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15화 (215/1,021)

#215.

하지만 이미 내막을 따로 들은 박상기 차장은 혀를 내둘렀다.

‘조 팀장님의 저런 모습이 대단하다니까.’

회사에 지진이 나서 건물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사람이 바로 조성돈 팀장이었다.

그러니 혼자 열 받아서 설치던 이석우 부장도 돌아오는 반응이 없자 흠칫했다.

혹시 자신이 잘못 알았나 싶었다.

대신 나선 것은 바로 전화로 연락을 받고 나타난 이일태 이사였다.

그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올라 있는 상황.

문득 최민혁에게 이제까지 당한 원한이 생각나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최민혁이 자신을 괴롭히면서 한 짓을 견딜 수가 없었다.

“죽여 버리겠어!”

결국 분노를 참지 못한 이일태 이사는 조성돈 팀장에게 달려들어서 멱살을 잡았다.

깜짝 놀란 배종대 과장이 중간에 끼어들어서 이를 막았고, 허훈 과장이 이일태 이사를 돕기 위해서 나섰다. 결국, 서로 멱살을 잡은 채 고래고래 고함을 내질렀다.

이 과정에서 정성근 대리가 허훈 과장에게 한 대 맞고 말았다.

마치 패싸움하듯이 흘러가는 상황.

도저히 수습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기획 팀 옆에 붙어 있는 다른 팀 임직원들도 입을 딱 벌린 채 이 광경을 쳐다보았다.

한바탕 쌓인 감정을 풀고 나자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이일태 이사는 뒤늦게야 아차 싶었다. 그는 다급하게 허훈 과장을 비롯한 위성 사업 팀 임직원을 뒤로 밀어냈다.

“허 과장, 잠깐 뒤로 물러나. 그만두라니까. 지금 뭐하는 거야?!”

씩씩거리는 허훈 과장 역시 평소와는 달랐다. 그 역시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앙금을 쉽게 가라앉히지 못했다.

이일태 이사는 이를 악물었다.

“조 팀장님,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새로운 위성 사업과 관련된 일이 있었다면 기획 팀에서 먼저 우리 사업부와 사전에 이야기해야 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그 내용을 ETRI도 아닌, 협력 업체를 통해서 듣는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어지간한 정보는 최민혁 사주를 받은 ETRI을 통해서 이미 다 알려졌는데, 협력 업체 통해서 들었다는 이야기는 KM 위성 사업부 위치가 어떤지 잘 보여주었다.

이일태 이사는 점점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위성 사업을 진행하는 우리 사업부만 모를 수가 있어? 오성 전자를 비롯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말이야!!”

목에 핏대마저 세운 채 쩌렁쩌렁 외치는 이일태 이사 모습은 과거에는 전혀 보이지 않던 모습이다. 벼랑 끝에 몰리자 이일태 이사도 이제는 끝장을 보자는 태도로 달려들었다.

입고 있는 양복이 흐트러진 조성돈 팀장은 넥타이를 바로 잡으면서 느긋한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뭐 자꾸 이렇게 몰아세우니, 말하겠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 기획 팀은 위성 사업에 대한 일에 절대로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면 지금 상황은 어떻게 설명할 겁니까?!”

“다만 이동호 교수 통해서 공동연구를 진행하고는 있는데, 그가 위성 사업 전문가인 송한성 교수에게 도움을 줬습니다.”

“그 말은…….”

“네. 저희가 송한성 교수의 프로젝트까지 일일이 관리할 상황은 아닙니다. 뭔가 있다는 것은 알았어도 위성 사업부가 있는데, 굳이 일을 늘릴 수는 없었습니다.”

그랬다.

실상 이동호 교수, 송한성 교수, ETRI 연구 팀에 직접 손을 쓴 사람은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그렇다보니 조성돈 팀장조차 최민혁 실장이 구체적으로 뭘 했는지까지는 잘 몰랐다.

조성돈 팀장이 최민혁 지시를 받아서 중간에서 이런저런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딱 그뿐이다.

위성 방송 시스템의 서비스 전문 기술 분야는 조성돈 팀장조차 제대로 알 수가 없었다.

엄밀히 말해서 ETRI 위성 사업부도 그 내막을 잘 모르고 있었다.

ETRI 내부 갈등으로 고민하던 오현종 팀장이나 김승구 팀장은 자기 미래가 걸려 있는 일인데, 그걸 이리저리 홍보할 수는 없었다.

조성돈 팀장은 그저 시즈벨을 비롯해서 돌아가는 상황만 일부 알고 있었다.

그렇다고 조성돈 팀장이 이 일을 전혀 모를 수가 없느냐 하면 그건 아니다. 그가 최민혁에게 구체적으로 질문했다면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굳이 그러지 않았다. 이 부분은 최민혁의 능력과 관련이 있는데, 이제까지 쌓인 의문만 해도 산더미다.

거기에 한 토막 더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자세한 사항을 물어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거기다 최민혁이 새로운 위성 방송 시스템을 어떻게 다시 재설계했느냐는 질문에는 제대로 대답해 줄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니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일이지만 조성돈 팀장이 한 말이 마냥 거짓은 아니다.

이런 내막을 잘 모르는 이일태 이사로서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게 말이 됩니까? 기획 팀장조차 내막을 잘 몰랐다니!”

조성돈 팀장은 진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툴툴거렸다.

“모든 일을 조율한 사람은 최민혁 실장님입니다. 그러니 정말 억울한 점이 있다면 우리 기획 팀에 와서 뭐라고 할 것이 아니라 실장님을 찾아가 보세요.”

최민혁 실장 이야기가 나오자 경기 들린 아이처럼 이일태 실장은 움찔했다. 그는 웬만하면 최민혁 실장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설, 설마 최 실장님이 이 모든 일을 기획했다는 말입니까?”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이미 밝혔다시피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이나 송한성 교수 연구 팀 프로젝트에 우리 KM 전자가 왈가왈부할 수만은 없습니다.”

“…….”

이일태 이사는 넋을 잃은 채 조성돈 팀장 말을 곰곰이 생각했다. 하지만 그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도대체 20살짜리 이제 대학교 1학년생이 무슨 수로 새로운 위성 방송 시스템에 손을 썼다는 것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그런데 조성돈 팀장 표정만 봐서는 절대로 거짓말하는 모양이 아니었다.

‘정말 비밀리로 관리하는 연구소가 있다는 말인가. 가만 최병연 팀장이 따로 관리하는 연구소도 있잖아. 돌아버리겠네.’

“저, 정말 기획 팀에서는 이 일을 모르는 겁니까?”

“전혀 모릅니다.”

이일태 이사는 결국 눈치를 보다가 몸을 돌리고 말았다.

큰 충격을 받은 이석우 부장과 허훈 과장 역시 의문을 가진 채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최민혁 실장이 무슨 수를 부렸는지 그들은 상상 조차할 수가 없었다.

* * *

박상기 차장은 위성 사업부 임직원이 사라지자 조성돈 팀장에게 달려가서 넌지시 질문했다.

“괜찮습니까?”

그제야 양복 상의를 벗어 살핀 조성돈 팀장은 피식 웃었다.

“다행히 전 괜찮습니다.”

그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 대 맞은 정성근 대리를 향했다.

“정 대리, 괜찮아?”

“아, 큰 상처는 아닙니다.”

얼굴에 한 대 제대로 맞은 정성근 대리는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혹시 모르니까. 병원에 가봐.”

“알겠습니다.”

박상기 차장은 그제야 조성돈 팀장을 다시 쳐다보았다.

“정말 실장님이 이번 일을 모두 설계한 겁니까?”

“…저도 세세한 것은 모릅니다.”

“아니, 최 실장님이 팀장님께도 말하지 않았다는 말입니까?”

“다른 일과는 달리 위성 시스템 서비스를 수정하는 일이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ETRI 내에서도 결과와 일정만 생각해서 끝내는 것만 집중했습니다. 그 인원만 해도 백 명이 넘어갑니다. 과연 관련 전문 지식을 배워본 적이 없는 일반인 한 사람이 그들도 못한 일을 제대로 끝낼 수가 있겠습니까?”

“하면 최 실장님에게 물어보면 되지 않을까요? 따로 비밀리에 연구실을 운영할 수도 있고, 연구 용역을 줬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조성돈 팀장은 피식 웃으면서 이제까지 고민한 의문을 털어놓았다.

“아무리 ETRI 박사가 무능하다고 해도 일반인이 그럴 수는 없습니다. ETRI 박사들이 누가 보면 병신인 줄 알겠습니다. 그들이 못한 일을 누가 한다는 말입니까? 그걸 최 실장님이 할 수 있겠습니까?”

진심이 담겨 있는 말.

실상 조성돈 팀장조차 최민혁이 가끔 툭툭 던지는 지시에 의문이 많았다. 그걸 털어놓으니, 박상기 차장조차 더 의심하지 않았다.

“…그게 좀 그러네요.”

박상기 차장도 뒤늦게야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발견했다. 어느 정도 합리적인 추론이라면 송한성 교수가 자기 능력으로 연구를 자발적으로 했다고 해야 말이 되었다.

이게 그의 한계였다.

그런데 어쩔 수가 없는 것이 ETRI 담당자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 것은 절대로 아니다. 위성 방송 시스템 자체에 여러 가지 특허가 얽혀 있고, 그 일은 아직도 진행형이었다.

즉 위성 방송 시스템 서비스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일이었다. 그러니 ETRI 연구 팀도 쉽게 어찌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사실 최민혁이 새로운 위성 시스템 서비스를 고안한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이었다.

또한 그 부분이 ETRI 김문호 박사 연구 팀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부분이었다.

그러니 KM 전자 기획실이나 위성 사업부가 만에 하나라도 생각해 낼 수 있는 범주가 아니었다.

박상기 차장도 그제야 인상을 찡그렸다. 그는 조성돈 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뒤늦게야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뭔가 있구나. 하긴 최 실장님과 관련해서는 앞뒤가 맞지 않는 일이 정말 많았지.’

당연히 조성돈 팀장은 알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조성돈 팀장 행동을 봐서는 그조차 모르는 일이 있었다.

‘하긴 최 실장님과 관련된 일은 이상한 점이 너무도 많았어. 콜린스는 그렇다고 하지만 MP3 같은 경우는 이야기가 많이 다르잖아. 최병연 팀장조차 최 실장님 지시를 받았다고 그랬으니.’

거기에 새로운 위성 시스템이 더해진 것에 불과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성돈 팀장도 잘 모른다는 점이다.

“후유, 알겠습니다. 그런데 귀신에 홀린 것 같아서 찜찜합니다.”

“나중에 최 실장님이 다 말해줄 날이 있을 겁니다.”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놀랐습니다. 이일태 이사가 저렇게 저돌적인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조성돈 팀장 역시 이일태 이사가 주먹다짐할 줄은 몰랐다. 그는 오히려 이일태 이사의 앞날을 걱정했다.

“그것도 걱정입니다. 최 실장님이 이런 일을 그냥 둘 분 같지 않아서요.”

“그렇겠죠.”

* * *

최민혁도 처음에는 하룻강아지 범 무서울 줄 모르는 이일태 이사의 CCTV 영상에 한참 웃었다. 하지만 그도 이 일을 그냥 둘 수는 없었다.

다만 약간의 문제가 존재했다.

아직 최용욱 회장의 감정이 풀어진 상황이 아니었다.

‘DL 그룹이나 오성 전자 경우와는 달라. 처리하기가 모호하네…….’

최용욱 회장이 이일태 이사를 신경 쓴다 안 쓴다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이 뻔히 주의하라고 말을 했는데, 그 지시를 따르지 않으면 분노할 것이 뻔했다.

더욱이 최민혁 자신이 원하는 것은 DL 그룹과 오성 그룹의 갈등이었다.

최용욱 회장이 이 일에 끼어드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이번 일을 통해서 최문경 부회장에게 명분을 주는 것도 바람직하지는 않았다.

최민혁은 결국 조성돈 팀장에게서 최근 KM 그룹에서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리스트를 받았다.

조성돈 팀장조차 장승일 실장에게 받은 자료를 내밀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갑자기 그 서류는 왜 보시는 겁니까?”

“일을 좀 만들려고요.”

“네?”

“아, 그런 게 있습니다.”

“이일태 이사 때문입니까?”

“당연하죠. 설마 사내에서 폭력을 행사한 사람을 그냥 둘 것으로 생각합니까?”

“하지만 당분간은 회장님 지시도 있으니, 조심하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그럴 수는 없어요. 공격이 최선이란 말처럼 이런 시기일수록 철저한 보복을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할아버지랑 싸울 필요는 없으니, 적당한 수단이 필요합니다.”

“…….”

조성돈 팀장도 단단히 마음먹은 최민혁 실장에게 딱히 뭐라고 더 말하지 않았다.

최민혁은 문득 KM 그룹 계열사를 살피면서 사라지는 회사 목록을 확인했다. 그중에 딱 괜찮은 계열사 하나가 떠올랐다.

“아, TRS지오텍KM이 있었구나.”

“네? 갑자기 그 회사는 왜 살피시는 겁니까?”

“그게 말이죠. 으음, 이 회사는 몇 년을 못 넘겨서 망합니다.”

“자본금도 꽤 되는 회사인데, 설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마설마하다가 망합니다. 그냥 망한다고만 알아주세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입니까?”

최민혁도 설명할까 망설이다가 동영상에서 조성돈 팀장이 했던 말이 떠오르자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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