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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85화 (285/1,021)

#285.

송도연은 정신이 없었지만, 그래도 최민혁이 김재열 보다는 오히려 더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했다.

최민혁은 그제야 미소 지었다.

“우린 너에게 세계로 가는 길을 만들어 주마. 대신에 힘들어도 견디고 따라와야 한다. 기간은 불과 1년 정도야. 그것이면 된다. 네 동생 백혈병부터 시작해서 경제적인 문제는 신경 안 써도 되니까.”

“하, 할게요. 정말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런데 미래 기획사에서…….”

“그거면 된다.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전화기 전원도 꺼버려.”

최민혁은 지금쯤 깨어나서 발광하는 김재열 모습을 떠올렸다. 그가 그렇게 흥분하고 나면 할 일은 뻔했기 때문이다.

그는 곧 전화기로 한 곳에 연락했다.

[접니다. 한 가지 제보할 사실이 있습니다. 물론이죠. 박 부장검사님이 좋아할 사건입니다. 아주 초대박 사건이죠.]

“……?”

송도연은 최민혁 통화에 귀를 쫑긋한 채 멍하니 듣기만 했다.

‘부장검사라니,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 *

경기도 이천의 한 별장은 인가와 떨어져 있었는데, 근처에 작은 강이 지나갔다. 그 덕분에 뷰 자체는 그 어느 곳보다 괜찮았다.

김재열은 휴대폰을 집어 던지면서 분노에 몸부림쳤다.

“이 나쁜 년이 또 전화기 전원을 꺼버렸네. 아악, 내가 잡으면 죽여 버릴 거야!”

운전석 옆자리에 앉은 조성우 실장은 김재열 눈치를 보면서 슬쩍 입을 열었다.

“제가 애들 보내서 잡아오겠습니다.”

“그래. 잡으면 단단히 교육부터 해. 오냐오냐해 주니, 하늘 높은 줄 몰라!”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이번 일에 김 실장님이 상당한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아니, 상관없어. 어차피 최민혁 그 새끼 눈에 들었으니, 오히려 이번 기회에 보복하는 것이 더 좋아. 그놈을 흔들 좋은 기회니까.”

최민혁의 단순한 밀기에 당한 김재열은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는 아직도 그때 받은 충격으로 말미암은 후유증 때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조성우 실장이 음흉하게 웃었다.

“제가 최 실장도 손을 한번 봐줄까요?”

김재열도 이성을 잃었지만 완전한 바보는 아니었다.

“KM 전자 경호 팀 실력이 장난 아냐. 특전사 중에서 가리고 뽑은 사람으로 가득한데, 그들을 건드릴 수가 있어?”

“네?”

조성우 실장도 깜짝 놀랐다. 약간의 희생을 감수한 채 습격하면 납치가 어렵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김재열에게서 저런 이야기를 들은 줄은 몰랐다.

“일이 그렇게 간단하면 우리가 왜 이렇게 복잡하게 일을 만들겠어.”

“정 안 되면 가족을…….”

“미친 것 아냐. KM 그룹이 바보인 줄 알아?”

김재열이 화를 내는 것은 KM 그룹에 대해서 제법 알기 때문이다.

애초에 KM 전자를 노렸기에 내부 조사가 진행되었는데, 의외로 내부 경호 팀이 탄탄했다. 특히 최민혁 옆에 붙어 있는 김명준 과장은 규격 외 인물이다.

조성우 실장도 뭔가 좀 이상하다는 것을 느껴서인지 더 나서지 않았다.

차는 마침 별장에 도착했다.

입구에 서 있는 덩치는 두 사람이 탄 차량을 확인하자 무사통과시켰다.

숲으로 둘러싸인 별장 안은 불빛이 환했다.

가끔 비틀거리는 여자를 데리고 별장 구석으로 사라지는 커플도 있었다.

김재열은 하체가 뻐근해 오는 것을 느꼈다.

“오늘 괜찮은 물건도 들어왔다면서?”

“신선한 애 여섯 명이 들어왔는데, 그중에 하나에게는 따로 말해놓았습니다.”

“내가 이래서 조 실장을 좋아한다니까.”

“감사합니다.”

김재열은 최민혁에게 당한 일을 잊기 위해서라도 곧 있을 쾌락을 떠올렸다. 아직도 송도연에 대한 욕망이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래도 참을 만했다. 그는 별장 안으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안내를 받아서 이 층으로 올라갔다.

1층 거실에는 여자와 같이 파티를 즐기는 이들이 있었다.

‘미친 새끼들.’

* * *

김재열은 방 안으로 들어가자 안에 누워 있는 앳된 여자를 봤다. 나이는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것 같았다. 그의 두 눈은 뜨겁게 달아올랐다.

‘얘는 희정이잖아?’

최희정은 미래 기획사 연습생 중의 하나다. 비록 송도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스타일이 비슷했다. 조성우 실장이 작정하고 밀어 넣은 것이다.

김재열은 타오르는 갈증을 견딜 수가 없어서 옷을 벗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있는 최희정 옷을 벗겼다.

늘씬한 하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꿀꺽.

마른침을 삼킨 김재열은 최민혁에게 당한 아픔 따위는 완전히 잊었다. 그는 그 감정을 잊기 위해서라도 그녀 허리를 잡아서 당겼다.

양손으로 상의 원피스를 찢어버렸다.

그는 막 그녀를 덮치려고 하다가 밑에서 갑자기 울리는 소리에 흠칫 놀랐다.

‘뭐지?’

뭔가 섬뜩한 느낌.

김재열은 위기를 느끼자 잽싸게 옷을 다시 입고 밖으로 나갔다.

밑에서 격한 소리가 울렸다.

-모두 그 자리에 멈춰, 우리는 중앙지검에서 나왔다!

“……!!”

김재열은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이게 악몽인가 싶었다.

다행히 조성우가 두 사람을 데리고 허겁지겁 올라왔다.

“크, 큰일 났습니다!”

“뭐, 뭐야? 저 새끼들은 어떻게 된 거야?”

“중앙지검에서 수사 팀이 나왔습니다.”

“아니, 그놈들이 여기를 어떻게 알고 왔다는 소리야?!”

김재열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이곳을 철저한 회원제로 돌아간다. 어느 정도 유대 관계가 있지 않고서야 이곳을 찾을 수가 없다.

즉 회원 중에 누군가 불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김재열은 시끄러운 아래층 분위기에 소리쳤다.

“여, 여기서 나갈 비상 통로가 있어?”

“따, 따라오십시오!”

조성우 실장은 그제야 경악에서 빠져나왔다. 이 별장에는 만약을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비상구가 있었던 것이었다.

* * *

김대영 수사관은 망원경으로 별장을 향해서 벌 떼처럼 달려 들어가는 경찰 특공대 모습과 그 뒤편에서 경찰 차단벽에 항의하는 기자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 이런 정보는 어떻게 얻은 겁니까?”

박두영 부장검사는 평소와는 다르지 않은 얼굴로 별장 안으로 들어가면서 막아서는 경비원을 때려눕히는 경찰 특공대 모습을 봤다.

겁먹은 경비원은 알아서 바닥에 엎드렸다.

그는 슬쩍 경비원을 뛰어넘었다.

“자네가 알 필요는 없어.”

“그렇습니까?”

“그냥 제보 받은 것으로 해.”

“…알겠습니다. 그런데 굳이 박 부장검사님이 이 자리에 올 필요가 있었습니까?”

“나도 내 두 눈으로 확인해야지.”

그는 천천히 일어나서 별장 쪽으로 다가갔다. 김대영 수사관을 비롯한 이들은 천천히 박두영 부장검사 뒤를 따랐다.

별장 내는 마치 전쟁이라도 치른 것처럼 박살이 나 있었다.

한쪽에는 경비원으로 보이는 이들이 수갑은 찬 채로 서 있었다.

그들도 꽤 당황했다. 설마 근 칠십 명이 넘는 경찰 특공대가 자신을 습격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이 정도 규모의 작전이라면 사전에 정보를 얻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잡힌 이들 중에 길길이 날뛰는 이들도 우르르 몰려와서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를 확인하자 얼굴을 숨기기 급급했다.

-이 새끼들이 감히 내가 누구인지 알아?!

-너희들 울릉도에서 평생 지내야 할 거다!

하지만 그들도 경악에 차 있는 기자를 보자 더 이상 항의할 수가 없었다.

구출된 앳된 여자 중에는 뜻밖에 미성년자 숫자가 많았다. 마약 때문에 제대로 주변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었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별장 안에 들어가서 거실에 쌓여 있는 마약을 보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양이 만만치 않았다.

“대규모 마약에, 미성년자 강간, 납치, 공갈, 후유, 내 머리가 다 아프네.”

더 심각한 문제는 현장에서 잡힌 이들이다. 그들 중에는 뜻밖에도 고위 공무원이 제법 있었다.

그런데 알고 보면 특별한 것도 없었다. KBC 방송국 PD도 현장에서 잡혔는데, 가수 방송 출연 조건으로 성 접대를 받은 것이다.

한쪽에서 흐느끼고 있는 PD는 자기 인생이 끝장났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았다.

더욱이 별장에서 나온 수표는 무려 20억이 넘었다.

아마 더 자세한 조사를 해보면 나오겠지만 은행 거래 내역은 더 나올 것이다.

박두영 부장검사는 막 울리는 휴대전화기 전화를 받았다.

최훈열 전무 사건 이후에 완전히 바뀐 김종도 차장검사였다. 그의 목소리도 크게 위에서 갈굼을 당해서인지 곱지가 않았다.

[야, 박 부장검사,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지금 여기 난리가 났어!]

[압니다.]

[또 무슨 대형 사고라도 터뜨린 거야?]

[뭐 별것 아닙니다. 성 접대 현장을 잡은 것뿐입니다. 다만 미성년자가 포함된 현장이란 점이 좀 다를 뿐입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게 보고했던 이야기와는 많이 다르잖아!]

[저도 여기 와서 알았습니다. 별장에 모인 성 접대 현장을 잡은 것 같은데, 마약부터 시작해서 상황이 심각합니다. 그나마 정신을 차린 애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강제로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그것 때문에 난리야? 아주 날 못 잡아서 안달이 난 사람들뿐이잖아!]

[잡힌 이들 중에 당장 확인된 사람은 경찰 총경급도 두 사람이 포함됩니다. 국회의원 보좌관도 몇 사람이 있습니다. 입을 다물고 있어서 지금은 알 수가 없지만 아마 상당히 문제가 될 겁니다.]

[…정말이야?]

[네. 좀 골치가 아픕니다. 기자들이 몰려와 있어서 사건을 덮기도 쉽지가 않습니다.]

[끙.]

김종도 차장검사도 한동안 말이 없었다. 너무 충격적인 사건이라서 어떻게 사건을 처리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현장에서 적발되었기에 봐주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었다.

자칫하면 그 자신이 몽땅 다 뒤집어쓸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당장 중앙지검장뿐만 아니라 외부에서 전화가 미친 듯이 걸려오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의원, 사법부를 망라해서 안 오는 곳이 없을 정도였다.

[…어쩔 생각이야?]

박두영 부장검사도 피식 웃고 말았다.

[법대로 해야죠.]

[진짜?]

[아니면 지시를 내리시면 됩니다. 저야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우리 차장검사님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너 지금 날 놀리냐?]

[그럴 리가요.]

[어디까지 갈 생각이야?]

[전부 다 잡아넣을 수는 없습니다. 뭐 그랬다가는 차장검사님도 자리를 지키기 어려울 테니, 적당한 선에서 타협할 생각입니다.]

[알겠네. 내가 위에는 따로 이야기해 놓지.]

[감사합니다.]

[수고해.]

박두영 부장검사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는 최해진 검사를 보면서 피식 웃었다.

“왜 그래?”

“정말 적당히 하실 겁니까.”

“방법이 없잖아. 그리고 제보한 사람도 딱히 상황을 크게 키우는 것을 원치 않았어. 몇 가지만 들어주면 간단해.”

“제보한 사람 말입니까?”

“그래. 몇몇 그룹 인물만 FM대로 처벌해 주면 상관이 없다고 하니까.”

“이곳에 있는 모든 이들을 다 처벌하는 것은 어렵습니까?”

“당장 여당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 그런데 분위기 봐서는 야당 측에서도 이번 사건을 덮으라고 더 난리이니까.”

“설마 야당 쪽 인사도 이번 사건에 연루된 겁니까?”

“그렇지 않겠어?”

박두영 부장검사는 아직도 부들부들 떨고 있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서 탄식했다. 그도 원칙대로 처리하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만약 무리한다면 그 자신은 이번 수사를 담당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른 한쪽에서는 피투성이가 된 인물들이 끌려오고 있었다. 비상구로 도피하던 김재열 일행이었다.

그는 최민혁에게서 받은 사진 한 장으로 김재열 얼굴을 확인했다.

‘최 실장이 말한 이가 저 친구인가? 도대체 최 실장이랑 무슨 원한이 있기에 저 모양이 된 걸까? 뭐 내가 알 바는 아니지. 그런데 최 실장은 도대체 이 별장 정보를 어떻게 안 것일까?’

박두영 부장검사도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아직도 소란으로 시끄러운 별장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도망친 이가 있을까 추가로 도착한 경찰 백여 명이 사방을 뒤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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