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28화 (228/1,021)

#228.

콜린스를 유럽에 추가로 공급하면서 누적 물량이 이미 10만 대를 넘었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콜린스의 매출이 무려 4,000억을 넘어섰다.

오디오 사업부를 비롯한 나머지 제품들의 매출액 3,000억을 포함하면 벌써 매출이 7,000억을 넘어섰다.

작년까지만 해도 고작 3,000억 매출도 못 내서 망해가던 회사가 반년 사이 매출이 2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올해 KM 전자의 예상 매출은 1조를 가볍게 넘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대부분의 증권사가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런 KM 전자의 신장세로 말미암은 인센티브 폭탄을 받지 못한 위성 사업부의 이석우 부장은 평소와는 달리 침울했다. 그는 불편한 시선을 보내는 허훈 과장을 따로 휴게실로 데려가서 푸념을 털어놓았다.

“인센티브는 문제가 아냐.”

“네? 또 다른 문제라도 있습니까?”

“ETRI에서 결국 오큘러스 프로젝트로 변경하겠다는 통보를 해왔어. 그러면 우리 사업부는 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데, 그게 문제야. 이제까지 우리가 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

“…….”

허훈 과장도 굳은 얼굴을 한 채 더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이창명 이사와의 협상을 통해서 지난 고리를 넘기나 싶었는데, 그것도 이제는 소용이 없었다.

지금 당장은 오성 전자 역시 손해를 피해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일태 이사님이 나름 최선을 다해서 여기까지 왔지만, 이제는 회장님이라고 해도 우리를 구제할 방법은 없어.”

이석우 부장은 허훈 과장 뒤를 따라서 홀로 휴게실에 나타난 최민수를 불렀다.

최민수 역시 안색이 좋지가 않았다. 그는 위성 사업부 임직원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지 않으려고 해도 쉽게 되지가 않았다.

이석우 부장은 그나마 어떻게 보면 재벌 3세인 최민수에게 마지막 희망을 기대했다.

“이런 말 해서 좀 그런데, 혹시 민수 씨는 들은 것이 없어?”

“네? …잘 모르겠습니다.”

“쯧.”

그는 혀를 차면서도 최민수를 잠깐 쳐다보았다. 최훈열 전무가 KM 전자를 승계받았다면 최민수는 지금쯤 과장 직급이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부장급 자리에 올라서 영향력을 펼쳤을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자칫하면 위성 사업부와 같이 회사에서 쫓겨날지도 몰랐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인사 팀에 이야기해서 다른 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어때? 다른 사람과는 달리 자네는 보직 이동이 가능할 거야.”

“글쎄요.”

자신 없는 최민수는 어머니 김여정이 외가 쪽을 동원해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알았다. 그가 할 일은 최대한 위성 사업부에서 버티는 것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보직 이동을 허락할 것 같지도 않았다.

“이미 이 사업부는 끝났어. 이젠 누가 와도 대안이 없어. 이일태 이사님이 책임을 지겠지만, 과장급 이상, 팀장급도 이번 일에 대한 쓰나미를 피할 수가 없어.”

덤덤한 목소리로 한 이야기지만 이석우 부장의 심사는 타들어갔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하기 힘들다. 그 역시 이일태 이사의 독단을 막지 못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자신도 이일태 이사를 믿고, 호가호위한 것이나 진배없었다.

“뭐 민수 씨는 외가 쪽도 짱짱한 사람이니, 내가 이런 말 해봐야 소용없겠지. 다만 앞으로 잘 준비하는 것이 좋아.”

최민수만 해당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실 위성 사업실에 남아 있는 임직원을 상대로 한 말로 지금 남아 있는 임직원 20명을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

허훈 과장과 이석우 과장 행동을 보고 휴게실로 올라와서 몰래 엿듣고 있던 위성 사업부의 다른 임직원도 이석우 부장의 이야기에 다들 침울했다.

그들은 패닉에 빠져서 어찌할 바를 몰랐고, 몇몇은 분위기를 못 견디고 삼삼오오 모여서 휴게실을 떠나 버렸다.

그들 역시 딱히 이석우 부장 탓을 하지 않았다. 자기 스스로 잘한 것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다.

이미 다른 회사 면접을 보는 것이 그 증거다.

최민수는 별다른 항의도 없이 무너지는 위성 사업부 모습을 보면서 새삼 최민혁에 대해서 몸서리를 쳤다. 그는 뒤늦게야 아버지 최훈열 전무나 김현우 상무가 왜 그렇게 무너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대놓고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 아니야. 그냥 스스로 회사를 그만두게 몰아가는구나, 아버지도 그랬을 거고, 김현우 상무도 마찬가지일 거야. 정말 무섭구나.’

* * *

인센티브 이야기는 KM 전자 사내에 시간이 갈수록 퍼져갔다.

임직원 대부분이 다 받았기에 서로 누가 많이 받았나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당연히 최고로 많이 받은 사람은 콜린스 개발과 관련된 이들이다.

특히 콜린스 개발의 영웅인 최구만 과장은 5억 넘게 받았다는 이야기가 파다했다.

[도대체 최 과장님은 얼마나 받은 거야?]

[10억이 넘는다는 이야기도 있어. 콜린스 개발 연구 팀은 완전 대박 난 거지.]

[인센티브만이 아냐. 이번에 보니, 따로 아날로그 칩 설계도 한다고 하더라. 그것도 회사에서 밀어줘서 말이야.]

[최구만 과장이 아날로그 칩 설계도 했어?]

[대학 다닐 때도 그쪽은 전혀 몰랐다더라. 회사 와서는 TV 전원 쪽만 팠대. TV 전원 전문가인데 회사에서 칩 설계 경험 쌓을 수 있도록 일방적으로 밀어준 거야. 이것 때문에 손실만 몇억이 났다고 하는데, 이번에 논문도 발표했더라.]

[…회사가 무슨 대학원도 아니고, 그거 너무한 것 아냐?]

[뭐 꼭 그렇게 볼 수도 없어. 콜린스를 악착같이 물고 늘어져서 크게 이바지한 분이잖아. 최병연 팀장이 나가도 홀로 남아서 버틴 분이니, 그만한 대우를 해줘야지.]

[하긴 그렇게 보면 최민혁 실장님이 성과에 대한 보상만큼은 철저한 것 같아.]

시기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받을 사람이 받았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물론 채찍에 관한 이야기도 있었다.

[보상만큼도 징계도 엄격하지. 위성 사업부는 아예 인센티브는커녕 사업부를 매각한다는 이야기만 무성하잖아!]

[가만 그러면 이일태 이사는 어떻게 돼? 지금도 회사 그만뒀다는 소리는 없던데?]

[최 실장님도 임직원 눈치가 있어서 강제로는 자르지 못하는 것 같아. 하지만 이제는 더 버티기 어려울 거야. 오큘러스 프로젝트로 전환 후에는 위성 수신기를 다시 개발해야 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회사에서 그걸 용납할까?]

[끝났네.]

이제는 KM 전자 임직원도 이일태 이사의 퇴출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최민수 처지에서는 다른 임직원과는 달리 최민혁 실장이 무서웠다. 그는 김현탁 본부장을 찾아가서 KM 전자 내부의 이야기를 해주었다.

“KM 전자는 지금 인센티브 때문에 난리가 났습니다.”

“…콜린스 누적 매출만 4,000억이 넘었는데, 그 정도는 줘야지.”

김현탁 본부장도 겉으로는 대범하게 말했지만 내심은 좀 달랐다.

그는 지금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먹기 위해서 다양한 로비를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이동호 교수나 송한성 교수와는 만나기도 쉽지 않았다.

결국 최민혁 실장을 이용할까 싶어서 KM 전자를 파고는 있지만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했다.

그런데 오성 전자는 ETRI와 소송을 명분으로 계속 협상 중이었다.

거기에 끼지 못하는 상황이라서 김현탁 본부장은 어떻게 할 바를 몰랐다.

자신은 똥 마른 강아지 마냥 낑낑거리는데, 최민혁 이놈은 KM 전자에서 돈을 뿌리는 중이었다.

그러니 얼마나 속상하겠는가.

그건 DL 정보통신 사정도 그랬다. 지난주에 정보통신 교육 센터를 설립하고 정보통신 업계 관계자 150명을 초빙했다.

개원식 자체는 호환 찬란했다.

근거리통신망이나 보안시스템에 대한 장밋빛 기대만 남발했다.

실제로 DL 그룹 차원에서 천문학적인 투자가 진행되는 중이지만 만성 적자로 손실이 만만치 않았다.

아버지 김희찬 부사장도 이 부분에 대해서 계속 걸고 넘어졌다.

결국 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 나름 이런저런 새로운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대다수가 다 날려먹기만 했다.

그는 덕분에 콜린스 대박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잘 알았다.

물론 최민수에게 자기 내심을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그걸 모르는 최민수는 위성 사업부 분위기를 전하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민혁이 그 인간이 그냥 대충대충 일을 처리하는 것 같은데도 일이 잘 풀려갑니다. 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아요. 그 자식의 능력이 대단한 건지, 운이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불만이 가득한 목소리에 김현탁 본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콜린스 대박은 인정해 줘야지. 다만 그다음 아이템도 그럴지는 좀 다른 문제잖아. 그래서 말인데, 최 실장이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손을 썼다는 이야기가 있어. 거기에 대해서 파악한 것은 없어?”

“그건 기획실에서도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제가 간혹 그쪽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봐도 그저 카더라 정도니까요.”

“그래?”

최민수의 이야기는 실망스러웠지만, 눈빛만큼은 과거처럼 흐리멍덩하지 않았다. 최민수도 최민혁 밑에 있다 보니, 배운 것이 많았던 것이다.

김현탁 본부장은 고민에 빠졌다. 오성 전자가 최근 하는 짓을 봐서는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쉽게 포기할 것 같지 않았다.

‘오성 전자가 ETRI를 상대로 소송할 것 같지는 않다는 말이야. 그렇다고 이번 일이 쉽게 해결될 것 같지도 않아. 분명히 일이 생길 거야.’

그런데 문제는 최민혁 실장의 행보다. 이상할 정도로 조용했다. 지금 하는 일이라고 해봐야 고작 인센티브 파티 정도였다.

“민수야, 위성 사업부 일이 중요한 것이 아냐. 설사 그 사업부가 없어진다고 해도 KM 전자의 내부 상황이 더 중요해. 그러니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KM 전자를 잘 지켜봐. 특히 최 실장의 행보를 놓치지 마.”

“알겠습니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DL 정보통신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고맙습니다.”

최민수는 김현탁 본부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는 다른 사람과 달리 외가 쪽 인물이라서 더 믿을 수가 있었다.

‘분명히 기회가 올 거야.’

* * *

김현탁 본부장의 생각처럼 ETRI와 오성 전자 대립은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도 뒤늦게 이 정황을 파악해서 최민혁에게 보고했다.

“아직 정식으로 소송을 진행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오성 전자가 입은 손실이 워낙에 커서 거기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손실이라……. 확실히 손실이 크죠.”

최민혁도 당연히 알았다. 다만 그가 계획한 것보다는 임팩트가 떨어져서 입맛을 다셨다. 모든 일이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고 해도 이건 너무 밋밋했다.

‘차라리 대판 싸우면 좋을 텐데, 정부도 쌓인 것이 많아서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국세청 특별 세무조사 같은 칼자루를 휘두르면 더 좋고.’

“혹시 오성 전자 내에 다른 특이 사안은 없습니까?”

“네? 무슨 말씀입니까?”

“위성 수신기를 새로 다 개발해야 할 상황인데, 지금 담당자가 그냥 자기 책임이라고 하겠습니까. 이창명 이사를 맹렬하게 비난하겠죠.”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면 외부 문제만 파악했습니까?”

“당장 눈에 띄는 것이 오성 전자와 ETRI의 소송 문제라서.”

“이대로 두면 그냥 대충대충 넘어갈 겁니다.”

“네?”

“둘 다 바보가 아니지 않습니까. 대립해 봐야 정보통신부 역시 오히려 여론의 질타를 받을 테고, 부담스러울 겁니다. 오성 전자 역시 지은 죄가 커서 괜히 긁어서 부스럼 만들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그러면 곤란하지. 만약 오성 전자가 칼자루를 쥔다면 DL 정보통신 김현탁 본부장도 발을 뺄 수가 있어.’

그랬다.

애초에 최민혁이 그린 큰 그림은 오성 전자와 DL 정보통신의 대립과 갈등이다. 그들을 더 부추겨서 자기 이익도 보고, 시선을 KM 전자 쪽으로 돌리지 못하기 하기 위함이다.

덤으로 최문경 부회장 역시 이 진흙탕 싸움에 집어넣어서 딴짓을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대로 둔다면 넷은 알아서 적당히 타협할 것이 뻔했다.

“그대로 둘 수는 없죠!”

“네?”

“아, 제 말은 우리도 오성 전자에게 당한 것이 많지 않습니까? 이런 좋은 기회에 그냥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죠.”

조성돈 팀장도 최민혁 눈치를 보다가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안 그래도 안건민 회장 장남 안재운 씨가 이번 일을 알아본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안재운? 오성 그룹의 황태자 안재운 말입니까?”

“네. 확실한 것은 아니지만, 최병연 팀장 이야기로는 오성 전자 내부에서 말들이 돈다고 합니다.”

“그건 이상하군요.”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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