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91화 (291/1,021)

#291.

“굳이 어렵게 일을 만들면 오히려 역효과만 날 겁니다. 차라리 콜린스 매각설에만 집중해 주세요. 소니의 오다 히로 부사장을 만난 것도 기사가 났습니다. 약간만 흔들면 KM 전자 노조도 금방 알아챌 겁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욕심이지. 인센티브 파티라고 해도 사업부에 따라서 달라. 특히 공장 쪽은 금액이 적을 텐데, 불만을 품은 이들이 있을 거야.’란 말까지는 하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갈등하던 임승혁 부장도 방법이 없었다.

* * *

임승혁 부장은 이번 대규모 노조 파업 문제로 알게 된 KM 전자 안산 공장에서 일하는 구준모 차장에게 연락했다.

그도 처음에는 어떻게 그를 설득해야 할까 일단 김용만 전무에게 받은 법인 카드로 단란주점에 가서 술과 여자부터 대접했다.

그런데 구준모 차장 안색이 단단히 굳어 있었다.

“무슨 일이 있습니까?”

“후유, 요즘 우리 회사는 갈피를 못 잡겠습니다.”

“혹시 콜린스 매각설 때문입니까?”

“어, 임 부장님도 아시는군요.”

“뉴스에 대문짝만 하게 나왔는데, 모를 수가 있습니까?”

“그러게요.”

구준모 차장도 굳은 얼굴을 한 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그 역시 몇 차례 구조조정을 경험하면서 최민혁 실장의 성정을 잘 알았다.

최민혁 실장이 적에게는 얼마나 단호하고, 잔혹한지 말이다.

사실 회사에 반기를 들지만 않는다면 최민혁 실장이 딴지를 걸지 않기에 지금까지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TV 사업부 매각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인센티브 파티에 환호하던 당장 안산 공장 직원도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기 시작했다.

“지금 받은 인센티브가 퇴직 위로금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말도 나옵니다.”

물론 최민혁 실장이 다른 대안을 챙겨줄 수도 있지만, 그것을 완전히 믿지는 않았다. 이건 막말로 막대한 매각 대금만 챙긴 후에 공장을 정리해 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임승혁 부장도 예상과는 다른 구준모 차장의 반응을 보자 굳이 더 설득하지 않았다. 이럴 때는 한걸음 물러나는 것이 낫다는 것을 잘 알았다.

‘하긴 TV 사업부 매각설은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니까. 거기에 구조조정을 한 번 두 번 한 것도 아니고.’

“제가 듣기로 KM 그룹 차원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것으로 압니다.”

“그것도 문제입니다. 우리 KM 전자는 사상 최대의 실적 때문에 구조조정이 없다고 확신하면서도 다들 불안해합니다.”

“생각해 보니, 얼마 전에 위성 사업부도 결국 도려냈더군요.”

“그러니까요. 그것도 문제입니다. 어떻게 된 회사가 돈이 될 만한 사업이면 다 정리해 버리니까요.”

아무래도 월급쟁이 마인드에서 벗어나지 못한 구준모 차장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렇다면 TV 사업부 매각도 마냥 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하겠군요.”

“하아, 그러게요.”

그 역시 KM 인스트루먼트에 있는 신입 동기 소식을 들었다. 막상 KM 옵틱스로 분리되기는 했지만, 완전히 계열 분리가 되었다.

임승혁 부장은 그의 오른손을 양손으로 콱 잡았다.

“KM 전자가 잘나가는 것은 사실인데, 그건 KM 전자가 잘나가는 것 아닙니까. 지금 KM 전자 경영진 행동을 보면 임직원을 부속품으로 취급하는 것이 분명합니다. 필요하다면 제가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아니면 다른 노조의 도움을 얻겠습니다. 그들이라면 큰 힘이 될 겁니다. 그러니 한번 KM 전자 노조 내부적으로 의견을 모아 보십시오.”

“…알겠습니다.”

구준모 차장도 임승혁 부장 제안을 마냥 거절하기는 힘들었다. 그는 지난주까지도 필요하다면 다른 노조에 자문할 생각이었다.

‘어쩌면 정말 TV 사업부를 매각할지도 몰라. 그 과정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이 생길 수도 있고, 이건 반드시 확인해야 해!’

* * *

김현탁 사장이나 임승혁 부장은 나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구준모 차장 역시 다르지 않다.

불행히도 최민혁은 바보가 아니다. 그는 요주의 인물의 행적에 대해서는 일일이 감시했다. 그들이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신분 정도는 쉽게 알았다.

그는 고가 망원 카메라에 찍힌 모습을 보면서 피식 웃고 말았다.

“김 과장님 솜씨가 나날이 늘어나는 것 같습니다.”

“실장님 지시에 따라서 최근 사람을 대폭 뽑았습니다. 노는 놈들을 그냥 둘 수는 없어서 일을 맡겼는데, 제법 성과가 있었습니다.”

“그렇습니까?”

“DL 그룹은 이미 KM 전자를 한 번 노린 전적이 있는데, 쉽게 포기할 리가 없으니까요.”

“하하하, 좋네요.”

하지만 최민혁 안색이 좋지는 않았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임직원에게 다양한 혜택을 줬는데, 불만을 품은 이들이 나올 줄은 몰랐다.

김명준 과장이 넌지시 말해주었다.

“아무래도 KM 그룹 계열사 구조조정 때문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 KM 전자는 이미 몇 차례 사업부 매각도 진행했고요.”

“하긴.”

최민혁도 딱히 이번 일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실상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이일태 이사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일태 이사는 당장 그 자리에서 잘랐다.

그나마 최민혁이 나름 신경을 썼기에 이 정도에서 그친 것이었다.

“충분히 공지했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군요.”

“아마 그래서 조용했을 겁니다. 그런데 외부 세력이 개입하면 이야기가 다릅니다. 이번 노조 파업에 참여한 이들이 있으니까요.”

“그렇습니까.”

최민혁도 소니의 전략 회의 뉴스를 보면서 이런저런 고민 했다. 그런데 뉴스에는 콜린스 대응이 아니라 디지털 산업 미래에 관한 이야기만 나왔다.

‘확실히 오다 히로 부사장이 만만치 않아.’

하지만 그는 굳이 서두르지 않았다.

아무리 오다 히로 부사장이 대단하다고 해도 소니 사정은 그가 잘 알았다.

‘의사 결정이 너무 늦지.’

최민혁은 소니를 이용해서 오성 전자를 계속 자극할 생각은 했다.

그 와중에 나른 문제가 생길 것이라 염려하기는 했다.

‘그런데 그 틈을 파고들다니.’

KM 전자가 지금 잘나가는 이유는 바로 콜린스 모델 때문이다.

그런데 갑자기 TV 사업부를 매각한다고 하면 이해할 임직원은 많지 않았다.

최용욱 회장도 TV 사업부 매각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고 해도 노조 문제가 생기면 태도를 바꾸고도 남을 일이었다.

그렇다고 노조를 상대로 장승일 실장에게 한 것처럼 구구절절 설득하기도 쉽지가 않다. 그랬다가 괜히 그 정보가 외부로 흘러 나가는 것을 염려했다.

애초에 장승일 실장에게도 예민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장승일 실장은 그나마 식견이 있어서 어느 정도 최민혁의 일방적인 태도를 따른다.

노조가 장승일 실장처럼 행동할 리가 없었다.

최민혁은 괜히 그 정보가 다른 10대 기업에 흘러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한 기업은 없지. 그런데 만약 계속 이 일이 주목받는다면 상황이 달라져.’

미래가 바뀐다.

그것도 장승일 실장처럼 KM 전자 보고서를 철저하게 검토하는 대기업도 생겨날 수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피식 웃고 말았다. 김용만 전무와 김현탁 사장을 박살을 낼 방법을 떠올렸다.

‘노조에는 노조가 좋겠어.’

노조 문제라면 KM 전자보다는 DL 전자가 더 심각했다. 차이점이 있다면 DL 전자는 강압적인 방법을 쓴다는 점이다.

“DL 전자의 임승혁 부장을 조사한 정보는 없습니까?”

“여기 있습니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온 임승혁 부장의 자료는 과거 자신이 손을 썼던 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이 자료에는 임승혁 부장만이 아니라 그와 관련된 자들도 있었다.

“호, 김용만 전무 라인과도 관련이 있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임승혁 부장이 김용만 전무에 감정이 있어서 그런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것을 토대로 조사를 진행했는데, 뜻밖에 월척을 얻었습니다.”

“설마 술집 여자를 이용해서 정보를 빼온 겁니까?”

김명준 과장은 씩 웃고 말았다.

“밑의 일은 굳이 실장님이 아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흠.”

최민혁인 힐끗 씩 웃고 있는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았다. 잠깐 고민했다. 굳이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알 필요는 없었다.

그보다 지금 일이 더 중요했다.

“어떻게 할까요? 지금이라도 구준모 차장에 대해서 손을 쓸까요?”

“아뇨. 그러지 마세요.”

“네?”

그는 잠깐 고민했다. 지금 하는 이야기는 다른 직원이 들어서 좋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김명준 과장은 남이 아니었다.

“이런 말 아세요? 호의가 계속되면, 그걸 권리로 아는 사람이 생깁니다. 아무리 제가 임직원에게 잘해줘도 반발하는 이는 생기기 마련입니다.”

“…설마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공장 인력도 물갈이할 생각입니까?”

“그건 아닙니다. 다만 어떤 색깔을 가졌는지 이번 기회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을 겁니다. 아니다 싶은 사람은 따로 골라내세요.”

김명준 과장도 우려스러운 표정이었다.

“이런 일이 계속되면 실장님 이미지에도 좋지 않습니다.”

“압니다. 그저 지켜만 보고, 회사에 손실을 입힌 이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조치할 뿐입니다. 대신 당하고 있을 수는 없지요. DL 전자 노조와 DL 그룹에 대해서 지금부터 철저하게 조사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이번은 우리 임직원을 한번 믿어보죠. 그리고 저도 이런 식의 진흙탕 싸움은 싫지만, 그들이 먼저 건 싸움입니다. 그렇다면 확실히 보복을 해줘야죠.”

“네.”

김명준 과장은 최민혁 실장의 결정에 혀를 내두르면서 조용히 물러났다. 그는 설마 최민혁이 이 기회를 거꾸로 이용하려 할 줄은 몰랐다.

* * *

정홍순 안산 공장 공장장이 구속된 후에 박상식 수석 부장이 공장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아직 이사로 진급하지는 못했다.

박상식 수석 부장은 정홍순 공장장이 비리 문제로 구속된 후에 그 후임자가 되었기에 아직은 이사로 진급하기에는 부족했다.

이보다는 인망이 높은 안선종 팀장이 공장장으로 말이 계속 나왔기에 그는 불안했다.

박상식 공장장은 당연히 오너인 최민혁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그는 불안했다. 혹시라도 최민혁 실장의 눈 밖에 났다는 것은 회사 생활 끝이라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그는 때문에 구준모 차장이 최근 사내에 돌고 있는 문제를 들고 왔을 때, 반발하지 않았다.

“사내 노조에서 반발이 있다고?”

“네. 박 수석 부장님도 알다시피 최근 회사에서 안 좋은 일이 많았지 않습니까. 특히 그룹 구조조정 이야기가 나오면서 직원이 동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특별히 일어난 일은 없잖아? 최 실장님도 아직 숨김없이 그대로 구조조정 이야기를 꺼낸 것도 아니지 않아.”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가 없습니다.”

박쥐처럼 눈알을 굴리는 구준모 차장은 박상식 수석 부장 눈치를 봤다. 혹시라도 그가 최민혁 실장 편을 든다면 몸을 사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상식 수석 부장도 지금 자신의 처지가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최근 KM 전자는 잘나가기는 하지만 최민혁 눈 밖에 벗어난다면 끝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박상식 수석 부장은 팀 회식에서 회사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중도 노선을 걸었다.

그렇다고 구준모 차장의 제안을 무시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찬성하는 편이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이 무서워서 내색하지 않았다.

‘하, 이 양반 봐라.’

구준모 차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일이 진행되어도 자신은 모른다는 식으로 나올 것 같았다. 문제가 생기면 자신이 모두 다 뒤집어쓰고 말이다.

하지만 그는 박상식 수석 부장이 이 정도인 것에 만족했다.

“나머지는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혹시라도 도움이 필요하면 좀 도와주십시오.”

“…알겠네. 하지만 너무 공장 분위기를 흩트리지는 말아주게. 그리고 중형 TV 개발 팀의 안선종 팀장과도 한번 이야기를 해보게.”

“네.”

* * *

구준모 차장은 일단 박상식 공장장에게 중도 노선이라는 답을 얻었지만 안선종 팀장은 망설였다. 그는 박상식 공장장과는 성격 자체가 달랐다.

그는 결국 보험으로 안선종 팀장을 따로 불러내서 근사한 요정집을 찾았다.

“어떻습니까?”

“…좋네.”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수백 년은 족히 되어 보이는 소나무는 보는 사람의 마음을 한결 시원하게 만들었다.

고아한 한옥의 풍경 속에서 술 한잔은 마치 신선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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