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80화 (280/1,021)

#280.

소니의 KM 전자 TV 사업부 인수에 관련해서 최민혁 실장에게 한 제안은 소니 내부 결정이 아니라 자신이 내놓은 제안이었다. 소니 내부적인 합의가 필요한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는 TV 사업부 인수를 느긋하게 진행할 수 없었다.

그 역시 KM 그룹의 내부 갈등을 파악해서 시간이 넉넉할 것으로 생각했는데, 결과적으로 아니었다.

최민혁 실장이 이제 KM 그룹 후계자 싸움에 정식으로 뛰어들었다. 말이 아니라 KM 산업 지분을 얻었다.

이제 최민혁은 KM 전자의 오너일 뿐 아니라 KM 산업 지분도 얻어서 KM 그룹 경영권을 쥘 수 있는 자격을 얻은 셈이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소니 본사에서 긴급으로 기업 전략 회의를 개최했다.

그런데 회의 분위기는 시작부터 좋지가 않았다.

오다 히로 부사장과 앙숙인 TV 사업부 기획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가 불만을 토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인지 제대로 이야기도 하지 않고, 이렇게 사람을 불러 모으면 어떻게 합니까?!”

소니 순혈이 아닌 외부에서 들어온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의 말은 힘이 있었다. 그의 배후에는 일본 은행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은행이란 막강한 대주주를 등에 업은 그를 거역할 사람은 없었다.

하지만 오다 히로 부사장은 단호한 얼굴로 전략 회의에 참석한 소니 경영진을 둘러보면서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오늘 할 이야기는 우리 소니의 TV 사업부 미래와 관련이 있습니다.]

[오다 부사장님은 매사 그렇게 다급해서 큰일입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다고 그럽니까. 혹시 그 자리에 아직도 집착하는 겁니까?]

오다 부사장이 IFA 기조연설자 후보가 된 것부터 싫어했던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아예 노골적으로 오다 부사장에게 반기를 들었다.

그는 그것도 한국인 애송이에게 뺏긴 일을 노골적으로 말했다.

[정말 창피한 일 아닙니까?]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를 미는 경영진은 오다 히로 부사장 눈치만 봤다.

오다 히로 파벌인 이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데 아무도 나서는 이는 없었다.

요시다 상무의 영향력이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소니 내부에서도 말이 많았다.

외부 인사인 주제에 소니 경영에 직접 관여해서 감 놔라 배 놔라 식으로 계속 끼어들었다.

그 덕분에 중요한 의사 결정 기회를 몇 번이나 놓쳐서 소니도 큰 타격을 봤다.

그런데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오히려 자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을 해서 회사 손실을 보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소니 내부적으로 혁신을 택할 때마다 요시다 상무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해왔다.

시간이 갈수록 소니 내부에서 요시다 상무에 대한 반발이 심해졌다.

하지만 요시다 상무의 태도가 바뀌는 것은 아니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요시다 상무 이야기를 아예 무시해 버렸다.

[이번 안건은 KM 전자의 콜린스 사업부 인수입니다.]

자존심이 상한 요시다 상무의 눈빛은 붉게 번들거렸다.

[KM 전자? 그게 뭐 하는 회사입니까?]

요시다 상무는 아예 노골적으로 전략 회의를 방해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KM 전자에 대해서 모르는 이들이 뜻밖에 적지 않았다.

결국 오다 히로 부사장의 허락을 얻은 요시다 마야 부장이 슬그머니 나섰다.

[KM 전자는 콜린스 모델을 개발한 회사입니다. 이 모델은 지금 유럽에서 크게 인기를 떨치고 있습니다.]

유럽 이야기가 나오자 뒤늦게 알아들은 이들이 나왔다.

[아, 그게 KM 전자가 만든 것이구나.]

콜린스 이야기는 많이 나돌았지만, KM의 전자 인지도가 너무 떨어져서 일어난 일이다. 소니 처지에서는 솔직히 KM 전자는 중소기업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소니 경영진의 태도가 좋은 것은 아니었다.

세계 가전 왕국이라는 자부심이 벌써 그들을 파먹고 있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소니 내부 문제가 많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자신도 몰랐다.

더 큰 문제는 사사건건 시비를 거는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다.

‘저 인간은 반드시 잘라 버려야 해.’

그런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니다.

대주주인 일본 은행 세력 때문인데, 이들은 소니에 대한 통제력을 더 강화하려 했다. 이를 대리한 이가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였다.

[고작 이런 일로 바쁜 사람을 불렀다니,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벌떡 일어난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오다 히로 부사장을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돌겠네.’

그는 결국 모리타 아키라 사장에게 전략 회의에서 일어난 일을 보고했다.

* * *

소니 경영진 전략 회의는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 때문에 시작부터 제대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런데 일본 경영진이 다 바보는 아니었다.

미국에 체류 중인 모리타 아키라 사장이 직접 경영진에게 연락했다.

덕분에 전략 회의는 다시 진행되었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나타났다.

그를 따른 경영진 역시 좋은 얼굴은 아니었다.

모리타 아키라 사장에게서 협박에 가까운 욕설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다 히로 부사장도 그들 분위기를 파악했고, 말로 설득하지 않았다.

그는 요시다 마야 부장에게 눈짓했다.

마야 부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콜린스 모델에 대한 분석 결과를 설명했다.

콜린스 품질과 그 특성 이야기가 나오자 분위기가 곧 바뀌었다.

[잠깐만. 혹시 트리니트론과 비교해서 성능이 더 우위란 겁니까?]

[네. 트리니트론 뿐만 아니라 미국의 제니스 역시 콜린스와 비교할 바가 아닙니다.]

곧 전략 회의실 단상 위에 올라온 것은 분해된 콜린스다.

내부가 적나라하게 다 드러나 있었다. 한쪽 화면에서는 트리니트론, 제니스를 포함해서 현존하는 평면 TV 비교 차트다 다 나왔다.

놀랍게도 그 결과는 콜린스가 압도적인 우위였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오히려 피식 비웃었다.

[아니, 우리 소니가 고작 저런 제품 하나에 굴복한다는 말입니까?]

[죄송하지만 TV 연구 팀에서는 이미 손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가장 심각한 점은 바로 외각의 노이즈 문제입니다.]

대형 평면 TV는 기술적으로 많은 한계가 있었는데, 특히 노이즈가 문제였다. 이 노이즈가 외부 간섭을 해서 외각 부분에 큰 영향을 준다.

아무리 전자기 차폐를 한다고 해도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

요시다 마야 부장은 바로 그 점을 지적했다.

[여기 콜린스 내부를 잘 보면 알겠지만, KM 고압 변성기, KM 편향 코일은 아예 자체 제작했습니다. 즉 이 단계에서부터 노이즈 방지 대책이 들어갑니다.]

이런 기술 흐름은 단편적인 것이 아니라 내부 디자인에도 영향을 줬다.

[저희도 이와 동일한 샘플을 개발해 봤습니다. 그런데 노이즈 문제는 해결이 안 됩니다.]

사실 일본 소니 연구소에서는 별의별 방법을 다 사용했다.

그런데 먹히지가 않았다.

[소수 모델 몇 개는 정상적인 동작을 하지만 수율이 너무 낮습니다. 그런데 다른 통로를 통해서 얻은 정보로는 KM 전자 역시 콜린스 양산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합니다.]

최근 수정된 콜린스 모델은 차폐가 더 복잡하게 이루어졌다. 기존에 그나마 문제가 되었던 수율 문제를 극복한 것이었다.

베끼기도 사실 쉽지가 않았다.

[특허 때문입니다. 물론 이 특허를 피해서 다른 대안을 연구해 봤지만 결과는 좋지가 않았습니다. 우리 기술진이 하려면 못 할 것도 없습니다. 실제로 지금 대응 모델을 개발 중입니다. 그런데 개발 완료까지는 적어도 2~3년은 필요합니다.]

전략 회의실이 조용해졌다.

콜린스에 대해서 사전에 안 이들과 지금 처음 안 이들도 놀람을 금치 못했던 것이었다.

[지금까지 내부 분석 결과는 이 제품은 그야말로 주먹구구식으로 만든 겁니다. 거의 다 수작업을 통해서 완성된 것으로 얼마 많은 경험이 포함된 것인지는 굳이 더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기술 수준은 우리 소니 기술진과 비교해도 차이가 안 납니다.]

정확히는 소니 기술진은 자신보다 한 수 위라고 시인했다.

그런 사실까지 말해서 혼란을 가중시킬 수는 없었다.

그리고 나온 것은 콜린스 판매 수량이었다.

다행이라면 아직은 20만 대에 불과했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가 안도해서 말을 하려고 할 때 먼저 나선 사람은 오다 히로 부사장이었다.

[아마 여러분이 그동안 이 콜린스 위험성에 대해서 느끼지 못한 것은 KM 전자가 의도적으로 판매 수량을 대폭 줄였기 때문일 겁니다.]

수량 자체가 적으니, 입소문이 제대로 날 리가 없다.

더욱이 KM 전자 브랜드 인지도가 문제다.

소니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대처한 이유다.

그건 오다 히로 부사장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는 차가운 시선으로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를 쳐다보았다. 내심 이가 갈렸지만 참았다.

‘내막도 잘 모르는 저 새끼의 방해 때문에 제대로 확인도 못 했어.’

[요시다 상무님 말처럼 KM 전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회사입니다. 이런 회사 제품을 400만 원이나 주고 이 제품을 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신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판 처음 보는 아시아 회사의 제품을 400만 원 주고 살 바에는 차라리 자국의 고급 모델을 사들이는 것이 훨씬 나은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없지…….]

[그런데 KM 전자에서 이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 중입니다. 현재로서는 오성 전자와 협상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

차가운 정적이 감돌았다.

오성 전자를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번 회의에 참석한 소니 경영진은 이를 갈았다.

[가만 지금 콜린스가 오성 상표를 달고 시장에 출시된다는 말입니까?]

[네.]

그리고 상황의 심각성을 드디어 깨달았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따가운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잠깐만. 20만 대라면 단순 매출만으로 무려 8,000억 원이 넘는데, 저런 대박 모델을 경쟁사인 오성 전자에 매각한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 부분과 관련해서 KM 전자 내부 사정은 아직 모릅니다. 말로는 매각하지 않는다고 하니까. 중요한 것은 동기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콜린스가 만약 오성 전자에 넘어간다면 우리 소니 TV 사업부는 앞으로 아주 힘들어질 겁니다.]

[…….]

서로 편을 나누어 있던 이들조차 다들 창백한 얼굴을 한 채 침묵했다. 저건 눈엣가시 같은 오성 전자나 LC 전자보다 더 심각한 문제였다.

TV 사업부가 휘청이면 소니 역시 타격을 피해 가기 어려웠다.

안 그래도 엔고 때문에 소니 역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더 나아가 다른 사업부에도 영향을 줄 수가 있었다.

최악의 경우엔 소니 그룹 전체가 휘청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 그래서 어, 어쩌자는 겁니까. 설마 저 KM 전자의 TV 사업부를 인수하자는 겁니까?]

[네.]

의외로 반발은 크지 않았다.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라면 다른 대안이 없었다.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 역시 다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배후는 이런 변화를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대안이 있을 겁니다. 우리 소니 연구진이라면 얼마든지 대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문제는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만약 오성 전자가 콜린스를 시장에 마구잡이로 찍어낸다면 TV 사업부 매출은 50%씩 급감할 겁니다.]

[하.]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는 혼자 욕설을 퍼부으면서 주변 상황부터 파악했다. 그도 반대가 어렵다는 것을 알자 한 가지 문제를 걸고넘어졌다.

[매각 대금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1조 7천억 원을 요구했습니다.]

요시다 상무는 참다못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삿대질했다.

[아니, 그게 말이 되는 액수입니까?!]

예상했던 반응에 오다 히로 부사장은 매우 놀라지 않았다.

[하지만 대안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시간이 없다는 겁니다.]

[…….]

다들 그제야 침묵했다. 물론 그 누구도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책임을 지고 싶지 않았다. 그건 요시다 게이치로 상무도 다르지 않았다.

현재 소니 사정이 마냥 좋지는 않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특히 TV 사업은 무섭게 추격하는 오성 전자와 LC 전자를 비롯한 한국 가전 업체 때문에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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