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91화 (191/1,021)

#191.

김현우 수석 부장은 씩 웃었다.

“지금 안국호 부장이 공격하는 그 위성 사업과 관련된 KM 전자의 위성 사업부를 책임진 이일태 이사가 최민혁 실장과 사이가 안 좋다는 것도 모르겠죠? 이일태 이사가가 제 라인이라서 제법 압니다만.”

“…….”

인상을 찌푸린 안국호 부장은 사무실을 나서던 걸음을 멈춘 채 김현우 수석 부장을 쳐다보았다.

얼굴이 소송과 사내 따돌림으로 푸석푸석한 김현우 수석의 두 눈은 밝게 반짝였다.

“지금 안국호 부장님이 하는 행동이 결국 이일태 이사를 내쫓는 명분이 될 겁니다. 그게 바로 최민혁 실장이 바라는 겁니다. 최 실장이 노리는 것은 다른 것이지만 시작은 그겁니다!”

“…….”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정신이 번쩍 든 안국호 부장은 김현우 수석을 보는 것만으로도 혐오스러웠지만 차마 그의 말을 흘려듣지 못했다.

그제야 김현우 수석 부장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창명 이사님을 뵙고 자세한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아니면 제가 직접 이사님께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만. 뭐, 사내 위계질서를 생각해서 안 부장님에게 먼저 말씀드린 겁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의 얼굴이나 태도에선 지난 일에 대한 복수심은 보이지 않았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오직 회사 일만을 위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다.

안국호 부장은 잠깐 고민했다.

그런데 실상 김현우 수석 부장이 과거 KM 전자를 떠난 상황에서 문제가 있었다. 당시 김현우 수석 부장이 하도 사건을 크게 키워서 어쩔 수 없이 그냥 넘어갔는데, 만약 최민혁을 상대로 한다면 지금이라도 짚고 넘어가야만 했다.

“…일단 보고는 해보겠습니다.”

* * *

이창명 이사는 이미 김현우 수석 부장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 실상 안국호 부장을 이용해서 김현우 수석 부장을 벼랑 끝으로 몬 것이 그였다. 김현우 수석 부장이 퇴직하고 나면 권태성 실장이 작업한 비디오 특허를 자신이 다 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놓고 보니, 그것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쓰레기.

완전 사기였다.

그리고 민사 소송이 진행되고 나서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문제가 생기면 안국호 부장에게 다 떠넘겼는데, 다행히 처리는 부장의 6개월 감봉으로 끝이 났다.

그런 김현우 수석 부장이 이번 ETRI 사태와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고 하자 처음에는 안국호 부장을 결제판으로 두들겨 팼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았다.

김현우 수석 부장을 KM 전자에서 내쫓은 것이 바로 최민혁 실장이었다.

결국 이창명 이사도 일단 김현우 수석 부장을 이사실로 호출했다.

처음에는 그도 켕기는 것이 있어서 묵묵히 쳐다보기만 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놀랍게도 지난 일에 대해서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오직 최민혁 이슈에만 집중했다.

“…저도 얼마 전에야 최민혁 실장이 과거 뭘 꾸몄는지 알았습니다. 저한테 넘긴 비디오 특허도 알고 보니, 많은 제약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정말 얼마나 분하고, 분통이 나던지 죽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최 실장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김현우 수석 부장은 안국호 부장 일에는 감정이 없다는 점을 빙빙 돌려서 피력했다.

지금도 최민혁 실장을 생각하는 것만으로 피가 치솟았지만 이제는 잘 참았다.

“사실 그 당시만 해도 최민혁 실장 그놈이 얼마나 악독한지 몰랐습니다. 아니, 얼마 전까지도 몰랐습니다. 최근 사내 일 때문에 제 자신을 돌아볼 수가 있어서 뒤늦게 깨달았습니다. 이게 모두 최민혁 실장 그놈이 깔아놓은 덧이었다는 것을.”

“…….”

이창명 이사도 마른침을 삼켰고, 안국호 부장 역시 눈살을 찌푸렸다. 두 사람 다 김현우 수석 부장을 토사구팽 시키려고 했는데, 결국 그 일도 최민혁 실장이 깔아놓은 음모의 연장선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그 비디오 특허.

그 일 때문에 이창명 이사는 이동호 교수가 영상 관련 기술에서 다시 명성을 떨칠 때도 쳐다보지 않았다. 사기라고 생각했었다.

지금 와서 보면 처음에 자신이 얻은 것은 사기가 맞다.

그런데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이 계속해서 연구했던 결과물은 그렇지가 않았다.

그게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다.

이창명 이사는 참담한 얼굴로 김현우 수석 부장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 ETRI 사태도 마찬가지입니다. 위성 방송을 책임지고 있는 이일태 이사가 최근 최민혁 실장과 이사회에서 대판 싸웠습니다. 그것 때문에 최민혁 실장이 열받아서 한 일이 바로 이창명 이사님을 공격한 겁니다. 오혜정 비서 일은 그저 명분일 뿐입니다.”

‘오혜정 비서를 건드린 이창명 이사를 노린 것이겠지만.’란 말까지 굳이 하지는 않았다.

“으음.”

김현우 수석 부장은 자신의 말이 의외로 먹혔다고 판단하자 슬쩍 자리에서 일어난 후에 사무실을 조용히 나가 버렸다.

“원하시면 최선을 다해서 돕겠습니다. 최민혁 실장 얕보지 마십시오. 혹시라도 나이 때문에 가볍게 처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창명 이사는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그만큼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들은 이야기는 그에게 큰 충격이었다.

오혜정 비서를 건드린 일.

그 이후에 최민혁의 교묘한 반격.

일단 KM 전자를 건드릴 수 있는 위성 사업부.

기존에 이미 진행하던 계획을 바꾸어서 디코더 쪽에 KM 전자를 배제한 일.

잘된다고 좋다고 진행한 일이 결국에는 최민혁 실장의 반대 세력인 이일태 이사를 겨누고 있었다.

결국 결과만 놓고 보면 최민혁은 자신을 이용해서 KM 전자 내의 반대파를 숙청하게끔 만든 것이다.

불구속기소를 당한 후에 결국 재판까지 받고 있는 이창명 이사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 씨발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냐. 야, 안 부장, 너 정말 모르고 있었냐?”

“그게…….”

“아, 됐다. 안 봐도 뻔하다. 비디오 특허에 그 짓을 했을지 누가 알았겠냐.”

비디오 특허만 생각하면 울화병이 치밀어서 아예 그쪽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특허 소리만 들어도 화가 났으니까.

특히 김현우 수석 부장이 한 짓이 문제였다. 회사 내부만이 아니라 외부에서 분탕질을 벌이면서 그 역시 위에 단단히 찍히고 말았다.

“최민혁, 이 새끼가 김현우 수석이 어떤 놈인지 알고 이 짓을 한 거야. 자신이 괜히 건드렸다가 폭탄을 맞을 수도 있으니까. 쓰레기 특허 이용해서 STB 사업부를 매각하면서 저 돼지 새끼도 같이 치운 거야. 하, 정말 기가 막힌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

김현우 수석 부장에게 된통 당한 이창명 이사는 이제는 최민혁의 술수에 감탄했다.

그리고 분노하고, 또 화냈다.

“최민혁 이 새끼가 정말.”

이창명 이사는 이제까지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처럼 잘 나가던 자신의 경력이 박살 난 것도 최민혁 때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그는 벌떡 일어나서 자기 책상을 뒤집으면서 길길이 날뛰었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한창 식식대던 이창명 이사는 겨우 이성을 차린 후에 툴툴거렸다. 뒤늦게 대안이 최민혁 반대파를 밀어줘야 한다는 것임을 깨달았다.

불행히도 KM 전자 내에 그 일을 할 사람은 이일태 이사 하나뿐이다.

“그 KM 전자의 위성 사업부 말이야. 그놈들을 살리려면 방법이 없겠어?”

안국호 부장은 이사의 황당한 지시에 순간 당황했다.

“…지, 지금은 곤란합니다. 이미 다른 대기업과도 다 손발을 맞추었고, 심지어 다른 중견 기업에는 일부 손해까지 봤습니다. 이제 와서 그걸 뒤집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어쩌자는 거야?”

안국호 부장도 분노하는 이창명 이사 모습을 보자 침을 꿀꺽 삼켰다. 이사를 이대로 그냥 두면 미친놈처럼 설친다는 것을 잘 알았다. 뭔가 빠져나갈 대책이 필요했다.

궁리에 궁리를 거듭했다.

불행히도 지금 이 시점에서 KM 전자에 대한 대책은 많지가 않았다. 가장 쉽게 쓸 수 있는 카드는 딱 하나 뿐이었다.

“차라리 김현우 수석을 이용하면 어떻겠습니까?”

이창명 이사는 미친놈처럼 번들거리는 눈으로 안국호 부장을 쳐다보았다가 ‘내가 병신이지.’라고 탄식하면서 입을 열었다.

“그 돼지를 어디에 써먹으려고?”

“어차피 위에서도 김 수석과 타협을 봐서 조용히 덮으라는 이야기가 계속 나오지 않습니까. 그러니 이번 기회에 적당히 중재하는 척하면서 최대한 이용하는 겁니다. 일이 끝나고 나서 정리해도 되지 않겠습니까?”

문득 KM 전자에 관한 내용을 떠올렸다. 특히 TV 사업부가 문제였다. 이미 몇 년 전부터 오성 전자에서 노리던 분야였다.

문제는 콜린스 이후다.

KM 전자 매출이 폭주하면서도 이제는 상황이 또 달라졌다.

그렇다고 위에 KM 전자 TV 사업부 인수는 어렵다고 말해 봐야 책임은 몽땅 자신이 다 뒤집어쓰고 만다. 아마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신은 더 위로 올라가지 못할 것이다.

‘잘만 하면 기획실장 자리를 먹을 수가 있었는데…….’

그런데 이제는 위성 방송 기술 문제가 터져 나왔다.

이 모든 일이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었다.

KM 전자 내부나 외부의 전문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흠.”

이창명 이사도 화를 가라앉히고 집요했던 김현우 수석 부장의 행동을 떠올렸다. 완전히 폭탄이었다. 그런데 막상 다시 생각해 보면 적에게는 또 괜찮은 수단이었다.

‘하긴 이제까지 그놈이 우리 회사 입사해서 한 짓을 봐도 만약 KM 전자에 남아 있었다면 최민혁 그놈 다리라도 잡고 늘어지겠지. 더욱이 대주주인 최두진 사장의 아들이라 최민혁도 손대기도 부담스러웠을 거야. 하, 진짜 신의 한수네.’

생각할수록 최민혁의 꼼수가 놀랍기만 했다.

아니 진짜 그 술수에 감탄이 나올 정도였다.

‘이건 정말 나도 배워야 할 정도잖아?’

이창명 이사는 머리를 굴리면 굴릴수록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이창명 이사 눈치를 보던 안국호 부장이 자기 설득이 먹혀들어 갔다고 판단하자 가장 중요한 안건 하나를 슬쩍 내밀었다.

“이미 보고 드린 것처럼 김현우 수석 부장의 친아버지가 바로 KM 그룹 대주주인 최두진 사장입니다. 이번 민사 재판 배후에도 그가 있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최두진 사장도 자신이 가진 모든 KM 전자 지분을 고작 1,500원에 넘겼습니다. 아마 그도 최민혁 실장에게 단단히 이를 갈고 있을 겁니다.”

“그게 가능해? 최두진 사장은 사채업계에서도 꽤 유명한 사람인데, 그 가격에 지분을 넘겼다고?”

“아직 자세한 것은 더 조사를 해봐야 하지만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아마 협박을 했든지 뭔가 다른 방법을 썼을 겁니다.”

“그건 흥미롭군,”

“김현우 수석을 믿을 수는 없지만 최민혁 실장을 공격하는 사냥개로는 나쁘지 않습니다.”

“좋아. 안 부장, 자네가 김 수석이랑 잘 이야기를 해봐. 다만 이번 일이 잘못되면 자네도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할 거야.”

“아, 알겠습니다.”

“그리고 김현우 수석 부장과 관련된 보고는 다시 올려. 원점에서 다시 전면 재조사해 봐. 최두진 사장을 포함해서 모두!”

“네.”

안국호 부장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돌렸다.

‘살았다.’

* * *

김현우 수석 부장은 안국호 부장을 따로 술자리에서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겉으로만 그랬다.

그는 애초에 안국호 부장 말을 믿지 않았는데, 이번 일에 나서는 조건으로 우선 자기 팀의 정상화를 요구했다.

“큰 지원을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다른 팀이 받는 것만큼만 해주면 됩니다. 아이템을 비롯해서 모든 것을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물론 기획실에서 도와준다면 대환영입니다.”

타협안은 물론 그 실적에 대한 평가다. 만약 기대 이하의 성과를 낸다면 정말 회사를 그만두는 것으로 타협을 봤다.

“하지만 이미 이번 일은 그룹 본사에도 보고된 상황입니다. 따라서 단순히 말로만…….”

“딱 2년이면 됩니다. 그 안에 반드시 성과를 내겠습니다.”

안국호 부장도 김현우 수석 부장을 애초에 믿지 않았다. 그는 솔직히 김현우 수석 부장과 이렇게 술자리를 같이 하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불과 지난주까지만 해도 두 사람은 마치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물고 뜯고 싸웠으니까.

“…잘 아시겠지만 이번 일을 잘 처리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붙습니다.”

“KM 전자 대주주인 최두진 사장님이 제 아버지입니다. 걱정 마십시오.”

최두진 사장 이야기가 나오자 안국호 부장도 더 이상 부장을 압박하지 않았다.

최민혁을 사기죄로 몰 수 있는 히든카드로 이 일은 자신이 나선다고 해서 작업을 만들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기대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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