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59화 (259/1,021)

#259.

최민혁은 단호한 장승일 실장의 태도에 만만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MP3 사업 계획을 잘 아는 오영근 사장이나 문형섭 부사장의 경우와는 달리 MP3 사업을 전혀 모르는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의 이야기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앞으로 KM 그룹과 중재를 위해서라도 장승일 실장이 가장 먼저 어느 정도 MP3에 대해서 알아야 했다.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한 그는 우선 콜린스 문제부터 걸고넘어졌다.

“콜린스가 잘나가는 그 사실만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콜린스는 아날로그 TV와 디지털 TV를 가로지르는 교차로에 불과합니다. 기술의 트렌드가 바뀌면, 곧 화려하게 불타서 사라질 운명입니다.”

“네? 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일단 TV 사업부만 이야기하죠. 아마 외부 요인이 없고, TV 시장이 지금만 같다면 상황이 좀 다릅니다. 그런데 디지털 TV가 대세 흐름이 된다면 상황이 완전히 바뀝니다. 더 얇아지고, 노이즈에 강한 디지털 TV는 아날로그 TV를 압도합니다.”

“하지만 현재 오성 전자의 PDP TV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저희 기조실에서 조사한 바로는, 아직은 아날로그 TV와 경쟁해서 이기기 어렵습니다.”

“PDP TV는 그럴 수 있죠. 그런데 만약 거기에 변화가 생긴다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오성 전자가 LCD TV의 한계를 극복한다면 말이죠.”

LCD TV에 대해서는 장승일 실장이 더 부정적이었다.

“실장님의 걱정은 저도 잘 압니다. 하지만 아직 오성 전자는 그 단계로 넘어가지 못했습니다. 심지어 일본 소니 같은 기업도 다르지 않습니다. 액정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본 소니와 같은 기업조차 LCD 산업 트렌드를 잘못 읽어서 몰락하게 된다는 것을 장승일 실장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심지어 승자가 오성 전자라는 것은 더 이해하기 힘들겠지.’

장승일 실장의 주장이 일리가 있는 것도 LCD 액정 응답 특성이라는 한계는 쉽게 극복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그 방법이 뭔지 아는 최민혁은 이야기가 좀 다르다. 그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LCD 기술도 노려볼 만했다. 다만 장치 산업인 LCD 쪽으로 영역을 넓힐 생각이 없을 뿐이다.

“그렇겠죠. 일본 소니나 히타치는 아마 삽질을 거듭할 겁니다. 하지만 오성 전자는 상황이 달라요. 그들은 한계를 극복할 겁니다.”

“저도 오성 전자의 저력을 얕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들은 현재 PDP의 기술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LCD TV는 아직 가야 할 길이 멉니다.”

최민혁은 완강한 장승일 실장의 반응에 혀를 찼다. 아직 장승일 실장의 시야가 좁아서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도 오성 전자의 TV 사업 변화 자체에 대해서는 자세히 몰랐다. 그래도 오성 전자 LCD 사업의 미래를 알았다.

“아니, 오성 전자는 결국 한계를 극복할 겁니다. 그 증거 중의 하나가 콜린스 대응 모델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는 겁니다.”

“…설마 그 일이 1~2년 안에 일어난다는 말을 하는 겁니까?”

“그건 아니죠. 당분간은 PDP TV가 주도할 겁니다. 하지만 서서히 바뀔 겁니다. 즉 콜린스 가치는 시간이 갈수록 하락해요. 물론 명맥은 유지하겠지만 말이죠.”

“…그건 어디까지 추론입니다. 콜린스가 현재 TV 시장을 주도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아, 제 말은 2~3년 안에는 오성 전자는 서서히 LCD TV 쪽에 집중할 겁니다. 그러니 지금 이 시점에서는 콜린스 대응 모델 개발에 집중할 수가 없어요.”

“…계륵이란 말입니까?”

“빙고. 오성 전자를 얕잡아 보지 마세요. 지금 몰라서 개들이 조용히 있는 것이 아닙니다. 뒤통수치려고 열심히 준비 중이죠.”

“…….”

장승일 실장도 뒤늦게야 묻어둔 TV 사업부 미래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콜린스 때문에 무시하려고 한 불편한 진실 말이다.

‘정말 실장님의 예측대로 된다면 콜린스 매출도 오래가지 못할 거야.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될까?’

최민혁은 그제야 목소리를 낮추었다.

“그래서 지금 오성 전자는 콜린스 때문에 골치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있죠. 그건 소니와 같은 일본 가전 회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혹시나 해서 하는 질문입니다만 콜린스 영업이 소극적인 것도 다 그런 점을 걱정하신 겁니까? 출구전략 시에 입을 손실을 고려하신 겁니까?”

“전혀 아니라고 말을 못 하겠어요. 적당한 이익만 본다면 그들이 굳이 우리 KM 전자를 견제할 이유가 없어집니다.”

“…꼭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손뼉 칠 때 떠나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적당한 선에서 아날로그 TV 사업에서 손 떼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나온 이야기.

“그래서 TV 사업부 매각을 검토 중입니다.”

“마, 말도 안 됩니다!”

장승일 실장은 평소와는 달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면서 소리쳤다. 다만 그는 말을 하는 중에 낸드 메모리 공급 계약을 떠올렸다.

“회, 회장님이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겁니다. 물론 실장님 예측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KM 전자에서 TV 사업을 빼면 오디오밖에 없습니다. 앞으로 KM 전자가 주력 사업으로 무엇을 밀려고……. 설마?”

최민혁은 그제야 방긋 미소 지으면서 주머니 속에 넣어둔 가장 최근에 완성된 MP3 샘플 기기를 내밀었다. 고급스러운 재질의 흰색 MP3는 초도 샘플과는 차원이 달랐다.

반질반질한 질감도 질감이지만 손바닥에 착 달라붙었다.

버튼이라고는 중앙에 달린 하나가 다였다.

너무 단순해서 획기적인 이 디자인은 장승일 실장의 눈을 잡아끌었다.

최민혁은 당황해 하는 장승일 실장 귀에 이어잭을 직접 꽂아주었다.

그리고 나온 음악.

장승일 실장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도 MP3를 처음 본 다른 임직원들과 마찬가지로 처음에는 MP3 기기의 가치가 뭔지 몰랐다. 신용카드 크기의 MP3가 뭔지 알 수 없었다.

다만 음악을 듣고 나서야 이 MP3가 카세트 플레이어를 대체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이, 이게 뭡니까?!”

“MP3 플레이어입니다. 카세트 플레이어 생각하면 됩니다. 다만 저장을 낸드 메모리에 넣어서 한다는 점이 달라요. 가벼운 무게, 얇은 두께 때문에 운동할 때도 편하죠.”

최민혁은 MP3를 던졌다 받았다 하면서 장승일 실장의 시선을 다시 끌었다.

“서, 설마 이 제품 안에 낸드 메모리가 들어가는 겁니까?”

“네. 64MB 낸드 메모리면, 대략 MP3 파일 한 곡 당 4MB 기준으로 16곡 정도가 들어갑니다. 기존 카세트 플레이어와 비교조차 하기 힘들죠. 카세트 플레이어 시장만 노려도 수십만 대는 가볍게 팔 수 있습니다. 거기에 영업만 잘 풀어간다면 그 이상의 판매도 노릴 수가 있어요. 그리고 MP3 산업이 하나의 트렌드가 된다면 수백만 대 판매도 어렵지 않아요. 그 이상도 볼 수가 있으니까.”

“…….”

장승일 실장도 MP3를 만지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는 뒤늦게야 낸드 메모리 300만 개의 의미를 깨닫고 말았다.

“이,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정신이 없어서 뭐라고 답변하기는 좀 그렇습니다. 하지만 오성 전자를 비롯한 다른 경쟁업체도 얼마든지 이 제품을 모방해서 새로운 제품을…….”

최민혁이 다음에 내놓은 자료는 MP3 관련 특허다. 핵심 특허 외에 MP3와 관련이 있는 특허를 죄다 모은 덕분에 무려 500건을 넘어갔다.

“전 세계 어떤 기업도 우리 허락 없이는 MP3를 만들 수 없습니다. 솔직히 이 MP3 특허 풀로 로열티만 받아도 우리 회사는 먹고 살 수 있을 겁니다. 다만 MP3 시장을 제 마음대로 선도하기 위해서 개발하는 것뿐입니다.”

“맙소사.”

장승일 실장은 한동안 특허 내용을 일일이 살피면서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단순히 MP3 플레이어 특허만이 아니라 MP3 원천 기술에 관한 것도 있었다.

‘이, 이러면 이야기가 달라. 굳이 TV 사업부에 집착할 이유는 없어. 실장님이 설마 이런 준비까지 해놓고 있었다니.’

“…이, 이건 도대체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횡설수설하던 장승일 실장은 그제야 지금까지 진행한 모든 일이 최민혁 손바닥 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큘러스 프로젝트도 이 MP3 사업에 비한다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는 꼼꼼히 MP3 특허 목록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 후에 혀를 내둘렀다.

“…정말 TV 사업부를 매각하실 생각이군요.”

“그럼요. 제가 설마 장 실장님을 상대로 농담하겠습니까?”

“하, 아닙니다. 이건 정말 상상도 못한 일입니다. 설마 이런 일을 준비하고 있었다니. 맙소사 아직도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도대체 언제부터 이 일을 준비하신 겁니까?”

“콜린스 판매 전부터죠.”

“…정말 대단하십니다. 이건 정말 도저히 어떻게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만 하시죠. 그러면 이제 장 실장님이 가진 의문에 대충 답변이 된 것 같네요.”

“아, 그렇죠. 아, 그런데 초기 물량으로 300만 대는 너무 많지 않겠습니까? MP3 사업 초기에는 그렇게 많은 물량이 판매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최민혁은 씩 웃었다.

“그렇게 되게 해야죠. 아, 그리고 할아버지에게는 이야기를 해주세요. 이 초도 샘플 몇 개를 줄 테니, 가서 보고하면 될 겁니다.”

“…네.”

“아, 그리고 아직은 다른 직원에게는 비밀입니다.”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에게서 흰색과 검은색 MP3 샘플 몇 개를 받은 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바로 사무실을 나서지 못했다.

최민혁의 얼굴을 몇 번이나 보고는 정중하게 허리를 숙인 후에 사무실을 떠났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감정은 도저히 말로 형언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 * *

아시아 디자인 하우스는 주문형 반도체 업체로 반도체 설계 전문가 30명이 모여서 창업했다. 자본금 50억 중에 40억은 KM 산업이 투자했다.

비록 작은 업체라고 해도 명색이 KM 그룹 계열사나 마찬가지다.

오늘 창업식에는 KM 그룹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 자리했다.

그렇다고 해도 찾아온 사람이 모두 200명이 넘는 것은 이 회사의 설립을 주도한 사람이 바로 최문경 부회장의 장녀 최영란 과장이기 때문이다.

최문경 부회장의 와이프 김이경의 얼굴도 오늘은 활짝 폈다.

“영란아, 축하한다.”

“이제 시작일 걸요.”

“그래도 네가 이제까지 고생했잖아. 네 아비보다 났구나.”

최민혁 실장 때문에 몇 달 내내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나마 장녀 최영란의 도약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김이경은 아직도 최민혁 이름만 생각해도 이를 으드득 갈렸다.

“잘해야 한다. 아버님도 널 여자로만 생각하지 않아. 이번에 아버님 인정을 받는다면 앞으로 상황이 달라질 수도 있어.”

“신경 안 써.”

“내가 괜찮지 않아. 너라도 인정을 받아야지 내가 안심돼.”

최영란도 자기 양손을 잡은 채 위로하는 어머니 김이경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녀는 솔직히 최민혁에 대해서 별다른 감정이 없었다.

두 사람이 최민혁 실장을 극도로 싫어하는 모습이 불편했다.

아무리 자신이 나선다고 해도 두 사람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다.

특히 김이경은 최민혁이라면 요즘 경기를 떨 정도였다.

‘하긴 민혁이가 대단하지.’

그녀도 솔직히 최민혁의 독보적인 실적을 인정했다. 시간이 나면 최민혁 행보에 관련된 기사를 일일이 찾아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오큘러스 프로젝트는 특히 신기했어. 이동호 교수를 통해서 뭔가 손을 쓴 것 같은데, 그게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 KM 전자 내에는 위성 관련 전문가 없으니까.’

“…….”

김이경의 따가운 시선을 받은 최문경 부회장은 굳은 얼굴을 한 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도 딸이 이렇게 ASIC 설계 업체인 디자인 하우스를 설립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비메모리 반도체 쪽은 어떻게 되어가?”

“기존 리드 프레임과 포토 마스트 관련 업체를 통해서 외국 합작사를 알아보고 있습니다. 공장부지 선정 작업도 문제없습니다.”

“자본은 걱정하지 말고, 문제가 없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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