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204화 (204/1,021)

#204.

조창호 차장 역시 고기를 구우면서 툴툴거렸다.

“하긴 요즘 젊은 친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코드를 좋아하니, MP3 파일에 더 빠르게 익숙해질 수밖에 없죠. 아마 문화적인 현상으로 자리매김할 정도로 MP3 산업이 급격히 발전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

최구만 과장도 회의 중에 이미 한번 들은 이야기였지만 귀를 기울였다. 시간이 갈수록 MP3 산업의 무게를 더 깨달았던 것이다.

최병연 팀장은 마침표를 찍었다.

“아마 불법 MP3 파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서 사회적인 현상을 이룰 거야. 그렇게 된다면 MP3 시장은 얼마나 커질까? 국내 음반 산업 총 규모만 해도 대략 3,500억 규모인데, 세계 시장은 상상조차 하기 힘들어.”

“…대단하군요. 하지만 그래서 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완전한 신사업으로 콜린스와는 연결 고리가 너무 취약한 것 아닐까요?”

“두 제품은 전혀 다르지. 그래서 최 실장님이 왜 자네에게 굳이 MP3 프로젝트에 넣었는지 이제 답이 나오네.”

그도 이제까지 가지고 있던 막연한 불안감을 토로했다.

“설마 TV 사업을 접는다는……. 아니, 매각한다는 이야기입니까?”

“그럴 확률이 높아. 윤 과장에게 굳이 RF 쪽 설계 일을 계속 맡기는 것이 그 증거지.”

“마, 말도 안 됩니다!”

“아니, 말이 돼. 으음, 이렇게 설명하면 더 쉬울 것 같아. 내가 우리 회사에서 오성 전자로 이직한 후에 구박을 많이 받았었지만 배운 것도 많아. 그중에 하나가 시대의 흐름에 뒤떨어진 산업은 결국 몰락한다는 거야. 오성 전자는 이런 부분에서는 칼 같아.”

“하, 하지만 아직 아날로그 TV는 여전히 시장이 큽니다.”

“그렇겠지. 지금은 말이야. 하지만 LCD TV와 같은 차세대 브라운관이 상업화된다고 해도 CRT TV가 여전히 생존할 수 있을까?”

“그렇지만…….”

“잘 생각해 봐. 이번 이일태 이사 사태도 그래. 이 위성 사업의 본질은 결국 디지털 TV와도 연결돼. 새로운 시장의 한 부분을 차지하지. 그걸 아니, 오성 전자가 그렇게 달려드는 거잖아. 결국에는 아날로그 TV는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어.”

“그렇다고 해도 그건 먼 미래 일 아닐까요? 더욱이 새로운 기술도 나올 겁니다.”

“2~3년이 한계야. 길어야 4~5년이고. 그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 공장 생산 기술자는 다른 제품을 개발하면 그걸로 끝이지. 그런데 자네 같은 경우는 앞으로 뭘 할 거야?”

“…너, 너무 앞서 나간 것 아닐까요?”

“난 확신해. 4~5년 후에 자네는 설 자리가 없을 거야. 그래서 내가 실장님이라면 콜린스 공훈을 세운 자네에게 어떤 것을 줘야 할까. 돈이 다는 아니니까. 차라리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서 살아날 방법을 줘야 하지 않을까? 그게 지금 자네가 하는 전원 칩 설계잖아.”

“…….”

최구만 과장은 충격에 한동안 입을 열 수가 없었고, 윤선기 과장 역시 소주를 마시다가 잔을 내려놓고 입을 다물었다.

아마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비난을 하겠지만, 최병연 팀장이 한 말이라서 그럴 수가 없었다.

같이 자리한 이들도 심각한 분위기에 머리를 굴리기 바빴다.

최구만 과장은 특히 MP3가 초대박을 터뜨린다면 앞으로 오십 대까지는 무난하게 회사에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사를 거쳐서 전무도 달고 말이다.

한편으로 이런 큰 밑그림을 그린 최민혁 실장이 소름이 끼쳤다.

최병연 팀장은 그제야 잔을 들어 올렸다.

“자 건배나 하자.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마. 그냥 최 실장님이 하라고 하면 알겠습니다 하고 시키는 것만 해.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지시받은 제품을 잘 만들면 되는 것이니까. KM 전자의 미래를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최구만 과장도 소주잔을 마시면서 그동안 자신을 괴롭힌 불안감을 떨칠 수 있었다. 하지만 한편으로 최병연 팀장을 유심히 쳐다보았다.

TV 사업부를 매각할 수 있다는 말을 하면서도 최병연 팀장은 크게 당황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TV 사업부 매각을 반기는 눈치였다.

콜린스를 만든 사람이 그라는 점을 고려하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었다.

‘확실히 최 팀장님도 많이 변했구나.’

그리고 최민혁 실장에 대해서 다시 생각했다. 도대체 그 잘나가는 TV 사업부를 어떻게 매각할 생각을 하는지 그저 놀랄 뿐이었다.

‘…정말 놀라운 분이다.’

다만 그도 최병연 팀장이 오성 전자에 있다가 온 점을 떠올렸다.

“그런데 혹시 이거 나중에 오성 전자에서 태클 거는 것 아닐까요? 비록 오성 전자 제품과는 동떨어진다고 해도 내부 기술은 아니지 않습니까?”

“쓸데없는 데 신경 쓰지 마. 그쪽은 MP3 말고도 걱정할 일이 많으니까. 그리고 특허 목록을 다시 한번 살펴봐. 그게 KM 전자가 출원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회사에서 출원한 것인지.”

“아, 독일을 비롯한 유럽 기업 특허였군요.”

“그래. 그러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도 마. 더욱이 아직 위성 사업 문제가 끝난 것도 아니니까.”

“하긴.”

최구만 과장도 뒤늦게 이일태 이사와 관련된 일을 떠올렸다. 회사 내에 말이 너무 많아서 진실을 알 수는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MP3와도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ETRI와 관련된 오성 전자와의 갈등은 KM 전자 임직원이라면 대부분이 걱정하는 일이었다.

‘설마 MP3 때문에 이일태 이사를 괴롭히고, 오성 전자와의 갈등을 부추긴 거야? 에이, 아니겠지. 말도 안 되잖아.’

* * *

MP3 팀과는 달리 다른 팀은 이번 회의에서 MP3 PT를 보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 실무진 대다수는 최민혁 경고를 염두에 둬서 입을 가볍게 놀리지 않았다.

부장급 대다수는 이번 일을 통해서 미래를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만 그 새로운 전자기기의 파급 효과가 어느 정도일 지는 다들 의문이었다.

최민혁은 MP3 관련 정보가 새 나가지 않는 것을 확인한 것에 꽤 만족했다.

그도 본격적으로 이일태 이사 제거를 위한 ETRI 작업 마무리에 들어가려다가 문득 장승일 실장 행보가 과거와는 좀 다른 모습을 보인 점에 주목했다.

굳이 장승일 실장이 이일태를 만날 필요가 있을까.

어떻게 보면 다른 의미일 수도 있었다.

‘본격적으로 날 견제하는 것은 아닌 것 같은데,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조성돈 팀장을 호출해서 이야기를 나눠 봤다.

“…확실한 것은 아닙니다. 저도 그룹 쪽의 지인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인데, 아무래도 돈 때문이 아닐까요?”

“돈? 갑자기 웬 돈입니까?”

“회장님이 실장님에게 당시 증여한 KM 전자의 가치는 고작 수백억에 불과했습니다. 경영권까지 포함하면 천억 단위를 넘어갈지도 모르지만, 당시 가치는 그랬습니다. 그 정도 돈이라면 문제가 안 됩니다.”

“지금은 다르겠군요.”

“네. 하지만 주당 9만 원을 넘어선 지금 KM 전자의 가치는 그때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무려 50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1, 2차로 넘긴 주식 가치를 다 합치면 1조가 가볍게 넘어갑니다.”

1조라니.

최민혁도 주식 가치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막상 돈 계산을 하고 나니 꽤 큰 돈이었다

“…하긴 좀 많네요.”

“견물생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회장님이 경영 일선에 나선 후에 전경련을 비롯한 모임에 빠짐없이 나갑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다 한마디씩 할 텐데, 회장님이 성인이 아닌 이상 흔들리지 않을까요?”

물론 최용욱 회장이 지분을 다시 되돌려받겠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마음이 상하면 과거와는 좀 다르게 행동을 할 수도 있었다.

“흠.”

최민혁도 상상을 초월한 자기의 지분 가치를 떠올리자 씁쓸하게 웃고 말았다. 자신은 그런 지분 따위에는 신경도 쓰지 않았으니까.

정작 이제까지 자신을 밀어주던 할아버지마저 욕심을 내는 모양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그는 조성돈 팀장과 김명준 과장을 쳐다보면서 고민에 빠졌다.

‘할아버지가 MP3 출시 후에 TV 사업부 매각을 결사반대한다면 싸울 수밖에 없어.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 할아버지와 대립하면 곤란해.’

결국 계획을 좀 바꾸었다.

“아무래도 ETRI 일을 서둘러서는 곤란할 것 같네요. 일단 확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할아버지 동선을 한번 확인해 보세요.”

“알겠습니다.”

* * *

최민혁의 걱정은 결코 단순한 생각으로 끝나지 않았다.

이 일을 가장 먼저 이용한 것이 감옥에 간 최훈열 전무 때문에 독이 오른 김여정이었다. 그녀는 아버지인 DL 그룹 김상구 회장을 직접 찾아가서 감옥에 있는 남편 최훈열 전무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다.

김상구 회장 역시 KM 전자과 최민혁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나 있던 터라 전경련 모임에서 최용욱 회장을 조롱했다.

[난 나이 먹은 자식에게도 수천억 지분을 넘길 수는 없어. 그런데 새파랗게 어린 손자에게 천문학적인 돈을 넘기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전경련에 참석한 다른 대기업 총수 역시 배가 아파서인지 김상구 회장 편을 들어주었다. 그들은 마치 앵무새처럼 반복해서 비슷한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최 회장, 정말 대단하이. 난 내 자식에게도 그럴 수가 없는데, 하물며 손자에게 수천억 지분을 증여할 수는 없을 것 같아.]

이게 한두 사람이 말한 것이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한 말이다.

다들 배가 아팠으니까.

KM 전자의 주가는 올라도 너무 올랐다.

그런데 지금도 KM 전자 주가는 계속 오르는 중이다.

특히 외국인은 조정 국면에 들어가면 미친 듯이 KM 전자 주식을 매집했다.

아직도 그 원인을 잘 아는 사람이 없었다.

선동에 놀아난 사람도 있겠지만, 전경련 회원들은 상식적으로 최용욱 회장을 이해하지 못했다.

최문경 부회장의 아내 김이경은 결국 최영란 성화에 못 이겨서 절묘한 시기에 최용욱 회장을 슬그머니 찾아갔다.

물론 그녀는 멍청하게 최용욱 회장을 자극하는 발언 따위는 하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넌지시 말만 하면 되니까.

“아버님, 영란이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민혁이에게 너무 일방적이지 않을까요? 증여한 지분의 가치가 너무 큽니다. 지금 KM 주가 기준으로 치면 무려 1조가 넘습니다.”

상식적인 이야기.

그것이면 충분했다.

최용욱 회장은 평소와는 달리 이일태 이사에 대한 것을 장승일 실장을 호출해서 직접 챙겼다.

“이일태 이사 일은 잘 끝났다고?”

“네. 최 실장님도 더 이일태 이사에 대해서는 손대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가?”

잠깐 침묵한 최용욱 회장.

그도 막상 자신이 증여한 재산 가지고 말을 하려니, 영 마음이 불편했다. 하지만 이번 일은 한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했다.

“장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내가 민혁이에게 KM 전자 지분을 증여한 거 말이네.”

“…….”

올 것이 왔다는 생각에 장승일 실장은 입을 다물었다. 그 역시 평소와는 달리 최용욱 회장이 이일태 이사에게 관심을 기울이는 것을 걱정했었다.

아무리 최용욱 회장이 손자를 신뢰한다고 해도 무려 1조였다. 그리 큰돈을 벌써 증여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물론 KM 전자의 혁신을 통해서 최민혁이 이룩한 성과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1조 증여가 설명되는 것은 아니었다.

최용욱 회장도 착잡한 얼굴로 탄식했다.

“내가 나이가 너무 많이 들었어. 이런 일로 고민을 다 하다니.”

스스로 자괴감에 빠진 최용욱 회장.

그도 이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 마음이 또 뜻대로 되지 않았다.

“…….”

장승일 실장은 여전히 답하지 않았다. 그 역시 최영란 사건 이후에 김이경이 절대로 그냥 있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다.

설마 외가를 이용해서 최용욱 회장을 자극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그 사실을 말할 수도 없었다.

뻔히 내막을 아는 최용욱 회장이 괜히 이 일로 감정이 상하면 최민혁을 부정적으로 볼 수도 있었다.

“그래. 너무 외부에 귀를 기울이는 것도 좋지는 않겠어. 하지만 그들 말도 일리가 없는 것도 아냐. 영란이 경우만 봐도 민혁이에 비해서는 차별이 있으니까.”

“기획조정실은 전장 칩 관련 사업과 관련해서 최영란 과장님을 최대한 돕겠습니다.”

“그래. 다만 민혁이도 요즘 와서 너무 지나친 행동을 하는 것 같아. 피가 끓는 나이라서 그런지 앞뒤 생각하지도 않고 막 들이박으니까. 최두진 그 친구도 자식 놈 때문에 신경을 쓰는 것 같으니, 그런 점도 돌봐주고.”

“알겠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물러나면서도 머릿속이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이일태 이사 문제가 생각보다는 미묘하게 흘러간다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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