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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는 조용히 살고 싶다-162화 (162/1,021)

* * *

과거 김현우 상무가 STB 사업부를 이끌면서 위성 방송에도 관심을 많이 뒀다. 위성 사업부를 만들어서 이일태 이사를 끌어들였다.

실제로 이 위성 사업에 대한 대기업의 관심은 컸다. 경쟁이 얼마나 치열할지 구체적인 제품 설명까지 알리지 않았다.

대기업이 굳이 이 사업에 관심을 둔 이유 중의 하나는 안테나 기술이다.

모바일 시장이 커진다면 중계기 관련 사업이 뜰 수밖에 없다.

실제로 뜨거운 주 관심사로 떠오르는 다양한 통신 사업이 그 대상이다.

휴대폰 사업이 앞으로 미래를 주도한다는 것을 아는 대기업은 자연스럽게 위성 통신에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위성 통신의 사촌이 바로 위성 방송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과거 위성 방송과는 달리 디지털 위성 방송은 이제 미국이 첫 출발을 하였을 정도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

과거 STB 사업부에 있었던 임기석 부장은 이 내막을 잘 알았다. 그는 때문에 이동호 교수와도 소통하면서 송한성 교수와도 지속해서 연락했다. 이와 관련된 보고를 늘 최민혁에게 했다.

다만 최민혁은 콜린스와 MP3 프로젝트에 정신이 없어서 이를 간과했을 뿐인데, 이번 송한성 교수를 통한 덕분에 과거 자료를 살폈다.

‘괜찮은데.’

시작할 수 있는 기반 자료는 충분하고도 넘쳤다.

다만 워낙에 엮여 있는 이권이 많아서 섣불리 손을 대지 못했을 뿐.

임기석 부장은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실장님, 정말 위성 사업에 손을 대실 생각입니까?”

“이일태 이사가 건 싸움인데, 물러설 수는 없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일태 이사도 지금까지 쌓인 것이 있어서 한때 흥분한 것뿐이지 않습니까?”

“저도 쌓인 것이 많습니다만?”

“…그런 뜻이 아닙니다. 최훈열 전무나 김현우 상무와는 달리 이일태 이사는 회사에 딱히 해를 끼친 적은 없습니다.”

“저도 그래서 이일태 이사보고 나가란 소리를 한 적은 없습니다.”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이 위성 시스템은 저희가 개발할 이도 아닙니다. 이동호 교수, 송한성 교수, ETRI, 미국 기업이 할 일입니다. 우리는 단지 거기에 윤활유를 쳐서 이익만 뽑아 먹을 겁니다.”

“그건 잘 압니다.”

실상 김현우 상무가 노렸던 목표다. 잘만 하면 위성 방송에 빨대를 꽂아 놓고 재미를 단단히 볼 수가 있었다.

특히 방송국 쪽과 인맥을 쌓아서 단단히 재미도 볼 수도 있고 말이다.

임기석 부장도 최민혁의 눈치를 보면서 몇 마디 더 할까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다. 이 사태를 만든 이는 이일태 이사 본인이다.

굳이 그가 나서서 이일태 이사를 더 변호할 수는 없었다.

그저 이일태 이사가 딱할 뿐이었다.

‘그냥 죽은 듯이 있었더라면 최 실장님도 이렇게 나오지 않았을 텐데, 도대체 왜 갑자기 이사회에서 설친 것일까?’

최민혁은 이전과는 달리 이번 일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ETRI 위성 사업 담당자가 박재호 실장이라고 했죠?”

“네. 정치 수완이 좋은 분입니다. 그렇다고 딱히 정치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력도 좋습니다. 밑에서도 잘 따르는 터라 위성 프로젝트도 잘 풀어가고 있습니다. 무궁화 위성 발사를 앞당긴 사람이 그입니다.”

“박재호 실장을 본 적은 있습니까?”

“위성 셋톱과 관련된 미팅 때문에 수차례 안면이 있습니다.”

“김현우 상무와도 잘 알겠군요. 설마 두 사람 사이가 좋았습니까?”

“그건 또 아닙니다. 겉으로야 좋은 얼굴을 하지만 김현우 상무의 정체를 잘 알았습니다. 그 때문에 ETRI와 공동 프로젝트 진행도 결과가 나빴습니다.”

최민혁은 김현우 상무 과거 이력을 다시 확인하면서 혀를 찼다. 김현우 상무가 낸 손실 중에는 ETRI와 관련된 연구도 많았다.

그럼에도 ETRI가 지속적인 관계를 잘 유지한 것은 연구 자금 때문이다.

김현우 상무는 과시적인 실적 포장을 위해서 ETRI를 이용하기 위해서 호구처럼 계속 연구 자금을 퍼주었던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연구 자금을 빼돌린 것은 덤이다.

‘완전 호구로 알았겠군.’

[167]그리고 이 비밀을 밝힐 사람이 뜻밖에도 민성일 과장이었다.

최민혁은 MP3 프로젝트 진행이 순조로운 것을 확인하자 다시 한번 머리를 굴렸다.

‘MP3 프로젝트는 엔지니어도 아닌 내가 나서서 감 놔라 배 놔라 할 문제는 아냐. 이보다는 견제를 사전에 차단할 필요가 있어. 전장을 내게 유리한 쪽으로 돌리는 것이 훨씬 나은 선택이야.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위성방송도 괜찮아.’

최민혁은 김명준 과장을 보면서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작업을 진행하세요.”

“알겠습니다.”

* * *

조재현 박사 3년차는 송한성 교수와는 성격이 맞지 않아서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이제 곧 박사 학위가 얼마 남지 않아서 일단 참았다.

하지만 그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낄 수가 없어서 괴롭기만 했다.

송한성 교수도 몹시 나쁜 성격은 아니라서 고만고만한 작은 프로젝트를 조재현 박사에게 넘겼다.

조재현 박사는 암묵적인 협상 끝에 송한성 교수 연구실에서 버티기로 타협했다.

그런데 이번 이동호 교수와의 공동 연구만큼은 호기심이 들었다.

하지만 한번 틀어진 송한성 교수는 절대로 이 연구에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그런 그를 찾아온 사람은 뜻밖에도 김명준 과장이었다.

김명준 과장은 송한성 교수 소개로 이 자리에 왔는데, 뜻밖의 제안을 내놓았다.

“허, 이중 첩자라니.”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적당한 시기에 필요한 정보를 흘리는 것이 중요하니까요. 송한성 교수와도 사이가 좋지 않으니, 누구도 의심하지는 않을 겁니다.”

“송 교수님은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요?”

“아무리 송 교수님이라고 해도 조재현 박사와의 감정 대립 때문에 화해가 쉽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남의 인생을 막을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그런가요?”

다른 사람은 잘 이해하기 힘들 것 같지만, 자신은 달랐다. 송한성 교수와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다. 감정적인 대립이 몇 년 동안 격해지면서 골이 더욱 커져서 이제 메꾸기 힘들 뿐이다.

서로 단순히 몇 마디 말로 화해하고 말고 할 수준이 아니다.

서로에 대한 신뢰가 너무 망가져서 도저히 같이 일하기 힘들었다.

이 일에는 조재현의 독단적인 성격도 한몫했다.

그럼에도 송한성 교수가 일정한 프로젝트를 계속 준 것은 조재현 박사의 실력을 어느 정도 인정하기 때문이었다.

“…김명준 과장님이라고 하셨죠? 그쪽 회사는 정말 특이하군요. 저 같은 사람에게 이런 일을 시키다니, 상상이 잘 안 갑니다.”

“저희 실장님 지시입니다. 두 번째 기회를 열어주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최민혁 실장님 말인가요?”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전 불법적인 일은 절대로 안 할 겁니다.”

“하하하, 걱정하지 마십시오. 어차피 회사 기밀을 외부에 알리는 것도 아니고, 정보를 넘기는 것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상대도 이중삼중으로 검사를 할 겁니다.”

“네.”

* * *

허훈 과장은 위성 사업 관련해서 ETRI를 포함한 모든 관련 업체를 관리했다.

위성 디코드 개발 역시 직접 개발이 아니라 외주를 줬다.

송한성 교수 연구 팀 역시 그가 꾸준하게 연락하고 관리하는 곳이다. 일테면 위성방송 기술 자문할 때 말이다.

이미 송한성 교수 연구 팀에 여러 차례 선행 조사와 관련해서 연구 용역까지 내준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서 송한성 교수 연구 팀을 살폈는데, 송한성 교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조재현 박사를 이때 알았다.

단순히 안면을 익히려고 안 것이 아니라 일종의 프락치로 이용했다.

송한성 교수 프로젝트 진행 정보와 다양한 다른 정보를 얻기 위한 목적이었다.

허훈 과장은 STB 사업부 매각 후에는 송한성 교수와는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김현우 상무가 날아가면서 굳이 더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조재현 박사가 갑자기 급한 일이 있다고 만나자고 연락을 해 왔다.

조재현 박사는 최근 최민혁 실장과 이동호 교수가 자기 연구실을 찾아서 위성 관련 공동 프로젝트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폭로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그는 적절한 정보비(?)를 제공하면서 몇 차례에 걸쳐서 꼼꼼하게 확인했다. 그리고 회사에 돌아온 후에는 최민혁 실장의 최근 동선을 살폈다. 생각보다는 정보를 얻기 어렵지가 않았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이일태 이사와 최민혁 실장의 갈등도 알아냈다.

‘완전히 미쳤군.’

그로서는 정말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허훈 과장은 즉시 이석우 부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돌겠네.”

“아무래도 두 사람의 갈등 때문에 최 실장이 단단히 열받은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이석우 부장은 이일태 이사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이번이 세 번째 직장이라서 옮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족제비 같은 허훈 과장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쥐새끼같이 약아서 얼마나 잘 빠져나가는지는 이미 경험해 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사실을 보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문제는 이일태 이사가 과연 어떻게 반응할지 답답했다.

“같이 가세.”

“네? 제가요?”

“그래, 자네가 이 정보를 구해 왔으니까.”

김기범 마약 사건 이후에 한껏 몸을 사리고 있던 허훈 과장은 이미 여러 번 거절했지만, 이석우 부장의 제안마저 거절할 수가 없었다.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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