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300화 (300/1,021)

#300.

최용욱 회장은 자기 손자 음모론의 배후라는 암묵적인 장 실장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정말 민혁이가 이 일에 관련된 거야?”

“아직 파악 중입니다.”

“민혁이에게 전화는 해봤어?”

“직접 만나봤습니다. 그런데 모호한 태도를 고수합니다.”

장승일 실장은 이미 과거에 수차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지만, 최민혁이 이 일의 배후라는 것을 확신할 수가 없었다.

“후유,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일단 김 회장을 만나보면 알겠지.”

‘설마 이번 일의 배후가 나라고 나오지는 않겠지?’

* * *

김상구 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중형급 요트에 최용욱 회장을 초대했다.

최용욱 회장은 낚시 물품을 준비하기는 했지만,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최근 김상구 회장은 마치 최용욱 회장이 보인 태도와는 달랐다.

마치 전쟁을 하던 두 세력이 휴전 제안을 할 것과 같은 태도를 보였다.

“날씨가 참 좋습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은 참으로 좋았다.

최용욱 회장은 낚싯대 앞에 앉아서 힐끗 김상구 회장을 쳐다보았다.

“도대체 무슨 일로 이런 자리에 부른 겁니까?”

김상구 회장도 한창 고민했다. 그 역시 최훈열 전무 소송 일을 기억했다. 최용욱 회장은 당시 일을 잊지 않고 있을 것이다.

아마 기회가 생긴다면 보복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지금 이 시기는 DL 그룹도 상황이 마냥 좋지는 않았다.

서서히 계열사를 늘리면서 자금을 소진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설사 이번 사건 배후에 최민혁이 있다고 해서 내색하기도 쉽지 않았다.

“뭐 일이 있어야 이렇게 만납니까. 사돈끼리 서로 친목을 도모하는 겁니다.”

“김 회장님답지 않은 말입니다.”

“허허, 제가 평소에는 좀 달랐습니까?”

김상구 회장은 너털웃음을 터뜨리면서 여유를 한껏 보여주었다. 시간이 남아도는 한량 같은 모습이었다. 그건 이전에는 보여주지 않던 모습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꿍꿍이지?’

최용욱 회장은 영문을 몰라서 일단 낚시대나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불행히도 입질이 별로 없었다.

선장은 잔뜩 긴장했다. 자리가 영 좋지가 않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다른 곳으로 배를 좀 옮기겠습니다.”

김상구 회장이 손을 흔들었다.

“아니, 되었네. 자네는 안쪽에 가서 좀 쉬든가 해.”

“…알겠습니다.”

선장이 물러나자 다른 수행원도 조용히 배 한쪽으로 물러났다.

김상구 회장은 남은 비서 팀에게서 서류를 받아서 최용욱 회장에게 던졌다.

“한번 보십시오.”

“이게 뭡니까?”

“보면 알 겁니다.”

최용욱 회장은 영문을 몰랐다. 하지만 김상구 회장의 이상한 태도가 이 보고서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니, 이 무슨…….”

하지만 그는 자라처럼 입을 다물었다.

보고서 내용이 장승일 실장이 보고한 자료와 비슷했다. 아니, 그 이상이다. 좀 더 구체적이면서 상세했다.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DL 그룹에서 일어난 일과 관련이 있다.

문제는 그 일에 KM 그룹도 자유롭지 않았다.

남수현 변호사는 외부인이라고 치자.

그런데 얼마 전에 그룹 법무 팀을 나선 안현수 팀장은 완전히 타인이라고 하기 힘들었다.

하물며 그가 다시 옮긴 직장이 벨린 투자였으니.

더 웃기는 것은 이 일의 최종 보스에 최용욱 회장이 행간으로 거론됐다.

‘하, 기가 막혀서.’

최용욱 회장은 놀라지 않았다. 실상 경제계 모임에 나가면 자신을 무시하던 이들조차 자신에게 함부로 말하지 않았다.

최민혁이 알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한 일 때문에 다른 기업도 몸을 사렸다.

특히 오성 전자는 콜린스 매각설 이후에 완전 저자세였다.

최용욱 회장은 다만 정리하기로 했던 벨린 투자 현황을 보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그 벨린 투자가 멀쩡하게 돌아갔다. 아니 그는 벨린 투자 성장 보고서를 보면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이, 이럴 리가 없는데…….”

KM 그룹은 한창 구조조정에 정신이 없는데, 이미 자금을 다 정리한 벨린 투자에 대해서 신경을 쓸 리가 없었다.

최민혁이 벨린 투자를 알아서 정리하는 것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 최용욱 회장이 놀라다 못 해서 경악하지 않으면 그게 더한 일이었다.

모른 척하면서도 최용욱 회장 모습을 감시하던 김상구 회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도 최용욱 회장이 보고서 내용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문을 모르겠군.’

패닉에 빠진 최용욱 회장은 정신없이 남은 보고서 내용을 확인했다. 그는 그제야 이번 DL 그룹 소동에 최민혁, 김재열, 김현탁 사장, 김용만 전무가 관련된 것을 깨달았다.

증거는 없었다.

그런데 돌아가는 상황만 잘 보면, 세 사람이 먼저 최민혁을 건드렸다.

까칠한 손자 최민혁이 한 방 맞고 그냥 있을 리가 없었다.

‘보복했겠지. 하지만…….’

일어난 결과가 황당했다. 자금이 그렇게 탄탄한 DL 그룹이 전례가 없는 단기 자금경색을 경험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김상구 회장은 물끄러미 최용욱 회장 안색을 쳐다보았다. 계속 변해가는 그의 얼굴을 보고서야 이번 일을 모른다는 것을 깨달았다.

‘허, 믿을 수가 없군. 설마 이번 일은 최민혁, 그놈 혼자 짓이었다는 말인가?’

그가 굳이 최용욱 회장과 이런 자리를 가진 것은 배후가 최용욱 회장이 아닌가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확신하지는 못했다. 얼마든지 표정 연기를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제가 왜 사돈어른을 만나자고 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조금 당황스럽습니다.”

“아니, 그런 이야기를 듣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과거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앞으로 일이 문제입니다.”

최용욱 회장도 정신이 반쯤 나가서 보고서를 가지고 언급하지 않았다.

“무슨 제안을 하고 싶은 겁니까?”

“일단 이번 일의 원인을 먼저 정리하고 싶습니다.”

“지금 민혁이가 이번 일의 배후라고 의심하시는 겁니까?”

“솔직히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송 배후에 최 실장이 연루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가정하면, 어떻게 하자는 겁니까?”

“이미 진행된 소송이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정확히는 김상구 회장도 최민혁이 연루된 증거가 없어서 소송 문제를 걸고 넘어가지 않았다.

“앞으로 공정위나 검찰 쪽에 더 손을 쓰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이야기에 최용욱 회장은 어이가 없어서 한동안 웃고 말았다.

“허허, 아니, 민혁 그 녀석이 지금 정부 공무원을 동원해서 DL 그룹을 압박한다는 말입니까?”

예상과 전혀 다른 최용욱 회장 반응에 김상구 회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확실치는 않지만 지금 돌아가는 상황이 그렇습니다. 그러니 이 정도에서 그쳐달라는 겁니다. 그렇게 해주면 이번에 일어난 일에 관해서는 책임을 묻지 않겠습니다.”

“그러면 그쪽에서 민혁 그 녀석을 건드리는 문제를 그냥 넘어가자는 겁니까?”

“…끙, 최 회장님, 어차피 이번 일로 더 큰 피해를 본 것은 우리 쪽입니다. 재열이 이미 구속되었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까?”

최용욱 회장도 반박하지 않았다. 아니, 그는 힐끗 김상구 회장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아는 그의 성격이라면 절대로 이번 일을 그냥 둘 사람이 아니었다.

‘민혁이, 그녀석이 부담스러운 건가? 하긴.’

그는 힐끗 보고서를 다시 살폈다. 김재열 구속을 시작으로 일어난 일은 중간마다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많았다.

갑툭튀로 튀어나온 성 접대 별장만 해도 생각보다는 많은 이들이 엮여 있었다.

‘도대체 민혁이 이놈은 이런 정보를 어떻게 안 것일까?’

더 큰 문제는 역시 특정금전신탁에 대한 정부 반응이었다. 정부가 다른 일과는 달리 이 문제만큼은 다른 대기업 문제와 엮어서 패키지로 처리했다.

국회도 이번 신탁제도 문제 때문에 난리가 났다. 그들이 특별법 제정을 서두른 것이다. 이 일에는 최민혁이 연루되지 않았다.

그래서 최용욱 회장도 선뜻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김 회장은 내가 이번 일의 배후라고 생각하는 건가? 그렇군. 그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한 건가.’

최용욱 회장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런데 DL 그룹과 사생결단할 것이 아니면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았다.

‘아쉽네. 민혁이 짓이란 정황증거만 없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차갑게 굳어간 김상구 회장의 눈빛.

최용욱 회장도 탄식했다.

“저도 이 정보를 이제 알았습니다. 이 자리에서 확답하기는 그렇지만 좋은 방향으로 결정하겠습니다.”

김상구 회장은 그제야 손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불문에 부쳤으면 합니다.”

“그러지요.”

그리고 실상 최민혁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그는 애초에 남수현 변호사에게 이 일을 맡긴 것 자체가 더 이상 손을 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남수현 변호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도 아니었다.

* * *

최용욱 회장은 장승일 실장에게 이번 일에 관한 조사를 다시 진행하게 했다.

장승일 실장은 역시 추가 정보를 얻자 DL 그룹 보고서 이상의 결과를 도출했다. 그는 꼬박 밤을 새워 만든 보고서를 들고 최용욱 회장 저택을 찾아갔다.

“…벨린 투자는 사실이었군.”

“저도 최민혁 실장님이 벨린 투자 지분을 다 소유한 것을 보고는 더 조사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자네 탓을 하기 힘들지. 고작 5명만 남겨두고 다 정리했으니까.”

그랬다.

최용욱 회장이 벨린 투자에 손을 뗀 이후에 자금도, 인력도 다 떠났다.

완전 정리 순서였던 벨린 투자였기에 장승일 실장도 더 신경 쓰지 않았다.

이후에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었지만 벨린 투자는 KM 그룹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최민혁 실장이 손을 쓴다고는 알았지만, 그 이후 실적은 잘 몰랐다.

더욱이 그때는 이미 최민혁이 콜린스 신화를 이룩하면서 시선을 끌었다. 벨린 투자는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벨린 투자가 서서히 명성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DL 그룹은 벨린 투자에 대한 아무런 선입견이 없었기에 원점에서 조사했고, 벨린 투자의 실적을 뒤늦게야 밝혀낸 것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더 황당하게 생각한 것은 벨린 투자 자금의 시드 머니의 출처였다.

“하, 진짜 할 말이 없구나. 투자의 신도 울고 갈 솜씨야.”

“죄, 죄송합니다.”

“아니, 자네가 그렇게 사과할 필요는 없어. 이번 일은 민혁, 이 녀석이 워낙에 풍파를 자주 일으켜서 한 일이니까. 김 회장도 이번 일이 아니었다면 벨린 투자 정체를 몰랐을 거야.”

“…….”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장승일 실장은 새삼 보고서 내용을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 역시 이번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몇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최용욱 회장은 추가된 보고서에서도 그 의문을 찾지 못하자 혀를 내둘렀다.

“민혁이 이 녀석은 정말 대단하구나.”

단순한 감탄이 아니었다. 보고서 내용을 확인하고서는 질려 버렸다. 손자 최민혁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상대를 짓밟아 버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

특히 특정금전신탁을 이용한 공격으로 단순히 DL 그룹만이 아니라 다른 대기업과의 갈등을 부추긴 점에서 그 의미가 있었다.

‘…무섭네.’

최용욱 회장은 이제 자신의 손자가 오히려 부담스러웠다.

DL 그룹을 상대로 보여준 최민혁의 기괴한 전략은 실로 놀라웠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최민혁 행보를 처음부터 다시 돌아보았다.

KM 전자에 입사한 이후에 행적과 그 이후에 일어난 일 위주다.

“혹시 모르니까. 민혁 이 녀석에 대해서 다시 한번 조사해 봐.”

“…알겠습니다.”

* * *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 행적을 확인할수록 손자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그는 최민혁 일이라면 이제 그 어떤 사소한 것도 간과하지 않았다. 다만 그러면서도 송도연 일에 대해서는 넘어갔다.

따라서 평소 이영주 여사가 하는 말을 간과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안건민 회장의 박 여사가 계속 혼사 이야기를 한다니. 그 일은 이미 없던 것으로 하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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