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74화 (274/1,021)

#274.

권태성 실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의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다.

‘설마 여기에도 함정이 있다는 말일까?’

회의실 분위기가 이상해진 것을 보다 못한 임권수 부장이 슬쩍 인상을 찌푸렸다.

“그 말은 이번 TV 사업부 매각도 다른 의도가 있다는 말입니까?”

“네. 전 200% 확신합니다. 아니 소니의 오다 히로 부사장이 KM 전자 본사를 찾은 사실을 기자가 어떻게 알겠습니까. 세상에 그런 우연은 없습니다. 의도적으로 쇼를 만든 겁니다!”

“…설마 TV 사업부 매각 대금을 올리려는 의도란 말인가?”

“그렇지 않을까요?”

권태성 실장이 바로 소리쳤다.

“김 수석 자네 말은 사실이라면 일단 지켜만 봐야 한다는 소리인가?”

“그럴 수는 없을 겁니다. 소니가 아니더라도 대운 전자나 LC 전자도 TV 사업부를 노릴 겁니다. 아니, 최 실장은 그렇게 만들 겁니다. 어쩌면 LC 전자에 넘길지 모릅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최 실장은 정말 TV 사업부를 매각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으음.”

회의실 분위기가 냉랭하게 바뀌었다.

반박하던 이들조차 충분히 개연성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자신을 얻자 오히려 목소리를 올렸다.

“이미 짐작한 사실 아닙니까. TV 사업부 인수는 불가피한 일입니다. 그러면 문제가 되는 것은 역시 인수대금입니다!”

“…알겠네.”

머리가 아픈 권태성 실장은 김현우 수석 부장을 내보냈다. 그는 신이 난 김현우 수석 부장 얼굴을 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하긴 다 맞는 이야기야.’

다만 설마 했다. 최민혁 실장이 설마 그런 식으로 수작 부릴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문제 한 가지가 있었다.

‘문제는 우리가 결국 TV 사업부 인수를 해야 한다는 점이야. 확실히 최 실장이 원하는 게 매각 대금 자체를 올리는 것이 분명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아니, TV 사업부를 매각하면 앞으로 뭘 먹고살 생각일까? 돈이면 다 된다고 생각하는 건가?’

의문은 주렁주렁 떠올랐다. 최민혁 실장 의도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 * *

소니 오다 히로 부사장의 방문은 KM 전자 기획 팀에도 큰 충격이었다.

그들도 내심 설마 하던 일이 진행되자 마음이 급해졌다.

기존에 하던 일에 대한 시간 비중을 줄이고, MP3 탑재 음악에 대해서 집중했다.

그런데 이 일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KM 전자 기획 팀도 나름 난다 긴다 하는 인재이지만 빌보드를 휩쓸 정도로 놀라운 노래와 그 노래를 부를 가수를 선정하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아니, 불가능했다.

그들은 수백 곡 팝송을 따로 추려서 하나하나 검토하면서도 갈팡질팡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팝을 좀 아는 배종대 과장이 다른 기획 팀 직원보다 앞서 나갔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생각이 달랐다.

“배 과장님이 찍은 노래가 나쁘지는 않지만 고만고만합니다.”

“야, 정 대리 말 너무 함부로 하는 것 아냐?”

“다른 것을 떠나서 최 실장님이 선정한 곡을 한번 보세요. 이건 힙합이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한 곡입니다. 이것과 비교하면…….”

“아니, 왜 최 실장님과 날 비교해!”

버럭 화는 내는 배종대 과장은 인상을 험악하게 구기고 말았다.

하지만 정성근 대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이렇게 고만고만한 노래는 묻혀서 빌보드는커녕 빌보드 언저리도 못 갑니다.”

“야!”

“제가 틀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최 실장님이 원하는 것은 최소한 개혁을 말할 정도는 되어야 하는 것일 겁니다!”

쭉쭉 나오는 말은 그 어디에도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웃기는 사실은 다른 팀원이 다들 고개를 끄덕인 점이다.

박상기 차장조차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쿡쿡 눌렀다.

“배 과장, 너무 그러지 마. 정 대리가 틀린 말을 한 것은 아니잖아.”

“아니, 이 정도 노래면 나쁘지 않다니까요!”

“그 정도 노래는 실장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야. ‘I’ll be loving you!’를 들으면서 그런 소리가 나와?”

“와아!”

배종대 과장은 억울한 표정을 한 채 자기 앞에 놓인 곡이 적힌 종이를 꾸겨서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하지만 다른 기획실 직원 안색이 좋은 것은 아니었다.

그들이 준비한 노래는 배종대 과장보다 더 못했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한창 보고서 작성에 몰입해 있다가 그 광경을 봤다. 그 역시 난감하기는 매 한 가지다. 노래 선정은 그 자신이라고 해서 쉽지 않은 문제다.

‘차라리 외주를 줄까?’

그런데 그것도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전문가를 찾는 일도 쉽지도 않다. 막상 있어도 그 사람이 국내용이라는 점이 문제다.

휴게실에 갔던 막내 박광민 사원이 우울한 팀 분위기를 보면서 슬쩍 소리쳤다.

“실장님께서 음악 연습실로 가셨다고 합니다!”

다들 눈치를 보던 기획실 직원은 그제야 퇴근 시간이 지났다는 것을 알자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났다. 조성돈 팀장 역시 다르지 않았다.

일은 손에 안 잡히고, 차라리 최민혁 실장의 연습 모습을 보는 것이 훨씬 좋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조성돈 팀장은 특히 심각했다.

‘아무래도 실장님과 상의를 해봐야겠어.’

* * *

‘I’ll be loving you’ 가사는 원래 살해당한 미국 래퍼 한 사람을 추모하는 곡이다. 그런데 최민혁은 연인을 그리워하는 노래로 바꾸었다.

그 덕분에 이 원곡의 주인인 스팅조차 그 가치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고작 10만 달러에 이 노래에 대한 광범위한 권리를 넘겨준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이 노래가 원곡의 흐름과 다르냐 하면 그건 아니다.

최민혁은 원곡의 흐름을 따오면서 여기에 주기적으로 강한 리듬을 더했다.

힙합의 특성을 잘 살리면서도 중독성이 강한 비트를 합쳐서 독특한 곡으로 만들어낸 것이었다.

따라서 입에 착착 달라붙은 이 곡은 듣는 사람에게는 마약이나 마찬가지다.

음악 연습실에서 흘러나온 최민혁 노랫소리를 들은 영업 팀의 이승환 대리는 자리에서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놀라서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김경환 차장은 이승환 대리 옆에 왔다가 최민혁 실장이 열창에 빠진 모습을 봤다.

“와, 최 실장님 노래 잘 부른다.”

“…….”

이승환 대리는 힐끗 김경환 차장을 쳐다봤다. 저게 그냥 단순히 잘 부른다는 수준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다시 최민혁 실장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역시 힙합을 좀 아는 편이라서 최민혁의 노래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김경환 차장은 바로 발끈했다.

“야, 이 대리, 뭐야?!”

“잠깐만 계셔보세요.”

“이 대리, 너 지금 날 엿 먹이는 거야? 너무하다고 생각 안 해?”

“정말 부탁 좀 하죠. 제가 노래 끝나면 차장님께 설명해 드릴 테니, 그냥 조용히 계세요.”

따가운 눈총에 흠칫 놀란 김경환 차장은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

“아니, 무슨 상황인지 말을 해줘야 할 것 아냐!”

해외 영업 담당인 장창식 차장은 두 사람이 회식 자리로 가지 않은 채 서 있는 광경을 보자 다가와서 어깨를 툭 쳤다.

“둘 다 뭐하는 거야? 밖에서 김 부장님이 기다리고 있잖아.”

“아, 죄송합니다. 저것만 다 듣고 가겠습니다.”

“도대체 뭔데? 어, 저거 최 실장님이잖아. 흠, 노래가… 괜찮은데? 야, 내가 팝송을 잘 몰라서 그런데, 괜찮은 거 맞지?”

대답은 없었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의 노래를 들으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음악을 잘 모르는 그조차 최민혁의 노래는 놀라웠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탄식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거 맞아? 우리 최 실장님 노래 장난 아니다.”

이승환 대리는 힐끗 장창식 차장도 째려보면서 눈총을 줬다.

민망한 장창식 차장은 인상을 찌푸려서 한 소리 하려고 했다.

기다리다 못해서 결국 다시 음악 연습실을 찾은 김부영 팀장은 왜 자기 팀원이 음악 연습실 앞에서 소란을 피우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다른 이들보다 눈치가 빨라서 최민혁 실장을 먼저 발견했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비슷하게 멍하니 최민혁 노래를 감상했다.

영업 팀이 구경꾼이 되자 디자인 팀도 막 음악 연습실을 찾았다가 우르르 몰려갔다.

결국 오혜정 비서를 비롯한 비서 팀 역시 호기심을 떨치지 못했다.

숫자가 30명이 넘어가자 음악 연습실 앞은 사람이 우르르 몰려서 다 같이 최민혁 노래를 음미했다.

오혜정 비서는 초롱초롱한 눈빛을 한 채 노래에 몰입해 있는 최민혁 실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노래와 동시에 그 흥에 못 이겨서 덩실덩실 율동까지 하는 최민혁 실장의 모습은 가수나 다르지 않았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노래가 한국 노래가 아니라 힙합이라는 점이 달랐다.

아니, 그래서 더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전문적인 미국 힙합 가수 이상의 능력을 소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영근 사장 비서 한선화 역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녀는 신바람이 나서 손뼉까지 치면서 좋아했는데, 넋을 잃고 있는 오수연을 보면서 팔꿈치로 툭 쳤다.

“수연아, 괜찮아?”

“아, 아니에요.”

오수연은 홍시처럼 얼굴을 붉힌 채 고개를 푹 숙이고 말았다.

“어머 얘 봐라, 얼굴이 완전히 홍시야.”

“아이, 그러지 좀 마세요.”

“아, 그래, 알았어. 그런데 우리 최 실장님 노래도 장난 아니다.”

다른 이들 역시 다들 수긍했다.

들으면 들을수록 최민혁의 노래가 범상치 않았다.

정확히는 가사와 음정 때문이다.

하지만 오혜정 비서는 두 사람의 그런 모습조차 보지 않았다. 그녀는 양손을 꼭 잡은 채 최민혁의 노래에 폭 빠졌다.

뒤늦게 음악 연습실을 찾은 정성근 대리는 턱짓으로 그 광경을 가리켰다.

“배 과장님, 보셨죠? 우리가 목표로 한 노래는 저래야 하는 겁니다!”

“이 자식이!”

“그냥 대충 고르는 것으로는 곤란해요.”

그런데 이 말은 딱히 배종대 과장만을 향한 말이 아니었다.

다른 기획실 직원도 다 해당됐다.

다들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부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견디다 못한 배종대 과장이 결국 정성근 대리 목에 헤드록을 걸었다.

컥컥 거리는 정성근 대리는 여전히 배종대 과장을 향해 이죽거렸다.

“이런다고 달라지는 것은 없습니다. 우린 진짜 노래가 필요합니다!”

“지랄한다. 그러면 내가 지금까지 가짜 노래를 만들었어?!”

하지만 다른 기획 팀 직원 역시 혀를 내두른 채 최민혁의 노래가 아니라 그 모습에 빠진 다른 임직원 모습을 쳐다보았다.

30명이 넘는 임직원이 최민혁 노래에 푹 빠져서 다른 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확실히 일반적인 노래와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마무리.

폭풍우 같은 박수갈채가 이어졌다.

최민혁은 뒤늦게 음악 연습실을 나오다가 이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고 말았다. 그는 그러다가 굳어 있는 기획 팀 모습을 발견했다.

다른 직원들에게 각자 볼일 보라고 한 후에 그들에게 다가갔다.

“왜들 그러고 있습니까?”

배종대 과장이 맥 빠진 얼굴로 툴툴거렸다.

“도저히 자신이 없습니다. 최 실장님이 만든 노래 같은 곡을 가져올 수가 없어요.”

다른 기획 팀 직원 역시 침중하게 굳었다. 이것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최민혁은 물끄러미 그들을 쳐다보다가 불쑥 말했다.

“최선을 다해보세요. 그 속에서 얻는 것이 있을 테니까.”

“하지만 실장님, 이건 전문적인 음악 기획사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음악에 아마추어인 우리 기획 팀이 할 일이 아닙니다. 아니, 기획사에 외주를 준다고 해도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안다. 최민혁이 모르면 그게 더 이상하다. 그래도 그들에게 이 일을 맡긴 이유가 있다. 그들이 팝송에 대해서 전혀 모르면 곤란했다.

“하면 다 됩니다. 저를 보세요. 당장 제가 편곡한 노래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다들 머뭇거렸다.

최민혁은 피식 웃으면서 자리에서 떠났다. 하지만 그 역시 기획 팀을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본인이 직접 힙합 같은 음악을 직접 파악해 보지 않으면 그 의미를 알기 어려운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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