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68화 (168/1,021)

* * *

“실장님, 이 MP3 플레이어 프로젝트 관련해서 생각보다 추가로 들어간 연구비가 많습니다. 이건 좀 문제의 소지가 있습니다.”

“…흠.”

최민혁은 조성돈 팀장이 내놓은 연구비와 관련된 MP3 플레이어 프로젝트 현황을 힐끗 살피기만 하다가 그냥 덮었다.

지난주에 추가로 1억이 들어갔기 때문에 발끈한 조성돈 팀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았다.

“실장님, 아무리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연구비를 너무 펑펑 씁니다.”

하지만 인생 1회차에서 벤처 경영까지 해본 최민혁은 누구보다 벤처 시작 단계에서 돈이 많이 깨진다는 것을 잘 알았다.

‘사실 결과만 나온다면 상관이 없지. 투자를 또 받으면 되니까.’

문제는 무리하게 진행해도 결과가 안 나오는 경우이고, 설사 물건이 나와도 가치가 없는 경우다. 그때는 정말 답이 없었다.

그런데 최병연 팀장은 비록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했어도 결국 MP3 테스트 플랫폼을 내놓았다.

그 점을 높이 평가했다.

“너무 걱정 마세요. 혹시라도 추가 연구비를 요구하면, 무조건 오케이하세요. 다만 들어간 연구비에 관한 결과만 따로 챙기면 됩니다. 그와 관련된 경영 기획안은 꼼꼼히 챙기시고요.”

“실장님은 이 MP3가 반드시 성공할 것이라 확신하시는군요.”

“팀장님은 어때요? 이것과 이 카세트 플레이어를 한번 비교해 보세요.”

[172]책상 위에 놓인 것은 소니 신형 카세트 플레이어와 MP3 플레이였다. 일단 무게만 놓고 비교해도 둘은 아예 MP3가 우위였다.

“그건 그렇습니다.”

조성돈 팀장도 잠깐 멍하니 MP3 플랫폼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 역시 최민혁이 이 결과 이전에 한 일과 원천 특허를 얻는 과정을 같이 경험했다.

그때는 의미를 짐작은 했지만 직접 체감한 것은 아니었다.

지금 눈앞에 결과만 보면 최민혁의 제안에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하긴 벌써 테스트 플랫폼이 나왔으니.’

아직도 얼떨떨해서 연구비 먹는 하마인 MP3 프로젝트 팀에 대해서도 부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했다. 다만 물 쓰듯이 연구비 사용하는 것을 좀 자제해 달라고 경고만 해달라고 했을 뿐이다.

물론 아직 가야 할 길은 많이 남았다. 제품 개발 완료까지는 이런저런 잡다한 일도 많았다.

그래도 테스트 MP3가 나온 이상 이제 상황이 좀 달라졌다.

나머지는 문제가 된 자잘한 버그를 잡는 일이니까.

“지금은 최병연 팀장을 밀어줘야 할 시기입니다. 연구에 그 어떤 간섭도 하지 마세요!”

“…네.”

결국 포기한 조성돈 팀장의 얼굴을 확인한 최민혁은 물끄러미 계획을 다시 점검했다.

‘다만 시기적으로 너무 빨라. MP3 파일이 PC에서 흔하게 거래되면서 흐름이 바뀌어야 해. 그래야 MP3 플레이어 판매 수량이 폭증할 테니까. 더욱이…….’

MP3 산업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고민을 할수록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이 막 MP3 산업이 성장하는 시기.

아직은 여유가 있었다.

따라서 MP3 산업을 선도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은 이제 무조건 고민해야 했다.

최민혁은 이창명 이사 일을 가볍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이제 심각하게 바라봤다. 이창명 이사를 희생양 삼아 사건을 좀 더 키워서 블랙홀로 만들어야 했다.

맹렬한 번민.

결국 성추행과 관련된 기사 하나를 떠올렸다.

지금 이 시점에서는 여성 직위가 공고하지 않아서 별로 힘이 없다고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최민혁은 당연히 여권 권리 신장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이용할 수는 있지.’

물론 이창명이 구속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여성 단체를 통해서 창피를 준다면 그건 그것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다.

장승일 실장을 통해서 듣기로 지난 스카우트 사태가 안건민 회장 귀에도 들어갔는데, 이창명 이사가 그 때문에 크게 깨졌으니까.

‘날 죽이고 싶었을 거야. 그러니 오혜정 비서를 이용하려고 했을 거고.’

아마 사태가 커지면 이창명 이사는 이전과는 달리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최민혁 자신을 공격할 것이다. 특히 위성 사업을 말이다.

그는 어느 정도 수긍한 조성돈 팀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위성 사업에 대한 ETRI 압력을 더 가하세요. 이왕이면 좀 더 자주 전화해도 좋습니다. 말 안 들으면 찾아가서 계약 위반으로 고발하겠다고 해도 됩니다. 압력을 계속 넣다 보면 허점이 나올 겁니다. 그리고 그걸 크게 흔드세요!”

“…알겠습니다.”

조성돈 팀장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미 이일태 이사와의 반목에 대한 것을 들은 터라 한숨을 내쉰 채 순순히 지시를 따랐다.

최민혁은 마지막으로 기대 어린 눈빛을 한 김명준 과장에게 한 가지 계획을 내놓았다.

“이건 제 생각인데, 이번 작전의 핵심은 타이밍입니다. 시기를 잘 맞추어서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계획은…….”

묵묵히 듣기만 하던 김명준 과장은 도대체 이런 정보를 어떻게 얻었는지 놀라서 최민혁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롯대 그룹을 노린 일련의 공격은 절대 간단하지가 않았다.

하지만 이미 최민혁의 능력을 잘 아는 터라 이번에는 그저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웠다.

“역시 실장님입니다.”

“하지만 롯대 그룹 사건을 이용해서 서핑하는 것이라서 큰 효과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롯대 그룹이나 오성 전자나 별반 차이가 없습니다. 아마 안건민 회장이라면 이 일을 절대로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그러면 더 좋죠. 아마 문제가 커지면 위성 방송 사업에 눈이 돌아갈 겁니다. 아니, 이 한국형 위성 방송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만듭시다!”

“…네.”

* * *

김명준 과장이 제일 먼저 한 일은 문영식을 한국 여성회에 보낸 것이었다.

문영식은 한국 여성회를 감시하다가 이번 정치 공작 세력과 한 편인 것처럼 기부금을 내면서 이창명 이사에 대한 일을 털어놓았다.

그것도 D-DAY를 하루 앞두고.

그는 심지어 이창명 이사 몰래 뒷조사를 해놓은 증거까지 내놓았다.

“롯대 그룹에 대한 작업에 오성 그룹을 넣는 것뿐입니다.”

“이건 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약간의 불협화음은 있었다.

역시나 돈의 유혹을 거절하지는 않았다.

사실 한국 여성회란 단체도 평소였다면 이런 제안을 부담스러웠을 했을 것이다.

아니, 오성 전자 임원을 공격하다니.

리스크가 너무 컸다.

그런데 마침 롯대 그룹 부사장과 관련된 성희롱 파문을 이용한 정치 공작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이 작업은 롯대 그룹을 공격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서 진행된 일이었다.

물론 배후는 따로 있다.

이 일은 대기업에 대한 공격을 위한 작업이었는데, 그 희생양 중의 하나가 롯대 그룹이 된 것뿐이다. 여기에 오성 전자까지 넣는다고 해서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좋았다.

다행스러운 일이라면 이 일의 배후도 구체적인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검찰에 들통 났을 경우를 대비한 것이었다.

대충 이러이러하라고 했을 뿐이지, 롯대 그룹, 오성 그룹을 콕 찍지 않았다.

그러니 거기에 이창명 이사를 덤으로 넣는다고 해서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내부 검토를 해보겠습니다. 하지만 장담할 수는 없습니다.”

“믿겠습니다.”

김명준 과장도 고개를 갸웃하는 문영식에게서 돌아가는 상황을 들었지만, 최민혁에게 자세한 것을 더 캐묻지는 않았다.

솔직히 최민혁이라면 뭔가 절묘한 수를 낼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정말 이 일이 진행되자 신기하기만 했던 것이다.

* * *

최민혁은 물론 이 롯대 그룹 성추행 사건의 뒷이야기는 잘 몰랐다. 그는 그저 인생 1회차에서 이와 유사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만 알았다.

한국 여성회 같은 단체에서 자기 힘만으로 롯대 그룹을 공격할 리는 없었다. 어느 정도 배후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기사가 나가는 데드라인을 앞두고 진행한 일이라서 허점이 많았다.

‘실패해도 상관은 없으니까.’

결과는 원래 스토리에서 이창명 이사가 살짝 더해졌다.

[한국 여성회는 25일 롯대 그룹 조 부사장과 오성 그룹 이창명 이사 성희롱 사건과 관련한 공개 요구서를 전달했습니다. 특히 성희롱 당사자인 두 사람의 퇴사를 촉구했습니다.]

이 기사회견에는 뜻밖에도 적지 않은 언론사가 마치 조직된 군대처럼 일사불란하게 모였다.

한국 최고 대기업 중의 하나인 롯대 그룹과 오성 그룹에서 일어난 한 성희롱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롯대 그룹 조 부사장의 경우에는 성희롱과 심지어 강간까지 했다. 이 정황을 담은 CCTV가 공개된 것이었다.

이창명 이사의 경우와는 그 범행 강도가 조 부사장과 비교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조 부사장 사건이 폭탄처럼 터지면서 이창명 이사 경우도 같이 얽혀 버렸다.

기사 내용을 제대로 보지 않으면 이창명 이사 역시 자기 직위를 남용해서 여직원을 강간한 것처럼 묘사되었기 때문이다.

이창명 이사는 기사가 터진 후에 불과 3일 만에 전격적으로 검찰에 소환되어서 이번 사건과 관련해서 피의자 조사까지 받았다.

[……!]

길길이 날뛰었지만 반응하는 이들은 없었다.

물론 개인 변호사를 내세웠다.

그런데 이 일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윗선 귀에도 들어갔다.

그는 정말 뜬금없는 일로 오성 그룹 본사 이곳저곳에 불려가서 욕을 들었다.

[에휴, 이 병신 새끼.]

[역시 천한 피는 못 속인다니까.]

그 대상에는 심지어 안건민 회장도 있었다. 평소에 별다른 말이 없는 그조차 크게 실망했다는 말을 전하고 말았다.

그렇게 인정받으려고 노력했는데.

여자 하나 때문에 십년 가까이 쌓은 공적을 전부 다 날려 버린 것이었다.

이창명 이사는 그야말로 미칠 것 같았다.

“이 제기랄 년이!”

길길이 날뛰던 이창명 이사는 오혜정 비서의 전화번호를 누르다가 뒤늦게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불과 단 며칠 사이로 고소 고발과 동시에 참고인 조사를 받고 여성 단체가 움직이려면 배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민혁 이 새끼 짓이야!’

뒤늦게 안국호 부장에게 그 내막을 알아보라고 지시했다.

안국호 부장은 뜻밖에 수완이 있어서인지 검찰 쪽에 아는 지인을 통해서 금방 사건 내막을 파악했다. 그가 지인을 통해서 들은 내용은 정말 황당했다.

[아니, 그 사건에 이창명 이사가 도대체 왜 나온 겁니까?]

[아니, 그러면 지검장님은 전혀 몰랐다는 말입니까?]

[당연하죠. 롯대 그룹과 관련해서 일이 진행될 예정이었습니다. 이창명 이사는 이번 일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아니, 그러면 언론?]

[그쪽에서도 여성 단체 움직임보고 움직인 것뿐입니다!]

‘젠장.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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