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48화 (248/1,021)

#248.

[후유, 제이미 이사!]

[흥!]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 이사는 은근히 화가 났지만 그렇다고 제이미 이사를 질책하지 않았다. 당시 MP3 특허권을 가지고 협상할 때는 제이미 이사가 너무 도를 넘은 것이 아닌가 싶었다.

당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이번 계약에 대해서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 악담을 퍼부었다.

그 때문에 가브리엘 아담스도 한동안 최민혁 실장의 행보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최민혁은 그 어떤 특이한 행동도 보이지 않았다. 하는 것이라고는 MP3와 관련이 있는 특허를 죄다 긁어모으는 것뿐이다.

그녀는 이 정도면 큰 의미가 있다고 판단했다. 다만 시즈벨 투자자와 만날 때면 넌지시 MP3 산업에 대해서 물어봤다.

대다수는 호기심을 드러냈고, MP3 산업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그들은 KM 전자의 주식을 차명 지분으로 쓸어 담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그런데 미국 투자자 중에 한 사람은 MP3에 대해서 흥미를 보였다.

가브리엘 아담스는 그 일 때문에 한국에 있는 제이미 이사에게 전화한 것이었다.

[당신은 못 속이겠군요.]

[쓸데없는 잔머리 굴리지 말고, 용건이 있으면 바로 말하세요.]

냉랭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말에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 이사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이렇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전화를 건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제이미 이사는 비웃는 투로 빈정거렸다.

[MP3 특허 때문입니까? 설마 벌써 그 계약을 후회하는 겁니까?]

[…아니라고 말을 못하겠네요. 알다시피 제가 아는 지인 중에는…….]

[당신 투자자 이야기는 별로 듣고 싶지 않습니다. 참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KM 전자 주식을 끌어모으고 있는 것도 그쪽입니까?]

[…그래요.]

[쯧, 좀 심하게 설치더군요. 왜요, 그들 모습을 보니 우리 대표 이사님도 이제 KM 전자 주식에 욕심이라도 생긴 겁니까?]

[정보를 준 것은 저지만 KM 전자 투자 자체는 제가 관여한 것이 아니에요.]

[그렇습니까?]

그녀는 잠깐 머뭇거렸다. 이대로는 대화 자체가 될 것 같지가 않았다. 망설이던 그녀는 결국 솔직하게 내심을 털어놓았다.

[MP3 특허를 과소평가한 것에 사과할게요.]

[조금 뜬금없네요. 지금까지 조용하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 겁니까?]

[혹시 냅스트라고 들어봤어요?]

[모르겠습니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실상 냅스트가 지금 미국 대학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가고 있기는 한데, 불과 얼마 지나지 않는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가브리엘 아담스조차 미국 워싱턴에서 고객을 만나는 중에 이 냅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MP3 음원의 미래에 대한 것도 말이다.

내막을 잘 모르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지만 눈치는 빨랐다.

[…생각보다는 좀 더 빨리 눈치를 챈 것 같군요.]

[안 그래도 KM 전자에 대한 관심이 많아요. 자세한 이야기를 좀 듣고 싶어요.]

[지금은 좀 바쁩니다. 그 일은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전화를 끊고 나서 그냥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병신 같은 년!’

새삼 치가 떨렸다. 가브리엘 아담스 이사만 아니었다면 굳이 한국까지 와서 이런 일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KM 전자의 주식을 사 모으는 세력이 누군지 그제야 확신했다.

‘내 앞에서는 딴소리만 늘어놓더니, 뒤로 KM 전자 주식을 쓸어 담았군.’

물론 그 역시 그 주식을 모으는 세력이 가브리엘 아담스 정보를 얻어서 자발적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느꼈다. 그렇지 않고야 가브리엘 아담스가 이런 행동을 할 리가 없었다.

‘안 그래도 계속 이쪽저쪽에서 연락이 오는데, 계속 무시할 수는 없고, 골치네. 그리고 냅스트에 대해서도 한번 알아봐야겠군.’

* * *

호텔에 돌아온 후에 샤워까지 한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느긋하게 시즈벨 한국 지사로 출근했다. 그는 냅스트 관련 정보를 살피면서 깜짝 놀랐다.

‘뭐야, 생긴 지 고작 한 달도 안 됐는데 이렇게 인기가 좋아?’

아이비리그 대학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퍼진 냅스트의 인기가 심상치 않았다.

MP3 공유 사이트가 급속도로 퍼지면서 MP3 파일 사용자가 급증했다.

비록 불법 파일이라고 해도 이렇게 사용자가 늘어난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다.

‘최민혁 실장이 이걸 노린 것일까?’

제이미 니콜라스도 정확히 최민혁 실장이 사태를 조성했다는 것까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좀 더 상황을 자세하게 파악하려고 자료를 취합했다.

그런데 방해꾼이 등장했다.

“이사님!”

화난 목소리 주인공은 아만다 베넷이다. 늘씬한 몸매에 시원시원한 금발 여인은 푸른색 눈빛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이지적인 눈매는 차가운 성격을 아주 잘 드러냈다.

하지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오히려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뭐야? 아만다, 네가 왜 여기 있어?”

“가브리엘 대표 이사님이 제이미 이사님을 도우라고 보냈어요.”

“감시하라고 보낸 거야? 넌 호출 명단에 없었어!”

“상관없어요.”

입술을 삐죽 내미는 아만다는 원래 영국 지사에서 무선랜 관련 특허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무선랜 특허도 시즈벨이 미는 분야 중의 하나다. 그 일이 꽤 중요한 터라 한국에 올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만다가 이곳에 왔다는 이야기는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 이사가 작정했다는 의미다. 아마 자신이 중간에 전화를 강제로 끊지 않았다면 아만다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아만다는 자신의 제자나 마찬가지라서 내칠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전화했군.’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혀를 찼다. 그는 가브리엘 대표 이사가 KM 전자에 단단히 흥미를 보인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늦었지.’

솔직히 그는 최민혁 실장과 계약 후에도 KM 전자의 상황을 유심히 살폈다.

그 덕분에 KM 전자에서 일어나는 일을 계속 주시해서 상당한 정보를 얻었다.

제일 먼저 알게 된 것은 바로 오큘러스 프로젝트 관련 특허다.

특히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디지털 위성방송 특허를 확인한 후에 탄성을 토했다.

이 특허의 근원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MP3와 비디오 특허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특허는 MPEG 위원회에서 핵심으로 검토 중인 일이다.

그런데 오큘러스 프로젝트는 이 표준을 위성 디지털통신 분야에 적용해서 영역을 넓혔다.

제이미 니콜라스 입장에서는 감탄보다도 오히려 화가 났다.

그가 그린 MP3 로드맵의 줄기 중 하나가 바로 이 디지털 위성방송이기 때문이다.

‘내 예상 시기보다 무려 6년이나 앞당겼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솔직히 이렇게 단기간에 오큘러스 프로젝트 결과가 나온 것은 그의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은 것이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분노가 다시 치밀어 올랐다.

자신이 가장 아끼는 보물을 도둑맞아서 머릿속이 복잡했다.

다행히 최민혁에 대한 감정은 곧 가라앉았다.

‘하긴 설사 시즈벨이 특허를 매각하지 않았다고 해도 시즈벨이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그렇게 빨리 진행할 수는 없지. 그건 오롯이 최 실장 능력이라고 봐야 해.’

사실 이 부분은 그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다.

도대체 최민혁이 무슨 수를 썼기에 오큘러스 프로젝트 결과물이 저렇게 발전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이것만이 아니야. TRS 사업이 진짜 황당했으니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TRS 사업안을 떠올렸다. 그는 솔직히 이 사업의 미래가 밝지 않다는 것을 알았지만 명확한 이유는 잘 몰랐다. 최민혁 실장 일을 돕다가 뒤늦게 그 이유를 안 것이었다.

그가 최민혁 실장에게 느낀 감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그런 일을 가브리엘 아담스 대표 이사에게 설명할 방법은 없었다.

아니, 할 수 있어도 할 이유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그 역시 KM 전자의 미래가 어떤지는 잘 알기에 KM 전자의 주식에 흥미를 느꼈다.

그리고 마침 위성 특허와 TRS 소송 때문에 이번 소송 건에 참여해서 경험을 쌓고 있는 안현수 팀장을 보자 넌지시 입을 열었다.

“어때요? 일은 할 만합니까?”

“네, 이사님께서 걱정해 주신 덕분에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안현수 팀장은 시즈벨 지사에 있으면서 꽤 다양한 해외 특허 경험을 쌓았다. 물론 이 일이 가능한 것은 최민혁 덕분이다.

그렇다고 해도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가 손을 쓰지 않았다면 어림도 없는 일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아만다가 ‘최민혁 실장’이란 사람에게 전화가 왔다고 전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바로 전화를 받았다.

[아, 안 그래도 할 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KM 그룹과의 일도 어느 정도 끝났으니, 실장님이 직접 오셔도 괜찮을 겁니다.]

* * *

불과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서 최민혁이 시즈벨 한국 지사에 도착했고, 안현수 팀장과 간단한 안부를 주고받았다.

그는 안현수 팀장의 모습에서 지금까지 꽤 많은 경험을 쌓았다는 알았다. 물론 아직은 미흡했다. 그의 능력과는 관계없이 국제 변호사는 경험이 많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안현수 팀장.

미국 연방 법원을 들락날락 거리면서 했던 일은 그에게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정보통신부와 KM 그룹을 상대로 협박한 것 역시 마찬가지다.

옆에서 지켜보면서 관련 정보를 하나씩 모으며 협상을 어떻게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것은 국내 법무 팀에 있어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것들이다.

당장 시즈벨에 있는 변호사만 해도 하버드 출신으로 경험이 많은 베테랑 변호사였던 것이다.

최민혁은 부드럽게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을 겁니다. 다양한 부분을 보셔야 할 겁니다. 앞으로 안 팀장님이 해야 할 일은 많으니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안현수 팀장은 과거 최민혁에게 스카우트 제안을 받을 때만 해도 이렇게 도움을 받을지는 상상도 못했다. 그는 때문에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최민혁을 쳐다보았다.

만족스러운 얼굴을 한 최민혁 실장은 뒤늦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손을 내밀었다.

“자주 인사를 해야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가 않습니다.”

“뭐 어쩔 수가 없죠. 저도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니까.”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도 최민혁 실장이 놓인 위치를 이제야 대충 파악했다. 그는 최민혁 실장과 잘 지내려고 하는 처지라서 아픈 점을 건드리지 않았다.

최민혁은 새삼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와 편하게 질문했다.

“일은 잘되어 갑니까?”

“KM 그룹은 단단히 긴장한 터라 별다른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이제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할 생각입니다. 그게 최 실장님에게 좋지 않겠습니까?”

“뭐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건 적당히 알아서 하시면 될 겁니다. 제가 오늘 찾아온 것은 좀 다른 용건이 있어서 입니다.”

“혹시 이번에 한국 언론이 최 실장님을 상대로 수작을 부린 것 때문입니까?”

“아뇨. 그것도 제가 알아서 합니다.”

다만 최민혁도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에게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도 뒤늦게 자신이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를 가볍게 생각한 것을 깨달았다.

‘…생각해 보니, 내가 준 것이 별로 없군.’

비즈니스 관계에서 이익이 안 된다면 얼마든지 뒤통수를 칠 수도 있는 법. 이번 기획사 소동을 저지른 언론사가 그 대표적인 경우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갈등하는 최민혁을 보자 넌지시 입을 열었다.

“제가 먼저 용건을 말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제가 최근에 한 일은 실장님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것은 그렇다고 해도 정보통신부 이야기는 좀 다릅니다. 굳이 제가 한국 정부와 척을 질 이유는 없었습니다.”

“…그렇죠.”

최민혁도 그 점을 순순히 인정했다. 특히 최문경 부회장을 흔드는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의 수법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다 정보통신부에 압력을 넣어서 오큘러스 지분 가치를 다시 정리한 부분은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자신이 나섰어도 자칫하면 권력에 휘둘려서 손해를 많이 볼 뻔했기 때문이다.

제이미 니콜라스 이사는 그런 점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자신이 한 성과를 자랑삼아서 늘어놓았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아마 앞으로 KM 전자의 영향력은 날로 그 힘을 더해갈 겁니다. 그렇게 된다면 저만의 도움만으로 힘들 겁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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