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9.
그는 불편했던 점을 보완해서 학교 친구들에게 파일을 뿌렸다.
공짜로 음원 파일을 서로 교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 파일을 받은 이들은 다들 환호했다. 그 환호는 지역 고등학교 전체로 퍼져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대학에도 이 새로운 공유 프로그램에 열광했다.
숀 페닝은 프로그램을 받은 이들의 반응에 삼촌을 만나서 이야기를 해봤다.
“기발하기는 한데, 지금은 좀 무리야. 인터넷이 너무 느려서 사업적으로 활용하기는 좀 그래. 앞으로 좀 더 지켜봐야겠어. 대신에 저작권은 분명히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에요.”
“나도 알아봤는데, 원저작권자가 권리를 내세운 것은 아니잖아. 우리가 먼저 저작권을 등록한다면 문제는 없을 거야.”
“알겠어요. 삼촌이 잘 좀 처리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
* * *
오상현 과장 지시를 받아서 P2P 파일 실제 코딩을 한 홍수욱 대리는 최민혁을 존경하지만, 이번 일 처리에는 크게 실망했다.
그는 설마 이 파일을 비밀리에 전 세계에 뿌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홍수욱 대리는 결국 이 일에 미련을 관두지 못해서 자신이 작업한 파일 반응을 꼼꼼히 감시했다. 차라리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으면 했다.
‘그런데 링컨 고등학교에는 왜 게시판에 관련 정보를 남기라고 했는지 모르겠네.’
다른 명문 대학이나 명문고와는 달리 링컨 고등학교는 그렇게 알려진 곳도 아니었다.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일이 일어났다.
링컨 고등학교 출신의 한 고등학생이 자신이 올린 P2P 파일을 수정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뿌린 것이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불과 이 주 남짓한 시간에 지역사회는 물론이고, 지역 대학으로 다 퍼져 나갔다.
더 황당한 것은 이 프로그램 저작권이 떡하니 등록됐다는 것이었다.
‘냅스트 법인이라.’
이렇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게 추정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에 심란한 홍수욱 대리는 오상현 과장에게 이 사실을 보고했다.
“헉? 정말 2주 만에 이 난리가 난 거야?”
“아직 난리랄 것은 없네요. 하지만 링컨 고등학교 근처의 지역사회와 지역 대학이 이 프로그램 때문에 시끄러운 것은 사실이에요. 아마 올해만 지나가도 다른 대학에 빠르게 퍼져갈 겁니다.”
오상현 과장은 프로그램에 미쳐 있어서 외부 일에 별로 관심이 없었다. 다만 그도 기대치를 넘어간 P2P 서비스의 움직임에 혀를 내둘렀다.
“…뜻밖이네.”
아직도 집착을 쉽게 떨치지 못한 홍수욱 대리는 툴툴거렸다.
“도대체 최 실장님은 왜 이렇게 놀라운 서비스를 외부에 공개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해도 되는 일이지 않습니까?!”
냅스트의 미래를 모르기에 나올 수 있는 말이다.
오상현 과장은 목소리를 높이는 홍수욱 대리 때문에 주변을 살피면서 홍수욱 대리를 야단쳤다.
“다른 사람이 알면 곤란하다고 말했잖아. 앞으로 말조심해.”
“이미 늦었어요. 저작권이 등록된 이상 우리가 했다고 주장해 봐야 믿는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래도 조심 좀 해!”
“알겠어요.”
홍수욱 대리는 이일태 이사 사건을 잘 아는 터라 자라목을 한 채 툴툴거리고 말았다.
* * *
오상현 과장은 이제 냅스트는 자신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하곤 최민혁 실장을 찾아가기 전에 기획 팀의 정성근 대리를 찾아가서 냅스트에 대한 조사를 부탁했다.
정성근 대리는 조금 뜬금없는 지시였지만 별다른 질문을 하지 않았다.
그는 냅스트 법인의 프로필을 꼼꼼하게 조사해서 자료로 만들었다.
오히려 오상현 과장이 신기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궁금합니다.”
“아니, 그런데 왜 다른 질문을 하지 않으세요?”
“제가 알 일이라면 오 과장님이 미리 말해주시지 않겠습니까?”
딱 할 말만 끝낸 정성근 대리는 더 질문하지 않았다.
버벅거리던 과거와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KM 전자 내에서 이리저리 구르다 보니, 소통 능력이 많이 발전한 결과다.
하지만 독특한 정성근 대리의 태도마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오상현 과장은 그게 더 신기했다. 물론 더불어 최민혁의 의도가 궁금해서 정성근 대리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었다.
“이 냅스트란 회사 때문에 거기 지역사회에 난리가 났거든요. MP3 공유 프로그램 서비스를 진행한 덕분이죠.”
정성근 대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다가 불쑥 입을 열었다.
“최 실장님과 관련된 일이군요.”
“어! 어, 어떻게 아셨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저에게 와서 이런 부탁을 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오상현 과장은 이미 최민혁 실장이 정성근 대리를 언급한 터라 굳이 이 일을 그에게 숨기지 않았다. 아니, 정성근 대리라면 최민혁이 왜 이런 일을 벌이는지 알 것이라 추론해서 넌지시 질문했다.
“혹시 그러면 왜 최 실장님이 이런 일을 진행하는지 알 수가 있을까요?”
“전 모릅니다.”
“에이, 정 대리님 실력이 대단한 것은 우리 팀에서도 다 압니다. 굳이 최 실장님이 정 대리를 쿡 찍어서 도움을 받으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일 거고요.”
“진짜 아는 거 없습니다.”
정성근 대리는 실제로 이 일에 대해서는 처음 들었다. 하지만 그는 직접적인 지시를 벗어난 일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었다.
더욱이 그는 산적한 콜린스 문제를 처리하는 것만으로 힘들었다.
콜린스 문제는 늪과 같아서 일 자체가 끝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상현 과장은 도대체 최민혁이 왜 갑자기 이런 지시를 했는지 호기심을 쉽게 떨치지 못했다.
“제가 다른 사람에게는 비밀로 하겠습니다. 그러니 저에게 힌트만…….”
“아.는.바.없.습.니.다!”
딱 여기까지.
정성근 대리는 더 이상 아무런 말없이 자료 조사만 끝낸 파일을 넘겼다.
신기한 정성근 대리 반응에 오상현 과장은 잠깐 머뭇거리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정 대리 성격이 참 독특해. 그나저나 최 실장님은 도대체 왜 갑자기 이 일을 진행한 것일까?’
* * *
“냅스트라.”
최민혁은 냅스트란 신생 법인 내력을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그는 인생 1회차에서 숀이 대학생 시절에 냅스트를 만든다는 것을 알기에 의도적으로 파일을 뿌렸다.
역시나 숀은 다른 누구보다 가장 빨리 냅스트를 만들어낸 것이다.
‘신기하네. 미래의 흐름이 바뀌지 않았어. 데이콤 주가 흐름이 내가 아는 1회차와 비슷하게 흘러가서 설마 했는데, 정말 이렇게 되다니. 일이 계획대로 흐르지 않으면 숀에게 직접적인 도움을 줄까도 고민했는데 다행히 그럴 필요는 없겠어.’
최민혁의 수작 때문에 바뀐 데이콤 미래는 지금에 와서는 최민혁 인생 1회차와 비교해서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특히 주식을 인수한 오성 전자의 태도가 다시 바뀐 것이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이 일에 오큘러스 프로젝트도 연관되어 있다는 점이다.
흥미로운 것은 최민혁의 바뀐 인생이다. 이 부분은 인생 1회차와는 달랐다.
그 차이가 신기했다.
최민혁이 더 놀란 것은 새로 만들어진 냅스트는 인생 1회차보다 더 안정되고, 속도도 좋았다는 점이다. 다만 몇 년을 앞당긴 덕분에 인터넷 환경 자체가 구려서 아쉬웠다.
하지만 이미 지역 사회의 냅스트 반응을 볼 때 나쁘지 않았다.
‘인터넷 환경이 좋은 미국 대학을 위주로 급격하게 퍼져 나갈 거야. 씨앗을 뿌렸으니, 나머지는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최민혁은 냅스트가 몇 년 일찍 탄생한 덕분에 MP3의 시대의 도래가 더 빨리 일어날 것이라 확신했다.
‘아니, 어쩌면 데이콤처럼 잠깐 반짝했다가 끝날 수도 있어. 이것은 지켜봐야겠어.’
오상현 과장은 최민혁의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제가 기업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구체적인 내용은 잘 모릅니다만 기획 팀 정 대리 도움을 얻어서 일단 알 수 있는 데까지 정보를 다 파악했습니다.”
“아, 좋아요. 혹시 MP3와 관련해서 다른 문제는 없나요?”
그도 최병연 팀장에게 계속 불평했던 한 가지 문제점을 걸고 넘어갔다.
“다른 것은 다 괜찮은데, 낸드 플래시가 문제입니다. 가능한 64MB 용량이면 좋은데, 조 팀장님 말로는 아직 오성 전자도 이 모델은 개발 중이라고 합니다.”
MP3 파일 크기를 떠올린 최민혁도 64MB가 합리적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평균적으로 노래 한 곡 용량을 4MB로 잡으면 12곡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아, 그렇죠. 64MB 메모리가 있었군요.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걱정 마세요.”
“알겠습니다.”
쿨한 대답에 오상현 과장은 결국 조용히 실장실을 나섰다.
최민혁은 한선화 비서에게 말해 오영근 사장과 약속을 잡았다.
‘이젠 굳이 머뭇거릴 필요가 없겠지.’
* * *
오영근 사장은 요즘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 자주 참석했는데, 새삼 KM 전자의 위상 변화를 갈 때 마다 느꼈다.
KM 건설 사장을 비롯해서 이제 어지간한 KM 그룹의 계열사 사장은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덕분에 사장단 회의에서도 다른 사장에 비해서 영향력이 높았다.
그룹 차원에서 진행하는 사업 현안에 대해서도 자기 입김이 들어갔다.
반대로 최용욱 회장에게서 받는 시선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특히 오큘러스 프로젝트 관련해서 KM 전자의 지금까지 현황을 파고 들어갈 때는 피로감을 느꼈다.
물론 주변 사장단에서는 부럽기만 하다는 시선이었다.
다만 이것도 한두 번이다.
계속 반복이 되니, 질시의 시선도 있었다.
늘 망해가는 KM 전자의 마지막 사장이란 소리만 듣던 오영근 사장 입장에서는 자신과는 맞지 않은 옷이 불편했다.
‘이번 회의에서도 굳이 날 찍어서 부담을 준 이유는 모르겠어. 회장님은 내가 이 일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오영근 사장은 때문에 사장실에 도착해서 문형섭 부사장과 오늘 사장단 회의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끝내기도 전에 쳐들어온 최민혁 실장이 부담스러웠다.
“최 실장, 오랜만이네.”
“그러게 말입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고 말았다. 최근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에 자주 외부로 나가서 얼굴을 자주 마주하지 못했다.
오영근 사장은 최근 급변한 최용욱 회장 태도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갑자기 무슨 일인가?”
때마침 나타난 이는 최병연 팀장이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 호출에 사장실에 도착하자 눈치를 봤다. 다만 그는 이미 오상현 과장에게 따로 지시를 내렸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침묵했다.
최민혁은 최병연 팀장을 자신이 호출했다고 말하고서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데 오영근 사장도 어차피 최민혁 실장을 만나서 하려고 했던 질문이 있었기에 먼저 말을 꺼냈다.
“참, 오큘러스 프로젝트 말인데, 정말 최 실장, 자네도 관련이 있는 건가?”
오영근 사장은 이 일 때문에 최용욱 회장 태도가 평소와 달랐다는 점까지 지적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혀 무관하다는 말을 못하겠습니다.”
이번 사장단 회의는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최용욱 회장은 KM 산업 지분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물론 그 대상은 오큘러스 프로젝트 합작법인 지분과 맞교환이다.
상대가 KM 전자라서 경영권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물론 이 일을 사장단 회의에서 알게 된 최문경 부회장은 분노했다. 그는 계열사 사장단이 모인 자리에서 최용욱 회장과 크게 싸웠다.
지나친 행동이었다.
KM 그룹 계열사 사장들조차 두 사람의 갈등에 혀를 내둘렀다.
최용욱 회장은 뻔뻔하게도 이번 일에 관한 책임을 모두 최문경 부회장에게 돌렸다. 이전에 일으킨 문제에 관한 책임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최문경 부회장 처지에서는 억울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자기 밥그릇이 관련되어 있어서 크게 싸운 것이었다.
그 갈등은 쉽게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김상구 회장에게 압력을 받은 최용욱 회장도 이전처럼 적당히 일을 덮지 않았다. 최문경 부회장이 한 일에 대한 질책을 한 것이다.
KM 그룹의 경영 승계가 이미 결정 났다고 생각한 최문경 부회장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나 마찬가지였다.
충격적인 사장단 회의를 다시 떠올린 오영근 사장은 차마 자세하게 말하지는 못했다.
“그러면 정말 그 일로 KM 산업의 지분을 요청한 건가? 그것 때문에 최문경 부회장도 회의 도중에 그냥 나가 버리고 말았어.”
최문경 부회장이 최용욱 회장과 대판 싸웠다는 말까지는 차마 하지 못했다.
최민혁도 살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아는 최용욱 회장은 절대로 과격하게 일을 처리할 사람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