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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94화 (294/1,021)

#294.

신탁 회사의 운용 방식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할지 불분명하다. 이 부분은 소송을 통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김소연처럼 법을 잘 모를 때에는 신탁 회사와 싸우기는 힘들다. 아니, 안다고 해도 DL 법무 팀과 싸워서 이길 수가 없다.

즉 신탁 회사에 책임이 있다는 것을 밝혀야 하는데, 이게 쉬울 리가 없다.

실제로 김소연이 변호사와 상담했을 때 들은 이야기였다.

그건 김창주 부장도 잘 알았다. 그는 만약을 대비해서 보험을 만들었다. 그 보험은 단순히 한두 가지 경우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맡은 다른 동료 사건도 꼼꼼하게 챙겨 두었다.

그 증거는 무려 24건이 넘었다.

자살한 사람도 있고, 아니면 감옥에 간 이도 있었다.

심지어 가족 불화로 본인은 평생 신불자로 막노동을 뛴 이도 있었다.

김창주 부장은 이 증거를 가지고 있었지만, 결코 DL 화재를 협박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싸우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는 차라리 이 증거를 이용할 날이 오지 않기만 기원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였다. 술을 마신 운전사가 실수로 횡단보도를 가로지르는 김창주 부장을 트럭으로 받아 버렸다.

이 사건도 말이 많이 나왔다.

김현탁 사장은 이와 관련된 일에 대해서는 잘 몰랐지만 무관하지는 않았다. 그가 경영권 수업을 받으면서 DL 화재에서도 일했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김소연 고소장을 받았을 때는 영문을 몰랐다가 내용을 확인하고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

‘서, 설마 상수 짓은 아니겠지?’

지난 항공 마약 사건 누명을 뒤집어쓴 채로 감옥에 간 이상수 과장은 당시 DL 화재에 있을 때에 그의 최측근이었다.

당연히 이 사건을 알고 있었다.

김현탁 사장은 마치 쇠몽둥이에 한 대 맞은 사람처럼 벌떡 일어났다.

“이, 이거 누, 누가 보낸 거야?”

박태정 부장은 의아한 얼굴이었다.

“…중앙지검에서 보낸 출석 통지서입니다.”

“뭐?”

그는 뒤늦게야 고소장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차 준비해!”

* * *

이상수 과장은 항공 마약 사건으로 감방에 들어왔다. 그 자신이 선택한 길이라서 후회하지 않았다. 늘 이런 일이 있을 것이라 각오했다.

문제는 감옥 생활이 생각한 것처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는 다만 김현탁 사장이 자신 가족을 위해서 내놓은 1억을 보고 참았다.

물론 시간이 갈수록 그 고통은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김현탁 사장이 면회를 온 것은 한창 이 갈등이 극에 달해서였다.

“너지?”

“네?”

“김소연 고소장 말이야. 네놈 짓이지?”

“……?”

이상수 과장은 영문을 몰랐다. 김현탁 사장을 대신해서 감옥에 온 자신을 대하는 김현탁 사장 행동이 이질적이기만 했다.

자신을 믿는다고 그렇게 나발을 불었지만 지금 모습은 그렇지 않았다.

“김소연 씨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김창주 부장도 몰라?”

“김창주 부장이라면…….”

“DL 화재에 있을 때 이야기다. 그래도 기억이 안 나? 정말 모른 척 연기하는 거야. 아니면 정말 그 사실을 모르는 거야?”

“…김창주 부장이라면 기업 납니다. 하지만 그는 교통사고로 죽었지 않습니까?”

“그래, 그는 죽었어. 그런데 그의 딸 김소연이 지난 특정금정신탁에 관한 사문서 조작 혐의로 지금 날 고소했어?”

“…….”

황당한 이야기에 이상수 과장은 넋을 잃고 말았다. 김현탁 사장 눈빛 어디에도 자신을 믿는 흔적은 없었다. 이미 자신은 버려지고 난 후였다.

그는 피식 웃고 말았다.

“김 사장님은 절 어디까지 끌어내리고 싶은 겁니까?”

뒤늦게 흠칫 놀란 김현탁 사장은 자신이 잘못 알았나 싶었다. 이상수 과장은 이번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정말 아니야?”

“제가 이렇게 사장님을 대신해서 감옥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왜 김소연을 부추겨서 문제를 만들겠습니까?”

“…미안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움찔 놀란 김현탁 사장은 뒤늦게 사과 한마디만 남기고는 휑하니 떠나고 말았다.

이상수 과장 마음에 든 배신감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 * *

[이상수, 변호사 면회다!]

“……?”

이상수 과장은 갑작스러운 변호사 면담 요청에 영문을 몰랐다. 처음에는 오류가 있나 싶었다. 그래도 잠깐 쉴 수 있다는 마음에 일단 변호사 접견실로 나섰다.

일반 면회와는 달라서 나쁘지는 않았다. 돈이 많은 재벌은 집사 변호사를 이용해서 시간을 보낸다는 그 변호사 면회였다.

“사람을 잘못 찾은 것 같은데, 전 귀하가 찾는 이상수가 아닙니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난 안현수 변호사는 오히려 명함부터 먼저 줬다. 그는 이미 최민혁 실장에게서 김현탁 사장의 행적을 파악했고, 그를 노려서 이번 사건을 진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희찬 부사장이 아니라 김현탁 사장을 타깃으로 삼았다고 했지.’

“정확히 사람을 알고 찾아왔습니다.”

“벨린 투자라…….”

이상수 과장 눈빛이 반짝였다. 그가 모를 수가 없는 회사다. 최민혁 실장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한 투자 회사다.

‘정확히는 최용욱 회장 비자금을 관리하는 회사였었지. 가만 그렇다면 김현탁 사장이 찾아온 것과 관련이 있다는 말인가?’

그는 뒤늦게야 김소연 고소장이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 사문서 위조 사건으로 조사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몇 달 전이라면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설마 저보고 증인으로 나서달라는 말입니까?”

“그게 우리가 원하는 바입니다.”

“최민혁 실장님입니까?”

“잘 아시지 않습니까?”

“하아.”

이상수 과장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딱 시기적절하게 이 자리에 나타났다는 의미는 김현탁 사장을 감시했다는 거다.

‘아니, 최 실장이 그 정도도 하지 않았다면 오히려 내가 실망했을 거야.’

항공 마약 사건은 그 자신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사건이었다.

도대체 최민혁이 어떻게 이 사건을 알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김현탁 사장이 어떻게 움직일지 알고 딱 그 시기에 나타난 사람이 최민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도 마찬가지다.

마치 자신의 마음이 갈등으로 한창 고통받을 때 나타난 것이었다.

더욱이 안현수 변호사는 마치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몇 가지를 제안했다.

“이상수 과장님 가족은 최 실장님이 알아서 돌봐줄 겁니다. 신탁 회사를 통해서 매달 300만 원씩 꾸준히 입금될 겁니다. 물론 자녀분이 대학가게 되면, 장학금에 생활비까지 따로 지원될 겁니다.”

조건도 더 좋았다.

“…설마 항공 마약 사건을 다시 조사할 생각입니까?”

“아닙니다. 이번 김소연 씨 소송과 관련해서 증인으로 나서주면 좋겠습니다. 조사한 결과로는 이상수 과장도 이 일에 연루되어 있더군요.”

“하지만 그건 불법이 아닙니다.”

“강요와 협박이 문제겠죠. 설사 처벌이 약하다고 해도 아마 일반 시민 생각은 좀 다를 겁니다. 소송이 격화된다면 말이죠.”

“…….”

이상수 과장은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단순히 처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설마 DL 화재를 노리는 건가?’

안현수 변호사는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이상수 과장님 형량에 대한 것인데, 최대한 감형이 될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그것도 아니면 모범수로 석방될 수 있도록 손을 쓸 겁니다.”

“…그게 가능합니까?”

“만약 이상수 과장님이 범죄를 저질렀다면 쉽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안 된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지 않은 경우라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법원을 압박한다면 얼마든지 감형 조치를 받을 수 있습니다.”

고민은 제법 길었다.

이상수 과장은 자신이 배신해야 하나 고민했다. 그런데 막상 김현탁 사장 얼굴을 떠올리자 갈등은 쉽게 가라앉았다.

“…좋습니다. 증언하죠. 하지만 증거가 없다면 오히려 큰 효력이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이상수 과장님은 어디까지나 시선 돌리기에 불과하니까. 설마 최 실장님이 그것을 모르겠습니까?”

“…그렇겠죠.”

* * *

보통 중앙지검에 고소해도 그 사건이 바로 배당되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 과정을 거쳐서 사건이 배당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그런데 DL 그룹의 하농 인수는 상황이 좀 달랐다.

특정금전신탁이라는 기발한 방법을 사용했다. 위탁자의 돈을 가지고 경영권을 인수하는 경우여서 말이 많이 나왔다.

이 과정에 오성 전자가 끼어든 것도 문제다. 협상을 통해서 한 걸음 물러나기는 했지만, 뒤로 계속 언론사를 통해서 바람을 불어넣었다.

결국 DL 그룹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김소연 사건이 터진 것이 딱 이 시기였다.

그러니 중앙지검도 여론 때문에 수사를 바로 착수한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주목을 더 받은 DL 그룹은 그 민낯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심지어 그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평범한 가장이 자살한 사건이었다.

더 문제가 되는 것은 하농이 망해가는 회사가 아니라 사내 유보금이 무려 1,200%가 넘는 견실한 재무 구조를 가진 기업이하는 것이다.

심지어 하농 화학, 하농 종묘와 같은 12개 계열사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이런 알짜배기 회사를 자기 돈도 아닌 남의 돈으로 경영권을 인수했으니, 배가 아프지 않은 사람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DL 법무 팀은 잽싸게 움직였다. 그들은 김소연을 만나서 다시 협상하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김현탁 사장과 관련된 사건이 또 터졌다.

과거 김현탁 사장 역시 DL 화재에서 경영 수업을 받을 때 특정금정신탁이란 편법을 사용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

이때도 사건 담당자 박현권 부장은 책임을 지고 물러나고 말았다. 그는 다행히 집행유예를 받아서 감방에 가지 않았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생긴 빚 때문에 노가다를 하면서 전국을 돌아다녔다.

박현권 부장도 뒤늦게 변호사 도움을 얻어서 김현탁 사장을 고소했다.

이 고소장에는 박현권 부장이 김현탁 사장에게 인간 이하 취급을 받으면서 협박받은 대화 녹취록이 담겨 있었다.

심지어 김현탁 사장의 측근인 이상수 과장이 당시 사건의 증인으로 나섰다. 그는 김현탁 사장 바로 옆에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피해자가 무려 두 명이 나왔다. 그런데 증거마저 밝혀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사문서 위조, 공갈, 협박죄가 자연스럽게 포함되었다.

더 큰 문제가 있다면 당시 손실 난 금액이 무려 200억을 넘었다는 점이다.

피해자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자 다시 김현탁 사장과 DL 화재를 고소했다.

언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DL 화재의 편법을 씹었다.

심지어 오성 전자, 정부도 다양한 채널을 통해서 최민혁 실장을 도왔다. 정확히는 DL 그룹을 공격하는데, 손을 거든 것이었다.

특히 오성 전자는 지난 오큘러스 법인 사태 때문에 쌓인 감정을 토로했다.

[현대판 봉이 김선달 DL 화재 이대로 둬도 되는가?]

[특정금전신탁을 이용한 DL 화재의 사기극은 과연 적법한 것인가?]

특정금전 신탁 규제에 관한 내용이 없기에 언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김현탁 사장이 DL 법무 팀을 내세워서 싸워서 버티고는 있었다.

하지만 문제는 DL 화재에 대한 불신이다.

뒤늦게 DL 화재 고객은 DL 화재에 전화하거나 직접 방문했다.

그들은 혹시라도 자기 자산이 날아갈까 염려했다.

결국 계약 해지가 줄을 이었다.

최민혁은 단 하루 만에 무려 1,500억 가까운 계약이 해지된 뉴스를 보면서 방긋 웃었다.

“아, 변비보다 더 속이 시원하네요.”

김명준 과장도 혀를 내둘렀다.

“설마 김현탁 사장을 이대로 그냥 둘 겁니까?”

“당연하죠. 감방에 집어넣어 봐야 제 만족일 뿐입니다. 지금은 이대로 그냥 발악하게 두는 것이 훨씬 좋습니다.”

“하지만 김상구 회장이 계속 언론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 같습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오래가지는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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