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32화 (232/1,021)

#232.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최민혁의 행보보다 오늘 회의가 더 이상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하지만 이번 모음에 참석한 이들이 너무 많았다.

더욱이 김상구 회장이 자기 옆자리에 앉으면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참, 손자에게 준 지분의 증여 문제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건 제 집안 문제입니다.”

“아, 그렇죠, 그렇죠. 하지만 그래도 금액이 너무 크지 않습니까? 이번 일 때문에 국세청에서도 아주 난리가 났습니다.”

실제로 국세청은 최민혁 실장의 지분 증여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언론을 통해서는 문제가 없다고 이야기되기는 했지만, 금액 자체가 너무 컸다.

KM 전자의 주가가 결국 10만 원을 돌파하면서 일어난 일이다.

증권가 내에서도 ‘주식의 신’이라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로 최민혁의 주식 증여 문제는 뜨거운 감자였다.

만약 이번 일을 그냥 넘어간다면 다른 재벌가들도 대규모 주식 증여를 통해서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피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오성 전자 내 구조조정 본부에서도 KM 전자를 롤모델로 삼아서 검토하고는 있지만, 답을 쉽게 찾지는 못했다.

최용욱 회장도 탈세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냉정했지만, 이번 일은 그도 잘 몰랐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1,500원에 주식을 넘길 때만 해도 KM 전자는 힘든 상황이었어요. 민혁이는 스스로의 힘으로 그 상황을 반전시킨 것뿐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이제 20살짜리 천둥벌거숭이가 콜린스 같은 초대형 프로젝트를 완성하고 1조 매출액으로 끌어올릴 수 있겠습니까?”

“무슨 뜻으로 하는 말입니까?”

“말 나온 김에 하는 말이지만 제 손자 녀석 중에 김현탁이라고 있어요. 이제 36살로 영국 금융가에서 꽤 경험을 쌓아서 국제적인 안목도 있습니다. 그런 녀석조차 KM 전자의 행보에는 질색합니다. 세계경제사를 뒤져봐도 이런 경우는 없습니다.”

김상구 회장의 최민혁에 대한 의심에 최용욱 회장도 인상을 잔뜩 구기고 말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저 말이 전부 반박하기 힘든 사실이라는 것이다.

기획조정실에서도 실제로 이 문제를 가지고 KM 전자의 행보를 수십 차례 검토하고 또 검토했다.

그런데 나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있다고 한다면 최민혁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정도다.

결국 최민혁 능력이 너무 황당해서 최용욱 회장 배후설이라는 음모론이 나온 것이다.

잊고 있었던 보고 내용을 다시 떠올린 최용욱 회장은 혀를 찼다. 그 역시 최근 따가운 주변 시선을 의식했다. 아무리 자신이 진실을 말해도 사람은 믿고 싶은 것만 믿었다.

“그래서 김 회장님 의견은 무엇입니까?”

“전 최 회장님이 배후에서 이번 일을 지휘했다고 확신합니다. 손자에게 차명으로 지분을 넘긴 후에 관리할 목적이겠지요. 증여세를 피할 목적으로요.”

“허허.”

같은 이야기를 잊을 만하면 또 들으니, 이제는 대꾸할 힘도 나지 않았다.

김상구 회장은 발끈했다.

“웃을 일이 아닙니다. 국세청에서 이번 일 때문에 대기업 증여세 부분, 전체를 들여다보고 있어요. 최 회장님이 없는 자리에서 다들 한마디씩 합니다. 오죽하면 제가 여기서 그 이야기를 하겠습니까.”

최용욱 회장은 노골적인 김상구 회장의 지적에 혀를 찼다. 눈살을 찌푸렸다. 적의마저 내보이는 김상구 회장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설마 이 일 때문에 전경련에서도 나에게 거리를 둔 것일까?’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었다.

KM 전자의 주가가 오를수록 지분 증여 문제에 관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

수천억이 넘는 천문학적인 증여세를 절감한 것이니,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더 웃기는 것은 최훈열 전무가 그 일에 엮이면서 감옥에 갔다는 점이다.

최훈열 전무의 아내 김여정은 아예 김상구 회장 저택에 눌러앉은 채 계속 최훈열 전무 2심을 가지고 김상구 회장을 괴롭혔다.

그러니 김상구 회장도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사돈어른은 정말 좋으시겠습니다.”

“……?”

이미 최민혁 지분 문제 때문에 앙금이 쌓인 최용욱 회장은 한편으로 김상구 회장을 경계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영문을 몰라서 김상구 회장을 쳐다보았다.

“위성방송 사업에 KM 전자가 관여했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설마 이것도 모른다고 하시는 겁니까?”

정확히는 김현탁 본부장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와 DL 그룹 기조실에서 검토한 내용을 토대로 김상구 회장이 떠본 것이다.

DL 그룹도 정확히 최민혁 실장이 어떤 식으로 위성 사업과 관련된 줄은 몰랐다.

이동호 교수와 송한성 교수를 내세운 최민혁의 내막까지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최민혁은 투자를 명분으로 한 것이기에 세 사람 외에는 알 수가 없어서 일어난 일이다.

“위성 사업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KM 전자 이야기는 금시초문입니다.”

“그렇습니까? 그 이상한 일입니다. 이번 프로젝트를 주도한 송한성 교수는 자신은 연구만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글쎄요.”

최용욱 회장도 장승일 실장에게 보고를 받기는 했지만, 이들 관계는 자세히 몰랐다. 당시만 해도 다른 기업처럼 위성 사업은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 모임에 나온 인사들 모습을 봐서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오만하기로 유명한 한영 일보 이동수 부사장이 슬그머니 다가와서 허리까지 숙여서 인사했다.

“한영 일보 이동수 부사장입니다. 건강 회복하셨다는 말 들었습니다. 축하합니다.”

“아, 고맙네.”

하지만 한영 일보는 시작에 불과했다. 한선 일보를 비롯한 메이저 방송국에서 부사장급 인사가 와서 인사를 한 것이었다.

그들은 앞으로 잘 좀 부탁한다는 식으로 인사를 했는데, 평소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모습이었다.

KM 그룹은 틈새시장을 공략해서 지금까지 커온 기업답게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보다는 오히려 돈이 남아도는 김상구 회장의 영향력이 더 컸다.

그럼에도 김상구 회장에게는 가볍게 눈인사만 하고 최용욱 회장을 따로 대우하고 있었다.

비록 이번 회의는 안건이 있을 때마다 모이는 모임이었지만 이례적인 일이었다.

차라리 찬밥 대우를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하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주목을 받을지는 몰랐다.

최용욱 회장은 정말 영문을 몰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다.

김상구 회장은 그 꼴을 보니 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미 손자인 김현탁 본부장 통해서 내막을 다 들었다. 최민혁 실장이 나선 일을 최용욱 회장이 모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오늘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에 대해서는 정말 모릅니까?”

“잘 모릅니다. 비록 KM 전자가 위성 사업 쪽에 걸친다고 해도 우리 쪽에서 나설 일은 아니니까. 있다고 한다면 수신기 쪽이 다인 걸로 압니다.”

“정말 그게 다입니까?”

고까운 김상구 회장의 시선에 최용욱 회장도 혀를 차고 말았다.

“후유, 안다고 합시다. 사돈어른도 이번 일에 관심이 많은 겁니까?”

“제 꿈입니다. 반드시 해보고 싶은 사업입니다.”

욕망을 드러내는 김상구 회장의 행동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그는 최용욱 회장에게 숨김없이 그대로 자기 꿈을 드러냈다.

“…흠.”

애초에 위성방송 자체에 관심이 없던 최용욱 회장은 충혈된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면서 침을 튀기는 김상구 회장의 행동에 혀를 찼다. 비록 사돈 사이기는 하지만 최용욱 회장은 김상구 회장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특히 KM 전자의 경영권을 노린 최훈열 전무 사건 이후에는 더 거리를 뒀다. 그 배후에 DL 그룹이 있다는 것을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는 자신 앞에서도 아예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전 사돈어른이 이번 일만 도와준다면 KM 그룹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을 생각입니다. 특히 KM 산업은 투자가 많이 필요한 것으로 아는데, 거기에도 힘을 보태겠습니다.”

이전에는 깜짝 놀랄 만한 제안이지만 지금은 최용욱 회장도 오히려 눈살을 찌푸렸다.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이런 이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에요. 우리 DL 그룹 기획조정실에서는 사돈어른을 돕기 위해서 이미 TFT팀까지 따로 구성했으니까. 오케이만 하시면 바로 도와드리겠습니다.”

“…네.”

최용욱 회장도 마른침을 꿀꺽 삼켰지만 차마 이 자리에서 오케이라고 말하지 못했다.

대규모 차입금을 통한 KM 그룹의 혁신에 아직도 미련을 떨치지 못했다.

그는 이보다 채윤집 집사를 힐끗 쳐다보았다.

채윤집 집사 역시 평소와는 달리 괴상한 표정을 한 채 최용욱 회장에게 답하지 않았다. 김상구 회장의 행보는 그의 예상과는 아주 달랐다. 다행히 당근과 채찍을 교묘하게 구사한 전략을 알아봤다.

‘도대체 이 인간이 왜 이러는 걸까?’

물론 회의가 진행된 이후에도 최용욱 회장은 여전히 자신을 둘러싼 일에 대해서 알 수가 없었다. 회의 내내 KM 전자 이야기는 단 한 마디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채윤집 집사에게 이번 일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 * *

최민혁도 자신이 작업한 인적 구조조정 현황을 살폈다.

그는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사실 한 가지를 더 알아냈다.

“MP3에 관한 이야기는 외부에 흘러 나가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지난 회의 이후에도 외부에 흘러 나간 흔적은 없습니다.”

“그렇습니까?”

그로서도 꽤 흥미로운 일이다. 아무리 입단속을 한다고 해도 MP3 정보는 흘러 나갔을 것으로 생각했다.

아니, 그게 그가 원한 바였다.

그런데도 조용하다는 이야기는 지난 회의에 참석한 실무진이 그만큼 입이 무겁다는 의미였다.

“놀랍네요. 최소한 한 사람은 입을 열 것이라 예상했는데…….”

조성돈 팀장은 슬쩍 최민혁 눈치를 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일도 있고, 실장님의 단호한 일 처리에 다들 몸을 조심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이전과는 상황이 다르니까요.”

“좋네요.”

그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일이다. 최소한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는 모든 여건은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지난 MP3 미팅에 참석한 실무진은 더 그랬다.

“아, 그리고 이건 다른 이야기입니다만 채윤집 집사님에게 한 가지 연락을 받았습니다.”

“채윤집 집사님이 따로 연락한 겁니까?”

“네.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위원회 회의에서 김상구 회장이 회장님에게 증여세 문제를 가지고 회장님에게 압력을 넣었다고 합니다.”

“김상구 회장요? 증여세 문제라……. 혹시 KM 전자 주가 때문입니까?”

“네.”

KM 전자 주가는 콜린스 누적 물량 10만 대 돌파와 월마트 대규모 공급 이야기로 결국 10만 원대를 돌파해서 11만 원대 고점을 찍었다.

비록 코스피 조정에 영향을 받아서 다시 10만 원대로 내려왔기는 하지만 KM 전자 주가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당연히 최민혁 지분 가치는 고공 행진을 거듭했다.

이 과정에서 또 말이 나온 것이 천문학적인 증여세를 절감한 최민혁 행보였다.

조성돈 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정확히는 최근 언론의 행보 때문입니다. 아예 작정하고 실장님을 공격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국세청도 이번 일을 그냥 보고만 있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는 최용욱 회장이 이 문제를 덮었다.

그런데 이제는 최용욱 회장의 손에서 벗어나 문제가 되었다.

하지만 갑자기 이런 일이 일어날 수는 없었다.

뜬금없는 일이라서 최민혁도 김상구 회장의 행동에 고개를 갸웃하다가 피식 웃고 말았다.

“가만 이거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입니까?”

“아마 그럴 겁니다. 김상구 회장이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고 합니다.”

“그래요?”

“이번 일에 최 실장님이 연루되어 있다고 확신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다지 좋은 일이 아니었지만, 최민혁은 오히려 피식 웃었다. 사실 이런 외부 문제를 걱정해서 이동호 교수와 송한성 교수를 앞에 내세웠기 때문이다.

‘다만 내 지분 문제를 걸고 넘어질 줄은 몰랐네.’

최민혁은 오히려 자기 뜻대로 풀려가는 상황에 만족했다.

오성 전자와 ETRI 협상이 자신이 원한 것과는 다르게 진행된 것과는 달리 DL 그룹은 제대로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다.

‘김현탁 본부장 솜씨겠지? 일단 하나씩 해결해 봐야겠어.’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 눈치를 보면서 입을 열었다.

“증여세 문제는 계속 이슈가 되고 있어서 손을 써야 할 것 같습니다. 국세청 실무자도 이번 일 때문에 크게 당황한 눈치입니다. 아무리 합법적이라고 해도 증여 액수가 수천억을 넘는 상황이라서 여론에도 악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더 심각한 것은 KM 전자의 주가가 오를 때마다 계속 말이 나온다는 겁니다. 이전처럼 임시로 대응하는 것만으로 한계가 있습니다.”

최민혁은 피식 웃었다.

“그렇다면 솔직하게 말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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