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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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진 편집장도 요즘은 최민혁 실장 행보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최민혁 실장이 ETRI 연구원에게 보인 특이한 행동에 주목했다.
굳이 ETRI 관련 기사를 낼 때 최민혁 실장을 주목한 이유다.
그도 처음에는 딱히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반감을 품거나 하지 않았다.
오큘러스 프로젝트 이후는 좀 달랐다. 이 프로젝트에 한영 일보 역시 포함되었다.
여기까지는 별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한영 일보 이동수 부사장의 행보 이후는 상황이 달라졌다.
이동수 부사장조차 최용욱 회장에게 잘 보이려고 했지만 내심마저 그런 것은 아니다. 그는 최용욱 회장 행보를 썩 좋아하지 않았다.
‘KM 그룹의 행보를 이대로 둘 수가 없다라. 하긴 이 현상을 좋게 볼 수는 없어.’
오큘러스 법인에 참여하는 이들 중에는 메이저 방송사나 언론사가 포함되는데, 이들도 뒤늦게 최민혁 실장 때문에 KM 그룹에 신경을 썼다.
오큘러스 법인 가치가 수직으로 오를수록 오큘러스 법인의 적지 않은 지분 소유자로 의심되는 KM 그룹을 배제해야 한다는 소리가 커졌다.
이들도 송한성 교수 배후에 최민혁 실장이나 최용욱 회장이 있다고 봤다.
그렇지 않고야 갑작스러운 오큘러스 프로젝트 진행 상황이 말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증거가 없어서 카더라 소리만 했다.
언론사는 위성 방송 사업에 이들 자본이 끼어들어서 자신들이 압력받는 것을 부담스러워한 것이다.
최경진 편집장은 같은 이야기를 계속 들으면서 최민혁 실장 행보를 유심히 살폈다.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 봤다.
아니나 다를까 범용구 기자가 웬 찌라시 하나를 물고 나타났다.
“KM 전자가 연예 기획사를 차렸다고?”
“네. 거의 확실한 정보입니다. 비록 벨린 투자 이용해서 신영 기획사를 인수하기는 했지만 제 눈을 속이지는 못했습니다.”
“지랄한다.”
범용구 기자도 어깨를 으쓱한 채 별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경진 편집장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서 그 배후가 누구인지 금방 깨달았다.
‘김현탁 본부장 쪽이군.’
김현탁 본부장 딴에 몇 단계를 거쳐서 정보를 흘렸지만, 최경진 편집장은 다 알고 있었다. 이제까지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다.
그는 누구보다 범용구 기자 능력을 잘 알았다. 제대로 확인도 안 하고 찌라시 하나를 물고 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정보의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았다.
“제보가 들어온 것은 확실하지?”
“아, 최 편집장님도 진짜 답답한 소리 합니다. 최민혁 실장에 대한 정보가 들어오면 바로 보고하라고 했지 않습니까?”
물론 범용구 기자는 최민혁 실장에게 된통 당한 터라 이 상황을 걱정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최 실장 성격이 얼마나 악랄한지는 편집장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상관없어. 나만 최 실장을 신경 쓰는 것은 아니니까.”
“가만 그러면 한선일보나 다른 언론사도 다 이번 일에 같이 낀 겁니까?”
“…그래. 하지만 입조심 해.”
“그거야 당연한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최 실장도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 그때는 어쩔 생각입니까?”
“그때는 잘못했다고 해야지.”
“…아니 왜 그렇게 일을 만들려고 하는 겁니까?”
“난들하고 싶어서 하겠냐. 아니 생각을 해봐. 지금 한창 무서운 것이 없는 최 실장을 그냥 두면, 앞으로 어떨 것 같아. 세상 무서울 줄 모르고 설칠 것 아냐. 그 대상에는 우리 한영 일보도 피해 갈 수는 없어.”
“아하, 이번 기회에 최 실장을 교육하자는 거군요.”
“그래. 대충 네 말을 이제 알아들었을 것 같으니, 적당히 이 정보로 작품을 만들어 봐.”
“…저기 꼭 제가 이 기사를 써야 합니까? 경제 기사에 가까우니, 차라리 최광수 기자에게 맡기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최 기자는 바빠. 가만 너 지금 내 지시를 씹는 거야?”
“그건 아닙니다. 다만 최 실장이 보기와는 달리 자기 눈 밖에 난 이들에 대해서 얄짤없습니다. 괜히 제가 기사를 썼다가…….”
“그래서 지금 기사를 못 쓰겠다는 거야?”
“후유, 아닙니다.”
따가운 최경진 편집장 지시에 범용구 기자는 축 처진 어깨를 한 채 편집장 실을 나섰다. 그도 설마 최민혁 실장이 딱 찍어서 자신을 씹지 않기만을 바랐다.
* * *
대기업 자본이 톱스타를 보유한 기획사를 앞세워서 배급 유통 영역까지 넓혀가는 일에는 늘 끊임없이 문제가 제기되었다.
바로 콘텐츠의 독점화다.
이런 문제 때문에 미국만 해도 스타를 보유한 기획사가 콘텐츠 제작 자체를 할 수 없도록 했다.
한국 메이저 기획사는 이런 미국과는 달리 콘텐츠를 자체 제작하는 분위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었다.
액면 그대로 본다면 최민혁과 관계가 깊은 벨린 투자가 신영 기획사를 인수한 것은 다소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범용구 기자는 바로 이런 점을 파고들었다.
[KM 전자가 연예 기획사 진출하나.]
한선일보가 배턴을 이어받아서 잽싸게 다음 기사를 내보냈다.
[KM 전자는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서 연예 계열사를 설립, 이를 바탕으로 영화, 음악 시장에 적극 진출하는가.]
그다음 다른 언론사가 알아서 나발을 불었다.
[대기업 자본의 연예 기획사 진출 과연 이대로 좋은가?]
[콜린스 모델 신화로 일약 1조 매출을 이룩한 KM 전자는 다른 한국 대기업처럼 문어발식 확장을 시작하는가?]
갑자기 쏟아지기 시작한 이 뜬금없는 기사에 KM전자는 내막을 알지 못한 채 비난당했다.
안 그래도 말 많은 최민혁 실장의 1조 주식 지분 증여 문제가 신영 기획사 인수 문제와 합쳐지면서 이슈가 더 커졌다.
난리가 났다.
최민혁은 어이가 없어서 조성돈 팀장과 빠르게 협의를 진행했다. 아니 언론사에 당장 전화해서 기자를 호출했다.
한영 일보의 범용구 기자는 오랜만에 최민혁 전화를 받았다. 진짜 깜짝 놀랐다. 다행히 변명할 필요는 없었다. 최민혁 실장은 용건만 간단히 전했다.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쉰 채 음악 연습실을 찾았다. 그곳에는 이미 수십 명의 기자가 와 있었다.
그들은 다들 입을 내두른 채 전 신영 기획사의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김명준 과장의 경호를 받아서 나타난 최민혁 실장은 기자들을 이전처럼 살갑게 대하지 않았다.
“자, 일단 음악 연습실은 이제 봤을 거고, 어떻습니까? 이 설비 안에 기획사 전문 매니저나 가수가 눈에 보입니까? 드라마 연기자는 또 어디 있습니까?!”
냉랭한 최민혁 목소리는 평소와는 달랐다.
말을 더해갈수록 무게가 더해갔다.
단단히 작정한 최민혁은 아예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이번 기사를 가지고 씹었다.
“기자 여러분은 지금 내용 확인도 안 하고, 허위 사실을 유포한 겁니다. 제가 이런 일을 두고 여러분을 고소하고 말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방법을 이용해서 언론사를 압박하겠습니까?”
조용했다.
이곳을 찾은 기자 대부분은 최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잘 알았다. 이번 일 때문에 각 언론사 윗선에서 난리가 났다.
힘을 가진 KM 그룹 최용욱 회장 눈치를 다들 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최용욱 회장과 최민혁 실장 관계에 대해서는 말이 많았다.
요즘은 주로 음모론식의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니 최민혁이 더 부담스러웠다.
기사를 내보내면서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진짜 이번 기사를 쓴 기자를 죄다 불러 모아서 협박을 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최민혁은 자기 내심을 숨기지 않았다.
“저도 소위 말하는 재벌입니다. 거기다 돈도 제법 있습니다. 여러분이 언론에서 씨부렁거린 그 1조라는 돈 말입니다. 그 돈으로 여러분을 밟아버려도 됩니다. 그렇게 해볼까요?!”
“…….”
단 한 치의 표정 변화 없는 최민혁 압박에 범용구 기자를 비롯한 다른 기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들 역시 이번 사건 소스를 잘 알기에 더 그랬다.
다들 쉬쉬하면서도 알 것은 다 아니까 말이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이번 사건을 시작한 범용구 기자에게 모였다.
내심 툴툴거리던 범용구 기자가 슬그머니 손을 들었다.
“실장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KM 전자가 기획사 시장에 진출한 것은 다른 안건과는 많이 다릅니다. 차라리 다른 사업 분야라면 이렇게 난리를…….”
최민혁은 음악 연습실 내부의 문을 일일이 열어서 안을 보여주었다. 그 어디에도 연예인 연습생, 가수, 배우 흔적은 없었다.
“범 기자, 지금 여기 음악 연습실을 보고서도 그런 말이 나옵니까?!”
“그게…….”
“눈으로 보고도 못 믿는다면 더 할 말이 없네요. 당신네 기자들은 사실을 가지고 기사를 쓰는 직업 아닙니까. 아니면 이 음악 연습실을 가지고 개연성 있는 소설을 쓰는 겁니까?!”
“그게 아니…….”
최민혁은 음악 연습실 한쪽에 놓인 단상 위에서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을 일일이 쳐다보았다. 그는 피식 웃었다.
“지금 저랑 장난하자는 겁니까? 이 장사 하루 이틀 하는 것도 아닌데, 설마 제가 내막을 잘 모른 채 여러분을 호출했겠습니까?!”
“…….”
“좋습니다. 차라리 잘되었습니다. 안 그래도 여기 있는 언론사 꼴 보기가 싫었는데,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에서 다 빼버리는 거로 가죠. 사실 위성 방송 사업에 대형 언론사가 끼어드는 것이 정말 갑질이죠.”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에게 휴대폰을 받아서 진짜 제이미 니콜라스에게 전화를 걸었다.
“접니다. 오큘러스 지분 협상에서 한성 일보를 비롯한 제가 부르는 언론사는 다 빼버리……”
경악한 범용구 기자는 허겁지겁 최민혁에게 달려가서 매달렸다. 다른 기자들 역시 상황을 눈치채자 다급하게 나섰다.
그들은 어쩌면 최민혁이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지 모른다고 추정했지만 실제로 그런지는 몰랐다.
물론 이 자리에서 전화만으로 영향력 행사가 가능한지 테스트를 해보고 싶지는 않았다. 최민혁 실장 성격이 얼마나 더러운지는 지금까지 조사한 자료만 봐도 충분했기 때문이다.
그들 역시 오큘러스 프로젝트 발표회 때 최민혁이 받은 위상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최민혁은 자기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범용구 기자를 냉랭하게 쳐다본 후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는 다른 기자도 쳐다보았다.
“지금 저랑 장난하는 겁니까?”
“아, 아닙니다.”
“도대체 뭘 하자는 겁니까.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절 길들이려고 한 겁니까. 그게 정말 통할 거라고 생각했습니까? 저 최민혁은 끝장을 보면 봤지 그따위 압박에는 굴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당당한 포부였다. 아마 다른 사람이 이런 말을 했다면 가볍게 넘겼을 거다. 하지만 최근 최민혁이 보인 행동을 보면 단순히 말로 끝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언론사 기둥뿌리를 흔들고도 남을 사람이 최민혁이었다.
실제로 각 언론사 윗선에서는 최민혁 실장 눈 밖에 벗어나지 말라고 했다. 즉 명분을 주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 것이다.
자칫 일이 최악으로 흐르면 여기 있는 기자들은 기자 생활을 접어야 할지도 몰랐다.
기자들은 창백하게 굳은 얼굴을 한 채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죄, 죄송합니다.”
최민혁은 뜻밖에 자기 협박이 먹혀들어 갔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신이 최문경 부회장, 오성 전자, DL 그룹, ETRI, 정보 통신부를 상대로 한 일을 기자들 역시 알게 모르게 다 파악했던 것이다. 다만 증거가 없어서 최민혁에게 묻지를 못할 뿐이다.
“이번 일의 배후는 김현탁 본부장입니까?”
“그게…….”
제일 앞장선 범용구 기자는 움찔 몸을 떨면서 식은땀을 흘렸다. 그는 최민혁 시선을 받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슬쩍 뒤로 물러났다.
다른 기자들 역시 범용구 기자와 다를 바가 없었다.
제보자는 김현탁 본부장이 아니었다. 박태정 부장도 아니었다. 정확히는 박태정 부장의 고등학교 동창이었다. 그를 이용해 몇 단계 거쳐서 언론사에 제보한 것이었다.
범용구 기자조차 이 동창의 정체에 대해서는 이미 알았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것이었다.
그렇다고 한영 일보가 최민혁 실장을 적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언론사 힘이 이 정도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거다.
최민혁도 언론사에 한번 당하고 나면 언론사를 부담스러워할 것이라 봤다.
그리고 적당한 선에서 광고료도 좀 받고 해서 기사를 내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최민혁 실장은 아예 작정하고 기자들을 불러 협박을 한 것이었다.
분노한 최민혁 실장을 앞에 둔 기자들은 그저 최민혁 눈치만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