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38화 (238/1,021)

#238.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최민혁이 KM 산업의 지분을 노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금까지 최용욱 회장도 이 문제에서만큼은 냉정했지만, 이제는 그럴 수가 없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KM 산업 5% 지분이 별것 아니겠지만, 그 대상이 최민혁 실장이라면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수가 있었다.

지금처럼 KM 그룹 내에서 최문경 부회장의 경영 능력을 의심하는 상황에서 최민혁이 지분을 얻는다면 더 그러했다.

최민혁이 이제 숨김없이 그대로 KM 그룹의 경영권 싸움에 끼어든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어. 하지만 최문경 부회장이 가만히 있을까?’

김명준 과장은 조성돈 부장마저 자리에서 떠나자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부회장이 그냥 있지 않을 겁니다.”

“압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지금이 좋은 기회에요. 할아버지조차 이번 일 때문에 우리 첫째 큰아버지와 사이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어요. 지분 5%라면 그 간격을 더 험악하게 벌릴 겁니다. 그것 하나만 의도한 대로 되어도 이번 일은 성공한 겁니다.”

“…….”

김명준 과장은 혀를 내두른 채 더 입을 열지 않았다. 최근에는 조용히 최민혁 행동을 지켜봤기에 최민혁의 행보에 대해 이상한 점을 느꼈다.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두 사람 사이를 이간질하려고 할지는 몰랐다.

최민혁은 MP3 홍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을 위해서 오상현 과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최민혁입니다. 네, 제가 맡길 일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벌써 구현을 끝냈다고요? 언제 제가 볼 수 있습니까? 그러면 모레 실장실에서 보고하는 것으로 하죠.]

* * *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KM 산업의 지분을 요구한 최민혁의 제안에 최용욱 회장은 이전처럼 분노하지 않았다. 그는 장승일 실장 통해서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겠다는 통보만 했다.

대신 다음 달에 있을 제사에는 꼭 나오라는 이야기로 대신했다.

‘뜬금없이 웬 제사지?’

최용욱 회장이 부산하게 움직이는 것을 파악한 김상구 회장 역시 이전처럼 소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KM 그룹 본사를 자주 찾아가서 최용욱 회장과 직접 이야기를 나누었다.

투자 규모도 백억 단위가 아니라 천억 단위로 대폭 늘렸다.

하지만 최민혁에게 당한 최용욱 회장은 아직은 그룹 기조실에서 검토하고 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DL 그룹이 이렇게 나서자 다른 기업 역시 이번 위성방송 사업에 적극 끼어들었다.

오성 전자는 안재운이 이번 쟁투에 본격적으로 끼어들면서 상황이 복잡해졌다.

안재운은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이용해서 경영 기획실에서 두각을 보이려고 했다. 안건민 회장도 이 일에 크게 반대하지 않았다.

오큘러스 프로젝트는 이미 오성 전자에서 수백억 이상을 투자한 사업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안재운이 좋은 성과를 낸다면 지금까지 진행된 일도 전부 안재운이 한 것으로 꾸밀 수가 있다.

디지털 위성 사업 성공과 동시에 안재운을 띄울 수가 있다.

이런 부분은 오성 전자 구조조정 본부에서도 전혀 생각도 못 한 방향이었다.

이창명 이사 역시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관한 책임을 피하려고 김현우 수석 부장을 앞세운 채 뒤로 물러났다.

그는 안건민 회장이 직접 구두 지시를 내린 것을 보자 아예 구석으로 물러났다.

권태성 기획실장은 덕분에 이들 싸움에 치여서 눈치만 봤다. 그는 일단 이창명 반대편인 안재운을 밀면서 그쪽 라인에 서버렸다.

그로서는 뾰쪽한 대안이 없기에 한 일이다.

KM 그룹, DL 그룹, ETRI, 오성 전자는 내부 갈등 때문에 서로 치열하게 싸우면서 견제했다.

이들 대립은 최민혁이 부추긴 덕분에 갈등의 골이 너무 깊게 패서 쉽게 끝날 일이 아니었다.

아마 합작 법인 설립이 끝난 후에도 첨예하게 대립할 것이다.

그야말로 진흙탕 싸움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그려진 그림에 만족한 최민혁은 이제부터 MP3 제품 홍보를 위한 기획에 착수했다. 오성 전자에게 매각할 예정인 콜린스와는 달리 MP3 사업은 자신이 먹는 것이다.

콜린스 때처럼 대충대충 할 생각은 없었다.

‘단순히 MP3 제품만으로 이슈를 만들 수 없어. 시기적으로 몇 년은 더 있어야 하니까.’

실제로 그의 인생 1회차에서 MP3가 최초로 나간 시점에서는 다들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그나마 이를 최초 개발한 한국 중소기업은 나름 이익을 봤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심지어 한국 중소기업도 여기에 편승해서 특허 원저작권자 디지털캐스터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정작 MP3로 재미를 본 기업은 MP3 플레이어 특허권이 조각조각 난 후에 이를 챙겨간 자들이다.

아니 최종적으로 이 MP3 특허권 막바지 싸움에 슬그머니 끼어든 에플이 가장 큰 재미를 봤다.

최민혁도 굳이 이런 큰 시나리오 자체를 바꿀 생각은 없었다. 그는 이익 일부만 먹고, 나머지는 특허료 장사로 때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인생 1회차처럼 흘러가지 않기에 몇 가지 작업이 필요했다.

그는 MP3 시대의 도래를 자신의 힘으로 당길 생각이었다.

“이렇게 하면 됩니까?”

“네. 그냥 박스 안에 원하는 음원 파일 이름을 치면 됩니다. 임시 서버에 올려둔 파일 리스트를 검색해서 보여주니까요.”

“잠깐만요.”

최민혁은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인 ‘청혼가’를 넣어서 확인해 봤다. 바로 음원 파일과 부른 가수에 관한 내용이 따라서 쭉 나왔다. 꽤 만족스러운 결과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외부 인터페이스인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몇 년 후에나 나올 P2P 방식을 세계 최초로 구현했기 때문이다.

“훌륭합니다.”

오상현 과장은 자신이 작업했지만, 영문을 몰라서 최민혁의 눈치를 봤다. 도대체 이런 프로그램을 왜 만들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었다.

P2P(Peer to Pear)로 컴퓨터 쌍방향 파일 전송 시스템이다. 중앙 임시 서버 리스트를 응용해서 컴퓨터 간에 파일을 가볍게 전송할 수가 있다.

느린 인터넷 환경 때문에 큰 강점은 없지만 워낙에 작은 파일로 전송되어서 그럭저럭 사용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이것을 어디에 쓰실 생각입니까? 최병연 팀장님도 묻던데, 실장님 지시라고만 했습니다. 아무래도 말이 좀 나올 것 같은데…….”

“걱정하지 마세요. 그건 제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은 몰라야 한다는 겁니다. 혹시 최병연 팀장 외에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밑에 코딩을 같이 한 홍 대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 친구도 입이 무거워서 떠들지는 않을 겁니다. 실장님이 워낙에 보안을 강조해서 집에서 주로 작업했습니다. 최병연 팀장님도 회식 때문에 집에 잠깐 와서 본 것에 불과합니다.”

최민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미소를 한 채 말했다. P2P가 아무리 구조가 간단하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구현할 수는 없었다.

‘역시 오 과장 실력도 장난 아니구나. 오성 전자는 왜 이런 전문가를 내버려 둔 걸까. 뭐 팀 간의 내부 갈등 때문이라고 추정은 하지만 정말 멍청하다니까.’

정확히는 오성 전자 내부에서도 오상현 과장의 능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따로 관리했으니까. 설마 최민혁이 오상현 과장을 빼갈지는 상상도 못했다.

“대충 아시겠지만 이게 개인 컴퓨터 간에 파일을 서로 주고받는 겁니다. 따라서 불법 공유를 부추긴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회사 이미지에는 안 좋습니다.”

“안 그래도 좀 걱정이 되던데, 괜찮을까요?”

“뭐, 우리가 이 프로그램을 공식적으로 서비스한다면 아마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 저작권자들이 들고일어날 겁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상관이 없어요.”

“아니, 그러면 왜 이런 프로그램을 개발하라고…….”

“하지만 다른 사람 생각은 다릅니다. 특히 아마추어로 순수하게 파일을 주고받는 이들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요. 일테면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같은 경우죠.”

“아하, 그러면 결국 실장님이 원하는 것은 친목하는 이들끼리 파일을 주고받아서 MP3 음원이 더 활성화되기를 원하는 것이군요.”

“빙고. 하지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만약 이 프로그램을 우리가 개발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면 또 문제가 될 겁니다.”

“하긴.”

오상현 과장도 순순히 인정했다. 최근 최민혁 실장의 지분 증여 문제를 가지고 떠들썩했다. 찌라시 전문 언론에는 아예 작정하고 최민혁을 비난하는 기사가 적지 않았다.

“…그러면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용하시려고요?”

“공개하는 거죠. 비밀리에 대중에게 말이죠. 특히 아마추어 전문가 쪽에 파일을 뿌리는 겁니다. 아마 그들 중에 조금만 생각이 있는 이들이 있다면 이 P2P 프로그램을 아주 잘 활용할 겁니다.”

“으음.”

인상을 잔뜩 찌푸린 오상현 과장은 썩 내키는 얼굴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 P2P 골격과 설계도를 내놓은 이가 최민혁이다.

그가 한 일이라고 그걸 토대로 간단히 구현만 한 것에 불과했다.

“…아쉽네요.”

“아뇨. 오 과장님은 몇 년 안에 왜 이래야 하는지 알고 나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흠.”

그는 최민혁 실장 눈치를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물론 최민혁이 적어놓은 또 다른 리스트와 두툼한 가방을 받아서 말이다.

“이게 뭐죠?”

“가방 안에는 현금이 있습니다. 리스트는 P2P 소스를 뿌려야 할 곳입니다. 이왕이면 미국 명문대나 명문고가 그 대상이죠. 아는 지인에게 부탁해서 작업을 진행해 주세요. 아마 이걸 발견한 이들은 아주 좋아할 겁니다. 아, 그리고 도움이 더 필요하면 기획 팀의 정성근 대리에게 요청하세요.”

“…알겠습니다.”

오상현 과장도 최민혁이 외부에 이 일이 알려지기를 원치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딱히 불법적인 일도 아니라서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최민혁은 방긋 미소를 짓은 채 아쉬움을 입맛을 다시는 오상현 과장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그가 곧 떠올린 사람은 이 공유 프로그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사람이다.

‘숀 페닝이지.’

이지수가 최민혁을 교육하면서 가장 최초인 사업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서 이 공유 프로그램 개발자 프로필과 그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서도 교육했다.

다행히 최민혁은 이 P2P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알았다. 큰 줄기와 방향만 정해서 오상현 과장에게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미 최민혁은 데이콤 주가가 자신이 흔든 후에 다시 자신이 아는 인생 1회차 주가로 복귀한 것을 보면서 많은 것을 느꼈다.

그 자신의 간섭 때문에 미래가 일부 바뀌기는 했지만, 다시 본래 흐름을 찾은 것 때문이다.

만약 숀 페닝이 미래 지식을 얻는다면 어떻게 될까 라는 질문은 꽤 흥미로운 주제였다.

‘실력이 대단해서 빨리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했지만 대단하구나. 그나저나 과연 숀이 지금 저 소스를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될까. 과연 MP3의 시대가 더 빨리 도래할까?’

그게 자신이 원한 것이다.

하지만 실패해도 상관은 없었다.

다른 대안을 찾으면 되니까.

‘이왕이면 내 계획대로 미래가 흘러가는 것이 좋아. 그렇게 된다면 3~4년 정도는 MP3 플레이어만으로도 단단히 재미를 볼 수 있으니까.’

* * *

숀 페닝은 은 야구, 농구, 테니스를 좋아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다. 그는 주로 스포츠에 푹 빠져 있었는데, 삼촌이 사준 컴퓨터를 얻고 나서는 취미를 바꾸었다.

인터넷광이 된 것이다.

숀 페닝은 특히 음악을 좋아했는데, 고등학생답게 앨범을 사들이기보다는 공짜 음원에 관심을 뒀다. MP3 음원 파일은 그가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친구에게 필요한 음원 파일을 인터넷에서 구해서 뿌렸다. 덕분에 음악 사이트 콘텐츠가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이런 불편함을 생각으로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숀 페닝은 뭔가 대안이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

아쉬운 점은 그의 프로그램 실력으로는 돌파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만, 한계를 느꼈다.

숀 페닝은 이런 점이 아쉬워서 노스이스턴대학의 컴퓨터 과학과를 생각했다.

그런데 학교 게시판에서 흥미로운 자료의 링크를 발견했다.

파일 공유에 대한 프로그램인데, 소스가 다 공개되어 있었다.

숀 페닝은 학교 게시판에 링크된 사이트로 가서 의문을 파일을 내려 받아서 살펴봤다.

‘어, 이게 뭐야?!’

깜짝 놀랐다.

딱 자신이 구상한 아이디어대로 짜진 프로그램이었다.

숀 페닝은 프로그램 소스 분석에 바로 들어갔는데, 더 발전된 프로그램 코드에 한편으로 놀라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부족함 점을 찾아냈다.

바로 느린 인터넷 환경 때문에 오는 불편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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