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88화 (188/1,021)

#188.

조성돈 팀장 역시 이미 최민혁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충분히 MP3에 대해서 알고 있었지만, 막상 나온 시제품을 보자 쉽게 충격에서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기존의 카세트 플레이어와 비교하기 힘든 크기, 무게, 편의성 때문이었다.

더욱이 개발 일정이 대폭 줄어든 것도 큰 의미가 있었다.

최문경 부회장이나 오성 전자에서는 최민혁의 공작 때문에 아예 이런 제품이 개발되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끼어들 여지가 없었다.

“좋네요.”

최민혁 역시 입가에 미소를 띄웠다. 디자인 팀에 대략적인 개요만 설명했는데, 그의 기대보다 더 잘 나왔던 것이다.

최초 MP3보다 더욱 작고, 가벼우면서도 얇은 디자인 때문이었다.

당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MP3보다 더 발전된 기술과 디자인이었다.

정확히는 특허권이 미국 업체 넘어간 이후에 초대박을 터뜨린 제품과 비교해도 몇 단계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한 제품이었다.

다만 최병연 팀장도 이제 개발을 끝낸 터라 아쉬운 점을 토로했다.

“기본적으로 손실 압축 포맷 방식이라서 손실된 부분에 대한 다른 대안이 없습니다.”

“가변 비트 레이트로 인코딩했으니, 그나마 나은 선택입니다.”

인생 1회차에서 MP3가 고정 비트레이트로 구현된 것과는 달리 가변 비트 레이트가 이미 이 MP3에 추가되었다.

이것은 KM 전자 자체만의 또 다른 특허이기도 했다.

“MP3 플레이어 특허 등록은 다 끝났겠죠?”

“네. 이미 실장님이 제시한 가이드라인을 기준으로 회피 특허까지 다 출원했습니다. 세계 그 어떤 회사도 우리 특허를 피해서 MP3를 개발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좋네요. 하지만 방심은 금물입니다. 불필요하다고 해도 괜찮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다 특허 등록을 하세요. 인센티브 기준으로 잡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최병연 팀장은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란 말을 차마 하지는 못했다. 이미 MP3 관련 원천 특허는 죄다 KM 전자가 얻었기 때문이다.

실상 그 역시 MP3 원천 특허 가치를 제대로 몰랐는데, 구현하고 나서야 얼마나 그 의미가 지독한지 깨달은 것이었다.

디코더 설계를 맡은 조창호 차장은 입만 열면 ‘우리 최민혁 실장님은 MP3 스토커야!'라고 떠들었다.

이보다는 최병연 팀장 역시 최민혁 의견에 귀를 기울였다. 손실되는 부분은 인간의 가청 주파수 범위 밖이라는 점에서 순순히 수긍했다.

“하긴 이게 최선일 겁니다.”

“고난도 음질은 반도체 기술이 좀 더 발전해서 고성능 CPU가 나올 때 고려하면 됩니다. 음질 열화 문제는 이 정도만 합시다.”

인코더 종류와 설정에 대한 것은 추가적인 연구를 진행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당장 이렇게 결과가 나온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최민혁은 한쪽에서 멍하니 MP3 샘플을 확인하는 조성돈 팀장을 힐끗 쳐다보았다.

“조 팀장님, 어때요?”

“···놀랍습니다. 이미 괜찮다는 것은 알았지만, 막상 실물을 보니, 더 놀랍습니다.”

그는 두 사람이 나누는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이미 머릿속에 두지 않았다. 처음 보는 MP3 샘플에 그저 놀라서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심지어 MP3 플레이어를 동작시켜서 음악까지 들어보았다.

지금 PT에 적용된 64MB 기준으로 볼 때 대략 40~50곡을 담을 수가 있었다.

하지만 조성돈 팀장은 이런 외형적인 것보다는 제품 단가에 더 혀를 찼다.

“부품 단가가 고작 4만원에 불과합니다.”

전원 칩, 디코드를 비롯한 중요 부품은 전부 다 KM 전자에서 자체 설계했다. 칩 제조 단가 자체는 고작 2-3천원이었다.

실상 혁신적인 MP3에서 가장 큰 가격 포지션을 차지하는 것은 64MB 낸드 메모리였다.

최병연 팀장도 개발 과정에서 느꼈던 어려움을 떠올리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저희 팀에서 이런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어디 참조할 롤 모델 자체가 없으니까요. 더욱이 이 전원 칩이 개발하는 데 진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효과는 최고였습니다. 배터리 용량도 대폭 줄일 수가 있었습니다.”

전원 칩은 MP3 전원 관리를 도와준다. 특히 LCD를 비롯한 전류 소모가 많은 제품을 자동으로 제어해서 배터리 소모를 대폭 줄였다.

만약 전원 제어 칩이 없다면 배터리 소모는 두 배, 아니 세 배 이상 늘어난다.

그래서 전용 칩이 이를 전담한 덕분에 배터리 크기도 줄어들었고, 두께가 대폭 얇아졌다.

최병연 팀장도 막상 이 MP3를 만들고 나서야 전원 칩의 가치를 알아봤다.

“···그저 감탄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묵묵히 듣고만 있던 조성돈 팀장도 최병연 팀장의 구체적인 기술 한계를 듣고 나서야 이 MP3 개발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깨달았다.

그 자신이 기획 팀 팀장이기에 더 경탄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 프로젝트가 시작될 때 한편으로는 그 과정을 이해하기는 했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게 될까에 대해 의문도 가졌다.

그런데 최병연 팀장은 결국 시제품까지 내놓은 것에 탄식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어.’

처음에는 연구비를 펑펑 소진하는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막상 결과를 보고서야 그런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기존 카세트 플레이어보다 절대적인 우위에 있기 때문이다.

‘카세프 플레이어 시장만 먹어도 콜린스 못지않아.’

그리고 왜 최민혁이 유럽까지 가서 그렇게 난리를 쳤는지도.

결국 그게 다 돈이었다.

최민혁은 그제야 두 사람을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다음 작업은 다른 디자인 샘플대로 하나씩 만드세요. 그리고 기획 팀을 시작으로 사내 임직원 통해서 사내 품평회도 한 번 열죠. 디자인은 제가 준 것을 토대로 해서 다양한 시도를 해보세요.”

“알겠습니다.”

“다만 아직은 양산 이전에 보안에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겁니다. 특히 오성 전자나 우리 첫째 큰아버지는 조심하세요. 이미 개발이 다 끝난 일이기는 하지만 괜히 문제를 만들 필요는 없으니까.”

“···그건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획 팀 내에서도 아직 제대로 정보가 공유되고 있지 않으니까요.”

“좋네요.”

최민혁은 문득 최영란의 전장 소자를 떠올리면서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당시 다급하게 대답하기는 했지만, 그 말도 엄밀히 말하면 최문경 부회장의 시선을 끌 미끼였다.

‘뭐 그럴 여유도 없겠지만 이제 외부에서 알아도 크게 문제가 될 이유는 없겠지. 아니지 좀 더 사건을 키워 볼까? 전력용 반도체 칩이 뜻밖에 짭짤하잖아. 아마 욕심 많은 우리 첫째 큰아버지라면 내가 한다고 하면 얼씨구나 하고 끼어들 것 같은데, 일단 반응을 한번 지켜봐야지.’

***

전장 분야의 반도체는 강한 전류를 필요로 하므로 일반 반도체와는 많이 다르다. 특히 대용량 전력용 반도체 칩은 전류 크기에 따라서 다양한 반도체 소자가 존재한다.

이런 전력용 칩은 단순히 논리 형태인 디지털 칩과는 달라서 경험이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특정 몇몇 업체에서 이 시장을 다 장악하고 있는데, 주로 독일이나 일본 업체가 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가정용 전력양계 핵심부품인 미터링 칩이 그 기업들의 주력이다.

전압과 전류 신호를 토대로 전력 사용량을 표시하는 이 칩은 전력양계의 핵심 부품이다.

최문경 부회장도 이런 칩이 있다는 것을 저녁 식사 후 권재홍 비서실장 보고를 통해서나 제대로 알았다. 그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 사업 분야를 살피면서 혀를 내둘렀다.

“···이거 오성 전자 같은 놈들이 치고 들어가기에는 모호한 분야네.”

“전부 다 외산 칩을 사용해서 단가가 만만치 않습니다. 따라서 국산 칩이 나온다면 국내 제조사도 환호할 분야입니다.”

“영란이 이 녀석을 다시 봐야겠어.”

“최영란 과장님의 사내 평가도 나쁘지 않습니다.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꾸준하게 실적을 내놓습니다. 특히 이번 제휴안은 장단기로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니 그런데 내가 왜 그 사실을 이제야 보고를 받는 거야? 그것도 최민혁 그놈의 입을 통해서?!”

버럭 화는 내는 최문경.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을 식사 중에 최민혁이 제안한 의견 통해서 알았다.

그것도 최용욱 회장이 직접 거론해서 말이다.

만약 아니었다면 이 안건은 조용히 묻혔을 확률이 높았다.

반도체 설계업체와 제휴가 진행되었다면 그쪽에 넘어갔을 것이다.

지금 최문경 부회장의 관심사는 KM 산업과 최민혁이 다였으니까.

권재홍 비서실장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최민혁 사태를 굳이 이야기해 봐야 자기 무능만 토로하는 것뿐이었다.

더욱이 최민혁의 식견이 대단하다는 것은 짐작했지만 그냥 훅 던진 한마디 말도 이렇게 큰 의미가 있을지는 몰랐다.

다만 문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터링 칩은 고용량 전력을 다루는 것이라서 일반 디지털 칩과는 달리 경험이 많이 필요합니다. 개발 자체가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그게 그렇게 어려워?”

“네. 적어도 2~3년은 잡아야 합니다.”

정확히는 신뢰성 문제가 있어서 4~5년은 족히 걸린다. 자칫하면 화재와 같은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는데, 동작하다가 멈추는 일반 디지털 칩과는 비교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역시 전력이라고 하니 불안감을 느낀 최문경 부회장은 바로 고개를 갸웃했다.

“유럽이나 일본 업체 쪽과 공동 개발을 진행하면 되지 않을까?”

“안 됩니다. 일본 쪽만 해도 이런 고부가가치 기술은 아예 대화조차 하지 않습니다. 결국, 맨땅에 헤딩하는 식으로 개발해야 하는데, 이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분야가 협소한 것도 있지만, 경쟁업체 자체가 별로 없었다.

그러니 이런 제품은 개발해 놓기만 한다면 꾸준히 돈이 된다.

딱 KM 그룹과도 궁합이 잘 맞는 제품이었다.

“영란이도 알아?”

“압니다. 그래서 차선으로 협력 업체 통해서 어느 정도 비용을 줄인 후에 결과가 나오면 그때 가서 완전히 계열사로 만들 생각인 것 같습니다.”

실로 기가 막힌 일이었다.

묵묵히 듣기만 하던 최문경 부회장은 그제야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아니 난 그런 분야가 있다는 것도 이번에 알았어. 그러면 민혁 그놈은 어떻게 그 사실을 아는 거야? 딱 듣는 것만으로 이 정도는 알아야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 아냐?”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면 최민혁 실장의 안목이 보통이 아닙니다. 콜린스가 그냥 운 좋게 나오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 가만 그러면 위성 사업부도 그렇게 봐야 하는 거야? 그러면 그놈이 왜 이 사업은 이일태에게 내버려 둔 채 가만히 보고 있는 거야?”

“그건 지금 조사······.”

최문경 부회장은 들고 있는 전장 칩 보고서를 가지고 책상을 탕탕 후려치면서 버럭 소리쳤다.

“이봐, 권 실장,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도대체 언제까지 조사만 하고 있어. 분명히 뭔가 있다는 것은 자네도 느낄 것 아냐?!”

“죄, 죄송합니다. 일단 최선을 다해서 다시 알아보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이는 권재홍 비서실장도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 역시 최선을 다하고 있지만, ETRI 측의 정보를 얻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KM 산업과는 많이 엮이지 않아서 고민이네.’

KM 산업과 ETRI가 일부 공동 개발한 분야도 있지만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반도체 패키징 쪽에 집중한 KM 산업은 이보다는 재료 분야 쪽 대학 연구소와 많이 엮여 있었다.

***

권재홍 그룹 비서실장도 최문경 부회장 압박 때문에 비서실을 총동원했다. 그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계속 파보라고 지시했다.

비서실 2팀 민상수 부장 역시 분위기를 파악하자 ETRI 쪽을 집중 파헤쳤지만 여전히 특별한 결과를 찾지 못했다.

그가 그러다가 떠올린 사람은 역시 오성 전자로 이직한 황광수 차장이다. 다른 사람과는 달리 황광수 차장이 왜 회사를 떠났는지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움이 될 것이라 예상했다.

물론 연락을 받은 황광수 차장은 고민에 빠졌다. 안 그래도 회사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데, 단독 행동을 했다가 입방아에 오르고 싶지 않았다.

보고를 받은 권태성 실장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는데, 다행이라면 임권수 부장이 꽤 흥미로운 의견을 내놓은 것이었다.

그 의견은 차라리 KM 산업을 이용하자는 것이다.

최문경 부회장이 만약 최민혁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을 안다면 어떻게든 손을 쓸 것으로 판단했다.

물론 자신들은 이창명 이사 때문에 이 사실을 몰라야 한다.

결론은 황광수 차장이 실무진 선에서 우연히 정보를 안 것으로 보고하자는 말이다.

권태성 실장도 어이가 없었지만 나쁘지 않은 의견이라고 생각했다.

괜히 이창명 이사와 이전 다툼을 할 필요가 없었으니까.

결국 황광수 차장은 이 묘한 임무를 부여받아 민상수 부장을 만났다.

“오랜만입니다.”

“반갑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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