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98화 (298/1,021)

#298.

최민혁은 절묘하게 그것을 기회 삼아서 반격한 것에 불과했다.

황당한 것이 그 반격에서 김현탁 사장이나 김용만 전무만이 아니라 자신도 유탄을 맞았다.

물론 그 반격이 최민혁 짓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재열이 사건에 최민혁 실장이 끼어들었다는 증거는 없고?”

“네. 그것 때문에 김용만 전무도 화만 삭이고 있습니다.”

김용만 전무 처지에서는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거기다 김재열이 망나니짓을 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번 일도 그 연장선이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최민혁 실장을 찾아가서 ‘네놈 짓이지!’라고 말하면, 최민혁 실장이 ‘어, 그렇습니다.’라고 순진하게 말하기보다는 ‘증거는 있습니까?’ 라며 난리를 칠 것이 분명했다.

김재열이 이제까지 친 사고는 수도 없이 많다. 재벌 3세 망나니의 정석을 보여주었다. 그렇기에 김용만 전무도 김재열 말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DL 화재 사건 배후에 한정 로펌이 있고, 이 회사가 벨린 투자 안현수 변호사와 연결되어 있다 라니.”

김희찬 부사장이 바보가 아니다. 두 가지 일이 따로 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더욱이 최훈열 전무를 통한 KM 전자 인수 시나리오도 잘 알았다. 애초에 이 계획 원안을 설립한 이가 김상구 회장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지난 KM 전자 일까지 다 포함해서 이번에 보복한 건가?’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다. 그런데 최민혁이 KM 전자에 대한 일로 DL 그룹에 앙심을 품었다면 이번 일에 대한 동기도 설명된다.

심지어 김재열을 감방에 보낸 것까지 말이다.

‘둘 사이는 처음부터 안 좋았으니까.’

가끔 가족 모임이 있을 때면 김재열이 유독 최민혁을 괴롭힌 것을 잘 안다. 당시는 서열 싸움이라서 은근히 방조했다.

아니, 다 좋다고 하자. 김재열 행동이 성공만 했다면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실패했다는 거다. 그것도 크로스 카운터를 맞았다.

김상구 회장이 이 일을 안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참담하군.’

가볍게 생각할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지금 DL 그룹은 산적한 일이 많다. 당장 물류 산업에 대한 투자도 진행해야 한다.

물론 이 일도 이번 DL 화재 자금경색 때문에 보류되었다. 그렇다고 해도 차선책이 필요했다. 김상구 회장이 원하는 답변 중의 하나다.

창백하게 굳어 있는 자식 김현탁 사장 모습에 혀를 찼다.

“좋다. 그렇다고 하자. 그러면 사전에 이미 이 일을 알았다는 이야기인데, 보복으로 진행하던 일은 어떻게 되었냐?”

“그게 KM 전자 노조를 이용해서 안에서부터 흔들 생각이었는데, 실패했습니다.”

“고작 한 번 시도하고 난 후에 그만뒀다는 소리냐?”

“그게 별장 성 접대 사건이 터지면서…….”

김희찬 부사장은 그제야 왜 이 사태가 생겼는지 확신했다. 노조를 이용해서 분탕질한 이가 김재열과 김현탁이었으니, 최민혁이 바로 보복한 것이다.

‘어쩌면 최훈열 전무, 김현우 상무, 이일태 이사 배후에 최민혁이 있다는 것이 사실일지 모르겠어. 아니, 직접적인 관여가 아니라면 어떤 형태로든지 관련이 있을 거야.’

그는 문득 최민혁 실장이 과연 이 모든 일을 다 처리했을까를 자문했다. 아마 김상구 회장이라면 믿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최훈열 전무 일 때문에 최용욱 회장이 뒤에서 손을 썼을 수도 있어.’

그는 물론 아들을 비웃지 않았다. 다만 역공으로 말미암은 타격이 제법 심각했다. 지금까지 알아본 바로 정부에서도 이번 일에 DL 그룹을 희생양으로 삼으려고 한다는 것을 들었다.

시기적으로 상황이 너무 공교로웠다. 마치 최민혁은 이런 사태를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절묘한 타이밍에 DL 화재를 흔들었다.

그런데 문제는 최민혁 실장에게 보복할 수단이 마땅치가 않다는 점이다.

DL 화재 비서실에서 조사한 바로는 KM 전자 내에 있는 단순 현금성 유보금이 아니라 현금만 무려 5,000억이 넘었다.

이러니 비서 팀 내에서도 정상적인 방법으로 답이 없다고 결론 내렸다.

‘콜린스 판매에 이상하게 보수적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럴 필요가 있을까.’

김희찬 부사장은 계속 머리를 굴리다가 뾰쪽한 대안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김용만 전무나 김현탁 부사장도 마냥 바보는 아니었다.

“…그 노조 말이다. 좀 더 많은 사람을 공략할 수 있겠냐.”

“네? 그거야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제 능력으로는 그렇게…….”

“그건 내가 도와주마. 필요하다면 자금과 인력도 마련해 주마. 안산 공장 노조 쪽에 채널만 만들 수 있다면 더 할 수도 있는 거지?”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지금은 꼭 장담하기도 어렵습니다. 최 실장의 KM 전자 장악력이 워낙에 커서 다들 몸을 사립니다.”

“사람 욕심은 한이 없어. 특히 노조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탐욕에 물든 노조가 그 어떤 적보다 무섭다. 만약 네가 적극 나선다면 그들도 생각이 달라질 거야.”

“…알겠습니다. 해보겠습니다.”

“좋다. 너도 알다시피 이번 DL 화재 사건은 가벼운 일이 아니야. 후속 처리가 쉽지 않아. 이제 다른 일에 관한 책임을 묻지 않겠다. 아버지에게는 내가 말해놓으마. 이번 일에만 집중해라. 그래야 아버지에게 질책을 덜 받을 거다. 이대로라면 넌 최악의 상황에 놓일 거다.”

“…알겠습니다.”

김현탁 사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번 일로 지금 자리에서 사임할 각오까지 했던 것이었다.

‘최민혁, 이 개새끼 반드시 죽여 버리겠다!’

* * *

모든 일이 그렇지만 처음이 어렵다.

김현탁 사장은 KM 전자 안산 공장 내에 구준모 차장과 같은 이들을 추렸고, 여러 가지 경로를 거쳐서 계속 만났다.

물론 일이 쉽게 되지 않았다.

안선종 팀장이 이미 KM 전자 노조와 만나서 이 문제를 결론 내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일에 대해서 최민혁 실장도 알고 있다는 것을 안 KM 전자 안산 공장 노조는 다들 예민할 정도로 몸을 사렸다.

덕분에 이 정보는 다른 안건보다 더 빨리 최민혁 귀에도 들어갔다.

최민혁은 마치 안산 공장 노조란 노조를 다 만나서 집요하게 공작을 벌이는 김현탁 사장의 행동에 혀를 내둘렀다.

“김 사장님이 처음에는 제법 긴밀하게 움직이나 싶었는데, 이제는 아예 작정하고 일을 저지르네요.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요?”

김명준 과장도 착잡했다. 그가 경호 팀을 굳이 동원한 것이 허탈했다. 이미 몇몇 노조는 아예 감사 팀에 이 정보를 보냈다.

“…아마 다급해서가 아닐까요.”

“재열이 구속된 것 말입니까? 아니면 DL 화재에 대한 정부 압박 때문입니까?”

“전 둘 다라고 봅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재정경제원이 이번 사태로 독이 잔뜩 올랐습니다.”

사태가 점점 커지는 것을 느낀 최민혁은 오히려 히죽 웃었다.

“정부 처지에서는 기회인 셈이죠. 안 그래도 대기업을 조지고 싶은데, 멍석까지 깔아줬는 데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요.”

“…공정위가 나선 것도 사전 정지 작업의 일환입니다. 이번 기회에 다른 대기업을 같이 패면서 그 책임을 DL 화재에 돌리려 하고 있습니다.”

“호, 그거 멋진 방법이네요. 대기업 압박에 대한 부담도 줄이고, DL 그룹 박살 낼 수도 있다니. 누군지 머리 좀 썼네요.”

“아무래도 정부도 아무런 명분도 없이 대기업을 조지기 힘들지 않습니까. 그러니 DL 화재를 앞세워서 다른 대기업도 두들겨 팰 생각으로 보입니다. 물론 애초에 잘못은 DL 화재에 있습니다.”

그는 보고서를 살피다가 제재 대상에 오른 한 기업에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왜 편법을 써서 경영하는지 모르겠어요. 가만 돈도 많은 오성 생명도 이번 일에서 피할 수 없다면서요?”

“…네.”

김명준 과장은 혀를 내둘렀다. 이번 특정금전신탁 여파는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줬는데, 그중에 오성 생명도 있었다.

오성 생명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특정금전신탁이 아니라 비스름한 방식을 사용했다. 문제는 공정위가 이것도 태클을 걸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사람들이 겁이 없다니까요. 적당히 알아서 몸을 사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뭐 현탁이 형이 집요해서라고 하고 일단 넘어가고, 노조 반응은 어때요?”

김명준 과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이라면 아직 마음을 돌린 사람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거야 이미 안산 공장 내에 다 알려졌으니까요.”

“뭐 그런 것도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직은 TV 사업부 매각설이 결정이 난 것이라는 아니라는 점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가만 그러면 TV 사업부 매각 이야기가 나오면 노조가 들고 일어날 거라는 말입니까?”

“그럴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로 이번 일은 안산 공장에서 많은 말이 나오고 있었다. 이미 최민혁은 두 차례나 사업부를 매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민혁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번 기회에 파업을 일으킬 예상 명단을 추려놓았겠죠?”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들을 꼭 부정적으로 보기도 어렵습니다.”

최민혁은 망설이는 김명준 과장에게서 명단을 받아서 숫자를 확인했다. 모두 7명으로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문제는 이들이 일을 열심히 하는 다른 임직원을 선동한다는 점이다.

‘현탁이 형이 참 고맙다는 말이야. 이런 명단을 얻을 방법이 쉽지 않은데.’

“그건 저도 인정합니다. 앞날을 누구도 모르는데, 의견이 맞는다고 확신할 수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그거 아십니까. 제가 우리 회사 미래에 대해서 확신이 없다면 이렇게까지 고집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정말 확신하시는군요.”

“명확하지 않은 일은 저도 이렇게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임직원을 일일이 붙잡고 설득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 회사 사정은 김 과장님도 잘 알지 않습니까. 지금과 같은 기업 체질 변화기에 회사 일에 도움을 보태지는 못할망정 분탕질을 치는 직원과는 같이 갈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해도 후일 반드시 문제가 됩니다!”

“…….”

김명준 과장은 난감했다. 어떻게 보면 직원 사찰이었다. 아마 외부에서 이 일을 안다면 난리가 날 것이 분명했다.

최민혁이 그래서 김명준 과장 자신에게만 이 일을 시키는 것이다.

그만큼 최민혁이 자신을 믿는다는 점에서는 좋았다.

그래서 최민혁을 더 설득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건 최민혁 역시 마찬가지다. 노조가 한국 경제를 어떻게 줄초상 내는지 잘 알았다. KM 전자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노동 집약적인 산업을 피할 생각이었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에도 같이 갈 근로자가 필요했다.

“이번 일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셔도 됩니다. 안산 공장만 정리하고 나면 이런 일은 없을 겁니다. 그러니 제 지시에 따라주세요.”

“믿겠습니다.”

“자, 그러면 요즘 안산 공장이 조용하다는 결론이군요. 사실 좋아할 일이기는 하지만 마음이 편치는 않네요. 그래도 김현탁 형이 저렇게 설치는데, 결과가 나올 겁니다. 사람 일은 알 수가 없으니, 안산 공장을 좀 더 면밀하게 살펴보세요.”

“알겠습니다.”

* * *

김현탁 사장은 죽기 살기로 KM 전자 노조를 만나고 다녔지만 좋은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KM 전자 노조가 이상할 정도로 소극적이었다.

‘빌어먹을.’

바보가 아닌 김현탁 사장은 돌아가는 상황을 보자 늦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비밀리에 해도 될까 말까 한 일이 노조 파업이다.

그런데 KM 전자 노조는 파업할 힘도, 명분도 없었다.

안산 공장 노조 대다수가 김창호 부장이나 안선종 팀장 때문에 노조 파업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아버지 김희찬 부사장에게 찾아가서 고개를 숙였다.

“실패했습니다.”

“애썼다.”

“네?”

깜짝 놀란 김현탁 사장.

하지만 김희찬 부사장은 비서 팀을 동원해서 김현탁 사장 행보를 일일이 지켜봤다. 그 과정에서 안산 공장 분위기도 확인했다.

‘하긴 지금과 같이 KM 전자가 무섭게 성장하는 시기에 파업을 일으킬 정신 나간 이는 거의 없겠지.’

오히려 KM 전자 안산 공장을 상대로 불협화음을 일으킨 김현탁 사장 능력을 인정했다.

“지금 KM 전자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단합이 잘된다. 이런 시기에 KM 전자 노조 이야기를 따르는 사람은 없어.”

“하지만…….”

“이번 일의 배후가 정말 최민혁 실장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계획 자체는 아주 좋아. 나도 흠을 잡을 수가 없다.”

오히려 최민혁 실장을 옹호하는 말에 김현탁 사장은 멍하니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배웠겠지만 앞으로는 일을 꾸밀 때 신중하게 하기 바란다. 나머지 일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 DL 스카이 일에만 집중해라.”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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