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69화 (269/1,021)

#269.

일본 업체는 결국 KM 전자의 콜린스에 대안 방안을 모색했다. 마냥 디지털 TV에만 투자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후나이 TV가 파산하다니.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일까?’

소니 TV 사업부의 요시다 마야 부장 역시 부사장 오다 히로의 지시를 받아서 KM 전자의 콜린스에 대한 대응책을 연구했다. 그는 필요하다면 콜린스 내부 기술을 빼돌릴 대응책도 모색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노력은 별다른 효과가 없었다.

몇 번의 구조조정을 거친 KM 전자는 보안 면에서 철옹성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몇 차례 사람을 회사 내부에 침투시켰다가 결국 보안 팀에 붙잡혀서 한국 경찰에 체포되고 말았다.

다행히 소송은 어렵지가 않았다.

한국 내의 정치 인맥의 도움으로 어떻게 해결했다.

신기한 점은 KM 전자에서 이 문제를 크게 비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민혁 실장 성향에 대한 조사로는 한 대 맞으면 백 대는 돌려줄 정도로 쪼잔하고, 뒤끝이 심한 인간이었던 것이다.

요시다 사장은 회사 법무 팀까지 총동원해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했다가 이 맥빠진 최민혁 실장 반응에 오히려 어리둥절했다.

‘이상하네.’

하지만 최민혁이 꾸민 계획의 일부가 소니라는 조연 배우 스카우트였다. 굳이 이 사소한 일로 문제를 더 키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긴장한 요시다 마야 부장은 KM 전자의 소식을 실시간으로 체크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의 집요한 지시에 최선을 다했다.

그는 덕분에 다른 일본 경쟁사보다 가장 빨리 KM 전자의 TV 사업부 매각 루머 소식을 얻었다.

‘이게 무슨 황당한 소리야?’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술수에 능한 가시와기 료타 과장도 당황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철저하게 조사한 사람이기에 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직은 상황을 파악 중입니다.”

“최 실장이 주변 압박에 이렇게 조용한 적이 있었나?”

“그럴 리가 없습니다. 자기 친척에게도 철저한 사람입니다. 둘째 큰아버지인 최훈열 전무는 감옥에 보냈고, 외가 쪽에도 손을 썼습니다.”

“…대단하네.”

겉으로 본다면 자기 친족과 외가를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감방에 보낸 사람이 최민혁이었다. 집안 내부 갈등에 얼마나 단호한지 잘 보여주는 것이다.

“다시 한번 철저하게 조사해 봐.”

“원점에서 재조사하겠습니다.”

최민혁 실장을 바라보는 소니의 시선은 국내 기업의 시선과는 좀 달랐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최민혁이 IFA 기조연설을 빼앗긴 것 때문이 아니라 그의 능력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이다.

요시다 마야 부장은 덕분에 몇 차례에 걸쳐서 최민혁에 대한 자료를 다시 받았다.

모든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소니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아냐. 오다 히로 부사장님과 있었던 일을 생각하면 그럴 리가 없어. 알 수가 없네.’

그는 즉시 오다 히로 부사장을 찾아갔다.

“요시다 자네 미쳤어?”

“아닙니다. 제가 몇 차례나 확인한 결과로는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아니, KM 전자 매출에서 가장 큰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이 콜린스 모델이잖아. 이 모델은 KM 전자의 미래나 마찬가지야. 알토란 같은 사업부를 매각하고 나면 뭘 먹고 살아?”

“안 그래도 그 부분 때문에 좀 더 파봤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KM 전자가 콜린스 수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월마트가 계속 갑질을 일삼으면서 계약이 틀어져서 미국 판매도 제대로 못 하고 있습니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 역시 롭슨 월트 사장과 안면이 있었다. 몇 차례 비즈니스 때문에 만난 적이 있었다.

“그건 더 이상하네. 월마트 롭슨 월트 사장은 꽤 이성적인 사람이야. 최민혁 실장과 안면을 붉힐 이유가 없어. 그는 강압적으로 비즈니스를 할 사람이 아냐.”

“그게 KM 전자에서는 불공정한 계약을 요구하는 터라 월마트에서 그걸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미국 유통 회사가 갑이다. 소니라고 해도 월마트를 상대로 압박하지 않는다. 최소한 손해는 본다.

그렇게 해도 얻는 이익이 더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면 롭슨 월트 사장이 순순히 대응할 리가 없다.

“…최근 월마트에서 대형 평면 TV 모델을 요구한 것이 그 때문이었어?”

“네, 눈엣가시 같은 KM 전자 꼴 보기가 싫어서 아예 우리 쪽에 OEM 방식으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필요하다면 투자도 하고, 미국 공장 건설도 적극 돕겠다고 했습니다.”

“흠.”

오디 히로 부사장은 어이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 독일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최민혁 실장과는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IFA 기조연설 장면도 봤다.

‘하긴 나이가 있으니, 쉽게 타협하는 성격은 아니야.’

“하지만 이상하군. KM 전자 내에도 경험 많은 실무진이 있잖아. 그들이 그냥 두지 않을 텐데, 고집을 피워?”

“제가 알아본 바로는 아예 대화가 안 된다고 합니다. 자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우깁니다.”

“쯧.”

오다 히로 부사장은 혀를 찼다. 최민혁 실장 나이가 고작 20살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 나이에 고집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다.

주변 이야기를 들을 리가 없을 것이다.

‘내부 갈등 중에 TV 사업부 매각 이야기가 나온 건가?’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이제 나이도 젊으니, 또 다른 사업을 욕심낼 수도 있었다.

‘그러다가 사업 말아먹은 친구가 한둘은 아니지.’

의문이 풀렸다.

아니, 그러면 이야기가 좀 다르다.

오다 히로 부사장은 콜린스의 미래를 다시 한번 떠올렸다.

그는 서랍에 넣어둔 콜린스 사업 보고서를 꺼내서 다시 읽었다.

‘하, 아쉽네.’

아직은 디지털 평면 TV 시장이 성숙하지 않았다. 기술적인 제약이 너무 많았다. PDP던, LCD던 둘 다 마찬가지다.

그런데 이 제약도 시간문제다. 막말로 히타치 같은 곳에서 언제 디지털 TV의 강점을 극복한 기술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콜린스의 가치는 추락한다.

문제는 그 시기다.

2~3년이라면 괜찮다.

3~4년 후라면 상황이 복잡했다.

소니에 콜린스가 있었다면 매출이 무려 6~7조는 가볍게 넘어갈 테니 말이다.

‘계륵이야.’

요시다 마야 부장이 눈치를 보다가 불쑥 한마디 더했다.

“중국 업체가 관심을 두는 것으로 압니다.”

“뭐?! 이 조센징이 미친 것 아냐?! 아니, 어떻게 중국에 콜린스를 매각한다는 소리야?!!”

펄쩍 뛴 오다 히로 부사장.

자신이 먹기에는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고, 그렇다고 남 주기는 너무도 아까웠다. 더욱이 시점이 너무 애매했다.

“…….”

요시다 마야 부장은 ‘일본 기업에 매각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나을 겁니다만.’ 이라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결국 오다 히로 부사장이 대답했다.

“한번 미팅을 잡아봐.”

그 역시 중국의 TV 사업부 인수를 꽤 걱정했다. 아니, 정확히는 너무 복잡한 문제라서 확신하지 못했다.

“서, 설마 KM 전자 TV 사업부를 인수하실 생각입니까?”

“못 할 것은 없잖아. 안 그래도 엔고 때문에 사업 기반을 계속 필리핀이나 말레이시아로 옮기고 있어. 그게 한국이라고 다른 것은 없잖아. 더욱이 우리 소니 생산력으로 콜린스를 인수하고 나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들 수 있어.”

“하지만 콜린스는 양산이 까다롭다는 것이 우리 생산 팀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괜찮아. 설사 그렇다고 해도 콜린스 통해서 오성이나 LC 전자를 박살 낼 수 있다면 이익이 작아도 괜찮아.”

“반대하는 분이 많을 겁니다.”

“설마 중국에 콜린스가 넘어가는 것을 두고 보란 소리야?”

“…알겠습니다.”

요시다 마야 부장뿐만 아니라 TV 사업부 기획 팀 모두가 우려하는 문제다. 소니도 콜린스가 중국에 넘어가는 것은 절대로 용인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우리 소니 TV 사업부가 후나이 TV같은 꼴을 당하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는 없어!’

* * *

최민혁은 TV 사업부 매각 소문을 낸 지 불과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서 소니에게서 연락을 받자 혀를 내둘렀다.

물론 자신이 뿌린 정보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 한동안 시끄러웠다는 점도 인정했다.

‘그래도 너무 빠른데?’

그런데 조성돈 팀장은 이 상황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아마 후나이 TV 몰락 때문일 겁니다. 오성, 대운, LC의 러시아 시장 공략 덕분에 일본 TV사가 바짝 긴장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닐 텐데요?”

“그게 콜린스 모델의 유럽 공략 때문에 오성이나 LC 전자의 대형 TV 매출이 꽤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 때문에 러시아 공략을 더 강화했는데, 후나이 TV가 된서리를 받았습니다.”

물론 후나이 TV만 손실을 본 것은 아니었다. 세계 TV 가전사는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 다들 콜린스 때문에 손실을 보았다.

거기다 최민혁이 미적거린 덕분에 그 손실이 늪처럼 조금씩 침식되었다.

그러니 미처 대응할 수가 없었다.

후나이 TV의 파산 후에야 ‘앗 뜨거워’란 소리를 한 것이다.

더욱이 콜린스 매출이 늘어날수록 그만큼 다른 TV 경쟁사의 손실이 점점 커졌다.

그나마 최민혁이 적당한 속도로 콜린스를 판매하는 덕분에 다들 위기감을 못 느끼다가 이번에 된서리를 맞고 나서야 경악한 것이었다.

“흠.”

“아마 콜린스의 판매 속도를 올렸다면 여러 가지 압박이 몰아쳤을 겁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별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 눈치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가요?”

“네. 저도 실장님이 왜 콜린스 판매를 질질 끄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설마 이런 식으로 타격을 줄지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아니다.

굳이 콜린스 공급을 질질 끈 것은 사업부 매각 타이밍을 잡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시일이 길어질수록 가장 이상적인 타이밍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굳이 그런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지.’

조성돈 팀장도 잠깐 머뭇거리다가 솔직하게 자기 의견을 밝혔다.

“지금은 차라리 전 잘됐다고 생각합니다. 괜히 콜린스 판매 속도를 늘렸다가 다른 업체에서 여러 가지 압력을 받을 수 있습니다. 거기다 늘어난 공장에 대한 후속 처리가 명확하지 않아서 내년 하반기에는 자칫 위기가 올 수도 있는 것도 피했습니다. 욕심을 부리지 않았던 것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어지간한 일에 칭찬 한마디 하지 않는 조성돈 팀장의 반응.

최민혁은 무안해서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니,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실장님도 후속 모델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것 같으니, 차라리 잘된 셈입니다. 무리하게 투자를 늘렸다간 오히려 막대한 손실을 보았을 겁니다. 그럴 바에는 차라리 오큘러스 프로젝트와 같은 고부가가치 사업에 투자해서 이익을 늘린 것이 이상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솔직하게 최민혁의 이해하기 힘든 행동에 공감했다.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면 최민혁 행동이 다 맞기 때문이다.

최민혁은 늘 언제 옳았던 것이다.

물론 이건 오해였다.

최민혁은 TV 사업부 매각만을 고민하는 중이었기에 무리하게 콜린스 생산을 할 수가 없었다. 굳이 그런 오해를 바로잡지 않았다.

“흠흠, 좋아요. 미팅 약속을 잡아보세요. 대신 오성 전자의 권태성 실장이나 LC 전자, 대운 전자 측에도 정보를 흘리세요. 이번 회동을 거하게 알려서 일본이나 중국 측에 TV 사업부 매각을 확실하게 알려 긴장하게 하세요.”

“설마 TV 사업부 매각을 서두를 생각입니까?”

“천만에요. 당분간은 TV 사업부를 매각할 생각이 없습니다. 더욱이 설사 매각한다고 해도 밀당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그 밀당이 오큘러스 지분 매각 초대박처럼 결국 TV 사업부 몸값을 올리기 위한 꼼수라는 것을 금방 깨달았다.

그 대단한 오성 전자나 DL 그룹이 최민혁 꼼수에 놀아나서 제대로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무려 2,500억이란 돈을 토해내야 했다.

그는 혀를 차면서도 다른 용건을 꺼냈다.

“소니 측에서 연락이 왔는데, 어떻게 할까요?”

최민혁은 반사적으로 말을 하다가 문득 한 가지 기발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일정을 잡아보세요. 아, 이왕이면 언론사도 한번 불러보세요. 가능하면 소니 측에서 TV 사업부 인수에 적극적이라는 뉴스를 보낼 필요가 있습니다. 무대를 한번 잘 짜보세요. 대신 우리는 모르는 사실이어야 합니다. 소니가 일방적으로 매달린다는 모양새를 만드세요. 우리는 국가를 위해서 일본 소니에는 TV 사업부를 절대로 매각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중요합니다!”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이 말하는 쇼라는 것이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라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또 이런 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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