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07화 (207/1,021)

#207.

“아직은 곤란해. 회사 내에서도 따로 관리하는 물건이니까.”

“아쉽네요.”

그녀는 여전히 욕심을 버리지 못

해서인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네요. PC로 MP3 파일을 플레이할 수는 있지만 이런 작은 기기로도 되는지 몰랐어요. 가만, 정말 이상하네요.”

아주 평범한 의문.

하지만 김부영 영업 팀장에게는 너무도 중요한 힌트였다. 그는 뒤늦게 딸의 도움을 얻어서 PC 통신에서 돌아다니는 MP3 파일을 확인했다.

다만 어떤 원리로 이 기기에서 이 MP3 파일이 동작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파일을 플레이하는데 그 원리를 특별히 알 필요는 없었다.

컴퓨터에 연결한 후에 연결 통신 프로그램만 깔면 간단히 해결된다.

나머지는 MP3 파일을 떠 있는 기기의 윈도 폴더 창에 드래그앤드드롭만 하면 간단히 전송되었다.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에 딸아이도 상당히 놀랐다.

“아빠, 이거 진짜 편하네요. 보통 다른 프로그램은 이것저것 쓸데없는 버그가 많고, 조작하기도 불편한데, 진짜 간단하게 돼요.”

“…우리 회사 엔지니어의 실력은 최고야. 그 정도는 당연한 거지.”

“그래요? 하긴 요즘 콜린스도 유명하기는 하죠.”

옆에서 딸아이가 MP3를 사용해서 즐기는 광경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김부영 영업 팀장은 KM 전자의 멀티미디어 사업부 제품을 직접 파는 입장이기 때문에 고객 반응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딸아이의 만족스러운 표정에 혀를 내둘렀다.

‘완성도가 이 정도였나?’

뒤늦게 다시 MP3 보고서를 몇 번이나 확인했고, MP3 관련 원천 특허 목록을 확인한 후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맙소사.’

최병연 팀장이 그렇게 회의에서 몇 번이나 강조했지만, 그 의미를 그 당시에는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MP3 가치를 안 것이었다.

아니, 아직도 MP3 내부에 담겨 있는 원천 기술의 의미 일부만을 알았다. 나머지는 여전히 뭔지 전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영업 팀장의 감으로 이 MP3 판매가 폭발적일 것이라는 것은 예측했다. 다만 그 제한이 어디까지인지는 그 자신도 장담하지 못했다.

당장 딸아이나 아내의 행동을 봐서는 얼마든지 제품을 사들이고 싶어 하는 눈치다. 딸은 몰라도 아내는 이런 제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었다.

‘하, 진짜 황당하네. 이 작은 물건에 도대체 기술이 얼마나 많이 들어간 거야. 도대체 이런 제품을 언제 개발했던 걸까. 가만 생각해 보니, 오성 전자도 우리 허락 없이 제품을 만들 수 없다는 소리가 이거였구나.’

* * *

MP3가 가지는 기술적인 가치와 의미를 하나씩 이해한 김부영 영업 팀장은 새삼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의 가치를 뒤늦게 되새겼다.

회의 당시에는 그저 가볍게 한 말.

그 의미는 절대 가볍지가 않았다.

결국 MP3 보고서를 달달 암기할 정도로 읽으니 더 당황했다.

바로 가격.

현재 예상한 판매 가격은 대략 25~30만 원 안팎.

원가를 빼면, 단순 이익으로 무려 20만 원 이상이 남는다.

콜린스 제품 하나 팔고 나면 대략 25만 원 정도 순이익이 난다는 점을 비교하면 수익성 자체는 비교 자체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김부영 영업 팀장은 굳이 콜린스에 너무 집착할 필요도 없다는 것과 이일태 이사와 같은 사내 사건에도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최민혁 실장이 원하는 바를 뒤늦게 깨달은 것이었다.

최민혁 실장에게 들이댄 이일태 이사가 참으로 딱하기만 했다.

그런데 이일태 이사 역시 이창명과 김현우 상무와 만나서 협상을 유리하게 한 덕분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는 심지어 ETRI에서 자신만 뺀 이사회가 열렸다는 소식에도 오히려 이를 악물었다.

다만 사내 평판도 신경을 써야 하는 입장인 이일태 이사도 김부영 영업 팀장의 생각을 알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는 ETRI 출장을 오기가 무섭게 김부영 영업 팀장을 찾았다.

“김 팀장님, 잠깐 이야기 좀 했으면 합니다.”

영업 팀장으로 회사 내에서 가장 소통을 잘하는 김부영 영업 팀장은 이일태 이사와도 편하게 이야기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그는 이일태 이사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그게 궁금했다.

“좋습니다.”

* * *

두 사람은 KM 전자 본사를 나와서 가까운 공원 벤치에 가서 앉았다.

이일태 이사는 나서서 아예 즉석커피를 사 와서 내밀었다.

“요즘 저 때문에 회사가 시끄럽죠?”

“…솔직히 말이 좀 많습니다.”

이일태 이사 안색은 이전보다는 아주 좋아 보였다. 그는 굳이 김부영 영업 팀장이 묻지 않아도 ETRI에 출장을 갔던 일을 털어놓았다.

이일태 이사는 ETRI 연구원을 만나는 자리에서 뜻밖에 이창명 이사와 김현우 수석 부장을 같이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었다며 이야기를 꺼냈다.

이창명 이사는 놀랍게도 오성에서 위성 수신기 개발과 관련해서 어긴 약속을 순순히 인정했고, 그 자리에서 자사가 개발한 수신기 관련 기술을 무상으로 지원하기로 했다.

이일태 이사는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며 흥분하며 이야기했는데 이야기를 듣던 김부영 영업 팀장에게도 이 이야기는 실로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중견 기업을 상대로 수탈만 하던 탐욕스러운 오성 전자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다니.

거기다 다행히 김현우 수석 부장이 자신이 나서서 도왔다고 시인했다는 것이었다.

“작년 디지털 캠코더도 국내 업체와 공동개발 한 것인데, 혼자 다 했다고 발표해서 난리를 피운 오성 전자가 한 일치고는 잘 믿기지 않네요. 그게 모두 김현우 수석 부장 덕분이라고요?”

“네. 김현우 수석 부장도 이창명 이사와 화해를 했다고 합니다. 해체된 팀도 다시 복원해서 신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는 중입니다.”

무던한 이야기였지만 그 속에 담겨 있는 의미는 적지 않았다.

이일태 이사 자신이 이제 오성 전자와 서로 소통할 채널이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의 얼굴에 떠오른 자신감이 그 증거였다.

김부영 영업 팀장이 만약 MP3에 대해서 몰랐다면 우려를 했을 이야기다. 하지만 MP3의 가치를 알게 된 지금은 그저 어린 애들 불장난으로 보일 뿐이다.

‘최 실장님이 이런 일을 걱정했구나.’

살 길을 찾았다고 생각하는 이일태 이사 표정이 조금씩 살아났다. 아직은 최민혁 실장에게 당한 공포를 떨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얼굴은 좋아 보였다.

‘하, 뭐라고 조언을 할 수도 없고, 정말 사람은 바뀌지 않는구나.’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

“아, 저에 대해 오해를 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오성 전자와도 잘 풀렸으니, 위성 사업부도 이제 잘 풀려갈 겁니다. 위성 방송 디코더 시장도 나쁜 편은 아닙니다. 김 팀장님도 잘 아실 거로 생각합니다.”

약간은 가벼운 톤으로 떠든 이야기에 신뢰는 안 갔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전 괜한 이야기에 오해하는 사람은 아니니까.”

“고맙습니다.”

이일태 이사는 꾸벅 허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이일태 이사의 과거 행동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벼랑 끝에 몰린 이일태 이사가 지옥에서 귀환하면서 태도를 많이 바꾼 것이었다.

“천만에요.”

하지만 김부영 영업 팀장은 내심 이일태 이사를 딱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최민혁 실장이 앞으로 이일태 이사를 어떻게 다룰지 눈에 훤히 보였다.

‘그냥 실장님에게 가서 잘못했다고 빌지.’

* * *

김부영 영업 팀장은 고민하다가 조성돈 팀장에게 가서 이일태 이사와 있었던 일을 말했고, 덕분에 같이 실장실로 불려갔다.

역시나 최민혁은 피식 웃기만 했다.

“우리 이일태 이사님이 살 만한가 봅니다. 이창명 이사가 도와준다니, 그걸 또 믿는 것 같네요.”

다만 김부영 영업 팀장도 한 가지만큼은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이일태 이사도 나름 위성 사업부를 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설마 최 실장님이 그것까지 다 부술 생각입니까?”

“그럴 수도 없죠. 그건 아닙니다. 다만…….”

“다만…….”

옆에서 정보를 일부 들은 조성돈 팀장과는 달리 김부영 영업 팀장은 처음 듣는 이야기에 최민혁 입에 집중했다.

최민혁은 악동같이 웃었다.

“ETRI 내부에서도 변화가 생길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프로젝트 전체가 틀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것까지 제가 뭐라고 하기 힘듭니다.”

“네?”

“하하하, 시간을 두고 지켜만 보세요. 아마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겁니다. 이일태 이사나 이창명 이사가 나름 노력한 것은 사실이지만 세상 일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은 아니니까.”

“……?”

영문을 모르는 김부영 영업 팀장은 힐끗 조성돈 팀장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슬쩍 자신의 시선을 외면할 뿐이다.

‘또 뭔가 있다는 말인가?’

최민혁은 그런 자신을 쳐다보면서 한마디만 했다.

“다른 팀에도 따로 통지할 테지만 과거처럼 협력 업체에 당하고 살지 말라는 이야기입니다. 영업 팀도 혹시 불공정한 일이 있으면 따로 보고를 하세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최민혁은 꽤 만족스러운 얼굴이었다. 그는 김부영 영업 팀장이 이일태 이사 일을 알아도 별다른 걱정이 없는 태도를 취하는 것에 만족했다. 최문경 부회장이나 오성 전자와 전면전에 앞서서 조직 내부의 기틀을 잡았다고 확신했다.

‘이제 어지간한 일에도 실무진이 다 알아서 필터링할 테니, 회사 내부 문제에도 크게 신경을 쓸 필요가 없겠군.’

* * *

김부영 영업 팀장은 최민혁의 의도를 충분히 이해했다. 그는 쓸데없는 일에 정력을 낭비하기보다는 한동안 MP3 보고서를 탐독하는 데에 푹 빠졌고, 장창식 차장에게도 협력 업체에서 갑질을 일삼는 경우는 따로 보고하라고 말했다.

아마 장창식 차장도 김부영 영업 팀장의 지시가 없었다면 그냥 넘어갔을 해외 영업 문제에 대해서 김부영 영업 팀장에게 보고했다.

“부장님, 월마트, 이 새끼는 어떻게 하죠?”

“월마트와는 협상이 잘 끝나지 않았어?”

“우리 쪽에서 제안한 계약서와는 다른 계약서를 내걸었습니다. 그중에는 미국 법 기준으로 따라야 한다는 조건이 있는데, 만약 문제가 생기면 월마트 본사에서 따로 협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원래 그렇지 않았어?”

“문제는 그걸로 뉴욕 월마트 당사자가 만약을 대비해서 계약한 물량보다 20% 더 수량을 보내달라고 합니다. AS 같은 문제가 터졌을 때도 우리 쪽에서 일방적으로 다 책임을 져야 합니다.”

쉽게 말해서 소비자 혹은 기업 간 분쟁이 터지면 각 로컬 중재센터를 거쳐서 진행된다. 이 부분이 미국 법 기준이라는 조약을 걸어서 일방적으로 되어 있었다.

더 황당한 것은 이번 협상과 관련해서 윌마트쪽 담당자가 미국에 나가 있는 영업 사원을 상대로 욕설과 갑질을 일삼았다는 것이다.

이것 때문에 미국 경찰이 출동해서 담당자인 조훈섭 과장이 뉴욕 경찰에 체포되어 현재 구치소에 들어가 있었다.

일단 미국 변호사 동원해서 급한 문제를 해결하기는 했지만, 현재 소송이 걸려 있는 상황이었다.

김부영 영업 팀장은 최민혁의 MP3 개발에 대해서 몰랐다면 길길이 날뛰었겠지만, 극단적인 월마트의 대응에도 느긋했다.

“그놈들이 아무리 막 나가도 그건 좀 심한 것 같은데?”

“아, 뉴욕 월마트 책임자인 데니스 킴이 이번 거래를 통해서 재미를 단단히 보려고 작정했답니다. 아직 미국에서도 우리 KM 전자 인지도가 좋지 않은 점을 이용한 겁니다.”

“그래?”

“아니 지금 그렇게 여유로울 때가 아닙니다. 빨리 뭔가 조치를 해야 합니다!”

“뭐가 그렇게 급해? 월마트가 미치지 않고서야 일을 더 키울 애들이 아냐. 아마 의도적으로 우리를 기죽이려고 그런 짓을 한 걸 거야.”

하지만 장창식 차장은 조훈섭 과장을 비롯한 영업 사업이 당한 일 때문에 분개해서 길길이 날뛰었다. 차마 자세한 내막까지 말할 수가 없어서 더 분노했다.

아마 김부영 영업 팀장도 MP3 회의에 들어가기 전이라면 상대가 상대인 만큼 상대에게 숙이고 들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

더욱이 최민혁 실장이 한 말의 의미를 기억하곤 곧바로 기획실을 찾아갔다. 분개한 장창식 차장은 김부영 영업 팀장 뒤를 따라갔다.

* * *

최민혁은 MP3 회의 이후에 실무진의 분위기를 유심히 살폈다. 그는 기대한 것보다 훨씬 좋은 모습에 미소를 지었다.

‘일단 내부 분위기는 걱정할 필요가 없겠어.’

때마침 나타난 김부영 영업 팀장의 태도 변화에도 만족했다.

뭔가 일이 있음에도 김부영 영업 팀장 태도는 그 어느 때보다 차분했다.

“실장님, 아무래도 미국 월마트 협상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은…….”

최민혁은 묵묵히 듣기만 했다. 그는 솔직히 유통 업체의 갑질이 언제간 일어날 것으로 예상했었다. 실상 지금까지는 그런 업체와 거래하지 않았지만, 거래 업체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이런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유통 업체 갑질보다는 상대가 월마트라는 점에 혀를 찼다.

물론 최민혁은 월마트 갑질 사건의 전말보다는 김부영 영업 팀장 생각이 더 궁금했다.

“김 부장님 생각은 어때요?”

아마 이전이라면 소극적인 행동을 취했을 김부영 영업 팀장 말은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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