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최 실장 이 새끼가 결국 선수 쳤구나!”
쾅 소리와 함께 분노한 이일태 이사는 성난 곰처럼 씩씩거렸다.
이석우 부장은 소파 한쪽 구석으로 물러나서 아예 몸을 사렸다.
허훈 과장은 자신이 괜한 정보를 얻은 것이 아닌가 하며 눈치만 봤다.
직장 생활이 늘 그렇지만, 좋지 않은 소식을 전하는 것만으로 죄니까.
잔뜩 독이 오른 이일태 이사는 허훈 과장을 차갑게 째려봤다.
“조재현 박사란 인물은 믿을 수가 있어?”
“송한성 교수와는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믿고 말고가 아닙니다.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서 알아둔 사람입니다.”
“쯧.”
이일태 이사도 허훈 과장이 얼마나 몸을 사리는지 잘 알았다. 이석우 부장이 굳이 허훈 과장을 데려온 이유도 말이다.
그 역시 자신이 이번에 큰 실수를 했다는 것을 알았지만, 설마 위성사업에 최민혁 실장이 손을 댈지는 상상도 못했다.
허훈 과장이 마치 경기 들린 환자처럼 부들부들 떠는 이일태 이사를 보다 못해서 한마디 했다.
“이사님이 굳이 홀로 최민혁 실장님을 공격했다고 믿지 않습니다만?”
“아, 부회장님이 뒤에 있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최 실장이 달려들지는…….”
“그러면 굳이 이사님이 직접 고민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부회장님이 알아서 최 실장님을 처리할 테니까요.”
“가만 그렇지. 맞아, 그래야지.”
오락가락하는 이일태 이사의 모습에 이석우 부장은 내심 한숨을 내쉬었다.
‘멍청한 새끼.’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지금까지 김현우 상무, 최훈열 전무 라인에 빌붙어서 잘 살아남았다. 막상 두 동아줄이 사라지자 똥오줌을 못 가렸다.
권재홍 그룹 비서실장이 부추겼다는 것을 안 봐도 깨달았다.
하지만 허훈 과장은 겉으로는 별 표정 없이 이일태 이사를 계속 설득했다.
“그러니 지금 즉시 권재홍 비서실장님에게 알리는 것이 맞지 않겠습니까?”
“마, 맞아. 고마워, 허 과장.”
“천만에요.”
허훈 과장도 허겁지겁 권재홍 비서실장에게 전화하면서 일어나는 이일태 이사의 뒷모습을 보면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는 멍청해서 잘 이용하였는데, 앞으로는 그것도 힘들 것 같았다.
‘돌겠네.’
* * *
권재홍 비서실장도 이일태 이사를 만나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한편으로는 마치 거머리처럼 달라붙어서 징징거리는 이일태 이사 행동에 혀를 찼다.
‘도대체 최 실장이 얼마나 무섭기에 저런 반응을 보이는 걸까?’
그럼에도 자신의 제안을 받아서 최민혁 실장을 들이박은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하지만 이일태 이사가 지금까지 최민혁 때문에 받은 정신적인 압박이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고려하면 그다지 이상한 일도 아니다.
김현우 상무가 제거된 이후에 이일태 이사는 요즘 제대로 잠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회사를 옮길 상황도 아니었다.
이사 직급에서 제대로 된 성과도 없이 다른 회사로 옮길 수가 없었다.
이일태 이사가 최근 미친놈처럼 일한 것도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었다. 일단 성과를 내야지 다른 회사로 이직해도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권재홍 비서실장은 덕분에 이일태 이사의 보고를 꽤 신뢰했다. 물론 그 나름 다른 채널을 통해서 사전 검증을 해봤다.
‘확실하군.’
결국 이 위성 사업에 대한 일을 최문경 부회장에게 보고했다.
“위성 사업이라니? 그게 무슨 개소리야? 아니, 그러면 콜린스는 어떻게 하고?”
“제가 알아본 바로는 이일태가 이번 이사회에서 최민혁 실장을 들이박았다고 합니다.”
“설마 내가 부추겼다고 그런 짓을 한 거야? KM 전자 오너는 민혁이 그놈인데, 미친 것 아냐?”
“아무래도 회장님이 지지했다는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비록 증여했다고 해도 회장님이 아직은 최 실장에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쯧.”
대기업이 차명 지분 이용하는 것은 늘 있는 일이다. 심지어 지분을 증여한 것처럼 처리해서 배후에서 관리하는 방법도 있다.
방법은 다양했다.
그리고 이런 시선은 꼭 과장도 아니다.
다른 대기업도 최민혁의 배후에는 최용욱 회장이 있다고 하는 것이 대세다. 설마 20살짜리 서자 나부랭이가 KM 전자를 반석에 올렸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실제로 정치인 대다수는 최민혁이 아니라 최용욱 회장에게 접근했다.
최용욱 회장도 더러운 일을 굳이 손자에게 맡기고 싶지 않아서 이 일을 부인하지 않았다.
즉 KM 그룹 내막을 잘 모르는 사람은 최민혁 배후에 최용욱 회장이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최민혁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최문경 부회장은 이일태 이사에게 받아온 최민혁 행보를 확인하면서 고민했다. 아마 과거였다면 쳐다도 보지 않을 일이다.
그런데 이미 수차례 최민혁에게 당하고 난 다음에 최민혁의 행보 하나하나를 가볍게 보지 않았다.
“이게 의미가 있을까?”
이미 이일태 이사를 통해서 위성 시스템에 대해서 들은 권재홍 비서실장은 침중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이 공동 연구하는 곳 중에는 위성방송에 대한 것도 있습니다. 이동호 교수 연구 팀의 성과가 워낙에 구체적이라서 독일을 비롯한 세계적인 연구소에서도 공동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 덕분에 그 결과가 무시할 정도는 아닙니다.”
“정확히 어느 정도 의미야?”
“지금까지 ETRI 연구 성과를 잘 보면 언론에서 국산 위성방송이라고 떠들어대는데, 그저 동작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방송사도 아직 디지털 방송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상황에서 가치가 있을 리가 없습니다.”
“돈이 안 된다는 말이군.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는 말인가?”
“적용된 기술 자체가 MPEG 위원회와 연결되는 다른 대기업에서 다 하는 것들입니다. 소니를 비롯해 알 만한 기업은 다 끼어 있습니다.”
최문경 부회장도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진지하게 들었다. 디지털 방송 시스템 시장을 장악한다면 그건 이야기가 좀 달랐다.
위성방송과 관련된 새로운 시장은 그야말로 별들의 전쟁이다. 경쟁 상대도 별로 없는 그 시장을 먼저 선점한다면 수익성을 떠나서 상징성 그 자체만으로 의미가 있다.
“훈열이가 헛소리를 많이 했는데…….”
“저도 최훈열 전무님이 하던 이야기를 다 씹었습니다. 하지만 디지털 방송 시대가 열리면 그와 연동되는 위성방송 사업은 더욱더 커질 겁니다.”
“그걸 민혁이 그놈이 지금 하려고 한다고?”
“네.”
“그 일만 죽어라고 하던 이일태 이사 그놈조차 자기 밥그릇까지 다 빼앗길 상황인데, 인제 와서 우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어?”
“제 말은 그걸 우리가 하고 말고가 아닙니다. 최 실장이 위성 사업까지 먹도록 그냥 두실 겁니까?”
“아, 그렇지. 미안, 미안해. 내가 정신이 없네.”
뒤늦게야 최문경 부회장도 인상을 와락 구기고 말았다. 콜린스에 대한 탐욕 때문에 생뚱맞은 위성사업을 너무 과소평가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실상 이게 최민혁의 의도였다.
불행히도 최민혁에게 계속 휘둘리기만 하던 최문경 부회장은 최민혁의 꼼수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가만. 콜린스는 이미 손대기 어렵겠지?”
[168]“여러 각도에서 살펴봤지만 현재로서는 뾰족한 방법이 없습니다. 보통 기업이라면 공장 증설을 한다든지 무리수를 둘 텐데, 조용합니다. 너는 주문해라, 우리는 생산할 수 있는 것만 판다 이런 자세입니다.”
문제는 이게 또 먹힌다는 거다. 최근 콜린스 계약도 대부분이 KM 전자가 유리했다. 콜린스 수익성은 시간이 갈수록 더 높아졌다.
결국 KM 전자 상표 가치가 그 어느 때보다 올라갔다.
PC 통신 동호회 소비자 평이 그 증거였다.
[아, 도대체 콜린스는 언제부터 파는 거야?]
[다음 달부터 판다는 소리가 있던데,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니랍니다.]
[진짜 지친다.]
물론 불만이 더 많았다.
그런데 톰슨 멀티미디어가 프랑스 판매를 주도한 덕분에 콜린스를 산 프랑스의 평가는 실로 대단했다.
[프랑스에서 콜린스 구입한 사람 이야기로는 진짜 물건 죽인답니다. 화질이 얼마나 좋은지 소니도 저리 가라고 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콜린스는 명품이라는 이미지가 점점 강해졌다.
KM 전자는 최고의 TV를 파는 전자 회사로 자리매김한 것이었다.
그러니 답답한 소비자도 그저 정신 판매가 되기를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이런 이미지 구축은 최민혁의 IFA 기조연설 이후로 지속하여서 이제는 어느 정도 바닥을 다지기 시작했다.
과거 국내 전용이라는 비웃음을 당하던 그 KM 전자의 이미지는 이제 온데간데없었다.
오혜정 비서의 TV 광고도 이런 KM 전자의 명품 이미지 혁신을 주도했다.
“…대단한 놈이야.”
최문경 부회장도 최민혁의 부동심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말았다.
남들은 답답해서 안절부절못하는 상황에서 최민혁은 묵묵히 정해진 길만 갔다. 당장 눈앞에 돈이 보이는데, 그 이익을 포기했다.
대신에 제품 명가라는 신뢰를 얻었다.
사실 최민혁이 무리수를 뒀다면 여러 가지 압박할 건수는 많았는데, 불행히도 지금은 그 방법 자체를 쓸 수가 없었다.
더 아쉽다면 KM 산업은 KM 전자와 연결 고리가 별로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KM 그룹 계열사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다른 계열사와 공급 자체도 다 끊어 버려서 이제는 쓸 카드도 별로 없었다.
시선을 다른 쪽으로 돌렸다.
“오성 전자는 뭐 하고 있어?”
“그쪽도 저희랑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KM 전자 경영이 워낙에 탄탄해서 파고들 구멍이 없습니다. 심지어 최근 회사 부채율도 90%까지 낮추는 바람에 주거래 은행 지점장도 쩔쩔맵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회사 부채가 너무 많아서 언론에서도 요주의 기업으로 낙인찍었다. 그런데 이제는 오히려 클린 컴퍼니로 거듭났다.
“…민혁이 이 새끼는 회사 직원 회식도 안 한대?”
“STB 사업 매각 대금과 보상금으로 받은 자금도 많이 남아 있고, 심지어 계약금으로 받은 돈만으로 회사 현금이 넘쳐난다고 합니다.”
“하. 그렇다고 하자. 가만, 그러면 오성 전자 쪽에서는 위성 사업을 진행하는 것은 알아?”
“아마 모를 겁니다.”
“그러면 오성 쪽에 넘겨. 어차피 송신기, 행정통신용 지구국 장비에도 오성 전자가 엮여 있다면서? 아마 그쪽이 더 난리가 날 거야. 자칫하면 위성 방송 알짜배기는 전부 민혁이 그놈이 먹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 * *
황광수 차장은 권재홍 그룹 비서실장을 통해서 최민혁의 행보를 알자 순간 망설였다. 이 사실을 보고해야 할지 말이다.
갈등은 오래가지 않았다.
위성사업과 관련된 안건은 결코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임권수 부장은 보고를 받기가 무섭게 권태성 실장을 찾았다.
물론 권태성 실장의 반응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그는 다른 일을 핑계로 임권수 부장의 보고를 반나절 가까이 회피하다가 결국 보고를 받았다.
“휴우.”
일단 한숨부터.
여기에 위성사업 이야기가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었다.
최근 가중되는 압력을 견디지 못해서 지난 최병연 팀장 스카우트 건은 위에 보고했다. 대신에 이 사태의 책임은 모두 안국호 부장에게 있다는 것을 여러 조사 자료를 근거로 했다.
약간의 질책은 받았지만, 다행히 잘 넘어갔다.
안국호 부장이 이제까지 한 짓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내사 팀에서 안국호 부장에 대한 전반적인 것을 조사했다.
물론 그 결과에 대한 것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안국호 부장이 방계인 것도 있지만 안건민 회장의 숨겨둔 아들이라고 소문난 이창명 모바일 사업실 이사 라인이기 때문이다.
안국호 부장이 미친놈처럼 설치는 것처럼 보여도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지가 않았다.
최병연 팀장처럼 너무 튀는 인물에 대해 견제를 하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최병연 팀장 같은 인물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 물론 그 이후에도 당근을 줘서 철저하게 관리를 한다.
그 과실은 안국호 부장을 통해서 이창명 이사가 다 먹는다.
이창명 이사가 불과 33살이라는 나이에 이사를 단 이유였다.
그래서 이창명 이사가 원인이 된 스카우트 사태가 문제였다. 적절한 당근과 채찍을 이용해서 관리한 인재가 모두 다 도망간 것이었다.
이 일의 근본적인 원인은 역시 이창명 이사의 탐욕 때문이었다.
몇 단계를 거쳐서 이 사실은 들은 권태성 실장은 이제 최민혁의 일에 간섭하고 싶지 않았다.
권태성 실장도 책임을 피했지만 대신 이들 최병연 무리에 관해 면밀한 조사를 하라는 지시만 충실히 따르려고 했다.
그런데 임권수 부장이 가져온 자료를 보면 위성사업도 내버려 둘 일은 결코 아니었다.
‘이게 돈이 될까?’
과거 최민혁의 위험성을 경고한 황광수 차장을 쳐다보았다.
“황 차장 생각은 어때?”
황광수 차장은 머뭇거렸다. 그는 당연히 조사를 해봤고, 뒤늦게야 비디오 특허, 공간 압축 특허, 심지어 아직 확실히 파악한 것은 아닌 위성 관련 기술에 대한 것까지 찾았다.
거기에 이동호 교수 연구 팀, 송한성 교수 연구 팀, ETRI, 미국 위성 관련 기업도 이 일에 다 연루되어 있었다.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권태성 실장도 이제 최민혁과 관련된 일이라면 돌다리부터 먼저 두들겼다.
“이 정보 출처에 관해서 조사를 해봤을 것 아닌가?”
“이일태 이사와 KM 그룹 비서실에서 흘린 것으로 압니다.”
“최민혁 실장 때문이군. 하면 거짓 정보는 아니라는 이야기군.”
“송한성 교수 연구 팀 라인을 통해서 확인한 바로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일이…….”
“망설이지 말고, 이야기를 해보게.”
“이일태 이사가 최민혁 실장하고 한바탕한 것으로 압니다. 최민혁 실장은 이 일 때문에 열을 상당히 받아서 이 일을 진행한 것으로 압니다.”
“하하하.”
도대체 KM 전자 이사회의 갈등 이야기까지 왜 들어야 하는지, 권태성 실장은 어이가 없어서 허탈하게 웃고 말았다.
하지만 그는 자기 앞에 놓인 위성 관련 오성 전자의 프로젝트 진행 현황을 보자 그럴 수가 없었다. 이대로 모른 척하고 넘어가면 이 일은 다른 사람 핑계를 대기 힘든 상황이었다.
지난 일 때문에 권태성 실장에게 찍혀서 위기감을 느낀 임권수 부장이 넌지시 한 가지 의견을 내놓았다.
“굳이 우리가 이 일에 간섭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최민혁 실장에게 이를 가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그건 힘들어. 그 정도 되는 인물은…….”
‘가만, 안국호 부장이 있잖아. 그 윗선이 이창명 이사도 최민혁 실장을 좋아할 리가 없어.’
특히 안국호 부장은 이번 스카우트 사태의 감사에서 별다른 처벌을 받지는 않았지만, 이창명의 골프채에 맞아서 이 주 가까이 병원에 입원했다.
윗선에서 막아서 일이 처리되기는 했지만 가벼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임권수 부장은 갈등하는 권태성 실장의 눈치를 보면서 나섰다.
“제가 한번 안국호 부장에게 말을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아마 거절하지 않을 겁니다.”
“무슨 말이야?”
“혹시 오혜정 TV 광고에 대해서 아십니까?”
권태성 실장 역시 KM 전자의 콜린스 광고를 봤기에 오혜정에 대해서 알았다. 최민혁의 프로필에 늘 오혜정 비서도 따라왔기 때문이다.
“최민혁 실장의 비서라던 그 오혜정 말인가?”
“네. 최병연을 비롯한 핵심 인재 스카우트 사건 때문에 안국호 부장이 KM 전자를 따로 조사한 것으로 압니다. 그는 KM 전자를 흔들기 위한 조사에서 오혜정 비서를 찍었고, 기획사를 통해서 은밀하게 손을 쓰려고 한 것으로 압니다.”
“안국호 부장이 말인가? 설마 오혜정 비서를 노린 건가? 그 양반 나이가 몇인데…….”
“정확히는 이창명 이사 지시로 압니다.”
“흠, 이창명 이사라…….”
그도 이창명 이사에 대한 소문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현재 사내 평판은 나쁘지 않았다. 회사 내에서도 별다른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
‘안국호 부장 배후라는 소리가 파다하니까.’
“결국 빌미만 있다면 이창명 이사가 이번 일에 낄 확률이 높다는 이야기군.”
“아무래도 모바일 사업실 전체를 담당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위성 사업에 대한 것도 가볍게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문제를 만들면 곤란해.”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창명 이사가 알아서 처리하는 것으로 하고, 저희는 손 떼는 것으로 가면 됩니다. 이창명 이사가 KM 전자를 잘 처리하면 그것으로 좋고,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 기획실 쪽에 불똥은 튀지 않을 겁니다.”
“좋아. 한번 알아봐.”
“네.”
권태성 실장도 최민혁에게 매번 당하다 보니, 뭔가 냄새가 난다는 것을 감으로 느꼈다. 거기에 위성사업이 돈이 안 되지만, 이제까지 최민혁 행보를 보면 또 그렇게 확정할 수가 없었다.
‘짜증 나네.’
그 덕분에 그는 최병연 무리가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조사를 깜빡하고 말았다. 최병연 무리도 위성사업에 엮여 있다고 착각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