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26화 (226/1,021)

#226.

“저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지만, 재수가 좋아서 이런 결과가 나왔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게 우연히 되겠습니까?”

“그렇다고 이동호 교수나 송한성 교수가 이 사태를 만들었다고 하기에는 좀 그렇지 않을까요?”

두 사람의 성향을 잘 아는 임기석 부장은 피식 웃고 말았다.

“두 분이 그럴 리가 없죠. 두 분은 연구만 하는 분들로 이런 일에 손을 쓸 분들이 아닙니다. 다만 그 두 분을 밀어준 사람이 최민혁 실장님이니, 알려진 것과는 다를 수도 있습니다.”

MP3 특허를 파악하면서 이미 최민혁 실장의 놀라운 행보를 파악한 박상기 차장도 깜짝 놀랐다.

“가, 가만 그러면 오큘러스 프로젝트에도 최 실장이 관여했다는 말입니까? 최 실장님이 위성 기술에 대해서는 어떻게 압니까?”

“위성 기술에 대해서는 최 실장님도 자세히 모를 겁니다. 하지만 디지털 위성 기술이라면 이야기가 좀 다릅니다. MP3 특허의 디지털 시스템을 떠올리면 될 겁니다.”

“……!”

박상기 차장은 깜짝 놀랐다. 그 역시 MP3 특허를 검토하면서 경악했기 때문이다. 뒤늦게야 MP3를 보면서 오디오, 비디오 특허를 떠올렸다.

그 원천 기술은 위성 기술에도 얼마든지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기술은 ETRI나 송한성 교수가 충분히 제공했다.

만약 최민혁 실장이 그 자료까지 다 들여다봤다면 그 이상도 가능했다.

물론 이 위성 기술을 최민혁 실장이 어떻게 활용했느냐는 좀 다른 문제다. 차마 최민혁 실장이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손을 댔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 * *

박상기 차장은 임기석 부장에게 들은 정보를 토대로 고민을 거듭했다. 그는 위성 기사를 다시 몇 번이나 읽어보고서야 임기석 부장이 한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이미 기사로 언급된 일이라서 조성돈 팀장을 찾아갔다.

조성돈 팀장은 월마트 콜린스 공급 계약을 비롯한 산적한 문제와 관련된 기획 팀 회의에 들어가기 위해 막 자리에서 일어난 참이었다.

“조 팀장님, 혹시 오큘러스 프로젝트에 대해서 아십니까?”

“아, 그거요. 알기는 압니다만.”

“임기석 부장에게 듣기로 이번 일이 이동호 교수와도 관련이 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이동호 교수’ 이야기가 나오자 회의에 들어가려던 기획 팀 직원들은 다들 귀를 쫑긋했다. 그들 역시 ETRI와 오성 전자의 갈등에 대한 기사를 보고 꽤 놀랐었다.

기사 내용 중에 이동호 교수와 송한성 교수 관계도 언급되었다.

기사를 읽은 직원들은 최민혁 실장도 뭔가 연루되지 않았을까 음모론을 펼쳤다.

실제로 기사를 잘 보면 늘 최민혁 실장 사진은 중앙에 나오기 때문이다.

기사와 아무런 관련이 없는 최민혁 실장의 사진이 왜 나오는지 다들 궁금했다.

사실 증거만 명확했다면 기사가 저따위로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회사 직원들도 최민혁 실장이 미국 디지털 위성 시스템보다 발전된 오큘러스 시스템에 손을 썼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조성돈 팀장은 따가운 팀원들의 시선에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자세한 것은 모릅니다.”

박상기 차장은 모르쇠로 일관하는 조 팀장의 태도에 발끈했다. 지금 ETRI와 오성 전자, 아니 오큘러스 프로젝트를 둘러싼 이해 당사자 간의 대립이 표면화되었다.

그런데 정작 이 일에 연루된 KM 전자는 오히려 조용했다.

거기다 최민혁 실장은 계속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데, 그 자신이 모른다는 것이 말이 되지 않았다.

“아니, 그게 말이 됩니까. 비디오 특허와 관련해서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이 진행하는 일이 송한성 교수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입니다. 이걸 최 실장님이 모를 리가 있습니까?”

“제 생각은 다릅니다. 최 실장님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잘 아는 것은 아니니까. 그리고 송한성 교수가 연구하는 위성 기술은 그 나름 전문적인 분야입니다.”

“그렇기는 하지만…….”

박상기 차장도 입맛을 다셨고, 다른 팀원 역시 마찬가지다.

그들은 애매하게 부정하는 조성돈 팀장 표정을 보면서 결국 암묵적으로 수긍하고 말았다.

‘이번 일도 최 실장님 솜씨가 틀림없어!’

물론 조성돈 팀장은 일축했다.

“자, 회의나 하시죠. 그것보다 50만 대 공급 물량이 걸린 월마트 계약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후유, 그렇죠. 월마트에 집중해야죠.”

그는 의문이 많았지만 더 질문할 수가 없었다.

조성돈 팀장도 따가운 팀원의 시선을 무시한 채 기획 팀 회의를 강행했다. 그런 그도 최민혁 실장 행보에는 절로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아무래도 이번 일은 최 실장님에게 한번 확인을 해봐야겠어.’

* * *

“소송이라.”

최민혁은 애매한 얼굴로 오성 전자와 ETRI의 갈등에 대한 보고서를 읽었다. 아직은 숙성될 시기만 보고 있어서 입맛을 다셨다.

조성돈 팀장의 까칠한 시선을 느꼈지만 뭐 그 정도는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더 익어야 해. 상한 고기 먹다가 배탈 날 수도 있으니까.’

입가에 절로 미소가 떠올랐다.

만약 자신이 먼저 선제공격하지 않았다면 최문경 부회장이나 오성 전자의 압박에 이리저리 휘둘려서 이런 생각조차 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역시 선빵이 최고야.’

최민혁은 오큘러스 프로젝트가 자신이 기획한 대로 풀려간 것에 만족했다.

그렇다면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낼 수는 없다. 작은 일이라도 꼼꼼하게 살폈다.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작은 것 하나라도 그냥 둘 수는 없다.

마치 휴가라도 온 것처럼 느긋하게 기획안을 검토하면서 결재판에 사인했다.

기획안 대다수는 그다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어차피 자신이 뿌린 씨앗이 성장한 과실이니까.

다만 임직원에 대해서는 좀 달랐다.

“인센티브가 좀 적네요.”

“네? 그렇지 않습니다. 지난달만 해도 성과금을 많이 받은 직원은 무려 500%가 넘습니다.”

“하지만 우리 회사의 매출 성장세나 순이익을 보면 별것 아니죠. 그래서 곤란해요. 고생한 직원에게 그만한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다시 사업부 실적을 검토해서 인센티브를 검토해 보세요.”

“…어느 정도 한계를 둘까요?”

“한계는 없습니다. 다만 위성 사업부처럼 결과가 없는 사업부는 배제합니다. 그쪽은 사업부를 없애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한 보상이니까.”

“…네.”

조성돈 팀장은 섬뜩한 최민혁의 주장에도 반박하지 못했다. 이일태 이사가 저지른 죄도 있고, 위성 사업부는 진짜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

특히 오큘러스 프로젝트 때문에 기존에 했던 일을 다시 다 새로 해야 할 상황이라서 상황이 더 심각했다.

지금이야 아직 확정된 사실이 없지만 한 달 정도만 지나도 회사에서 이 부분에 관한 책임을 이일태 이사에게 물을 것이 뻔했다.

그도 이일태 이사가 딱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어쩔 도리가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 때문에 의문이 많았지만, 최민혁에게 질문한다고 해서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조성돈 팀장은 망설이다가 결국 입을 다물고 말았다.

다만 한 가지를 걸고 넘어갔다.

“하지만 여기 명단에 없는 직원은 따로 항의할 겁니다. 그때는 어떻게…….”

최민혁은 서랍에서 관련 동영상과 문건을 꺼내서 조성돈 팀장에게 내밀었다.

“아, 임직원을 감시한 것이 아니라 사내 투고를 토대로 감사 팀에서 조사한 자료입니다. 아마 이거면 일을 진행하는데, 큰 문제는 없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는 서류 몇 장을 넘기다가 관련 내용을 확인하고는 더 이상 최민혁에게 질문할 수가 없었다.

‘아니, 언제 이런 자료를 다 준비한 거지?’

* * *

조정욱 인사 팀장도 ETRI와 오성 전자 간의 갈등에 대한 기사 이야기를 듣고는 혀를 찼다. 그 역시 이 일에 최민혁 실장이 끼어 있다고 확신했다.

기사에 큼직하게 들어간 사진의 최민혁이 그 증거였다.

그 때문에 조성돈 팀장이 갑자기 찾아와서 인센티브 이야기를 해도 매우 놀라지 않았다.

다만 위성 사업부를 비롯한 몇몇 임직원을 딱 찍어서 인센티브를 빼라는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김민석 과장은 오혜정 광고로 나름 크게 이바지했지 않습니까?”

“하지만 오혜정 비서를 괴롭힌 것은 또 다른 문제입니다. 사내 갈등을 부추겨서 일 잘하는 사람까지 끌어내렸으니까.”

사내 보안 팀이 준비해 둔 CCTV 동영상에는 김민석 과장이 오혜정 비서를 괴롭히는 장면이 단막 드라마처럼 잘 찍혀 있었다.

물론 이 동영상은 사내 고발을 통해서 감사 팀 직원이 조사한 자료다.

“허, 정말 놀랍군요. 설마 김 과장이 이런 짓을 했는지 몰랐습니다.”

“더욱이 오성 전자의 협력사를 통해서 뇌물을 받은 정황도 있습니다. 오혜정 비서를 압박해서 이창명 이사와 줄을 놔준 것도 이 사람이더군요.”

“그, 그게 사실입니까?”

조성돈 팀장도 이미 이 사찰 자료를 다 살펴봤기에 최민혁 실장의 일 처리에 혀를 내둘렀다.

“아마 이번 일은 시작에 불과할 겁니다.”

꼼꼼하게 정리된 파일은 김민석 과장의 사생활 전체를 다큐멘터리식으로 담고 있었다. 상대를 완전히 죽일 목적으로 준비된 자료였다.

‘이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설마 이 정도로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니.’

조정욱 인사 팀장도 이 안건에 크게 놀라지 않았다. 이일태 이사를 비롯한 위성 사업부에서 한 일을 다 들었기 때문이다.

“결국 올 게 왔군요.”

“그럴 겁니다. 이일태 이사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조용히 잘 버티고 있던 이들도 이제는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저도 이들을 두둔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 실장님의 일 처리가 두렵습니다.”

“하지만 최 실장님이 지금 하는 일을 보시면 알겠지만 회사에 피해만 안 끼치면 상관이 없습니다. 특히 업무 성과가 떨어져도 여러 가지 구제책을 내놓지 않습니까.”

“하긴.”

조정욱 인사 팀장도 결국 최민혁 실장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하긴 이 정도라면 사장님도 반박할 수가 없겠지.’

* * *

인사 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일은 표가 잘 나지 않았다. 그런데 몇몇 다른 부서가 같이 움직이면서 알게 모르게 사내에 소문이 났다.

다들 쉬쉬하면서 눈치만 봤다.

눈치 빠른 허훈 과장은 사내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폭력 사태로 징계를 받은 이후에는 정말 몸조심했다.

그도 장승일 실장이 도와주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지만 오큘러스 프로젝트 관련 기사를 보자 모든 것을 깔끔하게 접었다.

특히 협력 업체에서 소송을 걸겠다고 계속 걸려오는 전화 때문에 이제는 두 손을 다 들고 말았다.

최민수 얼굴을 봐도 힘이 나지 않았다. 이제는 그가 무슨 수를 써도 상황이 잘될 것 같지가 않았다.

그리고 회사 내에 아는 인맥이 많은 것도 지금 상황에서는 별반 좋지도 않았다.

더욱이 다른 팀의 시선도 살벌한 것이 내일 당장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절망적인 뭔가 그 자신을 덮치는 것 같은데, 대응책 따위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가능하면 몸을 사리고 있는 허훈 과장은 다른 임직원 눈도 피했다.

그렇게 죽은 듯이 지내려고 했는데, 홍보 팀의 김민석 과장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었다.

“허 과장님, 잠깐 이야기 좀 하시죠.”

“무슨 일 때문입니까?”

“혹시 인센티브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까?”

“매달 나오는 인센티브가 딱히 문제가 됩니까?”

“그게 지지난달부터 받는 인센티브가 팀별로 달라졌습니다.”

“……?”

허훈 과장도 인센티브 이야기를 무시할 수가 없어서 김민석 과장을 따라서 휴게실이 아니라 본사 밖으로 나갔다.

본사 맞은편에서 멀지 않은 한 커피숍을 찾았다.

김민석 과장은 뭐가 그리 두려운지 커피숍 입구를 이리저리 살핀 후에 입을 열었다.

“우리 팀에 전희주 과장 아시죠?”

전희주 과장은 김민석 과장의 입사 동기로 그다지 튀지 않는 타입이었다. 회사 생활을 하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녀는 오혜정 광고를 기획한 사람이었고, 광고업체 섭외부터 모든 것을 진행했다.

이후에 일이 커지면서 김민석 과장이 이 일에 합류한 것이다.

즉 오혜정 국민 비서 광고를 실제로 이끌고 간 이였다.

허훈 과장도 가끔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모를 수가 없었다.

“전 과장에게 무슨 일이라도 터진 겁니까?”

“이번 달에 전 과장이 받은 인센티브가 무려 6천이 넘습니다. 이게 말이 됩니까?!”

“6천이라…….”

허훈 과장도 순간 듣고 6천만 원이라는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처음에는 그도 연봉이 6천만 원으로 올랐나 그렇게 생각했다.

“서, 설마 이, 이달 인센티브가 6천이라는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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