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90화 (290/1,021)

#290.

송도연은 확실히 많은 사람을 앞에 둔 무대에서는 공포감을 보였다.

안색이 마치 중병 환자처럼 창백하게 변했고, 얼굴에는 식은땀 범벅이었다.

오히려 김지영 사장이 송도연이 걱정스러워서 이마에 땀을 닦아주었다.

김명준 과장 역시 그 모습을 보면서 난감한 얼굴이었다. 그는 송도연을 손짓으로 무대 쪽으로 밀려고 했는데, 소용이 없었다.

송도연은 오히려 무대 쪽으로 걸음을 옮기기보다 뒤로 두 걸음 물러났다.

하지만 최민혁은 관객이 아니라 송도연을 보면서 경쾌하게 어깨춤을 췄다.

힙합 리듬에 맞춰서 무대를 이동하는 그 모습은 확실히 주목을 받았다.

관객의 반응조차 ‘어, 이거 괜찮네.’에서, ‘와, 이 노래 끝내준다.’로 바뀌었다.

아니, 관객들은 열기가 더해갈수록 숨을 죽였다. 노래에 취해서 다들 넋이 나가고 말았다. 처음 듣는 힙합임에도 쉽게 적응한 것이다.

‘I’ll be loving you!’가지는 마력이 서서히 발산되기 시작했다.

최민혁은 입가에 미소를 가득 띤 채 음악에 푹 빠졌다. 그는 원래 송도연을 위하려는 마음을 버린 채 노래에 빠졌다.

그 모습.

송도연은 자신도 모르게 공감대를 얻었다. 노래가 자신을 유혹했다. 최민혁은 마치 빈자리를 만들어 둔 채로 계속 말했다.

‘이 무대는 너의 것이다.’ 라고 온몸으로 호소했다.

김지영 사장조차 입을 딱 벌린 채 열정적인 최민혁의 유혹에 깜짝 놀랐다. 그녀 자신이 대상이 아님에도 그런 것이다.

그녀는 계속 뒤로 물러나는 송도연 등을 강제로 밀어버렸다.

버티던 송도연은 눈물마저 글썽였다.

김지영 사장은 그제야 피식 웃고 말았다. 그녀는 그녀 어깨를 가볍게 토닥였다.

“저기가 네 자리야!”

“하, 하지만…….”

“다른 것을 보지 말고, 최민혁 실장을 봐. 널 위해서 저렇게 무대를 만들어줬잖아. 저거 영광이야. 저런 자리는 아무나 갈 수 없어.”

“아.”

그녀도 뒤늦게 최민혁 얼굴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진짜 자기 노래가 아니라 자신을 위한 무대를 만들어주고 있었다.

그제야 모든 관객의 환호 소리가 사라졌다. 관객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송도연은 용기를 내서 한 걸음 한 걸음 무대로 다가갔다. 중간에 다시 주춤하는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송도연은 결국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녀는 최민혁을 믿었다. 그에게 보답해 주고 싶었다. 다른 것을 떠나서 노래가 아주 좋았다.

송도연은 결국 무대 중앙에 도착하자 최민혁과 맞추어서 노래를 불렀다.

처음에는 피처링이었다.

소심하기만 했던 목소리는 점점 옥타브가 올라갔다.

어느 사이에 그녀는 최민혁 음정과 맞추었다.

아니, 그것도 잠깐.

최민혁의 노래가 끝나자 송도연, 자신이 주인공인 양 노래를 받았다.

그녀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최민혁의 목소리를 가볍게 넘어섰다.

최민혁은 눈을 감고 무대 공포증을 아예 인식하지 못한 송도연을 앞에 둔 채 슬쩍 뒤로 물러나서 오히려 피처링을 자처했다.

주인공이 바뀌었다.

하지만 송도연의 폭발적인 가창력은 오히려 무대 전체를 뒤흔들었다.

가파르게 올라가는 그녀 가창력이 무대를 완벽하게 장악한 것이었다.

관객조차 입을 딱 벌린 채 송도연의 무대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최민혁은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채 뒤로 완전히 빠지고 말았다.

* * *

[와아아아!]

롤링홀 공연장을 넘어서 홍대 거리를 전체를 뒤흔들 정도로 열광적인 함성이었다. 관객 모두가 일어나고 우레와도 같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최민혁은 쪼르르 자신에게 달려와서 안기는 송도연 머리를 쓰담 쓰담 해주었다.

“봐, 하면 되잖아.”

“죄송해요.”

다시 꾸벅 머리를 숙이는 송도연은 얼굴을 들지 못했다.

“가서 널 봐준 관객에게 보답해 줘야지.”

“아, 알겠습니다.”

불끈 주먹을 쥔 송도연 모습은 어느 사인엔가 자신감과 열정으로 가득했다. 그녀도 자신의 노래 실력을 제대로 실감한 것이었다.

“…….”

한동안 충격에 빠져 있던 김지영 사장이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힐끗 생각에 잠긴 최민혁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솔직히 그녀도 최민혁의 이름만 알지 자세한 것은 잘 모른다. 대다수는 주변 지인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에 불과했다.

그런데 직접 마주한 최민혁은 소문과는 많이 달랐다.

다른 것을 떠나서 한 소녀에게 보여준 모습은 질투가 날 정도였다.

“저, 저기…….”

최민혁은 힐끗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 김 사장님, 오늘 도움 감사합니다.”

“아, 아니에요.”

선머슴 같은 그녀도 최민혁 얼굴을 감히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 모습이 신선해서 최민혁은 김지영 사장을 잠깐 쳐다보았다. 첫 만남과는 너무도 달랐기 때문이다. 홍시처럼 빨개져서 얼굴을 숙이고 있는 모습은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굳이 그녀에게 더 다가가지 않았다.

그는 송도연 무대가 끝나자 그녀와 함께 무대를 내려갔다.

다급한 김지영이 다시 소리쳤다.

“저, 저기 자, 잠깐만요.”

최민혁은 여전히 열광하는 관객의 시선을 뒤로 한 채 김지영을 쳐다보았다.

“왜 그러세요? 지원은 걱정하지 마세요. 약속한 대로 해줄 테니까.”

“그, 그게 아니에요. 조, 조금 전에 그 노래 말인데요.”

“아, 그거 우리 회사에서 이미 저작권을 올린 노래입니다. 아마 내년 초면 발매가 될 것입니다.”

“아.”

크게 실망한 김지영 사장은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다른 것에 욕심내지 말고, 자신의 노래에 집중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꿈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미래는 달라질 겁니다.”

“…네.”

함축적인 말마디만 난긴 최민혁은 마치 바람처럼 휙 떠나고 말았다.

김지영 사장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툴툴거렸다.

‘쳇 잘난 척은.’

* * *

송도연의 무대는 몇몇 지인 입을 통해서 오르내렸지만 크게 알려지지는 않았다. 그녀를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 하나고, 뒤늦게 관심을 둔 기획사도 최민혁 실장이 엮여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몇몇 기획사가 KM 전자에 문의했지만 단호한 거절만 받았다.

이 소식을 접한 김현탁 사장은 오히려 황당했다. 그는 돌아온 최문경 부회장을 이용해서 최민혁과의 갈등을 부추기려 했는데, 이전처럼 되지 않자 화가 났기 때문이었다.

‘젠장,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 정말 재혁이 말대로 최민혁 이놈이 송도연에게 빠진 건가?’

그에게 송도연의 노래 실력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TV 사업부 매각설에 비하면 송도연은 논할 가치가 없었다.

이보다는 오히려 송도연을 밀어준다는 식으로 받아들였다.

‘확실히 재열이 계획은 나쁘지 않았는데…….’

사실 두 사람이 육체적인 관계가 된다면 그것을 이용해서 스캔들을 터뜨릴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상황은 그런 것과는 달랐다.

마치 기획사 사장과 소속 연예인 관계와 같기 때문이다.

거기다 송도연과 최민혁을 엮기에는 특별한 점을 찾지 못했다.

차라리 지라시를 동원할까 하다가 곧 고개를 내젓고 말았다.

‘자칫하면 재열이처럼 내가 역공을 당해.’

김현탁 사장은 머리를 계속 굴렸다. 최민혁의 나이에 쉽게 대응하기 힘든 문제를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문득 TV에서 파업 뉴스를 봤다. 노조 파업이라면 최민혁이 대응하기 힘든 일이었다.

그는 최훈열 전무의 처의 오빠인 김용만 전무를 다시 찾아갔다.

“찾았습니다.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

“노조죠. 이번에 HY 전자를 비롯한 20개사 노조가 대규모 파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중에는 KM 산업도 포함됩니다.”

“하지만 KM 전자는 없잖아?”

“그거야 하기 나름 아니겠습니까. 제가 알기로 DL 전자는 이번 파업에 참여 안 하는 것으로 압니다. 아마 작은 아버지가 힘을 발휘했다고 생각합니다만?”

“글쎄다.”

의외의 지적에 김용만 전무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원래 김현탁 사장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김현탁의 아버지 김희찬과 경영권을 두고 다투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아마 다른 일이라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을 것이다.

그런데 최민혁의 경우라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최민혁은 필요하다면 악마와 손을 잡아서라도 밟아버려야 할 놈이다.

김용만 전무 표정을 읽은 김현탁 사장은 넌지시 툴툴거렸다.

“민혁, 그 새끼 일에는 제가 작은 아버지를 무조건 돕겠습니다. 그게 작은 아버지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까?”

“하지만 아무리 민혁, 그놈을 흔들어 봐도 큰 효과는 없을 거다. 민혁 그놈이 KM 전자를 꽉 잡고 있어. 사내 신망도 독보적이야.”

“그렇다고 손가락만 빨면서 이대로 계속 두고만 보자는 말입니까? 최훈열 전무님이 당한 복수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최근 주기적으로 자신을 찾아와서 괴롭히는 최훈열 전무의 아내 김여정을 떠올렸다. 막냇동생은 복수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에 걸쳐서 꾸준하게 작업해 놓은 계획을 다 파투 난 것이 중요했다.

새삼 최민혁에 대한 원한이 머리 꼭대기까지 치솟았다.

“…….”

김용만 전무는 잠깐 고민했다. 하지만 갈등은 길지 않았다. 김재열 일의 배후에도 최민혁이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 않았다. 김현탁 사장의 이야기가 꼭 틀린 것은 아니었다. 너무 가파르게 성장하는 최민혁이 부담스러워서 보고만 있었는데, 그럴 수는 없었다.

다만 노조위원장을 만나는 것은 역시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알겠다. 내가 자리를 한번 마련해 보마.”

* * *

김용만 전무가 과녁으로 꼽은 사람은 DL 전자 1공장의 임승혁 부장, 즉 DL 전자 노조 위원장이다. 그는 횡령 때문에 사내 감사 팀에서 조사를 받았다.

원래라면 감방에 가야 할 사람이다.

김용만 전무가 바로 그 약점을 이용해서 타협을 봤다.

임승혁 부장이 나선 덕분에 DL 전자는 이번 노조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니 김용만 전무가 하는 제안에 임승혁 부장도 반대하지 않았다.

“제가 뭘 도와주면 됩니까?”

김용만 전무를 동행한 김현탁 사장은 생각보다 쉬운 전개에 쾌재를 질렀다.

“일은 간단합니다. KM 전자 노조를 부추겨서 대규모 파업을 일으키는 겁니다.”

“……?”

황당한 제안에 임승혁 부장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김용만 전무가 이 자리에 없었다면 욕설을 했을 거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 역시 최근 KM 전자 노조 쪽을 통해서 들은 바가 있었다. 이번 대규모 파업에 KM 전자 노조가 참여하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그게 쉽지는 않습니다. 다른 기업과는 달리 KM 전자 평판이 좋아지면서 KM 전자 노조는 경영진에 대한 불만이 많이 줄어들었습니다.”

특히 인센티브 대박은 KM 전자 본사만이 아니라 공장 쪽으로도 나갔다. 야근을 많이 한 사람의 경우에 작년 연봉 이상을 받았다.

그러니 인간이라면 지금 이 상황에서 파업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콜린스 매각 사건이라면 좀 다르죠. 당장 자기들 밥줄이 떨어질 일인데, KM 전자 노조가 보고만 있겠습니까?”

“…저도 언론 기사로 봤는데, 가짜 뉴스라고 판명 났지 않습니까? 카더라 말만 믿고 파업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 사실이 중요합니까? 중요한 것은 콜린스 매각설이 나왔다는 겁니다. 뼈 빠지게 고생하는 공장 노동자 의견을 무시한 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린 경영자를 옹호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임승혁 부장은 내심 짜증스러웠다. 안 그래도 횡령 건 때문에 약점이 잡혀서 마음이 불편했다. 그래 다른 회사 노조를 부추기는 것까지 좋다고 하자.

분위기 좋은 노조를 부추겨서 파업을 일으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돌아가는 상황을 본 김용만 전무가 넌지시 한 가지를 제안했다.

“이번 일만 잘 끝나면 횡령 문제는 전혀 없던 걸로 해두겠네. 다음 이사 승진도 보장해 주겠네. 단 성공한다는 전제하에서네. 그런데 파업을 일으키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거야.”

그는 심드렁한 얼굴로 툴툴거렸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김용만 전무는 수행원에게 서류철을 꺼내서 그에게 내밀었다.

“우리가 조사한 증거 자료야. 백업 파일은 없어. 이게 외부에 알려져서 나도 좋을 것이 없으니까. 자네가 가지게.”

임승혁 부장은 파일철을 잠깐 살폈다. 확실히 자신이 횡령한 증거 자료다. 그런데 그 파일에는 자신이 준 돈을 받은 이들도 있었다. 그 중에는 김용만 전무의 수족도 포함한다.

‘거짓은 아니군.’

“좋습니다. 하지만 제가 나선다고 해도 장담은 못 합니다.”

김현탁 사장이 바로 끼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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