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1.
‘결국 오큘러스 지분으로 장난 좀 쳐야 하나?’
“아니요. 제가 이번 일을 더 키울……. 아닙니다. 일단 우리 쪽 일부터 정리합시다. 조정욱 인사 팀장을 만나서 인센티브 배제 대상 직원을 만나서 상담하라고 하세요. 좋게 좋게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직원이 동요하지 않도록.”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잠깐 멈칫거렸지만, 김민석 과장을 떠올리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이렇게 되는구나.’
* * *
홍보 팀 김민석 과장은 하루도 불안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KM 전자 매출이 사상 최대니, KM 전자 주가가 10만 원을 돌파했니 하는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는 한편으로는 환호하는 다른 임직원이 그저 부럽기만 했다.
KM 전자와 월마트 계약 이야기가 나오면서 직원들 입가에는 미소가 그치지 않았다.
이 좋은 회사를 나가고 싶지는 않았다. 오성 전자와 같은 다른 대기업으로의 이직을 생각하고서야 KM 전자가 얼마나 좋은 직장인 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조정욱 인사 팀장이 면담을 요청해 오자 오히려 불안을 떨쳤다.
그리고 소회의실에서 만난 조정욱 인사 팀장은 역시 그의 예상을 벗어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가능하면 회사도 이번 일을 조용히 진행하고 싶어 하네.”
“네.”
“자네도 잘 알겠지만, 회사에 안 좋은 일이 좀 있었지 않나. 계속 그런 불미스러운 일을 만드는 것은 앞을 위해서도 좋지 않지.”
정확히는 뛰어난 인재 때문이다.
그들은 회사에 있으면서 미래를 고민한다. 그런데 경영진이 마음대로 직원을 잘라 버린다면 KM 전자에 입사할 이유가 없다.
그냥 연봉만 생각하면 돈 많이 주는 회사는 많기 때문이다.
조정욱 인사 팀장은 최근 사내 지원 대상자를 상대로 이 문제가 예민하다는 것을 잘 알았다.
“실장님은 굳이 자네를 검찰에 고소해서 일을 복잡하게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아. 대신에 자네가 알아서 잘 처신해 주기를 바래.”
“…압니다.”
이미 진이 다 빠진 김민석은 억울하니, 누명을 뒤집어썼니 같은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이미 홍보 팀 내에서도 이번 일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했고, 사내에도 소문이 계속 돌았다.
누가 소문을 내서라기보다는 이제까지 쌓인 문제가 터진 것뿐이다.
과장 직위를 이용해서 협력사와 손을 잡고 누린 권세는 사라지고 없었다.
조정욱 인사 팀장도 딱한 눈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그는 이미 조성돈 팀장을 만나서 이 문제를 심각하게 협의했다. 최민혁 실장은 실상 검찰에 고소해서 단호하게 처리할 것을 원했지만 그건 막았다.
이제 KM 전자가 도약하는 마당에 그런 불만스러운 기사가 나오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했고, 최민혁 실장도 그 점을 인정했다.
“어지간하면 나도 자네를 위해서 나서고 싶은데, 이번 일은 어쩔 수가 없어. 자네를 옹호하는 직원이 아예 없으니까.”
“네.”
“더욱이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님이 나선 거야. 하필이면 오혜정 비서를 건드릴 생각을 한 건가. 난 정말 이해를 할 수가 없네.”
고개를 푹 숙인 김민석 과장도 ‘최민혁 실장’ 이름을 듣자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 역시 경험하고서야 최민혁 실장이 얼마나 일을 무섭게 처리하는 사람인지를 깨달았다.
“…회사에서 좋게 처리해 준 것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한 일에 관해서는 책임을 지겠습니다.”
“그래.”
* * *
김민석 과장은 이미 얼마 전에 작성한 사직서를 이용식 부장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하지만 이용식 부장은 놀라지 않았다. 그는 덤덤한 얼굴로 사직서를 수리했다. 사실 자칫하면 검찰에 고소당해서 구속될 수 있었던 것을 피한 것만으로 김민석 과장은 운이 좋았다.
‘만약 최훈열 전무 시기에 이 일이 터졌다면 바로 감방에 갔을 텐데…….’
“다른 회사는 알아본 거야?”
차가운 이용식 부장 시선에 김민석 과장은 쳐다보지도 못했다.
“지금부터 알아볼 생각입니다.”
“그래?”
“죄송합니다.”
그는 이번 일로 큰 정신적인 고통을 받아서 도저히 다른 회사 면접을 볼 수가 없었다. 한동안은 가족과 같이 지내고 싶었던 것이다.
“쯧, 그래. 알겠어. 다른 회사 가서 잘 적응해 봐. 자네가 꼭 죽을죄를 지은 것은 아니잖아. 하지만 운이 정말 좋았어. 김현우 상무 시기였다면 지금처럼 좋게 넘어가지는 못했을 거야.”
“…감사합니다.”
김민석 과장은 주섬주섬 자신의 책상 물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주변 팀원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간간이 위로를 전하는 직원에게 그저 고개만 조아렸다.
KM 전자에 입사한 후의 기억이 무럭무럭 떠올랐다.
좋은 일도 많았고, 힘든 일도 많았다.
그래도 설마 이런 식으로 회사를 떠나게 될지는 상상도 못 했다.
하지만 주변 시선은 뜻밖에 차가웠다.
개인 짐을 챙겨서 떠나는 김민석 과장을 위로하는 사람은 그다지 없었다.
오히려 비웃는 이가 더 많았다.
[결국, 김 과장도 회사를 그만두네.]
[저 양반은 저럴 줄 알았다니까. 아니, 하고 많은 사람을 내버려 두고, 하필이면 최 실장님 비서인 오혜정 씨를 건드릴 생각을 했을까?]
[외부에 광고 촬영 나갈 때 일이 있었다고 하잖아. 오혜정 비서 일을 관리하면서 그런 생각까지는 못 했을 거야.]
[하긴 오 비서 미모가 장난 아니지.]
[그런데 최 실장님이 그냥 자르는 것으로 이번 일을 끝낸 거야?]
[아무래도 최훈열 전무나 김현우 상무 일 때문이겠지. 자기 마음대로 직원을 막 잘라내면 그 여파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하긴 이번 일은 최민혁 실장님이 딱해 보일 정도이니까.]
[난 이번 일로 최 실장님 다시 봤다니까. 20살이란 나이면 자기 독단적으로 일을 벌이고 남잖아. 직원 인사마저 그랬다면 솔직히 불안해서 회사 다니겠어?]
[그건 나도 공감이다. 난 콜린스 실적보다는 이번 일 처리가 더 마음에 들더라. 최 실장님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드니까.]
“…….”
매몰찬 임직원 반응을 들으면서 김민석 과장은 혀를 찼다. 자신을 자른 최민혁 실장을 욕하기는커녕 찬양하고 있었다.
그는 뒤늦게야 왜 최민혁 실장이 일을 이렇게 복잡하게 처리했는지 깨달았다. 자신을 자르는 거야 최민혁 실장 마음먹으면 금방이다.
하지만 남아 있는 직원은 이야기가 좀 달랐던 것이었다.
‘…이일태 이사도 그래서 내버려 둔 것일까? 아니, 어쩌면 이미 작업을 진행하고 있을지 모르지.’
* * *
김민석 과장의 사직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가 회사를 그만둔 이후에도 팀별로 한 두 사람씩 회사를 그만둔 이들이 있었다.
그리고 이 사태는 위성 사업부에도 영향을 주었다.
이일태 이사는 여전히 잘 버티고 있지만 남은 있는 직원 중에 이미 다른 회사 면접을 통과한 이들이 하나둘씩 그만뒀다.
그들도 한때는 이일태 이사를 자르고 자신은 내버려 두지 않을까 싶어서 버텼다.
하지만 최민혁 실장 지시를 받은 인사 팀은 단호했다.
그들은 면담을 통해서 위성 사업부의 실적을 문제 삼아서 압박한 것이었다.
위성 사업부 임직원도 할 말이 많았지만 반박한 이는 거의 없었다.
그들 역시 이제는 다들 지쳤다. 이제는 정말 그만하고 싶었다.
회사에 남아 정신적인 학대를 당할 바에는 차라리 다른 회사를 알아본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에 KM 전자 임직원은 의외로 차가웠다.
그들은 이일태 이사를 등에 업고 온갖 분탕질을 저지른 위성 사업부 임직원을 좋아하지 않았다.
위성 사업부 임직원도 그런 점을 스스로 자인했다.
허훈 과장도 심각성을 깨닫자 이석우 부장을 술집에서 다른 직원과 같이 만났다.
“우리가 잘했다는 말은 저도 못 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일은 최 실장님이 너무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솔직히 이일태 이사님 지시에…….”
“허 과장, 그만하지.”
“하지만 억울한 것은 억울한 것 아닙니까. 솔직히 위성 사업만 해도 그룹 차원에서 진행한 일입니다. 저희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이제까지 생존을 위해 몸부림쳐 왔던 이석우 부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술 한 잔 입에 털고 나서 바득바득 우기는 허훈 과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이번 술자리에 참여한 다른 직원 역시 허훈 과장 눈치만 봤다.
이석우 부장은 혀를 찼다.
“자네는 최구만 과장을 보면서도 그런 말이 나와.”
“아니, 최구만 과장 이야기는 왜 나옵니까?”
“쯧, 눈치가 정말 없네. 우리 위성 사업부를 정리하는 순서를 보면서도 느끼는 것이 없어. 아, 그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이석우 부장은 최근 KM 전자 내에 보직을 이동한 몇 사람의 예를 들었다.
“영업 팀의 최 대리를 봐. 그 친구는 영업하고 적성이 안 맞아서 고생했잖아. 이번 사내 교육을 통해서 마케팅으로 옮겨서 잘 적응하고 있어.”
“그거야…….”
허훈 과장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KM 전자 내에서 말이 돌기 시작한 보직 이동 당사자 이야기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회사가 적성에 안 맞다고 다른 팀으로 보내는 것이니까.
물론 다른 회사도 이런 일이 있기는 하지만 KM 전자처럼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지는 회사는 없었다.
특히 실적이 떨어져서 인사고과가 문제가 된 직원을 회사가 일일이 다 챙겨줬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의 지시로 이루어지는 일이다.
지금까지는 그렇게 티가 나지 않았지만 이미 어지간한 임직원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위성 사업부 임직원도 얼마든지 다른 사업부로 이동할 수가 있었다.
“가만 그러면…….”
이석우 부장은 그제야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 위성 사업부는 예외야. 조정욱 인사 팀장 이야기로는 최 실장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니까. 아예 작정한 거지.”
“아니, 그게 말이…….”
“억울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지금까지 한 실적을 보여주더라고. 거기에 지금까지 외주 업체를 관리하면서 받은 뇌물 자료도 다 있어. 자료 모아놓은 것 보면 한국 검찰도 저리 가라더군.”
“아니, 그거 불법 아닙니까?”
“아냐. 내가 하도 어이가 없어서 협력 업체 사장을 만나서 물어보니, 감사 팀 직원이 있는 그대로만 말해준다면 앞으로도 거래하겠다고 해서 사실을 다 말했다고 했네. 날 보고 그 자리에서 미안하다고 하는데, 할 말이 없더라.”
“…….”
물론 뇌물은 직접적인 것만 해당하지 않았다. 그 정도로 돈을 주고받을 정도로 멍청한 이는 위성 사업부에 없었다.
다만 접대를 가장한 압박은 좀 다르다. 위성 사업부가 외주를 주로 해서 일을 처리한 까닭엔 이런 문제가 생각보다 많았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한숨을 내쉰 채 불만을 토로하지 않았다.
그들도 얼마 전까지는 술자리에서 최민혁 실장을 죽으라고 씹었지만, 이제는 다들 두 손, 두 발을 든 지가 오래였다.
“허 과장, 자네도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 이제는 어쩔 도리가 없어.”
“…….”
허훈 과장은 맥주잔에 소주를 가득 부어서 다 마셨다.
‘진짜 끝인가?’
* * *
국가경쟁력 강화 민간위원회 회의는 원래 대기업 그룹 총수가 참여하지 않아서 모임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흐지부지되었었다.
그런데 이번 모임은 디지털 위성방송 사업과 관련된 주제 때문인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대운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의 실무 책임자이자 부회장 선에서 자리에 참석했다.
거기다 DL 그룹 김상구 회장이 참여한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모임 자체는 계속하지만 정기적인 모임이 아니라서 서로 만나자는 이야기만 한 것과는 사뭇 다른 행보였다.
최용욱 회장조차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나온 이 회의의 분위기에 고개를 갸웃했다.
채윤집 집사는 바로 최근 KM 전자에서 벌어진 상황을 보고했다.
“문제가 있는 놈들이 그만둔 것이 문제가 되는 거야?”
“그 숫자가 제법 되기 때문입니다.”
“…다른 임직원이 말들이 많겠어. 민혁 그놈이 그런 것도 고려하지 않은 거야?”
“그게 사내 분위기는 다들 최민혁 실장 편을 들어주고 있습니다. 워낙에 문제가 많은 직원 위주로 정리한 것 때문입니다.”
“허허.”
최용욱 회장도 최민혁 인사관리에 내심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 신규 인원 채용을 늘렸겠군.”
“하지만 최 실장님은 이상한 정도로 신규 채용을 자제하고 있습니다.”
“그건 좀 이상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