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71화 (271/1,021)

#271.

아니, 본사 임직원도 마찬가지다.

아직 MP3 계획에 대해서 잘 모르는 임직원들의 혼란은 더 심해질 것이다.

그것은 주가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당분간 공식적으로는 TV 사업부 매각 의사가 없다고 하겠지. 아마 올해는 힘들 거야. 내년 초나 가서 이야기가 나오겠지. 내년 중순쯤 되면 정말 TV 사업부를 매각할지도 몰라.”

아무리 잔머리가 능한 배종대 과장이라고 해도 도대체 최민혁 실장의 의도를 알 수가 없었다.

“굳이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할 필요가 있습니까?”

“있지. TV 사업부 매각을 이용하면 얻을 수 있는 이권이 많아. 특히 콜린스 경쟁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거야. 그렇게 된다면 1조 매각 대금이 1조 3천억이 될지, 1조 5천억이 될지 아무도 몰라. 금액 차이가 3~4천억이 넘을 텐데, 배 과장은 그게 단순한 문제로 보여?”

“흠.”

배종대 과장도 그렇지만 기획 팀 다른 직원도 매각 대금 규모를 듣고 나서는 다들 혀를 내둘렀다. 적지 않은 금액이 될 것이라 예상했지만, 그들 예상을 가볍게 넘어갔다.

“정말 그렇게 될까요?”

박상기 차장이 혀를 내둘렀다.

“우리 회사는 체급 자체에 한계가 있어. 그런데 상위 체급인 오성 전자나 소니 전자 경우에 콜린스를 인수한다면 당장 100만 대 이상의 판매가 가능해. 그 대금만 해도 4조가 넘는 규모야. 그러면 그들이 얼마나 지급해야 할까?”

실상 디지털 TV라고 말들이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디지털 TV의 한계는 명명백백했다. 특히 LCD의 기술적인 한계는 아직도 넘지 못했다.

그 대안이 PDP TV이기는 하지만 지금도 계속 말이 나오는 중이다.

즉 적어도 2~3년 이상은 콜린스가 대세를 주도했다.

더 큰 문제는 만약 자기 경쟁사에 콜린스가 넘어갔을 경우다.

그때는 단순히 매출 손실만이 아니라 주도권을 상대에게 줄 수가 있었다.

한창 TV 사업부에 대한 시장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한국 대기업에 넘어간다면 일본 소니 경우는 치명적인 대미지를 받는다.

오성 전자나 소니로서는 도저히 놓칠 수 없는 황금알이나 마찬가지다.

‘하.’

박상기 차장조차 TV 사업부 매각을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그 여파를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사업 규모 자체를 추측조차 할 수가 없었다.

가치 평가는 또 어떤가.

거기에 콜린스에 이은 MP3 산업 혁신은 지금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최 실장님은 이미 몇 달 전부터 이런 밑그림을 그렸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MP3 사업을 치밀하게 준비할 이유는 없으니까. 정말 대단하다는 말로도 부족해.’

다른 임직원 역시 저마다 자리에 앉아서 깊은 고민을 하다가 뒤늦게야 지금 자신들이 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았다.

기획 팀 분위기는 열공 분위기로 바뀌었다.

박상기 차장은 피식 웃으면서 MP3 사업을 다시 살폈다.

TV 사업부 매각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사실.

콜린스에 대한 집착을 떨쳤다.

냉정한 이성으로 MP3 사업의 미래 가치를 읽으면 읽을수록 소름이 돋았다.

‘보면 볼수록 대단해. 절대로 실패할 수가 없는 사업이야. 아니 설사 MP3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도 로열티만으로 괜찮아. 4~5년 후라면 로열티 수익만으로 수천억은 가볍게 넘어가. 최 실장의 능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을 정도야.’

* * *

최민혁은 오다 히로 부사장을 만나서 악수를 하면서도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IFA 기조연설 원래 강연자가 그였기 때문이다.

‘나 때문에 미래가 묘하게 뒤틀렸어. 설마 그 일 때문에 날 주목하고 있었을 줄이야.’

오다 히로 부사장은 딱히 최민혁을 원망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렇게 보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일 이후로 최 실장님을 주의 깊게 지켜봤습니다.”

“그렇습니까?”

실상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을 미워하지 않았다.

아니, 사람인 이상 한때는 화가 나기도 했고, 복수할 생각도 했다.

시간이 지나자 그런 감정을 떨쳤다.

지금은 최민혁을 전혀 다른 눈으로 봤다.

냉정한 눈이 그 증거다.

그는 최민혁에게 뒤통수를 맞고 나서는 최민혁 행적을 그 누구보다 자세하게 살폈다.

그리고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

다른 언론이 최민혁을 비하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다.

그 자신이 본 것만 믿기 때문이다.

“지금 하는 일본어만 해도 본토 일본인 못지않습니다. 그것만 봐도 최 실장님의 능력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최민혁의 일본어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인생 1회차에 전 세계를 떠돌면서 얻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그 점을 지적했다.

“최 실장님에 대한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전 믿지 않습니다. 최 실장님의 능력이 보통이었다면 IFA 기조연설을 맡을 수는 없으니까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런데 무슨 일 때문입니까?”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이 질문하자 머뭇거리지 않았다. 콜린스 사업 인수는 밀당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닙니다.”

“글쎄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우리 소니는 이미 따로 최 실장님의 행보를 꾸준히 지켜봤습니다. TV 사업부 매각이 그냥 나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엄한 50년 중년인의 말에는 묘하게 힘과 기백이 넘쳤다.

예의를 잃지 않는 그 모습만 봐도 보통 사람과는 차이가 있었다.

소설상의 감정적인 일본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최민혁은 자신의 어린 나이를 전혀 고려하지 않는 오다 히로 부사장의 태도에 감탄했다. 그는 결코 상대를 무시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한편으로 긴장했다. 주목받는 상황이 마냥 편한 것은 아니었다.

‘비록 몰락하는 소니 가전 왕국이지만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으니까. 내 동선을 계속 살핀다면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 좋은 일은 아냐.’

그렇다고 굳이 이 자리에서 TV 사업부 매각에 대한 내심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애초에 소니에는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 넘기면 정말 난리가 날 거야. 날 이완용 취급할 테니까.’

“다시 말하지만, TV 사업부 매각은 지금은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다 히로 부사장은 만만한 사람은 아니었다.

“정 우리 소니에게 넘기기 불편하다면, 우리 소니의 다른 해외 계열사 통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다른 차명 지분을 통한 것도 가능합니다. 그 점에 대해서는 저희 소니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좋은 제안은 감사합니다. 하지만 아직은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은’ 이란 말에 오다 히로 부사장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이 자리가 결코 헛된 걸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첫 자리에서 너무 나가는 것도 그렇겠지요. 다만 우리 소니는 콜린스 매입 대금으로 최대 1조 7천 원까지는 생각합니다.”

“…네.”

이젠 웬만한 금액엔 눈 하나 깜짝 안 하는 최민혁도 1조 7천억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제안에 깜짝 놀랐다.

‘돈이 정말 많기는 많구나.’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 미팅에 참석해서 조용히 한구석에 앉아서 이야기를 다 들었다. 그는 오다 히로 일행이 떠나기가 무섭게 최민혁에게 질문했다. 그는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정말 일본 소니에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하실 겁니까?”

“그럴 수는 없죠.”

“그렇겠죠?”

“저도 생각은 있습니다. 일본에 사업을 넘기면, 친일파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급증할 텐데, 그러면 한국에서 사업을 접어야 할 겁니다. 그런 상황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네.”

다만 조성돈 팀장도 1조 7천억이라는 현금을 떠올리면서 혀를 찼다.

‘지금 봐서는 2조도 가능할 것 같은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할까?’

하지만 그건 조성돈 팀장이 소니 사정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일본 소니 왕국 균열에 관한 이야기는 어제오늘 나온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만약 소니가 콜린스를 품에 안는다면 그 균열을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

그 가치는 단순히 몇 조 매출과는 또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최민혁은 인생 1회차 소니 기억을 떠올리면서 ‘1조 7천억’이란 숫자를 쉽게 머릿속에서 지우지 못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이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다. 소니 미래를 안다면 저 숫자는 소니 몰락을 예측한다는 말과도 통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이 IFA 기조연설 대상이라는 점이 결코 가벼운 건 아니었다.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사람이네.’

* * *

최민혁은 오영근 사장 요청도 있고 해서 소니 미팅 결과를 오영근 사장에게 보고했다.

한국 기업이라면 1조 4천억 원 정도가 나올 금액이 일본 기업이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1조 7천억 원이란 금액이 나오자 오영근 사장도 경악했다.

하지만 최민혁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선을 분명히 그었다.

“소니에게 TV 사업부를 매각할 수는 없습니다!”

아마 모르기는 몰라도 그때는 오성 전자, LC 전자, 대운 전자 TV 사업부는 1년 안에 문을 닫아야 할지 모른다.

그건 최민혁이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오영근 사장도 최민혁의 진심을 알지만, 최민혁 실장 허락을 얻은 후에 최용욱 회장을 찾아가서 이 안건을 보고했다.

“…….”

최용욱 회장은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너무 큰 충격에 빠져서 반쯤 정신이 나갔다. 10분 후에야 겨우 정신을 차렸다.

그는 말없이 서재를 나가서 정원을 거닐었다.

채윤집 집사는 이미 오다 히로 부사장이 최민혁 실장을 만났다는 것까지 보고했지만, 그 내막을 들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 역시 침중한 얼굴로 최용욱 회장 뒤를 조심스럽게 따랐다.

오영근 사장은 평생 처음 보는 최용욱 회장 모습에 말을 잃었다.

“하아!”

마치 하늘이 무너진 것을 본 사람 같은 깊은 한숨 소리다.

최용욱 회장은 실상 지금 기분은 스스로 알 수가 없었다.

손자 최민혁이 잘했다는 것은 안다.

다만 그 자금 규모 때문에 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최대치로 예상했던 차입금 규모가 2조 정도였다.

그런데 손자 최민혁은 망해가는 회사 사업부 하나의 가치를 벌써 그만큼 끌어올린 것이었다.

이건 단순히 손자 최민혁 능력을 좋고 나쁘고로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격이 달라.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최용욱 회장은 요즘 재계 모임만 나가면 자신의 실적을 추켜세우는 소리를 들었다.

특히 손자 최민혁을 앞세워서 배후에서 모든 일을 지배하는 음모자라고 찬양도 받았다.

그게 모두 손자 최민혁의 능력이라는 것을 그들이 안다면 어떤 표정일까.

‘믿지 않겠지.’

사실 자신이 진실을 말해도 이제는 지쳐서 그냥 그런가 싶었다.

“오 사장.”

“네, 회장님.”

“아니야. 내가 무슨 소리를 한다고 해도 답은 뻔하니까. 자네가 본 민혁이 그 녀석은 어때?”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나랑 비교하면?”

오영근 사장은 한때는 신동 소리를 들은 최용욱 회장과 최민혁 실장을 비교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도저히 두 사람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뭔가 좀 달랐다.

“역시 자네도 그래?”

“아, 네, 뭐 그렇습니다. 최 실장은 솔직히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 그렇지.”

최용욱 회장은 그제야 평생을 같이 해온 오영근 사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젊은 시절에는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설치는 친구였다.

그런데 지금은 그의 머리도 흰머리가 적지 않았다.

“이렇게 하지. 다음 사장단 회의부터는 민혁이 그 녀석도 나오라고 해.”

“…알겠습니다.”

오영근 사장은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채윤집 집사는 걱정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괜찮겠습니까?”

“어쩔 수가 없잖아. 민혁이 그 녀석 능력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으니, 자문해야지.”

“하지만 부회장님이 이제 대놓고 반발할 겁니다.”

“쉽지는 않을 거야. 지금도 좋잖아. 그 녀석은 필리핀에 갔다면서? 아니다 싶을 때는 한 걸음 물러날 수 있어야 해. 이제 좀 정신을 차리겠지. 아마 민혁이 얼굴을 계속 본다면 앞으로 더 나아질 거야.”

“하지만 두 분의 갈등이 더 심해진다면 자칫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건 그것대로 괜찮아. 대신 우리 KM 그룹은 더 혁신적인 회사로 거듭날 거야. 아무리 민혁이 녀석이 귀찮아해도 입을 전혀 안 열지는 않을 테니까. 그냥 나온 한마디도 우리 그룹에는 큰 도움이 될 거야. 지금 생각해 보면 장 실장 그 친구 판단이 옳았어.”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KM 전자 상황은 더 살펴봐. 인력을 더 투입해서라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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