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27화 (227/1,021)

#227.

“아, 그러니까요. 세상에 이게 말이 되는 소리입니까. 정부 기관도 이렇게는 안 줍니다!”

실제로 최근 20개 정부 투자 기관이 올해 받은 인센티브 중에서 가장 많이 받은 주택은행 직원이 고작 345% 정도다.

나머지 가스 공사, 한국 전력 공사, 무역 진흥공사도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렇게 받은 것조차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비난이 폭주했다.

다만 오성 전자를 비롯한 대기업은 이 인센티브보다 많을 수도 있다.

설사 그렇다고 해도 그달 인센티브를 연봉 이상으로 주는 기업은 없었다.

“…….”

허훈 과장은 지난주에 받은 급여 내역서를 떠올리고는 이를 악물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지난달에 받은 월급에서 단 한 푼의 인센티브도 없었다.

김민석 과장은 질투에 미쳐서 길길이 날뛰었는데, 뜻밖에도 그가 받은 인센티브도 0원이었다.

“아니, 세상에 같은 파트에서도 이렇게 사람 차별하는 경우가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허훈 과장은 눈치가 빨랐다.

“혹시 홍보 팀에서 무슨 사고라도 있었습니까?”

오혜정 비서를 떠올린 김민석 과장은 움찔 놀랐다.

“아니, 제가 뭘 잘못했다고 그럽니까. 전 회사를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강한 긍정에서 허훈 과장은 김민석 과장이 뭔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을 알았다. 최민혁 실장이라면 사고 친 인간을 절대로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왜 굳이 이 인간이 위성 사업부의 자신을 찾아온 것인지 금방 깨달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김민석 과장처럼 커피숍 입구를 몇 번이나 둘러봤다.

다행히 KM 전자의 임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은 없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서, 설마 오혜정 비서를 건드, 아니, 싸운 겁니까?”

김민석 과장은 발끈해서 소리쳤다.

“아니, 업무상 큰소리칠 수도 있지 않습니까. 어디까지나 홍보 효과를 최대한 올리기 위해서 잔소리를 좀 한 것뿐입니다!”

억지를 부리는 김민석 과장 행동에 허훈 과장은 굳이 더 질문하지 않았다. 그 역시 가끔 사내에 김민석 과장과 관련해서는 도는 소문을 들었다.

과장 직위를 이용해서 여직원을 상대로 갖은 수작을 부린다는 이야기가 암암리에 퍼졌었다. 워낙에 교묘한 수법에 당해서 당한 여직원도 꾹 입을 다물었지만 그게 한두 명이 아니라서 문제였다.

최민혁 실장이 왜 지금 와서 손을 쓰나 싶었지만, 자신의 위성 사업부가 벼랑 끝으로 몰렸다는 것을 깨닫자 착잡했다.

‘이번에 문제가 된 임직원을 한 방에 다 정리하려는 구나.’

최민혁 실장에게 공포마저 느낀 허훈 과장은 차라리 위성 사업부 이야기를 했다.

“이런 말 하기는 그렇지만 저를 포함한 우리 위성 사업부는 아무도 인센티브를 받지 못했습니다.”

“…저, 정말입니까?”

“네. 저도 참담합니다. 이일태 이사님은 어제 따로 위성 사업실 전원을 불러 모아서 앞으로 절대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까지 들었습니다.”

“그 징계 때문입니까? 하지만 그 일은 기획실이 잘한 것이 있습니까. 맞을 짓을 했다는 주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후유, 지금 이일태 이사님은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최민혁 실장에게 압력을 크게 받아서인지 무조건 고개 숙이라고 합니다.”

“…….”

회사 돌아가는 분위기가 불안해서 허훈 과장에게 자문하러 왔는데, 막연한 불안이 현실화된 것을 깨달은 김민석 과장은 새파랗게 질린 채로 입을 열지 못했다.

그도 뒤늦게야 허훈 과장과의 대화에서 최민혁 실장이 자신이 오혜정 비서를 괴롭힌 일을 알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면 딱 찍어서 내 인센티브만 없는 것이 말이 돼.’

문제는 과연 최민혁 실장이 고작 인센티브로 징계를 대신하고 끝낼 거냐 하는 거다.

김민석 과장은 부들부들 떨었다.

허훈 과장은 굳이 사실을 속이지 않았다.

“사실 얼마 전에 받은 징계는 큰일도 아닙니다. 이일태 이사님이 최민혁 실장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제는 쥐 죽은 듯이 지냅니다.”

“하, 하지만 KM 전자는 KM 계열사 중의 하나 아닙니까.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독재를…….”

“장승일 기획실장조차 무슨 이야기를 들었는지, 이제는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는 손을 뗀 것 같습니다. 심지어 최용욱 회장님조차 최민혁 실장을 부담스러워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최문경 부회장이 요즘 아예 존재감 자체가 없는 것도 최민혁 실장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어요.”

“마, 말도 안 됩니다. 아, 아니, 최문경 부회장님이 뭐가 아쉬워서 최 실장 눈치를 봅니까. 거기에 최용욱 회장님이 왜 최 실장을 부담스러워합니까!”

“아마 사실일 겁니다.”

상상도 못 한 이야기에 김민석 과장도 부들부들 떨었다.

“지, 진짜입니까?”

“네. 이번 오큘러스 프로젝트 사태 이후에 더 심각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니 앞으로…….”

‘인센티브에 신경 쓰는 것보다 몸조심하는 것이 좋을 겁니다.’란 말까지 허훈 과장은 하지 못했다.

탐욕이 가득한 김민석 과장도 그제야 식은땀을 흘리면서 커피숍을 떠나 버렸다.

‘하, 머리 아프네.’

* * *

김민석 과장도 최민혁 실장의 무시무시한 행보를 잘 알았다. 그도 바보가 아니어서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조심했다.

가끔 직위를 이용해서 갑질을 일삼기는 했지만, 겉으로 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최민혁 실장의 행보 역시 다르지 않았다.

겉으로는 표시 나지 않게 자신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공포에 질린 김민석 과장은 사무실에 가서도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홍보 팀장 이용식 부장이 마침 그 모습을 봤다.

“김 과장, 무슨 일 있어?”

“아, 아닙니다.”

하지만 이용식 부장은 홍보 팀원들의 인센티브 내역을 뻔히 다 알았다.

“그러기에 내가 조심하라고 했잖아.”

“죄, 죄송합니다.”

꾸벅 고개를 숙인 김민석 과장은 평소의 그 자세가 아니었다.

그는 ‘어, 나 바빠!’라고 툴툴거리는 이용식 부장 손을 잡고 휴게실로 갔다.

“부, 부장님, 호, 혹시 우리 홍보 팀에 무슨 일이 있습니까?”

마치 홍역에 걸린 환자처럼 식은땀을 흘리는 김민석 과장의 모습에 혀를 내둘렀다.

“내가 몇 번이나 경고했잖아. 우리 최민혁 실장님 뒤끝이 장난 아니라고. 다른 임직원 눈치 때문에 바로 징계하지는 않지만 결국 처벌할 거라고 했잖아!”

“이, 이미 알고 계셨습니까?”

“야, 김 과장, 회사 일이 한 다리 건너면 다 소문나. 다들 쉬쉬해서 이야기를 안 할 뿐이지, 아는 사람은 다 알아!”

김민석 과장은 맹렬하게 반발했다.

“하, 하지만 전 정말 억울합니다. 제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그럽니까. 오혜정 비서만 해도 그렇습니다. 광고 촬영을 원활하기 위해서 협력 업체와 좋게 이야기한 것뿐입니다.”

하지만 이용식 부장은 생각보다 김민석 과장에 대해서 더 깊이 알았다.

“이창명 이사와 자리를 만들어서 스폰까지 해준 것은 아니고?”

김민석 과장은 경기 들린 개구리처럼 자리에서 풀쩍 뛰었다.

“도대체 누가 그런 개소리를 합니까? 절대로 그냥 두지 않을 겁니다!”

“하, 내 앞에서 거짓말하네. 그 친구가 참 진짜 생각 없네. 자네도 최 실장님이 최훈열 전무를 어떻게 했는지 알면서도 그래? 김현우 상무 꼴을 봐. 내가 아는 지인에게 듣기로 오성 전자에서 완전히 병신 취급 받고 있다더라!”

“하, 하지만…….”

눈물까지 보인 김민석 과장 모습에 이용식 부장도 한숨을 내쉬었다.

“정 마음에 걸리면 일단 오혜정 비서라도 찾아가서 사과해. 오혜정 비서가 최 실장님에게 좋게 말하면 넘어갈지도 모르지. 물론 난 장담 못 해.”

뒤로 물러서는 이용식 부장은 딱한 눈으로 김민식 과장을 쳐다보았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이 절대로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라 예상했지만, 설마 그게 현실이 될지는 몰랐다.

‘에휴, 딱하기는 한데, 나도 모르겠다. 이건 내가 나설 문제가 아니야. 자칫하다가 나도 유탄 맞아서 징계받을 지도 몰라.’

* * *

이용식 부장의 차가운 냉대를 받은 김민석 과장은 결국 최민혁 실장이 사내에 없는 틈을 봐서 오혜정 비서를 찾아갔다.

물론 오혜정 비서는 처음부터 경계 자세를 취했다.

다행히 김민석 과장이 허리마저 숙인 채 부탁하자 오혜정 비서도 결국 본사 앞의 커피숍을 찾았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던 김민석 과장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허리를 숙였다.

“혜정 씨, 제발 나 좀 살려줘.”

“……?”

스토커처럼 치근대던 김민석 과장의 행동에 깜짝 놀란 오혜정 비서는 오히려 몸을 떨었다.

“내가 자네에게 한 것은 직장 상사의 업무를 벗어났어.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 테니, 이번 한 번만 용서해 줘.”

무릎까지 끊은 채 눈물을 흘리는 김민석 과장.

커피숍 아르바이트생조차 자리를 빙 둘러서 커피를 내려놓고는 묘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마치 드라마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목격해서인지 눈을 떼지 못했다.

오혜정 비서도 뒤늦게야 광고 촬영 중에 김민석 과장이 저지른 일 때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 역시 최민혁 실장 뒤끝이 얼마나 무시무시하다는 것을 알기에 오히려 그를 동정했다.

“김 과장님, 일단 일어나세요.”

“자네가 용서를 안 해주면 난 이 자리에서 일어날 수가 없어. 우리 어머님은 지금 간암 때문에 치료를 받고 있고, 딸아이는 이제 고2에 올라가. 만약 내가 KM 전자에서 잘리면 우리 가족은 길바닥으로 내쫓겨날 거야.”

“…….”

골 때리는 김민석 과장 행동에 오혜정 비서도 혀를 찼다. 이창명 이사가 박살이 나는 것은 뉴스로만 봐서 잘 실감하지 못했다.

그런데 김민석 과장은 직접 자신을 마주하고 있어서 이번에야 몸으로 느꼈다.

‘…실장님이 진짜 무섭기는 무서운가 보구나.’

하지만 그녀도 솔직히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랐다.

“일단 알겠습니다. 제가 한 번 나중에 최 실장님에게 말을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고, 고마워.”

눈물을 주르르 흘리고 있는 김민석 과장 얼굴은 참으로 처량했다. 반성하는 것은 분명한 듯 보였다.

* * *

오혜정 비서는 김민석 과장의 사과를 받아서인지 기분이 좋았다.

그녀도 어차피 자신이 피해자라고 생각해서 이번 일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공장 출장을 갔다가 돌아온 최민혁 실장을 보자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기 실장님.”

“응? 무슨 일에요?”

“다름이 아니라 김민석 과장 말인데요. 그분이 저한테 좀 심한 말을 했는데, 이번에 사과했습니다. 혹시라도 그 일로 징계를…….”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하지만 그건 오 비서가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에요.”

“네?”

“피해자가 오 비서만이 아니니까. 아주 상습범이더군요. 설사 지금 당장은 뉘우친다고 해도 자기가 한 행동에 관해서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 말씀은…….”

“오혜정 비서 마음은 이해하는데, 그건 사적인 태도에요. 공적인 관점에서는 그냥 둘 수가 없어요. 그 문제는 그렇게 아세요.”

“하, 하지만…….”

“김 과장이 오혜정 비서 찾아가서 진짜 사과를 하기는 했나본데, 그것만으로 끝낼 수는 없습니다.”

“…네.”

오혜정 비서는 차가운 최민혁 실장 모습에 깜짝 놀라서 멍하니 기획실로 들어가는 뒷모습만 쳐다보았다. 이창명 이사 추문 때는 그냥 그러나 싶었는데, 저렇게 단호한 모습을 보일지는 상상조차 못했다.

한 편으로 통쾌한 최민혁 말과 행동에 깊은 감명을 받고 받았다.

‘…실장님이 겉보기와는 달리 정말 단호하구나.’

* * *

허훈 과장은 김민석 과장의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야 KM 전자의 임직원 대부분이 인센티브 폭탄을 맞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내 지인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로는 KM 전자의 임직원은 이번 달에만 평균적으로 1,000% 이상의 돈 폭탄을 받았다고 했다.

직원끼리 휴게실에 모였다 하면 나오는 이야기가 인센티브로 아파트를 마련할까 고민하는 이야기뿐이었다.

[사내 대출을 한번 요청해 봐.]

[그래 봐야 한도가 있어서 얼마 되지도 않잖아?]

[아니, 지난달부터 그 한도가 대폭 늘어났어. 특히 과장급 이상 직원은 억 단위가 넘어가. 물론 사람마다 차별이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어디야?]

실제로 은행 최저 이율로 자사 대출을 받아서 아파트를 매입한 사람도 있었다.

이제까지 조용하던 회사가 갑자기 임직원에게 돈을 풀기 시작했다.

다들 콜린스의 대박 덕분에 연말쯤에 가서 돈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행보였다.

하지만 최근 사내에서 월마트와의 대규모 계약 때문에 말이 무성했으니, 인센티브의 지급 시기가 늦은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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