것도 아니었는데, 정식 처인 김미숙과 이혼한 후에 혼인신고를 하기 전에 최병문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병문 아버지 최용욱 회장이 방문했으니.

결국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다른 곡절이 숨어 있다는 이야기다.

“큰일 날 뻔했다!”

물론 최재현도 뒤늦게 이 사실을 알자 크게 당황했다.

“가, 감독님, 앞으로 어쩔 겁니까.”

“어쩌고 말고가 없잖아. 딱히 정미선에게 사고를 친 적이 없어!”

“아, 그거야 그렇지만…….”

다행이라면 오늘까지 최재현이 연기를 빌미 삼아서 괴롭힌 것은 김승연이었다.

스토킹이라기보다는 영화 몰입도를 최대한 높이기 위해서 정신적으로 공격했다. 말과 행동을 통해서 정신적으로 갈궜다.

그런 고통을 경험한 김승연은 ‘하이에나’ 작품에 더 몰입했다.

그게 심진모 감독이 원한 그림이었다.

문제는 정미선이 자꾸 김승연을 싸고돌면서 예상과는 다른 상황이 전개되었다.

경고 선에서 손을 쓰려고 한 시점이 오늘이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정미선 씨는 앞으로 조심해. 괜히 사고 쳐서 문제를 만들지 마. 비록 KM 그룹이 한국 대기업에는 못하다고 해도 힘이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 * *

심진모 감독은 최용욱 회장 압박에 겁먹어서 정미선에게 딴짓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만약 명성이 있는 감독이라면 다를 수도 있지만 이제 갓 데뷔작을 찍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정미선에게 잘 보이는 것이 오히려 최선이었다.

촬영장 분위기는 최소한 정미선에게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정작 문제가 된 것은 바로 최재현의 연기다.

심진모 감독이 정미선 때문에 김승연 연기를 몰아붙일 수가 없게 되자 최재현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쉽게 말해서 군대 선임병이 후임병을 갈구는 것처럼 괴롭힌 것이었다.

김승연 심리 연기를 기준으로 최재현 연기를 하나씩 쪼았다.

갈굼을 당하는 최재현이 불만이 많았지만 대안이 없었다.

그 역시 심진모 감독 성향을 이번 촬영을 통해서 알았기 때문이다.

불행히도 감정선을 제대로 안 최재현은 심진모 감독 갈굼에 따랐다.

그는 정미선를 따라다니는 경호원이 KM 전자에서 파견되었다는 것과 그들 입을 통해서 최용욱 회장에게 보고가 올라간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심진모 감독조차 눈치를 보는 상황이라서 싫은 내색을 하기도 힘들었다.

결국 정미선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고, 자연스럽게 김승연도 한숨 돌렸다. 특히 김승연은 정신적인 고통에서 벗어나서 겨우 안정을 찾았다.

최민혁은 파견된 경호원을 통해서 김명준 과장에게서 자세한 내막을 듣자 정미선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 스텝 말은 믿을 수가 있습니까?”

“본인 자신도 심 감독이 선을 넘었다고 생각해서 불만이 많았다고 합니다. 다행히 사모님은 영화에서 비중이 높지 않아서 처음부터 예외였습니다. 그런데 사모님이 김승연 편을 들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최 회장님이 그 부분에 대해서는 따로 경고까지 했습니다.”

“그렇다면 굳이 제가 끼어들 여지는 없군요.”

“당장은 그렇습니다.”

최민혁도 아직 미수범인 심진모 감독을 건드릴 수가 없었다. 거기다 ‘하이에나’는 상업적으로 결과가 나쁜 편은 아니다.

이제 다시 연예계에 입문한 정미선에게는 좋은 기회였다.

‘내가 다시 새로운 영화에 넣어주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야.’

좋은 영화라고 해서 감독이 괜찮은 것도 아니고, 배우와 맞는 것도 아니다. 괜히 정미선을 위한다고 무리한 행동을 했다가 오히려 엉뚱한 문제를 만들 확률이 높았다.

중요한 것은 인생 1회차에서 우여곡절을 경험하면서 정미선은 나름 좋은 평가를 받는다는 점이다.

그는 결국 정미선 영화 문제는 이 정도에서 결론 냈다. 이보다 최용욱 회장의 갑작스러운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다행히 김명준 과장은 뒤늦게 한 가지 정보를 확인했다.

“할아버지가 김상구 회장과 만났다고요?”

“네. 요트에서 조용히 만나서 이야기한 터라 자세한 내막까지는 모릅니다. 그런데 그 일이 잊고 나서 최 회장님이 사모님을 찾아갔습니다.”

“할머니가 왜 스토커처럼 계속 전화하나 했더니, 시간상 맞군요.”

최민혁은 혀를 찼다. 돌아가는 상황이 정말 어이가 없었다. 자신이 시작한 콜린스 매각설. 결국 그 문제가 돌고 돌아서 지금 사태를 만들었다.

그는 그제야 DL 화재가 최용욱 회장과 남수현 변호사를 동시에 공격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송 때문이겠죠. 가만 요즘 소송 분위기는 어떻게 돌아갑니까?”

김명준 과장은 슬쩍 한 걸음 물러났다.

따가운 시선을 받은 안현수 팀장이 넌지시 입을 열었다.

“최근 언론에서 남수현 변호사를 공격해서 상황이 좋지는 않습니다.”

“언론이라면, 결국 DL 화재 측에서 손을 썼다는 말이군요.”

“…특히 전 동부지검장으로 있을 때 대기업 소송건에 대해서 편의를 봐준 적이 있는데, 그 사건을 걸고넘어지고 있습니다.”

무현 화학과 HH 종합 화학의 특허 분쟁과 관련된 소송에서 HH 종합 화학이 무죄 판결을 받았다. 그런데 문제는 HH 종합 화학이 소송 과정에서 형사 소송, 민사 소송을 비롯한 각종 편법을 동원한 것이었다.

덕분에 해당 기업은 자금 압박을 심하게 받았고, 결국 도산하고 말았다.

이 소송 과정에서 전 동부지검장이었던 남수현 변호사가 HH 종합 화학 편을 들어줬다는 뉴스가 대대적으로 보도된 것이었다.

최민혁은 눈살을 찌푸렸다.

“남수현 변호사가 그런 일까지 했다는 생각이 안 드네요.”

“정확히는 HH 종합 화학에서 일했던 이가 나와서 차린 회사가 무현 화학입니다. 팀이 고안한 회사 기술 일부를 빼돌린 셈입니다.”

“그 말은 특허권이 HH 종합 화학에 있었다는 말입니까?”

“회사 기술을 이용해서 특허를 내고, 이를 기반으로 창업한 겁니다. 그런데 언론을 이용해서 마치 HH 종합 화학이 강탈한 것처럼 밀어붙였습니다.”

최민혁은 대충 피해자 코스프레를 무현 화학에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즉 언론에서는 무현 화학의 그런 점을 생략한 채 정작 HH 종합 화학이 무조건 나쁜 놈이고, 그 일을 지휘했던 이가 남수현 변호사로, 그를 악당으로 몰고 가고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DL 화재 반격이 만만치 않네요. 가만 그러면 남수현 변호사는 뭘 하고 있습니까?”

“그게 크게 신경 쓰는 눈치는 아닙니다. 유죄를 결정하는 것은 판사가 하는 일인지, 언론이 하는 것이 아니라고만 합니다.”

“맞는 이야기기는 한데…….”

그는 꼬장꼬장한 남수현 변호사 성정을 떠올리면서 눈살을 찌푸렸다. 남수현 변호사 말대로 소송은 증인과 증거가 있는 이상 질 수가 없다.

‘문제는 그 사실을 언론이 조작한 가짜 뉴스 때문에 사람들이 알 수가 없다는 거야. 설사 추후 소송에 이긴다고 해도 남수현 변호사의 악명을 지우지는 못해.’

최민혁도 원래는 이 문제를 극단적으로 몰고 갈 생각은 없었다. 이미 남수현 변호사에게 이 일을 맡긴 이상 지켜볼 생각이다.

괜히 일을 키우면 지금처럼 할아버지가 이 일에 끼어들고 지저분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DL 화재 하는 짓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더욱이 김명준 과장이 넘겨준 보고서를 보면 DL 화재가 벌써 이번 일의 타격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김희찬 부사장의 발 빠른 행동 때문이다.

‘할아버지에게 손을 쓰면, 이 일이 쉽게 해결될 거로 생각하나 봐. 아마 검찰 쪽을 이용해서 압박하는 것을 막으려고 한 것 같아.’

이렇게 진행되면 최민혁 자신이 의도한 계획과는 또 달랐다.

“조 팀장님을 불러주세요.”

* * *

최민혁은 결국 조성돈 팀장 보고를 받아서 프로젝트 현황을 다시 확인했다. 대다수 일은 순조롭게 잘 진행되었다.

음원 녹음 역시 약간의 잡음이 있기는 하지만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안 좋은 일도 있었다.

“냅스트 성장이 느려진다라…….”

조성돈 팀장도 이제는 최민혁 의도를 알아서인지 난감한 얼굴이었다.

“느린 인터넷 속도에도 MP3를 좋아하는 사용자 수가 급증했다. 이들 중심으로 냅스트 시장이 크게 성장했지만, 미국 전역으로 퍼지는 속도는 점점 둔화하고 있습니다.”

극악한 미국 인터넷 속도를 참을 수가 없는 지역에서는 MP3를 냅스트로 내려받다가 포기하는 이들이 속출했다.

심지어 늘어난 냅스트 사용자 수도 문제였다. 이들 숫자가 늘어날수록 인터넷 대역폭을 더 잡아먹어서 상황이 나빠졌다.

결국 인터넷 서비스 업체에서 이 문제에 손을 쓰기 시작했다.

사용자 불만은 더욱 커져만 갔지만 지금 인터넷 속도로는 악순환만 계속될 뿐이다.

이 문제는 결국 인터넷망 확장이 답이다.

“결과적으로 하루 이틀 걸릴 일이 아닙니다.”

가장 큰 문제는 적은 사용자 수다.

“인터넷 사용자 미국 가구 수는 이제 겨우 400만을 돌파했습니다. 100% 이상 폭발적인 증가 비율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한계가 존재합니다.”

“…….”

‘적어도 1년은 더 필요하다는 이야기인가?’

특히 MP3 때문에 원래 성장보다 200만 가구가 더 증가했지만, 최민혁은 그 숫자에 만족하지 않았다. MP3에 대해서 사용자가 거리감을 느끼지 않으면 더 많은 사용자 수가 필요했다.

‘…그래서 MP3 시장이 2년 후에 생겨났고, 몇 년이 더 지나야 폭발적으로 증가했구나. 문제는 역시 시장이야.’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다른 이야기도 했다.

“미국을 시작으로 일본과 아시아 쪽에도 콜린스 주문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굳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겠죠.”

최민혁은 입맛을 다셨다. 그 역시 아예 없는 인터넷 시장 자체를 만들 수는 있어도 그 속도 자체를 끌어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MP3의 출시 일정을 몇 개월 더 보류한다면 추가적인 기능을 더 넣을 수도 있다.

‘어차피 스마트폰 시장을 선도할 기술을 더 선점한다면 차라리 그게 더 나은 기회일 수도 있어.’

그렇다면 이번 소송을 이대로 묻을 이유는 없었다.

“남수현 변호사에게 만나자고 전해주세요.”

* * *

최민혁은 남수현 변호사를 한적한 한정식집에서 만났다.

그는 남수현 변호사와 지난 이야기를 가볍게 한 후에 지금 상황에 대해서 물어봤다.

그런데 남수현 변호사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괜찮습니다. 굳이 실장님이 나서지 않는 것이 오히려 도와주는 겁니다.”

“DL 화재 때문입니까?”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습니다. 만약 실장님이 직접 나서면 일이 더 커질 겁니다. 그러면 제 입장이 최악이 됩니다. 그리고 그런 싸움은 KM 그룹에도 안 좋습니다.”

“하지만 지금 남수현 변호사님은 억울한 누명까지 뒤집어쓰고 있지 않습니까. 설마 이대로 계속 당하기만 할 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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