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95화 (195/1,021)

#195.

다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뭐 남의 집안일에 내가 끼어들 일은 아니니까.’

“민혁이, 그놈이 내가 가진 KM 산업의 지분을 욕심내던데, 어떻게 할까?”

“뭐?!”

깜짝 놀란 최용욱 회장.

분명히 자신이 그어놓은 선이 있는데, 이번엔 최민혁이 그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최민혁에게 남겨질 것은 KM 전자뿐이라고 생각했다.

장승일 기획 조정실 실장이 옆에서 보고 있다가 냉큼 끼어들었다.

“최문경 부회장이 지난주부터 계속 KM 전자를 들쑤시고 있습니다. 심지어 ETRI나 오성 전자 쪽에도 정보를 흘리고 있습니다.”

최용욱 회장은 발끈했다.

“그걸 왜 이제 보고해?!”

“죄송합니다. 보고를 빨리 올려야 했는데, 상황을 알아본다고 좀 늦었습니다.”

장승일 실장은 그 즉시 최문경 부회장과 관련해서 조사된 보고서를 내밀었다. 최근 ETRI와 관련해서 무리한 움직임과 관련된 것이다.

“이놈의 자식이 그렇게 말해도 못 알아듣네!”

최용욱 회장은 장남이 또 자기 말을 씹었다는 것 때문이 아니라 오성 전자의 심상치 않은 움직임 때문에 더 분노했다.

장승일 실장도 최용욱 회장 눈치를 보면서 그 점을 더 짚고 넘어갔다.

“콜린스 매출 때문에 오성 전자의 대형 TV 국내 점유율이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이전과는 달리 더 공격적으로 나오는 것 같습니다.”

사실 국내만이 아니라 유럽 시장이 더 큰 문제였다. 시간이 갈수록 콜린스 매출이 늘어나면서 오성 전자의 유럽 전략도 흔들었다.

심지어 요즘은 미국 바이어조차 KM 전자를 직접 방문해서 협상에 임하는 중이었다.

“아마 콜린스의 미국 판매가 본격적으로 진행된다면 오성 전자가 입는 손실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커질 겁니다.”

특히 대형 TV 시장이 막 열리는 상황에서 그 시장 선점에 실패한다면 오성 전자의 가전 사업부 전체가 된서리를 맞을 수도 있다.

실제로 KM 전자는 이미 24인치, 19인치와 같은 중대형 TV에도 콜린스 기술을 적용해서 설계하고 있었다.

최용욱 회장은 그렇다고 오성 전자가 KM 그룹을 노리는 것을 쉽게 용납할 수가 없었다.

KM 그룹은 어떻게 보면 앞으로 오성 전자와 전쟁을 벌여야 할 형국이다.

이런 상황에서 최문경 부회장은 집안싸움만 하고 있으니.

최용욱 회장도 이제는 최민혁이 KM 산업 지분을 욕심내고 있는 것을 탓할 수가 없었다.

“기가 막히네.”

최두진 사장은 갑작스러운 최용욱 회장 변화에 혀를 내두른 채 머리를 굴렸다. 그 역시 KM 그룹 상황이 이렇게 복잡하게 돌아가는지 몰랐다. 다만 그는 기가 막힌 타이밍에 끼어들어서 최민혁을 옹호하는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장승일 실장은 슬쩍 그의 시선을 외면한 채 한 걸음 물러났다.

자신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듯이 말이다.

‘하, 저놈도 보통이 아니야. 가만 장 실장 저놈도 최민혁 편인가?’

최문경 부회장의 행보는 꽤 민감한 이슈였다. 보고할 타이밍도 중요했다. 자칫 장 실장 본인 역시 이 일을 왜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느냐고 비난받을 수도 있는데, 그 책임을 오성 전자에게 떠넘긴 채 쏙 피해 갔다.

최두진 사장도 최용욱 회장의 심리를 파악하고 나자 굳이 남의 집안일에 끼어들기 싫었다.

“이봐, 용욱아, 나도 자네 집안일을 신경 쓰기는 싫어. 그런데 민혁이 그놈이 하는 것을 봐서는 문경이 때문에 단단히 열받은 것 같아.”

“그렇다고 해도 지금 상황에서 KM 산업 지분은 안 돼. 문경이 그놈이 가만히 있을 것 같아? 그러면 오성 전자 그 새끼들은 얼씨구나 하고 이간질을 더 부추길 거야. 그렇게 되면 우리 그룹은 그때부터 풍비박산이 날 거라고. 아니면 이제 와서 문경이 그놈을 부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려야 하는데, 그게 쉬울 것 같아? 대주주인 자네가 이런 것도 생각 안 해? 가만 자네, 설마 지금 자네 지분을 그 녀석에게 넘길 생각인가?”

“다른 사람에게는 그렇게 못 하지만 자네 손자라면 이야기가 다르지 않나.”

최용욱 회장은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게 말이 되나. 자네가 KM 산업 지분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민혁이 그놈에게 넘길 생각이라는 소리야?”

최두진 사장도 자기 아들 김현우 수석 부장 이야기를 하기 싫었지만, 최용욱 회장 태도를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그는 자신이 아는 범위 내에서 최용욱 회장이 충분히 이해하기 쉽도록 말했다.

“…현우 그놈 때문이라고?”

“그래. 그놈이 오성 전자 내에서 어떻게 타협 봤는지 모르겠지만 이일태 이사에 대해서 한 걸음 물러나도록 민혁이를 설득해 달라고 했어. 그런데 민혁이 그놈이 조건부로 내건 것이 KM 산업 지분이야. 아, 나도 다 넘기겠다는 소리는 아냐. 5% 정도만 생각하니까. 그 정도라면 문경이 그놈에게 경고로 나쁘지 않잖아.”

“자네가 고작 그런 이유로 KM 산업 지분을 넘기겠다는 소리야?”

“…그래.”

“자네같이 신중한 친구가 그걸 이유로 지분을 넘긴다고? 그걸 날 보고 믿으라고?!”

“…사업적인 조언을 해주기로 했네.”

“고작 민혁이 그놈의 사업 제안 때문에 일방적인 지분 매각 제안을…….”

“자네 집에 불난 것도 그거 다 민혁이 그놈이 일을 꾸민 거로 알아. 그 피해 당사자인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설득력이 별로 없어.”

“끙.”

최용욱 회장도 KM 전자 보고서 안건을 떠올리면서 앓는 소리를 냈다. 확실히 최민혁을 과거처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었다.

지난 저녁 식사 시간만 생각해도 최민혁이 던진 화두는 큰 의미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평소 돈 문제만큼은 자식에게도 철저한 최두진 사장이 왜 이렇게 최민혁에게 저자세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봐, 내가 손자를 낮게 평가해서가 아냐. 자네 말은 앞뒤가 맞지 않아.”

“내가 KM 전자 지분을 고작 1,500원대에 매각한 사람이야. 민혁이 그놈이 그걸로 천문학적인 이익을 봤다는 것도 알아. 내 입장이 되어보면 그렇게 민혁이 그놈을 못 믿는다는 소리를 할 수 없네. 난 민혁이 그놈이 무슨 말을 해도 신뢰가 가!”

그는 한쪽에서 조용히 귀를 기울이는 장승일 실장을 쳐다보았다.

“이봐, 장 실장, 자네 생각은 어때? 내 말이 틀렸다고 생각하나?”

“…충분히 이해는 갑니다.”

“봐, 저 냉혹한 놈도 저런 소리를 하는데, 자네가 그런 말을 하면 어떻게 해?”

하지만 최용욱 회장도 오성 전자가 이빨을 드러낸 지금과 같은 시기에 최민혁에게 KM 산업 지분을 넘기는 것을 허락할 수는 없었다.

“지분은 안 돼. 대신 민혁 그놈을 정식 후계자 중에 한 사람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타협을 볼 생각이야. 자네가 원하는 것은 이일태 이사잖아. 아마 민혁이 그놈도 그 정도에서 타협을 볼 거야!”

최두진 사장도 최 실장 조언을 들을 수 없다는 점에서 아쉬웠지만 지분 매각 예민하게 반응하는 최용욱 회장을 무시할 수는 없었다.

“나야 이일태 이사만 무사하면 상관없지.”

“장 실장, 들었지?”

“알겠습니다. 제가 최 실장님을 직접 만나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다만 민혁이뿐만 아니라 문경, 일태까지 전부 다 만나서 경고부터 해.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다음에도 이렇게 분탕질하면 절대로 그냥 안 둔다고 해!”

* * *

최용욱 회장의 암묵적인 허락을 들은 후에 최두진 사장은 KM 산업의 지분 매각과 관련해서 최민혁에게 바로 통보했다.

[장승일 실장이 자네를 찾아갈 거야. 몇 가지 이야기할 건데, 그 조건만 맞으면 난 지분을 매각할 수 있네.]

현재 등락을 거듭하는 KM 산업 주가는 고작 22,000원. KM 전자와 비교해서 대략 4배 가까이 차이가 난다. 두 종목이 주식 발행 수가 동일한 것을 고려하면 KM 전자 가치가 이미 KM 산업 가치를 넘어선 것이다.

더욱이 최민혁은 MP3 플레이어라는 무기를 이미 준비 중이다. 액면 그대로 주식을 바꾸는 거래는 말도 안 되는 일이다.

‘주식 교환은 곤란해. 차라리 현금으로 사는 것이 나은 방법이네.’

최민혁도 그냥 훅 KM 산업 지분 매입이라는 미끼를 던졌지만, 진행이 되기 위해선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설마 최두진 사장이 이렇게 극단적으로 나올 줄은 몰랐다.

조성돈 팀장조차 과거와는 달리 최두진 사장 제안에 부정적이었다.

“설마 KM 산업 지분을 매입하실 생각입니까?”

“5% 정도라면 나쁜 선택은 아닙니다.”

“하지만 사내 유보금으로 KM 산업의 지분을 매입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입니다. 그렇다고 MP3 정식 판매 이후에 우리 회사 주가가 상승하는 것을 아는데, 주식 교환은 더 말이 안 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만약 지분을 사들인다면 회삿돈이 아닌 제 개인 돈으로 주식을 매입할 테니까.”

“…설마 비자금은 아니겠죠?”

“…주식 투자해서 제법 번 놈이 있으니까.”

“…주식으로 KM 산업 5% 지분을 매입할 정도로 돈을 벌었다는 말입니까?”

“네.”

“……!”

조성돈 팀장은 입을 딱 벌린 채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벨린 투자가 지금 보유하고 있던 자금은 과거 KM 전자 지분 사면서 꽤 썼다.

최민혁도 MP3 특허권 매입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투자 부분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다. 혹시나 싶어서 얼마 전에 확인해 봤다.

그런데 우영민 과장이 최민혁 지시를 받아서 차분하게 투자를 진행한 덕분에 다시 총자금을 2,500억으로 만들었다.

‘2만 원 기준이면 150만 주로 대략 300억 좀 더 되는 것 같네. 뭐 그런 내용까지 조성돈 팀장에게 말할 필요는 없지.’

“저기 실장님…….”

“설마 저보고 지금 개인 통장 내역을 공개하란 소리는 아니겠죠?”

“아, 아닙니다.”

“그냥 그렇게 알고 계세요. 조 팀장님, 문제는 그게 아닙니다. 봅시다. 일단 우리 첫째 큰아버지에게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게 우선입니다.”

“만약 최 부회장님이 이 사실을 알면 난리가 날 겁니다. 차라리 여유가 된다면 그냥 비밀리에 지분을 매입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저는 그깟 KM 산업 지분 따위는 관심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가 지분을 매입하는 척만 해도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난리가 날 겁니다. 그게 핵심이죠.”

“…알겠습니다.”

아니, 그게 어째서 중요한지 궁금합니다란 질문을 조성돈 팀장은 차마 하지 못했다. 지금 최민혁은 최문경 부회장을 괴롭히는 것에만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았다.

‘하긴 이제까지 최 부회장에게 쌓인 것이 많겠지.’

* * *

조성돈 팀장은 이미 수차례 작업한 라인 통해서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KM 산업 지분 매입과 관련된 소식을 흘렸다.

KM 그룹 비서실은 또다시 폭탄이라도 맞은 것처럼 발칵 뒤집혔다.

더욱이 지분 매각 대상자가 최두진 사장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최문경 부회장은 권재홍 비서실장과 같이 최두진 사장 저택을 찾아가서 항의했다. 하지만 그가 그 자리에서 들은 것은 최두진 사장이 전해준 최용욱 회장의 경고였다.

[문경아, 너 용욱이가 분명히 KM 전자 건드리면 그냥 두지 않겠다고 한 말을 어겼다면서? 그것 때문에 너희 아버지가 화가 엄청 났더라. 그것 때문에 KM 산업 지분을 민혁에게 넘길까 하는 이야기에도 아무런 소리 안 했어. 오히려 더 부추기더라!]

더 심각한 문제는 최용욱 회장이 자신을 부르지도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는 점이다.

지금 최용욱 회장은 아마 분노가 하늘 꼭대기까지 솟았을 것이다.

‘큰일 났다.’

최문경 부회장은 과장 섞인 최두진 사장 말에 별다른 말없이 최두진 사장 저택을 나와서 이번에는 장승일 실장을 찾아갔다.

“장 실장, 도대체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 있는 거야? 왜 ETRI 관련 일을 최두진 사장과 아버지가 다 알고 있어?!”

이제까지 당하기만 하던 장승일 실장도 이번에는 이빨을 드러냈다.

“정말 답답한 말씀을 하십니다. 아니 그룹 기획 조정실에 바보만 있다고 생각합니까. 지금 그 일 때문에 ETRI, 오성 전자 할 것 없이 난리가 났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이미 다 안다는 말입니다!”

“…정말인가?”

“네. 그 일 때문에 김현우 수석 부장도 기회를 잡아서 다시 살아났고, 최두진 사장을 찾아가서 부탁한 것 아닙니까.”

“아니, 다 좋아. 하필이면 왜 KM 산업 지분 이야기가 나와!”

“최민혁 실장님이 최두진 사장에게 그 조건을 달았다고 합니다.”

“민혁이, 그놈 짓이었어?”

“네. 이번 일도 최문경 부회장님이 배후라고 최두진 사장님께 말한 것 같습니다. 최두진 사장님이 그 안건을 회장님에게 다 폭로했고요.”

“하.”

최문경 부회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설마 최민혁 이놈이 이렇게 비겁한 짓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물론 본인도 그냥 물러나지는 않을 것이다.

“설마 아버지도 이제 내가 민혁이 그놈이랑 싸워도 괜찮다는 입장이야?”

“그게 무슨 말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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