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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12화 (212/1,021)

#212.

“설마요. 저 그렇게 나쁜 놈 아닙니다. 적당한 대가를 받고 지분을 매각하면 그뿐이에요.”

‘그 방법이 이간질 아닙니까?’란 말을 하려다가 조성돈 팀장은 그 말을 꿀꺽 삼키고 말았다.

최민혁은 따가운 조성돈 팀장의 시선에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다만 할아버지 시선도 있고 하니, 너무 나서지 말아야죠. 그래도 우리 회사와 관련된 발표회라 참석은 해야죠. 티가 나지 않도록 말이죠.”

“…알겠습니다. 오현종 팀장과는 다시 상의해서 일정을 잡도록 하겠습니다.”

“괜히 분란을 더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박재호 실장이 나서서 알렸겠지만, 자세한 것은 모를 겁니다. 그러니 이번 발표회가 이창명 이사의 귀에도 들어가도록 손을 써 보세요. 송한성 교수 밑에 조재현 박사라고 했던가? 그 사람 이용해서 말이죠.”

다만 최민혁도 이창명 이사와는 달리 DL 정보 통신은 다르게 취급했다.

“참 이왕이면 DL 정보통신에는 좀 더 정보를 주세요. 그쪽에서 상대가 오성 전자라고 해도 관심을 둘 정도로 말이죠. 혹시라도 정보가 제대로 안 갈 수 있으니, 민수 형에게도 넌지시 정보를 흘려봐요.”

“…네.”

졸지에 첩보원 놀이까지 해야 할 상황에 부닥친 조성돈 팀장도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최민혁이 한 이야기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새삼 복잡한 지시라서 골치가 아팠다.

하지만 핵심은 간단했다.

‘결국 오성 전자와 DL 정보통신 갈등을 부추기는 것이란 말이네. 가만 그러면 이일태 이사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아, 모르겠다. 이일태 이사 자신이 알아서 할 일이겠지.’

* * *

월마트 관련 계약 이야기는 기획 팀 내에서도 말들이 많았다.

조성돈 팀장이 일부 이야기하기는 했지만 세세한 것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최민혁이 제대로 조성돈 팀장에게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성돈 팀장은 덕분에 한창 나 궁금해 라고 대놓고 얼굴에 표시한 박상기 차장을 데리고 휴게실로 천천히 올라갔다.

배종대 과장이 슬그머니 달라붙었지만, 굳이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는 최민수가 휴게실에 어디 있나 싶어서 두리번거렸다.

예상대로 휴게실 가장 구석. 나무로 가려진 벤치 뒤편에 서 있는 최민수를 발견했다.

최민수는 요즘 뭐가 그리 고민이 많은지 그 자리에서 망부석이 되어 있었다.

조성돈 팀장은 박상기 차장이나 배종대 과장이 최민수를 보지 못할 방향으로 이들을 이끌었고, 벤치에 두 사람을 앉혔다.

박상기 차장은 의아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설마 위성 사업부 일입니까?”

“비슷하기는 하지만 엄밀히 말해서 위성 사업부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살짝 소리를 높인 덕분에 최민수가 바로 그들을 발견했다.

최민수는 잽싸게 몸을 낮추었다.

‘예상대로네.’

조성돈 팀장은 도대체 자신이 지금 뭘 하나 자괴감마저 느꼈지만, 최민혁 지시라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조 팀장은 대화의 포문을 열며 이 일을 주도한 것은 최민혁 실장이 아니라 이동호 교수와 송한성 교수가 주도해서 나섰다는 점을 지적했다.

“최 실장님은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글쎄요.”

박상기 차장은 믿지 않았다.

배종대 과장조차 오히려 어리둥절해했다.

“굳이 그런 말을 하는 의도를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박상기 차장도 설마 최민혁이 수정된 위성 방송 시스템 골격을 잡았다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또 최 실장님이 뭔가 일을 꾸미나 본데, 뭐 그렇다고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자기 설득이 안 먹혀서 난감했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차피 최민혁 실장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해봐야 KM 전자에서 그 말을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게 말입니다. 사실은…….”

약간 요약된 위성 방송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놀라운 일이군요.”

“…그래서 이번 위성 방송 시스템과 관련해서 새로이 계약해야 합니다.”

이후부터는 조성돈 팀장이 의도적으로 목소리를 낮추었다.

중요한 일이라고 판단한 박상기 차장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조성돈 팀장은 물론 적당히 각색해서 설명했는데, 시선은 역시 최민수에게 가 있었다.

‘충분히 알아들은 눈치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어느 정도 설명을 했다고 생각한 조성돈 팀장은 다시 두 사람을 데리고 회의실로 향했다. 그는 최민혁에게 지시받은 것을 말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그냥 홀로 간직하기로 마음먹었다.

‘이게 과연 효과가 있을까?’

* * *

반쯤 망가진 최훈열 면회를 다녀온 김여정은 최근 아버지 김상구 회장까지 찾아가서 하소연했다. 그녀는 아버지 앞에서 작정하고 펑펑 울었다.

다행히 김상구 회장이 나서서 뭔가 손을 쓰는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 보니 증여한 지분 가지고, 최용욱 회장과 최민혁, 두 사람 사이의 갈등을 부추긴 것이다.

김상구 회장은 자신했다.

“세상 누구라도 1조 가까운 돈을 가지고 갈등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그러니 너무 걱정 말고, 조용히 지켜만 봐.”

김상구 회장은 최용욱 회장이 손자에게 1조 지분을 증여했다고 그 누가 말해도 믿지 않았다. 그는 최용욱 회장이 지분을 증여하면서 뒤로 따로 뭔가 수작을 부렸다고 생각했다.

그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최용욱 회장이 실수했다고 판단했다.

KM 전자의 주가가 오를수록 최용욱 회장도 골치를 앓을 것이라 봤다.

김여정으로서는 썩 내키는 방식은 아니지만, 시작으로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결과는 그녀가 예상한 것과는 달랐다.

최용욱 회장은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즐겼다. 요즘 건강이 좋아지자 아예 골프장을 다니면서 취미 생활까지 즐겼다.

그러니 KM 그룹 사장단 회의에는 늘 빠지지 않고, 나타났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전과는 달리 마치 죽은 듯이 침묵했다.

그는 그 어떤 돌발 행동도 하지 않았다.

김여정도 뒤늦게야 이 일에 김이경이 이 일에 연루된 것을 들었다.

김이경은 마치 쥐 잡듯이 최문경 부회장을 괴롭힌 것이었다.

김여정은 다른 사람과는 달리 김이경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는 터라 혀를 내두른 채 그 모습을 지켜봤다.

‘솔직히 부럽다.’

김여정은 김이경 가족 분위기가 궁금해 몇 번 찾아가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들었다. 과거라면 최훈열 전무와 최문경 부회장 관계 때문에 서먹했지만 최훈열 전무가 후계자 구도에서 멀어지면서 이전과는 달리 반갑게 맞으며 이야기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통해서 김이경도 최문경 부회장 행동 때문에 크게 실망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최민혁에 대한 경계는 그 어느 때보다 올라갔다.

김이경은 아예 흥신소까지 고용해서 최민혁 약점을 파고 있었다.

‘나도 배워야 해.’

김여정은 결국 이런저런 일을 알아보는 터라 밤낮을 가리지 않고 돌아다녔다. 그녀는 자기 인맥을 총동원했다.

그런데 오늘은 집안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늘 보이던 아들 최민수가 없어서 허겁지겁 방을 돌아다녔다.

다행히 집안일하는 아주머니가 최민수는 방 안에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런데 도련님이 걱정이 있나 봐요.”

“왜 그렇게 생각해요?”

“집에 오면 아예 방안에만 들어가서 나오지를 않습니다.”

방 청소를 하다 보면, 퀴퀴한 냄새가 난다는 말까지 하지는 않았다.

김여정은 부리나케 최민수 방으로 달려가서 노크했다. 대답이 없어서 키를 가져와서 열었다. 방 안에는 최민수가 침대에 이불을 뒤집어쓴 채로 있었다.

깜짝 놀란 그녀는 후다닥 뛰어가서 이불을 걷어냈다.

최민수는 식은땀을 흘린 채 끙끙 앓고 있었다.

“미, 민수야, 너, 어디 아파?!”

최민수는 바로 깨어나지 않다가 가까스로 엄마라는 것을 알았다.

“어, 엄마.”

“너 왜 그래? 무슨 일이라도 있어?”

“그게…….”

최민수 건강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최근 ETRI 관련 조사를 하는 중에 발견한 이상한 점 때문이었다.

허훈 과장도 잘 모르는 눈치였다. 그런데 이게 허훈 과장이 최민수 자신을 따돌리는 건지, 아니면 진심으로 모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최민수 나름 홀로 고군분투했지만, 상황은 그의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최근 KM 전자 영업 팀을 중심으로 핵심 조직원 태도가 바뀌면서 이전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최민혁은 이제 생사여탈권을 쥔 오너이면서도, 강력한 힘을 가진 왕이었다.

최민수는 덕분에 따가운 임직원의 시선을 받아야 했다.

KM 전자 임직원 대다수가 최민수를 남파 간첩 보듯이 쳐다보았다.

멀쩡한 사람도 건강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소심한 최민수는 병에 걸린 환자처럼 기를 쓰지 못했다.

그는 물론 이일태 이사가 자신감을 되찾은 모습을 봤지만 그다지 믿지 않았다. 이일태 이사 나름 뭔가 하려고 발버둥을 치는 것 같았지만, 주변 직원들의 시선은 차갑기만 했다.

저택에 산다고 해서 지금 이곳이 최민수에게 행복한 장소는 아니었다.

주변의 벌레 보는 듯한 시선에 최민수는 하루하루 죽어갔다.

그런 사정을 어머니 김여정에게 차마 말할 수는 없어서 그냥 울기만 했다.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아들 모습을 본 김여정은 미칠 것만 같았다.

“민수야, 너 벌써 이러면 어떻게 해? 회사 경영이 얼마나 살벌한 것인지 아무것도 모르잖아.”

“…죄송해요.”

글쎄다. 최민수는 아무리 경영이 어렵다고 해도 지금처럼 끔찍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최민혁에 대한 복수심 따위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김여정은 자식 꼬락서니에 한숨을 내쉬었다. 남편은 감옥에 가 있었고, 2심을 준비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거기다 자식까지 이 모양이니, 정말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내한 채 최민수를 어떻게 해서라도 다독거렸다.

그 와중에 KM 전자 내에서 뭔가 다른 움직임이 있다는 것도 최민수 통해서 들었다.

“위성 방송 시스템이라니, 그게 뭔데?”

“지금 ETRI에서 진행하는 연구 시스템이라고 하는데, 자세한 것은 저도 몰라요. 우리 사업부에서 하는 것은 위성 디코더 개발을 포함한 단말 시스템이니까.”

“뭐 KM 전자랑은 별로 관계가 없잖아?”

“그런데 휴게실에서 기획 팀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최민혁 실장이 이 일에도 뭔가 하는 가봐요. 자세한 것까지는 못 들었어요.”

“자세히 말해봐.”

최민수는 조성돈 팀장이 박상기 차장과 다른 직원과 함께 몰래 이야기하는 것을 우연히 들었다. 세 사람이 갑자기 자기 있는 뒤편에 온 터라 숨을 죽이면서 들었다.

자세한 것까지는 듣지 못했지만, 자신이 조사하던 위성 방송 시스템과도 관련이 있었다.

원래는 김현탁 본부장에게 먼저 알려야 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 갑자기 회사 분위기가 살벌해지면서 그러지 못했다.

특히 월마트 사태 이후로는 KM 전자 임직원은 설사 KM 계열사라고 해도 할 말을 다했다.

그러니 부패의 낙인이 찍혀 있는 최훈열 전무의 아들인 자신에게 대한 시선은 그 어느 때보다 더 차가웠다.

김여정은 정신병원에 가서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 아들 최민수 모습에 일단 손을 잡아주었다.

“그 정보는 누구에게 들었어?”

“…현탁이 형에게서 들었어요.”

“현탁이? 설마 김현탁을 말하는 거야?”

“네. 현탁이 형 부탁을 받아서 따로 조사했는데, 최근에서야 실마리를 찾았어요.”

김여정도 큰오빠 김희찬 부사장의 장남 김현탁 본부장과 둘째 오빠 김용만 전무 사이가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았다.

‘아니, 사이가 좋은 것이 이상한가.’

그녀는 잠깐 아는 지인 쪽에 이리저리 전화를 돌려서 위성 방송 시스템에 대한 것을 확인해 봤다.

ETRI에서 정보통신부 지원을 받아서 지금 국책과제로 진행하는 초대형 프로젝트였다.

지금까지 투자한 금액만 3,000억이 넘었다.

그녀는 이 와중에 몇 가지 이상한 정보를 들었다.

ETRI에서 진행하는 위성 방송 시스템의 누가 문제가 있다는 말이 돌았다.

김여정도 처음에는 김용만 전무에게 전화하려고 휴대전화를 누르다가 마음을 바꾸었다. 차세대 통신망 사업을 잘 아는 전문가가 김현탁 본부장이니까.

다행히 그녀는 김용만 전무와는 달리 김희찬 부사장과 사이가 나쁘지 않았다.

[막내 이모 김여정이다.]

[…아,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나 못 지내는 거 잘 알면서 그런 소리를 하니.]

[…네.]

까칠한 대답에 김현탁 본부장도 크게 당황했다. 그는 최민수 때문에 전화를 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눈치만 봤다.

[잠깐 볼 수 있을까?]

[그러면 제가 따로 약속 장소를…….]

[아니 사업적인 일이라서 너희 회사를 찾아갈게. 언제 볼 수 있어? 아, 너에게 손해 볼 일은 아냐. 중요한 정보일 수도 있어. 네가 민수에게 부탁한 정보다. 이번 일은 나도 알아야겠어. 그래서 전화한 거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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