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42화 (242/1,021)

#242.

아니, 가능할 것 같았다.

그가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샘플링 곡으로 빌보드를 흔든 ‘I’ll be loving you.’다. 이 노래를 쉽게 기억한 것은 스승인 이지수가 가장 좋아하던 곡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

이지수가 이 노래를 부를 때는 참으로 해맑고 밝았다.

최민혁이 가장 행복하다고 느낀 시절 중의 하나였다.

최민혁은 물론 이 노래가 빌보드를 휩쓸면서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해봐야 두 사람이 믿지 않을 것이다.

그는 심지어 그 인기를 이용해서 MP3가 새로운 매체란 점을 홍보할 것이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최주호 마케팅 팀장 입장에서는 미친 짓이나 마찬가지였다.

늘 냉정한 조성돈 팀장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최민혁은 두 사람을 설득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좋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이야기하죠.”

물론 조성돈 팀장만 남자, 최민혁은 다른 지시를 내렸다.

“스팅 쪽에 연락해서 이 곡의 저작권을 사들이기 바랍니다.”

“네? 그게 무슨…….”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자세한 것은 제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말로 해봐야 조 팀장도 잘 이해를 못 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많이 생뚱맞은 지시에 조성돈 팀장은 굳이 반문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최민혁 실장의 실적 때문에 이제는 이상한 지시조차 다른 뜻이 있다고만 생각했다.

‘그래도 그렇지. 갑자기 웬 음원 저작권을 사들이라는 것일까?’

* * *

벨린 투자 우영민 과장은 얼마 전에 다시 차장으로 진급했다. 꾸준히 수익을 낸 투자와 KM 전자 투자 대박 덕분이다.

특히 KM 전자의 지분 매입을 통한 이익은 너무 커서 벨린 투자는 꽤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 KM 전자 지분을 노린 이들의 요청 때문에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런 그도 최민혁에게서 갑자기 음악 연습실을 구하라는 지시를 받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기획사라도 차릴 생각인가?’

그럴 수 있다.

KM 전자의 지분 가치만 생각해도 고작 기획사 따위를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우영민은 자세한 것을 묻지 않은 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다행히 최근 경영 실적이 나빠서 자금 압박에 시달리다가 벨린 투자 문을 두드린 신영 기획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다음은 쉬웠다.

빚더미에 휘둘리고 있던 신영 기획사는 매각을 바로 결정했다.

신영 기획사는 사람보다는 건물에 시설에 무리한 투자를 진행했다.

그 덕분에 생긴 빚이 만만치 않았다.

투자하고 있는 가수 중의 하나는 대박 칠 것이라 예상했지만 죄다 쪽박을 쳐버리면서 파산을 코앞에 둔 것이었다.

따라서 얼마 되지 않은 인원을 정리하기도 어렵지가 않았다.

우영민 차장은 아직 계약이 진행되는 중에 눈독을 들이고 있던 신영 기획사가 입주한 빌딩도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KM 전자 본사와도 가까운 점이 좋았다.

그는 이왕 내친김에 즉시 빌딩 건물주를 만나서 건물 매각 의사를 물어봤다.

상대도 쿨한 우영민 차장의 제안에 바로 건물을 넘겼다.

결국 신영 기획사가 입주한 지상 6층, 지하 3층짜리 건물이 벨린 투자에게 넘어갔다.

우영민 차장은 칭찬해 달라는 강아지처럼 최민혁에게 바로 연락했다.

최민혁은 발 빠른 처리에 흡족한 얼굴로 음악 연습실을 찾았다가 기합하고 말았다.

“…이 건물도 사들였다고요?”

“네. 투자 가치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주변 부지도 다 사들여서 몇 년 후에 빌딩을 올리는 것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사실 신영 기획사도 이 건물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는 중에 최 실장님 연락을 받고 바로 진행했습니다.”

“으음.”

IMF 이후에 부동산 시장이 폭락한다는 것을 아는 최민혁은 혀를 내둘렀다. 아직 그 이야기는 우영민 차장에게 해주지 않았다.

“당분간은 투자를 자제하세요. 부동산이던, 동산이던 마찬가지입니다. 주식 투자는 계속 진행하되, 이전과는 달리 소극적으로 하세요.”

“네? 무, 무슨 말입니까?”

나름의 칭찬을 기대한 우영민 차장은 영문을 몰라서 눈을 끔뻑거렸다.

그런데 지금까지 벨린 투자에서 수익을 꾸준히 낸 우영민 차장을 질책할 수는 없었다. 딱 이 음악 연습실 하나만 빼고는 잘해왔던 것이다.

‘아니, 꼭 나쁜 것만은 아냐. MP3 음원에 탑재할 곡을 연습할 장소는 필요했으니까.’

기성 가수 앨범을 MP3로 낼 수는 없다. 아마 기존 기획사나 음원 유통 업체가 들고 일어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명 가수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설사 빅히트를 친다고 해도 그때는 오히려 KM 전자의 능력을 더 높이 보겠지.’

그리고 자신이 굳이 음반 유통업까지 할 생각 자체가 없었다.

최민혁 자신이 원하는 것은 MP3가 주목받는 것이면 되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런 의도를 잘 모르는 이들은 뒤에서 악성 루머를 퍼뜨리겠지. 쯧, 어쩔 수 없지. 그렇다고 자세한 것까지 말할 수는 없으니.’

최민혁도 자세한 이야기를 자제한 채 우선 음악 연습실을 둘러보았다. 그는 괜찮은 내부 설비에 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신영 기획사가 비록 망하기는 했지만, 그들이 사업을 부실하게 하지는 않았다. 제대로 된 가수가 받쳐줬다면 미래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영민 차장은 그 점을 알아보았다. 건물 위치도 나쁘지 않았다. 아마 건물주 사정이 좋았다면 설사 IMF 시절에도 빌딩을 팔 것 같지는 않았다.

최민혁도 그런 점을 느끼자 괜히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좋아. 나쁘지 않아.’

“수고했습니다.”

“아, 네, 그, 저 죄송합니다. 제가 실장님 지시를 듣지 않고 임의대로…….”

“아뇨. 그런 것까지 제가 터치할 수는 없어요. 더욱이 제가 구체적인 방향도 제시하지 않았으니까. 앞으로 조심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우영민 차장은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그런데 기획사를 생각한 것이 아닙니까?”

최민혁도 피식 웃고 말았다.

“아닙니다. 정확히는 MP3에 탑재할 음원을 만들 곳이 필요했습니다.”

“MP3 탑재 음원이라뇨?”

최민혁은 굳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지금 시점에서 들어봐야 이상한 눈으로 볼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건 제가 상황 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습니다. 일단 그렇게만 알고 계세요.”

“네.”

* * *

최근 장승일 실장은 최민혁을 너무 자주 찾아가서 눈치를 봤다. 최민혁의 일정표도 확인해서 적당한 타이밍을 골랐다.

최민혁이 최근 출장을 자주 나갔는데, 돌아오는 시점을 골랐다.

불행히도 최민혁은 급한 연락을 받고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오혜정 비서는 허리를 숙였다.

“실장님께서는 급히 할 일이 있다고 나갔습니다.”

당연히 그 위치는 말하지 않았다.

“괜찮습니다. 개인적인 일이 있나 보죠.”

장승일 실장은 이 자리에서 기다려야 할지 고민하다가 조성돈 팀장을 만났다.

혹시라도 조성돈 팀장은 최민혁 실장의 동선을 알까 싶어서다.

“어, 실장님 말입니까? 안 그래도 지금 실장님 연락을 받고 나가려고 했습니다.”

“제가 같이 가도 될까요?”

조성돈 팀장은 혹시나 싶어서 최민혁에게 연락해 봤는데, 다행히 전화를 받았다.

[뭐 상관없습니다. 그런데 장 실장님이 요즘 저를 너무 자주 찾는 것 같네요.]

장성일 실장도 민망해서 조성돈 팀장의 눈치만 본 채 조용히 뒤를 따랐다.

‘그런데 업무 중에 도대체 어디를 간 거지?’

* * *

‘I’ll be loving you’는 원저작권자인 스팅의 노래를 샘플링한 곡으로 최민혁 스승이자 연인인 이지수가 가장 좋아하는 베스트 넘버링 중의 하나다.

최민혁은 이지수와 처음에 잘 지낼 때 이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는 복잡한 KM 전자의 복잡한 상황을 잠깐 피해 음악 연습실에서 이 노래 연습을 계속했다.

이지수와 좋았을 때를 추억하는 모양새다.

부드러운 감성과 절절한 멜로디가 잘 살아 있어서 한국인이 불러도 다른 노래에 비해서는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덕분에 노래는 마치 잔잔한 향수를 떠올리게 하고도 남았다.

최민혁은 마치 본래 이 노래의 가수인 것처럼 이 노래에 폭 빠져 있었다.

KM 전자 바로 옆에 있는 한 건물을 사들여 만든 음악 연습실은 최민혁의 단아한 노랫소리가 가득했다.

같이 곡을 연주하는 아르바이트 기타 연주가는 혀를 내두른 채 최민혁 노래를 감상했다.

‘죽이네.’

별생각 없이 아르바이트 삼아서 이곳에 왔는데, 막상 최민혁의 노래를 듣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귀에 착착 감기는 노래는 그의 예상치를 훌쩍 넘어섰다.

뒤늦게 최민혁이 KM 그룹의 재벌 3세이자, 억만장자라는 것을 알고서는 최민혁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연예인인 어머니의 유전자 덕분에 가창력도 나쁘지 않은 최민혁의 노래는 일반인 수준은 가볍게 뛰어넘었다.

영문을 모르고 이곳을 방문한 조성돈 팀장은 입을 딱 벌린 채 최민혁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기만 했다.

그 역시 갑자기 연락을 받은 터라 처음 안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크게 놀란 이는 다름 아닌 장승일 실장이었다.

늘 회사에서 일만 하던 최민혁이 열창하는 모습에 꽤 큰 충격을 받았다.

아마 그냥 일반적인 노래였다면 그렇게까지 의문을 가지지 않았을 것이다.

랩을 잘 모르는 장승일 실장조차 최민혁 노래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 심지어 기타 연주가조차 경악한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도대체가.’

최민혁의 색다른 모습.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의 능력을 잘 알고는 있었지만 이런 모습은 또 처음이다.

최민혁은 노래를 통해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고 나서야 음악 연습실에서 나왔다. 그는 아직도 충격에서 빠져 있는 조성돈 팀장에게 말했다.

“스팅과 저작권 협의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쪽에도 고압적인 자세로 나와서 좀 더 협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원곡 ‘Every Breath You Take’ 자체가 영국에서 워낙에 유명해서 문제가 있습니다. 대신에 이미 리바이브를 한 가수도 있는 마당이라서 저작권을 얻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정확히는 스팅 측 기획사 쪽에서는 KM 전자가 비즈니스 용도로만 사용한다고만 알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KM 전자가 자기 노래를 어떻게 샘플링할지, 과연 그 노래가 얼마나 성공할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최민혁 역시 일을 굳이 서둘러서 문제를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장승일 실장이 와 있는 것을 의식해서 MP3에 대한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아, 굳이 서두르지는 마세요. 정 안 되면 다른 곡을 선택하면 되니까. 이번 곡은 거기에 들어갈 곡 중의 하나로 생각할 뿐이니까.”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 노래 솜씨가 워낙에 놀라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설마 최 실장님이 음악 무대에 나설 생각입니까?”

연습 때문에 땀을 흘려서 가볍게 세면만 하고 나온 최민혁은 한쪽에 서 있는 장승일 실장에게 잠깐 시선을 주고 나서는 툴툴거렸다.

‘정말 말이 많네. 한편으로 좀 걱정이다. 조 팀장조차 저러는데, 찌라시는 오죽할까.’

“그냥 한번 불러본 겁니다.”

“아, 워낙에 가창력이 좋아서 말입니다.”

“…노래를 두 번만 부르면 제가 앨범 제작까지 할 거로 생각할 것 같네요.”

“하하하, 아닙니다. 정말 노래가 좋아서 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 지적이 딱히 이상한 것만은 아니었다.

최민혁은 인생 1회차에 기획사까지 만든 적이 있었고, 심지어 연예인 연습생 데리고 재미도 많이 봤다. 그는 자기 권력을 이용해서 드라마에도 출연하고, 앨범도 냈다.

즉 연습생과 성 추문 문제만 빼고 보면, 노래 실력 자체는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인생에서는 직업으로 노래를 부를 생각은 없었다.

지금 하는 연습은 MP3 판매 곡이 목적이기는 하지만 이지수에게 멋진 모습을 보여줄 의도일 뿐이다.

“다른 가수를 섭외해서 녹음시킬 생각이군요.”

“그렇죠. 이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른다면 이야기는 좀 다르죠. 노래가 괜찮지 않습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음악을 잘 모르는 조성돈 팀장조차 최민혁이 부른 노래를 곰곰이 생각했다. 아무리 봐도 가볍게 들은 수준은 아니었다.

심지어 노래도 마찬가지다.

마늘 하늘에서 갑자기 뚝 떨어진 랩은 조성돈 팀장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났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마케팅 차원에서 MP3를 팔 때 굳이 텅텅 빈 녀석으로 판매하기보다는 차라리 괜찮은 노래로 채우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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